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암 치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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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린 사람은 식단이 병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궁금해할 것이다.
인터넷 정보와 의사,
영양사들이 다양한 권장 식단을 제시하고 있지만 종종 서로 부딪치는 내용이다.
(중략) 의사들이
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조언하는 식단을 짜는 데 근거가 될 양질의 데이터가 부족하다.
- 마이클 폴랙,
맥길대 종양학과 교수,
2018년 학술지 ‘네이처’에 기고한 해설에서.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이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말했다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약이 없으면 못 고치는 병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병의 치료보다는 예방에서 더 크지 않을까. 평소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으면 질병,
특히 대사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크게 낮춰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은 특정 음식이 좋다는 정보를 외면하기 어렵다.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약이나 수술 같은 현대 의학의 치료를 받지 말고 음식으로 고치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주장에 흔들리는 환자나 가족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없는 음식(주로 천연물)을 터무니없이 비싼 돈을 주고 사 먹기도 한다.
이런 음식 대다수는 별 효과가 없거나 때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런 정보에 흔들리는 환자 앞에서 주치의는 심지어 “홍삼도 먹지 말라”며 언짢아한다.
식단에 대한 조언을 구해도 “골고루 잘 먹으면 된다”며 말을 끊는다.
치료는 약과 수술 같은 의료 행위의 몫이지 음식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이다.
질병의 진행과 치료에 미치는 음식의 영향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관점들이 환자를 더 힘들게 한다.

그런데 최근 과학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음식이 약이나 수술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치료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도 식단이
암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을 생리 메커니즘 규명해 설명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주연은 아니지만 무시 못 할 조연

단식은 영양분 공급을 줄여 <BR>암의 성장을 억제한다.<BR> 사람 유방<BR>암 세포를 이식한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매일 마음대로 먹게 하고(왼쪽) 한쪽은 일주일에 이틀 굶게 해(오른쪽) 한 달 뒤 종양 무게를 비교하자 단식 그룹이 절반 수준이었다.<BR> 항<BR>암제 타목시펜(TMX)이나 풀베스트란스(FULV)를 투여했을 때도 단식 그룹에서 효과가 더 컸다.<BR>  네이처 제공

단식은 영양분 공급을 줄여
암의 성장을 억제한다.
사람 유방
암 세포를 이식한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매일 마음대로 먹게 하고(왼쪽) 한쪽은 일주일에 이틀 굶게 해(오른쪽) 한 달 뒤 종양 무게를 비교하자 단식 그룹이 절반 수준이었다.

암제 타목시펜(TMX)이나 풀베스트란스(FULV)를 투여했을 때도 단식 그룹에서 효과가 더 컸다.
네이처 제공

세포의 게놈이 손상돼 증식이 통제가 안 되면서 발생하는
암은 일종의 기생체로 볼 수 있다.
이 기생체가 살아가고 증식하려면 영양분이 필요하고 이는 숙주(몸)가 섭취하는 영양분이나 이를 토대로 몸이 만든 물질을 끌어당겨 충당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느냐가
암의 진행과 치료 효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건 그리 과격한 주장은 아니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특정 영양분의 공급을 차단하는 게
암 증식을 억제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꽤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생체 에너지의 원료인 포도당을 줄이면
암세포가 힘을 못 쓴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칼로리 제한(또는 단식)과 극단적인 저탄고지 식단인 케톤식이(ketogenic diet)다.

지난해 ‘네이처’에 실린 한 논문을 보자. 사람 유방
암 세포를 이식받은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매일 마음대로 먹게 하고 다른 한쪽은 일주일에 이틀을 굶긴다.
32일 뒤 종양 무게를 비교하자 단식 그룹이 마음대로 먹은 그룹의 절반 수준이었다.
단식으로 일정 기간 영양공급이 끊기면서
암의 증식 속도가 뚝 떨어졌다는 말이다.

타목시펜이나 풀베스트란스 같은 항
암제로 치료할 때도 음식이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마음대로 먹는 생쥐들에게 이들 항
암제를 투여하면 종양 증식이 억제되지만,
32일 뒤 종양 무게가 대조군의 절반 수준으로 단식과 효과가 비슷하다.
그런데 단식 그룹에 항
암제를 투여하면 역시 대조군(이 경우 단식만 한 그룹)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마음대로 먹고 항
암제를 투여하지 않은 그룹과 비교하면 종양 무게가 20%(단식+타목시펜),
30%(단식+풀베스트란스) 수준이다.

식사량뿐 아니라 질도 항
암제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탄수화물 비율이 높은 식단은 항
암제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메커니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떠오르고 있다.

암제의 공격을 받는
암세포가 포도당을 섭취하고 기운을 차린다는 기존 설명에 더해 혈당 상승이 인슐린 수치를 높여 항
암제의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발견이 더해졌다.

2018년 ‘네이처’에는 항
암제의 한 유형인 PI3K억제제가 생각보다 잘 안 듣는 이유를 규명한 논문이 실렸다.
PI3K는 세포의 성장과 분열,
생존에 관여하는 효소로 많은
암세포에서 과잉 활성을 보인다.
따라서 그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은
암세포 배양 실험에서는 놀라운 효과를 보였지만 막상 임상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러 실험을 통해 PI3K억제제가 혈당 수치를 높이는 작용도 한다는 게 발견됐다.
그 결과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가 늘어난다.
인슐린은
암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에 달라붙어 PI3K를 활성화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PI3K억제제의 부수적인 작용(혈당 상승)이 돌고 돌아 본래 작용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이다.

이때 당뇨병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을 투약하면 인슐린 수치를 다소 낮출 수 있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탄수화물을 거의 섭취하지 않는 케톤식이를 하자 인슐린 수치가 뚝 떨어지며 PIK3억제제의 약발이 제대로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케톤식이의
암 억제 효과가 강력한 것 같아도 항
암제 없이 케톤식이만 하면 별 효과가 없다.
음식은 뛰어난 조연이 될 수 있지만,
조연만으로는 드라마를 찍을 수 없다는 말이다.

PI3K는 세포의 성장과 증식,<BR> 생존에 중요한 효소로 많은 <BR>암세포에서 과잉 활성을 보인다.<BR> 최근 PI3K억제제(inhibitor)가 항<BR>암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BR> 이는 PI3K억제제가 혈당을 올려 인슐린(녹색) 수치를 높이고 그 결과 <BR>암세포의 PI3K가 활성을 되찾기 때문이다.<BR> 이때 케톤식이를 해 인슐린 증가를 막으면 항<BR>암제가 잘 듣는다.<BR> 네이처 제공

PI3K는 세포의 성장과 증식,
생존에 중요한 효소로 많은
암세포에서 과잉 활성을 보인다.
최근 PI3K억제제(inhibitor)가 항
암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이는 PI3K억제제가 혈당을 올려 인슐린(녹색) 수치를 높이고 그 결과
암세포의 PI3K가 활성을 되찾기 때문이다.
이때 케톤식이를 해 인슐린 증가를 막으면 항
암제가 잘 듣는다.
네이처 제공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식단 찾아야

그런데 단식이나 케톤식이가 꾸준히 실천하기에는 꽤 부담스러운 방법들이라는 게 문제다.
단식은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전문가가 실행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케톤식이는 칼로리에서 지방 비율이 90%나 돼 먹기도 어려울뿐더러 지속하면 장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주 ‘네이처’에 실린 논문이 주목된다.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와 케톤식이가 종양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한 동물실험이다.
'저혈당 식이'란 음식 섭취 뒤 혈당 수치 증가가 완만한 식단이다.

비교 기준이 되는 대조군 식단은 탄수화물 64%,
지방 17%,
단백질 19%인 전형적인 고탄저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는 조성이다.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는 섭취 칼로리를 마음대로 먹는 양 평균의 60% 수준으로 제한한 처방으로,
줄인 40%가 모두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만 보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 섭취 뒤 혈당 상승이 완만해져 저혈당식이라고 부른다.
이를 백분율로 환산하면 중탄중지 식단이 된다(탄수화물 41%,
지방 28%,
단백질 31%). 한편 케톤식이는 극단적인 저탄고지로 탄수화물 1%,
지방 90%,
단백질 9% 조성이다.

생쥐의 피하층에 사람 췌장
암 세포를 이식한 뒤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제한 없는 고탄저지,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
제한 없는 케톤식이를 실시한 뒤 수주에 걸쳐 종양 성장을 비교했다.
그 결과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만이 종양 성장을 유의미하게 억제했다(대조군의 3분의 1 크기). 반면 케톤식이는 약간 작았지만 통계적으로는 무의미한 수준이다.
이런 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와 케톤식이가 혈당 수치와 인슐린 수치를 떨어뜨리는 효과는 비슷했다.
간에서 지방의 구성성분인 글리세롤이나 단백질 성분인 아미노산으로 포도당을 합성해 공급하므로 케톤식이에서도 혈당 수치가 바닥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혈액과
암 조직에서 다양한 영양성분의 농도를 비교했고 그 결과 케톤식이에서 각종 지방산 농도가 더 높았다.
극단적인 고지방식이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연구자들은 이 가운데 단일불포화지방산(이중결합이 하나)인 팔미톨레산과 올레산을 주목했다.
세포막을 비롯해 여러 막을 이루는 지질의 주성분인 팔미톨레산과 올레산이
암세포의 증식에도 꼭 필요하다는 게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
포도당이 증식에 필요한 에너지를 주는 연료라면 팔미톨레산과 올레산은 벽돌인 셈이다.

세포가 성장하고 분열하려면 단일불포화지방산이 있어야만 하므로 섭취가 부족할 때를 대비해 인체에는 포화지방산을 단일불포화지방산으로 바꿔주는 효소인 SCD가 존재한다.
예상대로 단일불포화지방산 수요가 큰
암세포에서 SCD의 활성이 높다.
한편 다중불포화지방산(이중결합이 둘 이상)을 단일불포화지방산으로 바꿔주는 효소는 없다.

흥미롭게도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와 케톤식이 모두 SCD 활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를 하면 혈당과 인슐린 수치가 떨어질 뿐 아니라 단일불포화지방산 수치도 떨어져
암세포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말이다.
반면 케톤식이는 SCD의 활성은 억제하지만 대신 단일불포화지방산을 직접 공급하므로 그 효과가 상쇄된다.
에너지는 부족해도 벽돌은 충분하므로
암세포 증식을 누르기 어렵다.

연구자들은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에서 지방의 비율을 높여 저탄고지(탄수화물 12%,
지방 57%,
단백질 31%)로 조성을 바꿔봤다.
벽돌 공급 가설에 따르면 중탄중지 조성에 비해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약해질 것이다.
실제 결과 역시 그렇게 나왔는데,
첨가하는 지방의 종류에 따라 정도가 달랐다.
단일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낮은 콩기름을 더했을 때는 종양 성장 억제 효과가 미미하게 줄었지만,
단일불포화지방산이 꽤 들어있는 팜유(야자기름)를 더했을 때는 억제 효과가 꽤 약해졌다.
이 역시 벽돌 공급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다.

식단이
암 진행과 치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창기이지만 작용 메커니즘까지 제시한 이번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식이나 케톤식이 이상으로 효과가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실천하기 쉬운 길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의 연구 결과에 따라 칼로리제한 저혈당식이를 지향해 중탄중지 식단으로 소식을 하면
암 치료나 치료 뒤 재발 방지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 효과를 확인할 임상시험이 진행되지 않을까.

미국 맥길대 종양학과 마이클 폴랙 교수는 2018년 ‘네이처’에 기고한 해설에서 “유전자 변이가 비슷한 종양에서도 환자에 따라 항
암제 효과가 큰 차이를 보인다”며 “식단의 차이가
암 치료에 대한 반응의 가변성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썼다.
앞으로 ‘종양 영양학’ 분야가 뜰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칼로리제한(CR)이 종양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건 에너지인 포도당 공급을 줄이기도 하지만 지질(lipid) 공급도 줄이고 SCD 효소 활성도 억제해 막의 주요 성분인 단일불포화지방산(MUFA) 수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BR> 이때 탄수화물의 대부분을 팜유(palm oil)로 대신하면 MUFA가 공급돼 종양 성장이 일부 회복된다(왼쪽). 한편 포화지방산(SFA)을 MUFA로 바꾸는 SCD 유전자를 과잉 발현시켜도 MUFA 수치가 올라가 종양 성장이 일부 회복된다(오른쪽). 네이처 제공

칼로리제한(CR)이 종양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건 에너지인 포도당 공급을 줄이기도 하지만 지질(lipid) 공급도 줄이고 SCD 효소 활성도 억제해 막의 주요 성분인 단일불포화지방산(MUFA) 수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때 탄수화물의 대부분을 팜유(palm oil)로 대신하면 MUFA가 공급돼 종양 성장이 일부 회복된다(왼쪽). 한편 포화지방산(SFA)을 MUFA로 바꾸는 SCD 유전자를 과잉 발현시켜도 MUFA 수치가 올라가 종양 성장이 일부 회복된다(오른쪽). 네이처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암 치료 패러다임 바꾼 면역 항
암 치료

일러스트 정은우

일러스트 정은우

2018년 10월 1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제임스 앨리슨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와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
면역 반응 억제 조절 기작을 이용해 획기적인
암 치료법을 제안한
암 연구 선구자로서의 업적을 인정한 것이다.

많은
암 연구자들은 이들의 수상 소식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수년 전부터 여러 종류의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치료 효과를 보였고,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막대한 투자와 연구를 통해 상용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소식 직후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 노벨상위원회 트위터 제공

특히 필자가 앨리슨 교수와 함께 연구했던 MD앤더슨
암센터에서는 그의 수상 소식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올해 드디어 고대하던 축하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에서
암 환자들은 앨리슨 교수와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의 발견 덕분에 제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암세포 찾아 제거


암은 DNA의 변화나 돌연변이 때문에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하거나 분열해 생기는 일종의 유전적 질병이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와 달리 외부의 조절 인자들과 무관하게 스스로 생장을 촉진하고,
세포사멸(apoptosis)을 피하며,
비정상적인 세포 주기 조절을 통해 끊임없이 세포 분열을 한다.
또 처음 발생한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전이해 자랄 수 있으며,
우리 몸의 면역계를 피할 수 있다.

초기
암연구자들은
암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한다는 특징에 착안해 세포 분열 과정을 억제하거나 DNA에 손상을 주는 물질을 이용해 화학적 항
암 치료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런 항
암 물질은 골수나 모근 세포와 같은 정상 세포까지 구분 없이 제거해 흔히 항
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알려진 백혈구 감소,
탈모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후 연구자들은 다양한
암세포의 특성,
특히
암세포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효소나 성장 물질을 발견하면서 화학 항
암제의 문제점을 보완해
암세포들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 항
암제를 개발했다.

암세포만이 가지고 있는 효소를 억제하는 ‘글리벡(Gleevec)’과
암세포 특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항체인 ‘허셉틴(Herceptin)’ 등이 대표적인 표적 항
암제다.

자료 : 노벨상 위원회.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자료 : 노벨상 위원회.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표적 항
암제는 백혈구 감소나 탈모와 같은 부작용은 적다.
하지만
암세포는 돌연변이가 흔히 일어나고 다양한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한 가지 표적 항
암제에 대한 내성을 가지기 쉽다.
일단 내성을 갖게 된
암세포는 해당 표적 항
암제로 제거할 수 없으므로
암이 쉽게 재발할 수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면역 항
암 치료법이 등장했다.
면역계는 정상 세포를 ‘자기(self)’로,
몸에 침입한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기타 병원체는 ‘비자기(non-self)’로 구분하고 ‘비자기’를 제거해 감염으로 인한 위험 상황을 억제한다.
그렇다면
암세포는 면역계 입장에서 ‘자기’일까 ‘비자기’일까. 면역세포에게
암세포는 제거해야 할 비정상적인 ‘비자기’ 세포다.
그러나
암세포들은 면역세포들을 속여 ‘자기’로 인식하게 하거나,
면역세포를 무력화시켜 면역 반응을 회피해 살아남는다.

면역 회피 방법을 발견한 연구자들은
암세포의 면역 회피 기작을 억제하고,
면역세포의 활성을 높여
암세포를 제거하는 ‘면역 항
암 치료법’을 개발했다.
면역 항
암제는 화학 항
암제나 표적 항
암제와는 달리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찾아서 제거하게 하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다.

정상 세포까지 제거하는 부작용이 현저히 적고,

암세포의 특정 표적 하나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므로 내성이 생길 가능성도 낮다.
더욱이 한번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게 교육된 면역세포들이 수년간 우리 몸속에 남아 있어,
한 번의 치료로 10년 이상 지속 효과를 보이며
암이 완치될 수 있다.
이렇게 효과적인 면역 항
암 치료법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주인공들의 연구 성과 덕분이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제임스 앨리슨 미국 MD앤더슨<BR>암센터 교수. MD앤더슨<BR>암센터 제공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제임스 앨리슨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 MD앤더슨
암센터 제공

CTLA-4 항체,
FDA 승인 첫 면역 항
암제

앨리슨 교수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MD앤더슨
암센터에서 면역 항
암 치료법을 이용해
암 환자의 완치를 위해
암과 싸우고 있다.
그는 1990년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한 연구실에서 ‘CTLA-4’라는 단백질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면역학자들은 면역세포 중 하나인 T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여러 단백질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T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단백질인 CTLA-4를 이용해 자가면역질환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앨리슨 교수는 다른 연구자와 달리 CTLA-4 연구를
암 치료에 활용하고자 했다.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CTLA-4 기능을 억제해 T세포를 활성화하는 CTLA-4 항체를 개발했고,
1994년에는
암을 유발한 실험용 쥐에게 CTLA-4 항체를 주입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주요 제약회사들은 그의 연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CTLA-4 항체를 인간의
암 치료에 적용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고,
마침내 2010년 기념비적인 임상 시험 결과를 얻었다.
CTLA-4 항체를 투여 받은 흑색종(피부
암의 일종) 말기 환자들의 20~25%가 완치된 것이다.

당시 말기 흑색종은 완치 가능성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연구자들조차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결과였다.
이를 토대로 2011년 개발된 CTLA-4 항체 치료제(상표명 ‘여보이(Yervoy)’)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항체 면역 항
암제가 됐다.

PD-1 항체,
카터 전 대통령 뇌종양 완치로 유명

1992년 일본 교토대에서 T세포를 연구하던 혼조 교수는 ‘PD-1’이라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그는 이후 PD-1이 CTLA-4와 비슷하게 T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면역 억제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동물 실험을 통해 PD-1의 억제를 통해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추후 PD-1 항체를 이용한 면역 항
암 치료의 기반이 됐다.

주변 면역세포에 의해 활성화되는 CTLA-4와 달리,
PD-1은 주로
암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특정 단백질(추후에 ‘PD-L1’이라는 단백질로 밝혀졌으며,
PD-L1 항체도 면역 항
암 치료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에 의해 억제 기능이 활성화돼 T세포를 비활성화하는 단백질이었다.

PD-1 항체 치료제 ‘옵디보’(왼쪽)와 CTLA-4 항체 치료제 ‘여보이’(오른쪽). 국내에서는 각각 2016년,<BR>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허가를 받았다.<BR> 한국오노약품공업·BMS 제공

PD-1 항체 치료제 ‘옵디보’(왼쪽)와 CTLA-4 항체 치료제 ‘여보이’(오른쪽). 국내에서는 각각 2016년,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허가를 받았다.
한국오노약품공업·BMS 제공

PD-1 항체는 이후 다양한 종류의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시험에서 재발 없이 완치되고,
한 번의 치료로 항
암 효과가 10년 이상 지속되는 등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이를 토대로 2016년 두 가지의 PD-1 항체 치료제(상표명 ‘옵디보(Opdivo)’ ‘키트루다(Keytruda)’)가 FDA의 승인을 받았다.
특히 키트루다는 2016년 치료가 어렵다고 여겨졌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뇌종양을 완치시키며 주목을 받았다.


암세포 표면 단백질 이용한 항체도 효과적

아쉽게도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명단에는 없었지만,
필자는 면역 항
암 치료 연구에 크게 이바지한 과학자를 한 명 더 소개하려고 한다.
현재 미국 예일대 의대에서 면역 항
암 치료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리핑 첸 교수다.

그는 1999년 미국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메이요 클리닉의 한 연구실에서 T세포의 활성을 연구하던 중
암세포에서 발현되는 면역 억제 단백질인 PD-L1을 발견했다.
주로
암세포나 항원표지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PD-L1은 T세포의 PD-1 단백질과 결합해 면역 기능을 억제하는 단백질이다.

첸 교수는 PD-L1의 발견을 통해
암세포가 어떻게 우리 몸의 면역계를 회피해 살아남는지 밝히고,
PD-L1 항체를 이용한 면역 항
암 치료에 관한 연구와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PD-L1 항체 치료 역시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서 놀라운 치료 효과를 나타냈고,
2016년 FDA는 PD-L1 항체(상표명 ‘티쎈트릭(Tecentriq)’을
암 치료제로 승인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암 치료의 패러다임뿐 아니라
암 환자의 삶을 바꿨다.
앨리슨 교수나 혼조 교수가 그랬듯이,
오늘도 실험실에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많은 과학자들과 그들의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 줄 미래의 과학자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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