중세지향 퇴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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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달 에디터

 안녕하십니까? 


 송의달 에디터입니다.
 
이번주 [모닝라이브] 뉴스레터에서는 홍승기 인하대 로스쿨 교수님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전해 드립니다.
  그는 올해 9월 <중세지향 퇴행사회>라는 단행본을 냈습니다.


눈부신 IT 강국, 정치와 법률, 대학, 언론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세계 10위 안에 든 우리나라가 왜 '중세지향 퇴행사회'인지, 이런 흐름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홍 교수님과의 대담 인터뷰에서 짚어 봤습니다.
 


날씨가 많이 차가와졌습니다.
건강 유의하시는 가운데 승리하는 한 주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송 의달 올림 

(이메일 주소 : edsong24@gmail.com, edsong@chosun.com)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가 2023년 11월 8일 오후 조선일보 송의달 에디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修學)한 그는 사법시험(30회)과 미국 뉴욕주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이태경 기자

“교수들까지 먹방·트롯에 빠져 붕뜬 한국...과거지향 선동만 판 친다"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 인구는 5000만명 이상에 해당하는 ‘3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했다.
반도체 같은 IT 분야에선 손꼽히는 강국(强國)이다.
경제 규모와 문화·스포츠·국방 분야에서도 한국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 손색없는 글로벌 상위 선진국이다.

우리나라의 이 같은 좌표(座標)에 대한 홍승기(洪承祺·64)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두 달 전 발간한 저서 <중세지향 퇴행사회(中世志向 退行社會)>에서 “압축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도 근대화를 거부하고 식민 사회에 머무려는 중세지향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이달 8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나 2시간 가까이 인터뷰했다.
고려대 법학과와 미국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修學)하고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장과 대한변협 공보이사를 지낸 그는 현재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과 콘텐츠분쟁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 지금 한국이 왜 ‘중세지향 사회’인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근거가 많다.
화폐의 인물만 봐도 구미·일본은 물론 중국도 마오쩌둥이란 근대인을 지폐에 새겨놓고 있으나, 한국엔 신사임당·세종·이율곡·이황 등 조선시대 인물 뿐이다.
고종의 아관파천 도피로를 ‘왕의 길’이라고 복원한데 이어 광화문 앞과 덕수궁 대한문 앞 월대(月臺), 경복궁 내 전각(殿閣)의 지나친 복원까지 모두 중세 왕조 지향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사료(史料)를 보면 경복궁 앞 월대는 1866년 축조돼 57년 동안 존재했다.
고종이나 순종이 월대에서 백성을 만났다는 기록도 없다.
덕수궁 앞 월대는 10년 남짓 있었다.
둘 다 도시계획 과정에서 사라졌을 텐데, 누구를, 무엇을 위한 복원인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중세지향성’이 있다면?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식민지 시대 탈출을 거부하고 일제시대에 머무르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78년, 즉 35년의 식민기간 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흘렀지만, 정치인은 물론 상당수 지식인들조차 식민시대의 사고방식과 논리에 갇혀 있다.

-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 예로 국가보훈부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지금도 매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발표한다.
서울교통공사는 그 국가보훈부의 포스터를 지하철 역사(驛舍)에 게시하고 있다.
공공 부문이 ‘탈식민 거부’에 앞장서는 형국이다.
 대학교수, 언론까지 친일(親日)·반일(反日) 이슈에 과민 반응하며, 반일을 외치지 않으면 누구든지 매국노(賣國奴)로 지탄받을 수 있다.


홍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몇 년 전 정부가 반일몰이를 하던 시기에 교가(校歌)의 작곡·작사가가 친일파라고 전국이 떠들썩했다.
호남의 명문인 광주일고도 그런 이유로 2021년 4월 교가를 바꾸었다.
아마 광주일고 옛 교가의 작곡·작사자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을 것이다.
역사가 오랜 학교의 교사(校史)전시관에서 해방 전 일본인 교장·교감의 액자를 떼 내는 모습이 자랑인 양 TV 뉴스에 보도됐다.
이런 것이야말로 역사 수정주의이고 反역사적 일탈이다.

2023년 10월 복원된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와 주변 모습. 월대 복원으로 인해 광화문 앞 도로가 곡선형으로 휘어 교통 영향이 불가피하다.
/뉴스1

- 일본과 얽힌 족쇄랄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국 사회의 식민시대 탈출을 가로막는 최대 주범은 친일(親日) 프레임이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1983년부터 40년간 일본 천황과 총리는 일본의 한국 병합(倂合)에 대해 총 53회 공개 사과했다.
아키히토 천황은 4회, 아베 신조 총리는 19회였다.
사실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경영을 사과한 사례는 일본과 이탈리아 정도 뿐이다.
 이탈리아는 2008년 당시 리비아가 원유 수출을 끊겠다고 나오자 원유를 계속 공급받기 위해 사과했다.
세계 10위권 대국인 우리가 일본에게 제국주의 시대 역사를 사과하라고 계속 요구하는 것은 소아병(小兒病)적인 행태이다.
혹자는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도 트집 잡는데 연세대 김철 명예교수의 표현을 빌면, 진정성의 요구 그 자체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
그런데도 공공영역이 나서서 ‘토착왜구’ ‘죽창부대’ 같은 초라한 주장을 했으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과거’·‘일본’에 매몰됐나?

“이승만 대통령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역대 정권은 빈곤 탈피를 목표로 전 분야에서 근대화(近代化)에 매진했다.
역대 정권은 반일을 소품으로 일부 이용해도 밀고당길 줄을 알았다.
1982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계기로 폭발한 국내 반일(反日) 에너지를활용해 전두환 정권은 일본을 압박해 40억달러 안보·경제협력차관과 1983년 국빈 방문한 천황으로부터 식민지 사죄를 받았다.
그런데 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은 ‘임시정부 이래 최초의 정통 정부가 문민정부’라며 해방 후 한국인의 성취를 부정(否定)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의식의 근대화’ 과정에 심각한 병목 현상을 가져왔다고 본다.

- 특별한 계기가 있나?

“해방 50주년을 맞은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정부가 중앙청을 해체·폭파한 사건이 분수령이다.
1926년 완공된 중앙청은, 일제가 총독부로 쓴 기간(18년) 보다 우리가 정부청사로 사용한 기간(50년)이 훨씬 길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일(反日) 감정을 최대한 이용하겠다고 깨부수었다.
 중앙청의 소멸은 단순한 건물 해체를 넘어 근대화 정서의 파괴였다.
해방 후 지속된 근대화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북한식(式) 민족주의에 동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도 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김영삼은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는 일본 등 외세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하며 민족 지상주의(至上主義)에 빠진 북한과 같은 정서를 공유한다는 전환적 선언이다.
이때부터 북한식 백두사관(白頭史觀)에 대한 경계가 풀린 듯싶다.

그는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 중후반 이후 대학가의 의식화 교육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 같은 풍토 위에 불량(不良) 정권 북한에 매력 또는 연대감을 느끼고 북한의 사주(使嗾)를 받은 운동권에 의해 급물살을 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990년 11월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세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와 정의기억연대(약칭 정의연)가 좋은 예이다.
‘20만 명의 소녀 강제연행’ ‘유례를 찾기 힘든 잔학함’이라는 그들의 표현은 북한의 시나리오와 흡사하다.
윤미향은 1992년 8월 ‘지금 남북 모두가 일본으로부터 정신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해 내고 배상을 받아내기에 충분한 주체 역량이 마련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북간 국교 수립을 위한 회담 시기의 발언이다.

- 2000년대 들어서는 어떠했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세워진 ‘친일반(反)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대표적인 중세지향·퇴행사회의 예이다.
이 위원회 활동은 그 자체가 국가폭력이다.
해방 후 60년 세월이 흐른 후, 당대의 내밀한 사정에 무지한 후배들이 조악한 기준으로 당대 국내 엘리트들을 단죄했다.
1955년 대한민국 정부는 제2대 부통령 인촌 김성수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루었고 1962년엔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인촌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고 서훈까지 박탈하는 야만을 저질렀다.

그는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의 판단은 반(反)헌법적 행위로 ‘전적으로’ 무효화해야 한다.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은 사람들의 재산을 박탈한 것은 헌법 위반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明示)하고 있다
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시내 지하철 역에 게시한 2023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모습/홍승기 교수

1984년 9월 6일 저녁 히로히또 일본 천황은 일본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황실 사상 최대 규모의 만찬 연회를 열어 "양국 간 불행한 과거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다시는 되풀이되어선 안된다"는 사과문을 읽었다.
이는 해방 후 일본 천황이 한 사상 최초의 공식 사과였다.
사진은 당일 만찬 사과를 보도한 조선일보 1985년 9월 7일 1면/인터넷 캡처

홍 교수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된 큰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과 위원장을 맡은 강만길 교수, 편협한 시각의 국사학자들은 물론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에 있다.
2011년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대해 헌법전문의 ‘임시정부의 법통’ 운운하며 위헌이 아니라고 결론냈다.
조대현·이강국 재판관만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이 ‘오늘 이 순간’ 재산권의 귀속을 다투는 준거가 된다는 판단은 터무니없는 논거이다.


- 역대 정권 가운데 ‘중세지향 퇴행성’이 가장 강했던 곳을 꼽는다면?

“문재인 정권이라 단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3류 대학 운동권 학생들이 동아리를 운영하는 사고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했다.
자유·민주·인권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를 향해 대통령이 TV 앞에서 ‘다시는 지지 않겠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문재인 정권 5년이 우리 역사에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 왜, 어떤 이유 때문인가?

“문재인 정권은 5년 내내 ‘엉뚱한 제도’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도입해 기업인을 옥죄고, 자영업자를 괴롭히고, 국민의 건전한 근로의욕에 흠집을 냈다.
검수완박으로 검찰을 식물검찰로 만들어 특정인에 대한 형사처벌의 예외를 구축하고, 통치의 정통성을 실체가 애매한 ‘항일(抗日)투쟁’에 두었다.
조선시대 양반 특권층과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부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저서에서 언급한 근대 한국인들 가운데 근대 지향성이 가장 뛰어난 이는 누구인가?

“이승만, 윤치호, 서재필, 유일한 같은 분들이 모두 훌륭하지만, 이승만(李承晩)은 당대에 나오기 힘든 ‘돌연변이’였다.
그는 탁월한 개인기(個人技)와 사명감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존재를 공론화했다.
이승만에 압도된 한국 좌파는 어떻게든 그의 흠집을 내고자 흑색 선전을 하고 김구를 대항마로 띄워 이승만을 깎아내리고 있다.
반공(反共)주의자인 김구는 기본적으로 좌파와 융합이 안 되는 존재이다.
좌파에게 김구는 김일성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이자, 이승만 공격을 위한 소모품일 뿐이다.

- 1980년대 5·6공화국과 1990년대 김영삼·김대중 양김(兩金) 정권을 비교한다면?

“ 70년대 말 대학에 입학한 세대로서 88올림픽의 성공은 인정해도 정서적으로 전두환·노태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참 세월이 흘러 여러 자료를 확인하고서야 ‘전두환 시대 경제성장의 과실(果實)을 양김이 뜯어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5·6공 시절에는 일류 엘리트들이 국가를 경영했다.
 양김 시대에는 나름의 성과에도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정치 낭인’들이 대거 공공영역으로 넘어오면서 국가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홍 교수는 개인적인 일화를 꺼냈다.

“1997년 가을 미국 로스쿨에 등록한 지 3개월 만에 7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1900원대로 치솟았을 때 ‘나라 잃은 국민’ 심정을 느꼈다.
당시 아시아 경제위기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갔다가 한 투자은행 발제자가 ‘한국 정부 의뢰로 한국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도네시아·태국과 비교해 컨설팅을 해주었더니 한국정부가 돈은 잔뜩 주고서 컨설팅 결과를 덮어 버리더라’고 폭로했다.
1995년 11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큰소리쳤던 김영삼 정부의 국가 경영능력은 엉망이었다.

- 근대 사회는 스스로 사유·판단하는 ‘깨어있는 개인(個人)’들의 결사체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2016년 하반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동과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조국 현상’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 파시즘의 망령이 깊이 깃들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1930년대 독일 국민의 투표로 정권을 장악했듯, 대한민국에는 선동되려는 기층 민중과 선동에 도(道)가 튼 정치꾼들, 선동으로 먹고사는 사이비 언론이 즐비하다.
매우 취약한 구조에서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

- 우리나라가 ‘중세지향 퇴행’을 끊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선진국 문턱까지 갔다가 중후진국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처럼 될 것이다.
아직은 우리 기업들이 튼튼해서 다행이지만, 후진국 몰락은 순식간일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노란 봉투법’처럼 틈만 나면 기업들을 옥죄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려 안달 내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정권이 이재명으로 연결되었더라면, 남미(南美)든 북조선이든 눈 앞에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중앙청 건물의 첨탑을 기계톱으로 절단해 크레인으로 제거하는 공사를 했다.
이후 중장비 기계를 동원해 중앙청이 무너뜨려지고 있다.
중앙청 건물은 1996년에 완전 해체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8월 2일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일본을 비난하며 "우리는 다시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 사실을 보도한 2019년 8월 3일자 조선일보 A1면/인터넷 캡처

- 이를 막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의 지력(知力)을 높여야 한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널리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는 습관이 붙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의 허리로서 건강한 지식인층이 구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지식인층에서 국가 미래를 개척하고 이끄는 핵심 엘리트가 나와야 한다.
사실은 이 세 가지 모두 ‘많이 읽자’는 얘기
다.

- 좀 생뚱맞다.

“쉬운 예로 일본을 얘기하겠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고 세계를 상대로 전쟁까지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민 전체에 다져진 지력(知力)이 있었고 그 지력은 독서에서 생긴 힘이었다.
일본에선 지금도 매년 1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여럿 나오고, 요미우리 신문 구독자는 900만명, 아사히신문 구독자는 600만명에 달한다.
독서를 통해 축적된 국민들의 내공(內功)이 있으니 기발한 생각과 야망, 목표를 갖고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 분양에서 주춤하고 있으나 일본 사회의 내공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홍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제 전공인 지적(知的)재산권 분야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일본과 한국 학계는 논문의 질(質)과 양(量)에서 10대 1 정도 격차가 나는 듯하다.
두 나라의 인구는 2대 1 정도지만. 우리 학계는 호흡이 짧고 유행에 따라 연구 주제가 오락가락한다.
재작년에는 NFT, 작년에는 메타버스만 외치더니 금년에는 모든 포럼·학회의 주제가 인공지능(AI) 특히 쳇지피티(ChatGPT) 일색이다.
인공지능이 대단히 중요한 주제라도 이렇게 쏠리기만 해서야 축적이 되겠는가?

- 한국 지식인들이 공적 이슈로 논쟁하거나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게 사라진 것 같다.

“그렇다.
한국 지식인 사회의 절반은 논문과 강의로 먹고사는 샐러리맨이고, 나머지 절반은 폴리페서(polifessor·정치 지향 교수)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교수 연봉이 20년 가까이 동결된 탓인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학진학률이 80%가 넘은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담론(談論) 수준이 졸렬하다. 한국 사회에 과연 지식인 집단이 존재하는지 회의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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