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마트 워치를 싫어하는 이유

 

내가 스마트 워치를 싫어하는 이유

그렇게 반짝거리던 메시지 중 중요한 연락은 단 한 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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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스마트 워치가 필요한가요? 손목 위를 차지한 이 작은 전자제품에 대해 존재론적 논쟁을 벌여보았습니다. 테크 리뷰어인 ‘디에디트’의 하경화 에디터는 스마트 워치를 사랑한다고 외쳤고,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인 ‘더파크’의 정우성 에디터는 스마트 워치는 끔찍하다며 손사레를 쳤습니다. 그야말로 사랑과 전쟁. 두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어볼까요?  ✒️
ⓒhyper.pension

미국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10대라서 그럴 거라고? 직장인들의 평균 집중시간은 단 3분이다. 미국이라서 그럴 거라고? 한국도 다르지 않다. 인간의 집중력은 형편없이 정복되었다. 완벽한 식민지 상태다. 점령군은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각종 푸시 알림,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중요한 척 하는 이메일, 카톡, 페메, 디엠, 심지어 좋아요 알림 때문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알림에 지쳐 있었다. 일할 땐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았다. 혹은 시야 밖에 두었다. 원고를 쓰다가 불빛만 반짝여도 멈춰야 했으니까. 아무 것도 아닌 거 알지만 궁금하긴 하잖아? 집중력이라는 게 그렇게 연약하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문장을 달리다가 반짝, 확인하느라 한 번 멈추면 메시지만 보는 게 아니었다. 인스타, 페북, 유튜브까지 괜히 한 바퀴 돌아봤다. 다시 집중력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시 한참이었다. 스마트폰과 함께한지 어언 15년. 그렇게 반짝거리던 각종 메시지 중 일의 흐름을 끊을 정도로 중요한 연락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스마트폰의 연장에 불과한 도구를 손목 위에 하나 더 얹는다고? 끔찍하다. 도둑을 내쫓는 것도 모자라 초대장을 보내는 격. 손목 위에서 놀아보라고 파티를 열어주는 일에 불과하다. 심지어 요가원에서도 스마트 워치를 풀지 못하는 도반들을 여럿 본 적 있었다. 하긴 스마트 워치가 똑똑하긴 하지. 빈야사 플로우를 타다 보면 알림을 보내줬다. 수련을 마치면 소모한 칼로리를 예쁜 픽토그램과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달리면 달리냐고, 산책할 땐 걷는 중이냐는 알림을 보내줬다. 편리하지. 신기하고. 

그런데 그게 전부 아닌가. 내가 소모한 칼로리를 꼭 알아야 해? 오늘 섭취한 칼로리에서 러닝으로 소모한 칼로리를 빼면 ‘아, 오늘은 어제보다 살이 덜 쪘구나’ 안심할 수 있나? 2009년, 아이폰을 처음 쓰면서 가장 신기했던 앱 중 하나가 ‘슬립 사이클’이었다. 침대 위에 엎어놓고 자면 수면 패턴을 분석해주는 식. 이튿날에는 수면의 질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이 피곤한 날은 데이터도 엉망이었다. 개운한 날은 그래프도 깔끔했지. 일주일 쓰고 ‘와, 신기하네’ 감탄하곤 지워버렸다. 필요 없잖아. 몸이 아는 걸 데이터로 환산해 그래프로 알려주는 기능 같은 건. 진짜 중요한 건 좋은 잠에 들도록 생활 패턴을 조율하려는 의지였다. 데이터의 시각화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데이터를 시각화 하는 일이 너무 쉬워진 다음부터, AI와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에 환장한 것 같은 세상에선 하나 정도 모르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보단 요가 수련 중 매트 위에 흘린 땀, 내 몸에 남아있는 열기, 이완된 근육과 근막들을 집중해 느끼는 편의 성취도가 만 배는 더 컸다. 각종 소셜 미디어 알림들은 (카톡 알림 정도만 무음으로 켜두고) 모조리 죽여두었다. 원고를 쓰거나 영상을 촬영하거나 편집할 땐 그마저도 엎어두고 쉴 때만 확인한 후 한꺼번에 답장한다. 집중력과 통제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스마트 워치를 팔아버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스마트폰 하나도 엎어 놓는데 시시각각 반짝거리는 디스플레이를 손목 위에 하나 더 얹는 이유를 도무지 못 찾겠어서. 하지만 시간은 확인해야 하니까 아날로그 시계만을 얹어 둔다.

“요즘 누가 시간을 시계로 봐요? 스마트폰 시계나 스마트 워치보다 정확한 아날로그 시계 같은 거 존재하지 않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 정도로 정확하지는 않아도 괜찮다. 아날로그 시계의 오차 때문에 1, 2분 정도 약속에 늦을 게 걱정이라면 10분 먼저 출발하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나으니까. 그건 시계가 아니라 게으름을 탓 할 문제라서. 이해할 수 없다. 일상을 계측하듯 정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스마트 워치의 그 번잡한 알림들에 자기 집중력과 통제력을 위탁하는 태도 같은 것. 

마지막 보루라면 아마 미학점 관점 정도일까? 다른 건 몰라도 애플워치는 예쁘니까. 그 자체로 훌륭한 공산품인 데다 스킨을 커스터마이징 하는 기쁨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개인화야 말로 스마트 디바이스의 가장 큰 장점이고.

하지만 기계적 완성도와 미학적 아름다움이야말로 그 어떤 공산품도 따라올 수 없는, 아날로그 시계만의 순정한 기쁨일 것이다. 브랜드의 역사, 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분투해온 의지와 기술, 그 와중에 남들보다 귀한 시계를 손목에 얹기 위해 럭셔리를 추종하는 쾌감 같은 것. 그 흔한 스마트의 세계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은 언어와 취향의 성벽 앞에, 끝을 알 수 없는 인문학의 세계가 아날로그 시계의 근위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스마트 워치를 내 손목 위에 올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과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효율이 중요하니까. 일상의 집중력과 통제력을 지키기 위해. 그래야 원고 한 줄, 영상 한 편, 책 한 권이라도 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학, 인문학, 럭셔리 같은 단어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이야기와 재미야말로 은밀하며 대체 불가능하기까지 한 나만의 취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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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마트 워치를 사랑하는 이유

내 인생 첫 시계가 바로 스마트 워치가 될 줄이야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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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스마트 워치가 필요한가요? 손목 위를 차지한 이 작은 전자제품에 대해 존재론적 논쟁을 벌여보았습니다. 테크 리뷰어인 ‘디에디트’의 하경화 에디터는 스마트 워치를 사랑한다고 외쳤고,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인 ‘더파크’의 정우성 에디터는 스마트 워치는 끔찍하다며 손사레를 쳤습니다. 그야말로 사랑과 전쟁. 두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어볼까요?  ✒️
ⓒhyper.pension

스마트 워치를 사용한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고백하자면 애플 워치는 내 39년 인생에서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해본 유일한 시계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나는 역사가 깊고, 만듦새가 훌륭하며, 반짝이는 사치품에 쉽게 홀리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유독 시계에 대해서만은 지독한 실용주의자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종일 타이핑을 하는 직업이다보니 손목이나 손가락에 액세서리를 착용하면 영 거슬린다. 팔찌나 반지도 착용해본 일이 없다. 이런 내가 시계를 사기 위해선 단순히 근사하거나 시간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쓸모가 필요했다.

2014년 9월 9일, 애플이 아이폰6 시리즈와 애플페이를 발표했다. 그리고 One More Thing이 나왔다. 박수가 쏟아졌고, 팀 쿡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사람들이 이 카테고리에 기대하고 있던 것을 완전히 재정의하는 새로운 제품”이라고. 애플 워치를 설명하는 완벽한 문장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내 인생 첫 시계를 사기로.

물론 애플 워치의 데뷔는 순조롭지 않았다. 혹평이 쏟아졌다. 형태가 네모난 것은 시계가 아니다. 매일 충전해야 하는 것은 시계가 아니다. 시계는 시계 브랜드에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혹평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시계’라는 물건에 기대하는 바가 달랐으니까.

애플 워치와 친해지는 과정은 짜릿했다. 전화나 알림이 올때마다 피부에 부드럽게 진동이 퍼지는 느낌이 좋았다. 바쁘거나 전화를 받을 수 없을 땐, 손바닥을 화면 위에 가볍게 포개어 놓으면 진동이 멎었다. 정신 없는 촬영장에서 “내 아이폰이 어딨지?”하고 종종 거리며 찾아다닐 필요 없이, 간단한 메시지는 애플 워치로 답할 수 있는 자유로움도 좋았다. 물론 1세대 제품에서는 내가 말한 기능들이 아주 매끄럽게 구동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2023년이니까.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기기라는 사실은 곧, 한계없는 ‘커스텀’의 가능성을 의미했다. 애플 워치의 화면은 디자인에 따라 여러 개의 ‘컴플리케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걸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진다. 출장지에서는 한국 시간과 현지 시간을 동시에 띄워둘 수 있고, 강수량이나, 일몰, 오늘 활동량, 다음 스케줄같은 정보를 입맛에 맞게 배치할 수도 있다. 물론 분침과 초침만 남겨둔 심플한 디자인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내가 사랑하는 스누피 캐릭터가 그려진 워치페이스를 애용한다. 기분이나 스케줄에 따라 얼마든지 얼굴을 바꿀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줄질’ 역시 애플 워치를 사용하는 기쁨 중 하나다. 손끝으로 잠금 장치를 눌러 쉽게 밴드를 교체할 수 있는 방식은 정말이지 센세이션했다. 게다가 애플 워치 자체는 매년 신제품이 나와 갈아치우고 있지만, 2015년에 구입한 밴드도 2023년에 나온 워치와 여전히 호환이 된다. 운동할 때 차기 좋은 실리콘 밴드부터 에르메스 로고가 붙은 가죽 밴드, 섬유를 섬세하게 엮어 만든 나일론 밴드까지 수십 개의 디자인을 모았다.

사실은 애플 워치에 대해서라면 덕후처럼 끝없이 떠들어댈 수 있을 만큼 할 말이 많다. 넘어짐 감지 기능이나 충돌 감지같은 기능이 먼 나라에 사는 누군가의 삶을 구했더라 하는 이야기는 오히려 공감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애플 워치가 9년에 걸쳐 내 인생에서 바꾼 사소한 변화를 언급하고 싶다. 나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학창 시절엔 출석만 해도 점수를 받는다는 체육 과목에서 ‘전교 꼴등’을 했다. 운동은 특별한 사람들의 취미 같았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 거북하고 두려웠다. 그런데 애플 워치의 기능을 뽕 뽑겠다고 9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근력 운동을 했고, 스피닝에 빠지기도 하고, 요가도 해보고, 등산도 하고, 골프도 쳤다. 주기적인 게으름으로 텀이 벌어지거나 장르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했지만 그래도 계속, 꾸준히 했다. 매일 애플 워치 화면에 있는 ‘활동량 목표’를 채우는 게 즐거웠다. 목표를 채우면 받을 수 있는 배지나, 친구들과 활동량을 겨룰 수 있는 기능이 경쟁심을 자극했다. 이런 과정이 9년 동안 켜켜이 쌓여 나는 대단하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 됐다. 이게 스마트 워치가 내 손목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까르띠에의 고전적인 디자인이 갖고 싶어 쇼윈도 앞에서 한참 바라본 적도 있다. 영롱하더라. 열심히 물장구치며 나아가는 내 삶을 위한 선물이라고 합리화하면 못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갑을 열 만큼 구체적인 물욕이 생기지 않았다. 눈은 동하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까르띠에보다 애플 워치라니. 이 합리적인 편리함 안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는 걸. 오만하게도 나는 평생 여러분이 말하는 ‘진짜 시계’는 사지 않겠구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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