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분위기였겠네. 쿠데타 실체는 있었어?
당시 정부도 가능성에 무게를 뒀던 것 같아. 쿠데타 주도 가능성이 있는 장성들을 밀착 감시할 정도였으니까. 그 뒤로도 1990년대 중반 정국이 불안하기만 하면 군부 개입설이 나왔어. 그 때 여론조사를 보면 군부가 한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꼽히기도 했으니까.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결국은 실행이 안 된 건가.
쿠데타를 모의하려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데, 그렇진 못했던 거 같아. 당장 구심점이 될 만한 장성급들이 갑자기 다 옷을 벗었으니 어찌할 수 없었던 것도 같고.
갑자기 인사 명령을 내려서 조직을 일시에 마비시킨 게 컸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하나회는 사실상 자리와 돈을 보장하는 곳이었어. 리더가 없어지면서 둘 다 힘들어졌고.
군인이 돈도 보장했다고?
하나회에서는 장성 진급하면 축하한다고 지금 돈으로 몇 천만원씩 주고 그랬다고 그래. 그냥 뭉텅이로 줬다고. 그러던 하나회로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는데, 그게 김영삼 정부가 단행한 금융실명제였어. 비자금 만들기가 어려워진 거지. 사실
비자금이 애초 어떻게 가능했지?
다 비리로 만들어낸 눈먼 돈이었지. 그걸 조직 운영에 활용한 거고.
아무리 시절이 달라졌어도, 신원식 장관같은 사람이 군 지휘부라면 좀 위험하지 않아?
신 장관이 위험한 생각을 한다 치더라도, 서울의 봄을 봐봐. 연대장, 대대장 같은 일선 지휘관의 협조가 절대적이잖아. 그 사람들 생각이 좀 달라. 아까 말한대로 직업의식이 있기도 하지만, 본인들이 반란에 동조해서 설령 성공한들 나중에 피해 본다는 생각도 크거든.
피해를 본다?
1995년에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됐잖아. 김영삼 정부 때. 그 뒤로 12·12나 5·18 재판이 진행되면서 장성급만 아니라 대대장급까지 다 처벌을 받았거든. 12.12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한 당시 제3공수특전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도 징역 3년6개월형을
고받았어. 그게 중요했어.
어떤 점에서?
현장 지휘관 경우엔 “우린 명령대로 한 것 밖에 없다”면서 억울해할 정도였으니까. 1990년대 당시 현직 군인들 입장에선 겉으론 드러내지 못했지만 충격이었어. 설령 성공한 쿠데타라도 주모자뿐만 아니라 명령을 받고 실행한 사람까지도 언
가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단 걸 안 거니까.
‘서울의봄’은 결국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1995년에 온 거네.
글쎄. 꼭 그렇지도 않아. 당시 개개인을 보면. 서울의 봄에 나온 김오랑 중령만 봐도, 명예를 회복한 건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난 후야.
명예회복?
김 중령의 죽음은 12·12 직후엔 인정받지 못했잖아. 특전사 뒷 편 야산에 묘도 제대로 만들지 않고 매장할 만큼. 그러다 이듬해 업무 중 사망으로 순직처리가 됐고. 근데 법원이 인정했듯 이건 쿠데타잖아. 반란군과 교전으로 사망한 것이니 순직이 아니라 군인으로선 전사라고
해야 맞지. 근데 그게 지난해 11월에서야 받아들여졌어.
33년이 걸린 거네.
그래도 그나마 김 중령은 그렇게 인정받기라도 했지. 지금도 전혀 주목받지 못한 죽음들도 있잖아.
주목받지 못한 죽음이라고?
12·12 당시 2명의 병사가 교전 중 사망했거든. 말 그대로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군 복무 중인 젊은이들이었어. 그냥 ‘거기 있었다’는 이유 말고 죽을 이유가 없었던 거야. 이분들의 경우엔 이름조차 호명되지
못한 거지. 어쩌면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모습인데 말이지. 그런 죽음에 더 관심이 필요한 거 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