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친구가 없어지는 이유

  

인간관계의 법칙

나이 들수록, 친구가 없어지는 이유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다.

- 쇼펜 하우어 -

내 청춘은 우정이 전부였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원히 함께 하자던 친구들은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둘씩 각자의 사정과 갈등, 싸움과 분노, 질투와 시기로 인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나는 어느새 우정에 대해 회의적이고 심드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살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우정만큼이나 부실한 가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친구 관계는 언제 없어져도 이상할게 없는 풍전등화 같았다.
왜 그런 걸까?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순수함은 사라지고 세속적인 삶에서 질투와 시기를 연료 삼아 경쟁을 하면서 살아간다.

친구의 불행은 함께 슬퍼할 수 있지만, 친구의 성공은 함께 기뻐할 수 없다.

우리는 질투의 화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성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자는 진정으로 현명하고 성숙한 인간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숙한 사람은 그 수가 적다.
이런 이유로 나이가 들수록 점차 혼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자들은 일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무력하다는 고통, 충실감이 결여된 데에 대한 비관 등 갖가지 불평과 울분을 마음속에 감추고 있다.
"라고 말이다.
니체의 통찰을 곱씹어 보자면,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위안 삼는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려고 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30대에서 작은 성공이라도 거둘 것이다.
그런데 당신만 성공한다면, 기존에 어울리던 친구들은 갑자기 사라진다.
이런 어이없는 성공의 역설이 또 있겠는가? ( 높은 확률로 어울리는 친구 무리 중에 소수만이 성공할 것이다.
)

그렇기에 타인의 불행과 성공을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우정을 가질 수 있다.
진정한 우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서로 성숙되어야 하며, 독립된 자아 정체성을 확립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성숙함을 가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것이 나이가 들수록 점차 혼자가 되어 가는 원인이다.

우리는 무력하게 혼자가 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나이가 들수록 고립되어야 하는가? 진정한 우정을 쌓을 수없는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고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혼자 설 수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주변에 선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혼자가 되는 법을 배워라

고독이 주는 성장의 기회

나는 3년의 기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개인 사업과 자기 계발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때는 마치 어두운 동굴에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나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일을 하고 책을 읽으며, 글을 썼다.
짬이 나면, 맨몸 운동을 했다.
산책을 돌았고 가끔 뒷산을 올라갔다.

이게 끝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이것만 반복했다.
1년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2년부터 마음의 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큰 공허함이 나를 덮친 것이다.
"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나는 가끔 혼잣말을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사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생각을 해보니 3년 동안 업무와 관련 없는 대화는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그토록 싫어하던 스몰 토크를 너무도 하고 싶었다.

3년이 되자, 나의 노력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시작한 몸부림은 2023년이 되어서야 끝났다.
나는 평생의 꿈이었던, 출간 작가가 되자마자 사람들을 만나러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3년간의 고독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

왜냐면 나는 고독을 발판 삼아 성장했고 기회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남아도는 시간을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그 시기에 수백 권의 책을 읽었고 수만 자의 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해낸 것이다.
나는 고독을 연료 삼아 초인적인 힘을 냈다.
현재는 그때 만들어 놓은 습관 덕분에 큰 노력 없이도 생산성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혼자가 되는 것은 두렵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두 번 다시 고독해지고 싶지 않다.
그때처럼 다시 고독을 경험해 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고독은 괴롭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기를 생산성 있는 활동으로 이끈다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다.

혼자가 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밀어낼 필요는 없으나, 혼자가 된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면, 혼자가 되는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혼자가 편한 시대

1인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가 됐다.
이제는 둘보다는 혼자가 더 많은 세상이다.
결혼도 하지 않는 판에 친구가 있고 없고 가 그리 중요할까? 이제는 정말 친구가 없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니면, 철이 없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과거에는 친구가 없으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편견도 많았다.
친구가 없으면,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프레임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사라졌다.
친구가 많고 아는 인맥이 많을수록 성공한다는 강력한 프레임이었지만, 핵개인의 시대 앞에서 모든 것이 무력해졌다.
이제는 모두가 혼자가 되길 원한다.

이런 시대에서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진짜 친구는 그 수가 훨씬 적다.
당신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당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나 애인, 배우자가 전부일 것이다.
함께 같은 배에 올라탄 사람만이 당신의 성공을 축복할 수 있다.
이로써 당신은 무늬만 친구인 사람에게 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

친구는 함께 있으면, 즐거울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진실을 수용해야 한다.
이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삶의 풍요에 더 빨리 접근한다.
왜냐면,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가치들을 키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보다 중요한 가치

자신을 먼저 챙겨라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우정을 변질시켰고 질투와 시기로 얼룩져 냉소주의와 허울만이 남았다.
그 누구도 우정을 통해 성장하고 함께 같은 꿈을 꾸며,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앞에서 무릎 꿇고 인스타그램을 보며, 서로를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이런 세상에서 진정한 우정을 구축하는 일은 매우 힘들 수밖에 없다.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친구 관계에 대한 빠른 포기도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진짜 우정을 만들 수 없다면, 시간과 비용 투자를 줄이고 다른 곳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소리다.

친구보다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 나답게 사는 것 "이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나의 삶을 먼저 사랑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건강한 인간관계도 어렵다.
친구를 사귀거나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과 대가를 지불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친구를 위한답시고 오지랖을 부리는 일은 어리석다.
자신부터 사랑하라.

또한 당신의 성공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친구로 두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가치관과 삶을 응원할 수 있는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한다.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평생 동안 1~2명이면 충분하다.
당신과 같은 배에 탈 수 있는 사람만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과 결이 다른 사람은 아무리 즐거운 추억이 많더라도 오래갈 수 없다.

당신의 삶을 성공시켜라

인간관계의 법칙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된다.
고독할 것이다.
하지만 명백한 진실이 여기 하나 있다.
" 고독은 인간이 죽어야만 사라지는 존재다.
"이다.
좀처럼 고독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평생 동안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기대 잠시나마 고독을 잊으려는 노력은 빈번히 실패할 것이다.
타인은 당신의 고독을 채워줄 수 없다.
그럼 무엇을 해야 되는가? 누가 고독을 해결해야 되는가? 바로 당신 스스로 해내야 한다.
자기 자신을 구원할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고독은 불안을 불러온다.
불안과 걱정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
당신은 고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고독을 두 팔 벌려 안아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고독하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기고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고독하다.
여기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독은 사회적 성공의 유무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럼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 마음 편히 고독해라."

고독은 시련일 수 있다.
고독은 당신의 삶을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고독은 당신을 성장시키는 연료가 되어줄 것이다.
고독은 당신을 한층 더 성숙하고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고독을 어떻게 다루고 대하는 냐에 따라 그 모습과 형태를 바꾼다.

고독을 창피하게 생각하거나 두려워하면, 악마로 변해 영혼을 빠르게 파괴할 것이다.
반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성공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다면, 고독은 수호천사가 되어 당신을 도울 것이다.

친구가 없는가? 그럼 다행이다.
당신은 마음껏 고독할 수 있다.
당신은 마음 편히 고독하라. 그리고 장막을 들춰 앞으로 나아가라. 작은 성공을 저축하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라. 고독을 친구로 삼아라. 인간관계는 그 이후에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친구에게 의존하지 말라. 당신이 의존할 존재는 자기 자신뿐이다.
당신 스스로를 믿어라. 그럼 고독은 당신을 위해 힘써줄 것이다.
세상은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스스로를 연민하고 불쌍하게 여긴다면, 세상도 똑같이 불쌍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힘차게 일어나서 성공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노력한다면, 분명 세상은 당신을 도울 것이다.
노력하는 자에게 언제나 기회가 있음을 기억하자.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 글을 쓸 때도 피로 써라. 책을 읽을 때도 진지하고 숭고한 마음으로 읽어라. 그럼 고독은 환하게 웃어 보일 것이다.

피보다 진하게 살아보자. 그럼 모든 게 순리대로 잘 풀리고 풍요를 이룰 것이다.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

세이노의 가르침

인간관계의 법칙

의외로 친구 없는 사람이 잘 사는 이유

친구가 많으면 좋은 걸까? 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이다.
우리는 친구를 우연히 사귀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만나거나 직장에서 친해질 수도 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친구를 사귄다.

친구의 성향과 가치관을 따져보며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나거나 우연의 일치로 사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런 한계 덕분에 친구가 무작정 많은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친구가 많을수록 관계에 쏟아야 하는 비용과 시간,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친구가 많은 게 진짜 좋기만 할까? 친구가 없으면, 외로울 수는 있으나, 친구로 인해 삶이 늪으로 빠져드는 것은 방지할 수 있다.
우리는 적절하게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올바른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만날 친구가 없어지는 이유

관계의 본질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의 관계는 느슨해진다.
연락은 뜸해지고 서로 바빠서 만나지도 못한다.
억지로 만나도 할 이야기도 없고 시간 낭비만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당연한 결말이다.

시절 인연은 존재한다.
과거에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했어도 관계는 천천히 종말을 맞이한다.
이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피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한 지역에 오랫동안 살면서 정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 지역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 관계가 정말 중요했다.
공동체 안에 있어야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가족과 친구의 역할을 국가와 복지 시스템이 대신해 주고 있는 셈이다.

혼자서 사는 것은 시대의 흐름

극단적 개인주의의 부작용

극단적 개인주의는 사회적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진다.
친구가 없어지는 것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추앙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 덕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타인과의 연결이 쉬어지는 세상에서 고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개인주의를 표방하며, 나 혼자 살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점차 우정과 친구, 관계, 결혼, 가족의 중요성은 상실되고 있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관계만을 통해서 깊은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물질로 얻는 행복은 한계가 있다.

인간관계의 법칙

지나친 호의를 함부로 베풀지 마세요

 

과도한 오지랖을 부려서는 안 된다.
어째서 지나친 호의를 베풀면 안 되는 걸까? 지나친 호의는 상대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나친 호의를 함부로 베풀고 다녔다.
그런데 나의 인간관계는 잘 풀리지 않았다.
호의가 문제였을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도한 오지랖이 진짜 문제였다.

작은 호의가 아니라, 지나친 호의를 베푼 것이 진짜 문제였다.
자신의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남에게 지나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오지랖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 호의를 그냥 기분 좋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건가요? "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나친 호의는 갚아야 할 채무가 되기 때문에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리는 적당한 호의를 주고받음으로써 동등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건강한 관계는 티키타카의 법칙을 따른다.
티키타카가 되지 않는 관계는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에서 희생하거나 과도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지나친 호의를 쏟아부어 급하게 친해지려는 의도는 엉뚱하게도 반대의 결과를 불러온다.

지나친 호의는

부담이 될 뿐이다

눈치를 챙겨야 하는 이유

타인은 누군가의 호의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럴 수 있다.
호의가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지나친 호의는 거래가 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많이 주는 것은 호의가 아니라, 파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된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나서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호의를 베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문을 잡아준다거나, 물수건을 건네주는 정도가 되겠다.

만약 지나친 호의를 받은 상대가 도저히 은혜를 갚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연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선택을 해버린다.
" 헌신하다가 헌신짝 되었다.
"라는 말의 본질에는 이런 속 사정이 깔려 있다.
그 누구도 헌신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가련한 헌신짝이 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헌신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그런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작은 호의를 베풀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누구도 오지랖을 부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스스로 헌신하다가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 때문에 관계는 끝이 난다.
이는 미숙한 관계 맺기의 전형이다.
또한 지나친 호의는 상대에게 부담이 된다.
그야말로 짐이 되는 것이다.
지나친 호의는 마치 원치도 않는 대출을 받은 꼴이 된다.

지나친 호의를 준다는 것은 원하지도 않은 고금리 대출을 억지로 받게 하는 것과 같다.

도와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

진정한 호의는 목적성이 없어야 한다

상대가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길을 뻗고 싶다면, 연락처만 남겨 놓아라. "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방식이 올바르다.

왜 그럴까? 인간에게는 자존심이라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자존심은 강력하다.
자존심은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쉽사리 굽히기도 힘들다.
또한 큰 은혜를 받게 되면, 그 은혜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아 하기도 한다.

" 나는 자신이 없는데.. 도움을 요청한다면, 분명 나중에 갚으라고 할 거야."라는 무의식에 지배당해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도움을 줬다 한들, 긍정적인 방향성으로 나아가기는 힘들다.
여기 한 가지 진리가 있다.
" 자기 자신을 구원할 존재는 오직 ' 자신 ' 밖에 없다.
" 라는 사실이다.

자존심을 굽히느니, 비참한 생활과 죽음을 선택하는 이도 드물지 않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다움을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
나답게 죽을 수 있다면, 그것마저도 불사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만큼 인간은 속박을 싫어하고 자유를 갈망한다.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타인의 지나친 호의일 것이다.

지나친 호의를 베풀지 말고

작은 호의를 여러 번 나누어 베풀어라

현명한 태도

상대가 부담 없이 갚을 수 있을 만큼의 호의를 베풀어라. 그 이상의 호의는 거래가 된다.
상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자주 여러 번 갚을 수 있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상대와 티키타카가 되어야 건강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동등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갚을 수 있을 만큼의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천천히 서로 알아가면서 부담되지 않는 호의의 선을 찾아야 한다.
반면, 지나친 호의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임을 기억해야 된다.

인간관계는 마치 배드민턴과 같다.
배드민턴은 서로 콕을 주고받으며, 게임이 진행된다.
그런데 어느 한쪽에서 여러 개의 콕을 마구잡이로 던진다면, 게임은 진행 자체가 어렵고 엉망이 되어버린다.
인간관계는 언제나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호의도 마찬가지다.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부담을 가중시키고 게임의 규칙을 어기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럼 그 누구도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과 게임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 없는 친절과 과도한 호의는 거래의 속성이다.
명심하자. 인간적인 관계는 거래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합을 맞추는 것이다.

지나친 호의보다는 작은 호의를 여러 번 나누어 베풀어라.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 된다.
" 나는 아무런 사심도 의도도 없는데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는 분명 전부 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은혜 갚기 바라는 은근한 눈빛과 태도가 눈에 보일 수밖에 없다.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과 태도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오지랖을 부리는 행동만 멈춘다면, 인간관계는 크게 개선될 것이다.
타인에게 부담이 될 만한 호의를 베풀지 말자. 또한 당신도 그런 부당한 호의 받기를 거부하라.

"꽃을 피우려면 적당한 물과 햇빛이 필요하듯,

인간관계도 적절한 호의와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관계의 법칙

무례한 사람을 다루는 2가지 방법 

" 저 사람은 왜 무례한 걸까? " 누구나 고민해 봤을 문제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무례한 사람을 마주치기 마련이다.
모두가 예의 바르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성이 못된 사람들도 많고 당신을 악의적으로 괴롭히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을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무례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항상 물의를 일으키고 다닌다.
특히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나이를 이용해 무례하게 구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사람이 무례한 사람을 마주하면, 몸이 굳거나 손해를 보기 일쑤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무례한 사람을 많이 상대하고 지켜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 결과, 무례한 사람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똑같은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무례하게 구는 이유는 겁이 많기 때문이다.
무례한 자의 내면은 사막처럼 황량하고 애정이 결핍되어 있으며, 나약하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타인을 제압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의미 없는 갑질, 욕설, 반말, 무례하게 구는 행동들 이면에는 나약함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 무례한 사람을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알아볼 것이다.
또한 현명하고 지혜롭게 무례한 자를 다루는 방법 또한 공유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무례한 사람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이 글은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무례한 사람이

무례한 이유

그들의 내면을 살펴보자

적을 알면, 지피지기라고 했다.
우선 그들이 왜 무례하게 구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무례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는 행위가 무례함이다.
이는 곧 타인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
이들은 법적인 문제가 안되는 선에서 딱 멈추며, 무례하게 군다.

그들은 끊임없이 아슬아슬 선을 넘나들며, 타인의 심리를 장악하려고 든다.
그들이 무례하게 굴어서 얻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는가? 나는 이 문제를 두고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 왜 저렇게 사는 거지? 무례하게 굴면서 얻는 게 뭐지?"라고 말이다.

 

1 댓글

Welcome

  1. 친구보다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 나답게 사는 것 "이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나의 삶을 먼저 사랑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건강한 인간관계도 어렵다.
    친구를 사귀거나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과 대가를 지불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친구를 위한답시고 오지랖을 부리는 일은 어리석다.
    자신부터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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