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영역, 선 넘지 않기의 중요성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해외에서 지내면서 한 가지 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벌써 함께 5년 이상 매주 회의를 하며 함께 일하고 있는 선생님의 사적인 정보(나이,
가족 구성,
집안 사정,
재산 상태,
최근의 고민 거리 등)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일에 대해서라면 작은 고민도 서슴없이 상담할 수 있지만 일 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입이나 귀에 담지 않아도 되는 프로페셔널한 관계다.

물론 일터에서 만났지만 사적으로 친해져서 일상적인 고민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선생님도 있지만 굳이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나의 아무 사적 정보도 오픈하지 않아도 되는,

또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을 억지로 귀에 담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비교적 많이 존재한다.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나의 아무 사적 정보도 오픈하지 않아도 되는,
때로는 내가 상대방의 기준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정보를 오픈했을 경우 ‘어..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 나한테 이런 얘기해도 괜찮겠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기분 나빠 했던 적은 없다.
사람이 당황하면 할 말 안 할말을 다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적지 않다.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듯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도 최대한 지켜주고 존중해주는 것에 가깝달까.

한국에서는 일부러 과한 음주와 함께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까발리고 ‘바닥’을 드러내면서 서로를 존중하기보다는 떳떳치 못한 일을 함께 벌인 ‘공범’으로서의 관계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지만관계마다 원하는 만큼의 선을 개인이 설정할 수 있는 사회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바운더리들을 가진 관계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직장에서 난데없이 ‘가족’과 같은 끈끈함을 찾는 데서 오는 각종 오지랖과 요청하지 않은 조언,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 이야기 등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경계를 흐리는 일 없이 일은 일로,
사적인 영역은 사적인 채로 간직할 수 있어서 괜히 혼자 착각하고 상처 입거나 서운해 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미국 콜롬비아대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프로스트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관계에서 얻길 바라는 이상적인 친밀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또한 이 선이 지켜지는지의 여부가 우리의 행복과 관계만족도에 큰 영향을 준다.

프로스트와 동료들은 연인관계에 있는 약 17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 2년간의 추적조사 끝에 관계에서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친밀하지 못한 것도 행복과 관계의 질,
관계의 유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행복과 정신건강(우울,
좌절 등),
관계 유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Frost & Forrester,
2013).

무조건 끈끈할수록 좋을 것 같은 연인 관계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원이 ‘나’ 또 다른 원이 ‘연인’이라고 했을 때 본인이 원하는,<BR>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친밀도와 실제 친밀도가 다르면(원하는 것보다 멀거나 또는 원하는 것보다 가까움) 행복도와 정신건강이 비교적 좋지 않으며 더 빨리 헤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BR>

한 원이 ‘나’ 또 다른 원이 ‘연인’이라고 했을 때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친밀도와 실제 친밀도가 다르면(원하는 것보다 멀거나 또는 원하는 것보다 가까움) 행복도와 정신건강이 비교적 좋지 않으며 더 빨리 헤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연구에서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친밀도보다 실제 친밀도가 더 높거나 낮으면,
다시 말해상대가 자신이 설정한 바람직한 관계의 선을 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자신의 관계 만족도 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계 만족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상대가 바라는 이상적인 친밀도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친밀도의 차이(예,
상대는 최대 10에서 9의 친밀도를 원하지만 나는 7을 원하는 등)보다 상대방이 자신의 내적 바운더리를 넘어서고 있는지 여부가 더 관계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또는 다소 쿨한 관계를 원하는지는 그 자체로 크게 중요치 않지만 실제로 상대가 자신이 정한 선을 침범했다는 느낌이 들면 그 때부터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른 것은 괜찮지만 상대가 원하는 바를 무시하거나 위반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나친구,
가족,
연인 사이의 관계 모두 우리는 서로 다른 관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다.

친구와는 한 없는 끈끈함을 원하지만 직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함께 일하는 남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체로 모든 관계에서 막역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연인이나 가족 사이에서도 충분히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마다 다 성격이 다르듯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얻고자 하는 것 또한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타인과의 관계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은 '존중'임을 잊지 말자. 관계를 통해 내가 나의 필요와 욕구가 채워지길 바라듯 타인 또한 그러하다.

서로가 바라는 바를 최대한 존중하고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나도 상대도 비로소 만족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약 딱히 나쁜 일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드는 관계가 있다면 자신이 이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고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누군가의 바운더리가 침해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타인에게 지나친 끈끈함을 강요한 적은 없는지 반대로 부담스러운데 자꾸 선을 넘어서 다가오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필요하다면 터놓고 대화를 해 보는 것도 좋겠다.

 

'힘든 경험'이 자신 전부를 설명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 뉴욕타임즈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기관이나 온라인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간편’ 심리 상담 또는 정신 질환에 관한 정보들이 사람들을더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현상이 관찰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을 보다 쉽게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들이 되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서던캘리포니아대의 심리학자인 다비 삭스베는 특히 요즘 십대들 사이에서 정신질환과 관련 없는 일상적인 우울감이나 불안감,
스트레스 등을 정신 질환인 것처럼 성급하게 판단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시험이 다가오니까 불안한 마음이 들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을 ‘나는 시험에 대한 불안증이 심해’라고 하는 등 일반적인 상태도 정신 질환으로 진단내리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10대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시는 전문가 선생님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 가정이나 학교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한 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이런저런 힘들었던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자신은 무슨무슨 ‘트라우마’가 있다고 구체적인 진단명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물론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볼 줄 알고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간혹 어떤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 내린 진단명을 곧 자신의 정체성이자 존재론적 한계로 설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내면의 불안을 직면해 보는 등 다소 불편함을 동반할 수 있는 치료적인 개입을 할 때,
과거의 상처 때문에 긴장되고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처럼 ㅁ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믿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라는 사람을 정의할 때 자신의 진단명을 결코 바뀔 수 없는 자신을 정의하는 핵심적 요소로 여기는 아이들의 경우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현재의 선택을 지배당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도 잘 하지 않으며 따라서 치료의 목적 또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보다는 스스로 내린 진단명을 재확인받고 위로받는 데 그치는 편이라고 했다.
이러한 아이들을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 고민이라는 이야기였다.

관련해서 트라우마 이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서도 잘 회복하고 되려 이를 통해 더 ‘성장’했다고 하는 사람들의특징에 대한 연구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요인은 끔찍한 경험에서도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것,
삶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
또 이 사건 하나만 가지고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었다.

예컨대 자연 재해나 범죄,
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을 때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기보다 ‘생존자’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더 적응적인 모습을 보이는 편이다.

또한 자신에게는 특정 사건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모습들이 있지만 이것이 자신의 전부는 아님을 아는 사람들이 더 일상생활을 잘 이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관련해서 암 생존자이지만 암을 이겨낸 사건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암이 큰 사건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은 암 투병보다 더 다양한 경험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암과 관련된 기억들은 자신을 구성하는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데에는 자기예언적 효과가 따른다.
스스로 만든 자기개념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필터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고 단단한 것보다는 크고 말랑말랑한 자기개념을 갖는 것이 더 적응적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온 수많은 경험들 중에서 어떤 하나에 지나치게 많은 가중치를 두고 있다면 혹시 그 때문에 새로운 나를 만날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배웠다는 '착각'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는 모두가 자신은 적어도 ‘평균’은 한다고 생각하고 같은 주사위도 내가 던지면 더 원하는 숫자가 잘 나올거라고 생각하는 등 다소 오만하고 착각이 심한 경향이 있다.
이런 착각은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에서도 심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어떤 정보가 다소 쉬운 형태로 전달이 되면 뭔가 배운 것 같다는 착각을 크게 한다.

같은 정보를 좀 더 명료한 폰트에 큰 글자 사이즈,
다양한 색상,
다양한 사진과 이미지 등을 이용해서 전달하면 그러지 않았을 때에 비해 사람들은 자신이 더 많은 정보를 얻었고 따라서 더 많이 배웠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잘 배웠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 배움 사이에는 큰 괴리가 나타나서 실제 정보를 얼마나 잘 숙지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면 두 조건 사이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서 정보를 전달할수록 많이 배운 것 같다는 ‘자신감’은 높아지지만 실제로 더 많은 내용을 기억하는 현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강사의 강의 스타일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심리학자 알렉산더 토프트네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31분 짜리 강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 때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강사가 말을 유려하고 하고 아이컨택트도 적극적으로 하며 좀 더 열정적이고 흡인력 있게 가르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같은 내용이지만 강사가 말을 자신 없게 하고 책을 읽는 것처럼 재미 없게 가르치는 영향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강의를 본 사람들이 강의에서 등장한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강의 직후 그리고 하루 지나서 테스트해 보았다.

그 결과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강사의 강의를 본 사람들이 더 많이 배웠을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실제로는 두 그룹 사이에 성과 차이가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많이 배운 것 같다는 느낌에서는 큰 차이가 나서 열정적인 강사를 본 그룹의 사람들의 경우 자신감만큼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배웠다는 착각(illusion of learning)”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배움이란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스스로 계속 그 내용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다시 저장하는 노력을 거쳐야만 비로소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된다는 사실이 한 몫 할 것 같다.
마치 음식을 먹기 쉽고 맛있는 형태로 떠먹여 줘도 그걸 씹어서 삼키고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영양 흡수의 측면에서는 별로 실속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양한 매체나 열정적인 강사의 존재가 어떤 때는 되려 주의 집중을 흐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교과서에서 예쁜 사진이나 일러스트가 나오면 되려 갑자기 낙서를 하며 수업에서 멀어지거나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서 내용과 상관 없는 딴 생각에 빠지는 일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태블릿 PC를 통한 학습이나 인터넷 강의 같은 것도 양질의 학습 도구로 쓸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집중력만 점점 짧아지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이렇게 쉬운 형태의 정보 전달이 꼭 학습능력에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쩍 느끼고 있어서 떠먹여주는 형태의 강의나 멀티미디어 학습보다 재미 없어 보이는 책을 진득히 파고 드는 일을 다시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되려 손 쉽고 빠르게 얻은 정보보다 혼자 실수를 반복하며 어렵게 얻은 정보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적어도 ‘사연 있는’ 정보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관련해서 정보를 타이핑 하는 것보다 손 글씨로 직접 필기하는 것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었다.
눈으로만 스윽 보는 것보다 직접 읽는 것이 직접 읽으면서 손도 함께 움직여서 정보를 받아 적어보는 것이 더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학습에는 늘 어느 정도의 고생이 따라야 하고 따라서 ‘쉬운’ 학습은 없는 모양이다.

 

상대 행동에 '악의적 해석'하는 사람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연인관계는 물론 인간관계 전반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갈등을 겪고 양질의 관계를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Jensen-Campbell et al.,2009).


●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대체로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Erez & Judge,
2001). 누군가를 만나면 저 사람은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저 사람은 또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편이다.

사람들의 별다른 의미 없는 행동에도 색안경을 끼고 저 행동은 분명 나를 무시해서/싫어해서 하는 행동일 거라고 생각하며 상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쉽게 상처를 받곤 한다.

사람들이 수근거리기라도 하면 왠지 내 욕을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경우나 누군가 웃기라도 하면 자신을 비웃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좋은 예가 되겠다.


● 상대의 행동에 악의적이고 극단적인 해석을 내린다

별다른 의미 없는 행동도 가급적 안 좋게 해석하는 편인데 만약 상대가 실제 조금이라도 퉁명스러운 대답을 하는 등 부정적인 사인을 보내오거나 말 실수를 저지르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저건 분명 나를 싫어해서,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가급적 악의적이고 극단적인 해석을 내리는 편이다.

그저 그날 따라 그 사람에게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혈당이 낮아서 기분이 나쁘거나 (저녁 시간 동안 혈당수준이 낮을수록 부부싸움 확률이 올라가고 상대방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인형을 주었을 때 인형에 바늘을 꽂는 행동이 높게 관찰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Gailliot et al.,2007)단순 실수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냥 그 사람이 원래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서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리곤 한다.
그 결과 작은 일로도 상대에게 쉽고 빠른 실망을 하고 ‘상처’ 또한 쉽게 받는다.


● 상처를 잘 준다

상처를 잘 받을뿐 아니라 상처를 잘 주기도 한다.
파트너에게 오해받고 있다는 억울함,
‘나를 그 정도로 밖에 보지 않다니’라는 실망감 등다양한 부정적 정서를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던 파트너의 공격성을 실제로 이끌어 내는 경향을 보인다.

관계에 스스로 씌운 부정적 예언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역시 인간은 나빠’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더 부정적으로 보고 더 열심히 오해한다.
-> 상대방을 공격한다.
-> 상대방으로부터 공격받는다.
-> 다시 상대방을 오해한다”의 싸이클이다.


● 갈등을 잘 해소하지 못한다

상대의 행동을 가급적 악의적으로 해석해버릇하는 습관 때문에 같은 갈등 상황에 처해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화를 심하게 내는 편이며 상대를 비난하는 강도 또한 높은 편이다.
용서도 잘 못 하는 편이다.

대화로 차근차근 오해를 풀어나가기보다 무조건 화부터 내는 편이어서 한 번 갈등이 생기면 적응적으로 해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갈등의 유무보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중요할 수 있는데 여기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친구 또한 많지 않은 편이며 혼자 담배나 술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성격 특성 중 신경증(neuroticism)과 관련된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결혼했을 경우 관계의 질이 별로 좋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도가 낮을 뿐 아니라 ‘상대의 행복도’ 또한 낮추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비교적 높은 이혼율을 보이기도 한다(Karney & Bradbury,
1997).

관계는 문제의 실재 여부를 떠나 내가 상대방을 좋거나 나쁜 사람으로 바라보는 정도,
상대의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머리 속 상상이 나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주어 실제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한계가 많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삶이 힘들 때 이런 행동 양식을 보일 수 있지만 만약 지속적이고 다양한 관계에 걸쳐 안정적으로 이와 같은 ‘패턴’을 보인다면 조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필자소개

박진영.《나,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