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에 마음을 뺏긴 뒤로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무엇이 식물들과 함께 잘 사는 것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 ©안희제 제공


시작은 2019년 가을이었다.
아버지는 몸이 아주 아팠던 나에게 기분 전환을 시켜준다며 서오릉 화훼단지로 갔다.
그날 나는 처음 본 작은 나무들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고,
한 손바닥 안에 거대한 자연을 올려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무들을 집에 들였다.
자갈처럼 생긴 흙 사이사이로 빈약하게 뿌리를 내린 분재와,
고운 흙에 단단히 자리 잡은 나무들까지.

그때 들인 나무 중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몇 개 없다.
식물과 함께한 시간 중에서 어떤 날은 과도하게 그것들을 걱정하며 돌봤고,
어떤 날은 같이 살지도 않는 것처럼 소홀하게 지나쳤다.
과도한 걱정과 돌봄은 때로 과도한 물주기 즉 과습이나 과도한 비료 즉 과비로 이어졌고,
소홀함은 바싹 마른 흙과 누렇게 변한 이파리 끝으로 이어졌다.
땅이 아니라 화분에 사는 식물은 생각보다 취약하고,
때로 하룻밤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무엇이 식물과 함께 잘 사는 것일까? 반려식물에 대해 적지 않은 글들을 써왔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하나 마나 한 이야기,
무엇이든 적당해야 한다는 것뿐. 관심도,
물도,
비료도,
환기도 적당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적당함이란 흙과 화분과 그 집의 환경과 반려 인간의 생활 패턴까지도 얽힌 채 만들어지는 하나의 조건이며,
나보다 취약한 존재와 함께 살기 위해 섬세히 응답해야 한다는 책임이자 윤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는 오늘도,
나는 2년째 함께해온 바질이 조금씩 죽어가는 걸 보았다.
비료를 너무 많이 준 것일까? 아니면 화분이 작은 걸까? 그러나 그것은 바질에게 내어줄 수 있는 가장 큰 화분이고,
집에는 더 큰 화분을 들일 수 없는데. 처음으로 겨울을 함께 보낸 바질은 1년 동안 천천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 옆에서는 친구에게 선물받은 이탈리아 출신 바질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그새 꽤 자라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대학교 3학년 때까지 함께한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
나는 몇 달 동안 고개를 45도쯤 숙이고 문턱을 살피고,
혹시나 그 아이가 금세 싼 오줌이 있지는 않은지 조심하며 걸었다.
대학원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우리보다 일찍 죽는 동물을 집에 들이지 못했다.
식물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물의 촉감도,
식물의 모습도,
마음속에 쌓인다는 사실을 시간이 갈수록 알아간다.
이래서 내가 식물들과 산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초보인가 싶지만.

이제 더 이상 분재를 집에 들이지 않기로 했다.
분재 자체에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분재는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름다움과 연약함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면서 분재를 관리하는 일보다 오래오래 줄기가 굵어지고 가지를 뻗어낼 수 있게 식물을 돌보는 일이 더 좋다.
식물을 집에 들인 이상 이미 사람 손에 길들기 시작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걸 보고 싶다.

나무들과 사랑에 빠진 첫날에 데려온 파키라는 곧 나보다 키가 커질 것 같다.
지금도 우리 집의 거실을 지키고 새잎을 틔워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종종 그 잎을 쓰다듬는다.
그의 별명은 수호신이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반려.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이다.
반려인이라는 말의 마지막 글자는 불필요할 수도 있다.
반려인 또한 누군가의 짝이 되는 동무니까. 오늘은 ‘반려인의 오후’에 대해 생각한다.
오후의 쌍은 분명 오전이지만,
나에게 오후는 언제나 3시 전후의 애매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해가 가장 높이 있을 때는 아니지만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 평화로운 햇빛과 나른함. 식물들이 가장 힘차게 태양을 향해 뻗어 있는 시간.

그렇다면 반려인의 오후란 가장 행복한 때일까? 만약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꾸만 이별과 상실에 관해 쓰는 걸까? 그것은 사실,
한쪽에게는 아직 오후인 시간이 다른 쪽에게는 자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넓고 깊은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수백 년을 살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수없이 많은 식물들을 먼저 떠나보낸다.
그래서일까. 식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보다 일찍 죽는 것을 사랑하는 일이란 무엇인지 생각한다.
나는 같은 숫자가,
같은 시간이,
서로에게 같은 의미이기를 기도한다.
이것은 인간 아닌 존재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5년 전이었다.
한 친구를 떠나보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던 십년지기였다.
실없이 웃는 걸 누구보다 잘하는 친구였다.
학창 시절에 나는 걸핏하면 나보다 덩치가 큰 그에게 달려들어서 그를 귀찮게 하곤 했다.
지금쯤이면 완연한 나무가 되었을까. 고개를 들 힘이 없어서 고개를 내리면 비스듬히 내 가슴에 기댄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다시는 친구의 영정을 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전,
또 다른 친구를 떠나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함께한 동아리의 동기였다.
장애인권 동아리에서 활동한 나는 종종 친구들의 휠체어 팔걸이에 걸터앉아 함께 달리곤 했지만,
이 친구의 팔걸이는 높아서 앉을 수가 없었다.
휠체어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한 기능이 많다는 뜻이다.
필요한 기능이 많다는 건,
그만큼 몸의 상태가 불안정하고 약하다는 뜻이다.
그는 평균수명이 스무 살 정도 되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고,
스물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남은 뼈는 함께 나온 의료용 보철보다도 작았다.
그가 담긴 상자의 바닥은 여전히 따뜻했다.

내일은 그의 수목장이 치러지는 장지에 가는 날이다.
이전에 보낸 친구도 수목장을 했다.
흙 속의 존재들은 나무로 된 유골함을 분해하고,
유골은 흙과 하나가 될 것이다.
나무는 그 사이로 뿌리를 뻗을 것이다.
유골은 흙이 되고 나무가 될 것이다.
그 나무는 우리 집 거실에 놓인 화분들보다 훨씬 넓은 땅에서 오랫동안 자랄 것이다.
이 지면에 내가 처음 쓴 글은 동네에서 자라는 나무도 반려 식물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집에서 몇 시간 거리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라고 못할 것 있나.

김소연 시인의 시 ‘여행자’에 나오는 구절들처럼,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집을 짓고,
창을 내고,
비둘기를 키우고 청포도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다시는 다른 존재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줄 수 없다고,
주지 않겠다고 절규한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의 시간은,
반려인의 시간은 아직 오후이기 때문이다.
오후는 이별과 상실의 시간이고,
그러므로 사랑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자꾸 나무가 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짝이 되는 동무일 것이다.


식물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에 관하여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할머니는 식물에게 항상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었다.<BR> ⓒ안희제 제공

할머니는 식물에게 항상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었다.
ⓒ안희제 제공

휴가 성수기가 다 지나간 여름의 끝이었다.
고속도로는 별로 막히지 않았지만,
국도로 나온 뒤에 지리산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집 근처라서 평소에 자주 보는 북한산처럼 깎아지른 바위 절벽은 없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하늘과 초록빛뿐인 지리산 한복판의 풍경은 지리산의 산세(山勢)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본 개발구역들이나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아파트들과 비교되어서인지,
지리산의 풍경은 더욱 ‘자연’의 기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인가가 드문 길을 한참 지나자,
은행 건물과 약초 시장이 보였다.
높지 않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할머니의 집은 그중에서 신축에 속하는 한 동짜리 빌라였다.
서로 다르게 생긴 비슷한 규모의 빌라 몇 채가 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고,
할머니는 문을 열어주었다.
약간 당황하신 기색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가 도착한다고 1시간 전쯤 전화로 설명드렸건만,
할머니의 기억은 이제 그만큼 유지되지 못하는 듯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확인했다.
어머니는 에어컨부터 살폈다.
더운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서 확인해보니,
할머니가 두꺼비집을 열고 전기를 모두 차단해둔 상태였다.
서울 집 근처에 살 때도 할머니는 전기세를 아끼겠다고 난방을 꺼두곤 했다.
이제는 두꺼비집을 열어서 끄기까지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어머니는 두꺼비집을 원래대로 돌려놓았고,
나는 막 나오기 시작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베란다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화분이 여럿 있었다.
다 마신 요구르트병을 재활용한 화분 두 개,
식물을 살 때 주는 얇은 플라스틱 화분 여섯 개,
서울에서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받은 아기자기한 화분 하나,
그리고 빨간 꽃이 그려진 (개중에 가장 큰) 토분 하나. 그중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는 건 두 개뿐이었다.
나머지는 비어 있거나,
흙만 있거나,
아니면 말라비틀어진 식물이 꽂혀 있었다.
요구르트병 화분에는 어디선가 꺾어온 작은 풀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꽃을 꺾다가 빌라 관리인에게 걸린 적 있는 할머니는 여기서도 거리의 풀을 꺾고 있었다.

다시 거실로 들어오니,
집 안 곳곳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식물들이 있었다.
나의 졸업사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당신 자식들의 사진 사이에도 가짜 식물이 있었고,
이제는 펼치지 않는 책이 가득한 책장의 맨 위에도 가짜 식물이 있었다.
그중 몇은 할머니의 병이 아직 많이 깊어지지 않았던 시기에 할머니가 오랫동안 살던 부산에서 함께 생활용품 매장에 가서 산 것이었다.
부산 집에서 할머니는 항상 식물을 키웠다.
물에서도,
흙에서도 식물이 자랐다.
어떤 녀석들은 바닥으로 가지를 뻗기도 했다.
이제 그 자리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식물들이 있다.

식물들은 선반의 가장 높은 곳에 올려져 있었다.
서울에서 지낼 때는 베란다가 없어서 할머니는 식물을 창문에 올려두었다.
돈을 아끼겠다고 난방은 꺼놓고서 식물 키운다고 창문을 열어놓으니 겨울에 특히 골치가 아팠다.
할머니는 언제나 작고 예쁜 것을 좋아했고,
세트 맞추기를 좋아했다.
당신 옷은 매일 똑같이 입으면서,
식물에게는 항상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었다.
할머니의 울퉁불퉁한 화원. 벽에는 직접 그린 꽃 그림이 있었다.


더는 분재를 하지 않는 이유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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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베란다의 빈 화분들은 한때 매일 아침 보살폈으나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식물들의 흔적이다.<BR> 사랑,<BR> 망각,<BR> 보살핌,<BR> 방치의 흔적.ⓒ안희제 제공

베란다의 빈 화분들은 한때 매일 아침 보살폈으나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식물들의 흔적이다.
사랑,
망각,
보살핌,
방치의 흔적.ⓒ안희제 제공

시작은 분재였다.
집에서 대형마트를 오가는 길목에 서오릉이 있고 거기에는 화훼단지가 있다.
식물로 가득한,
적절한 습도의 비닐하우스가 길가에 줄지어 있다.
식물을 기르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식물에 빠진 건 그곳의 한 가게에 들어갔다가 분재들을 보고서였다.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도 완전한 나무의 모습을 한 식물들이 놀라웠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옆 가게를 둘러보다가 예쁜 식물들에,
그리고 식물들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끌려 결국 첫 분재를 들이게 되었다.

그저 분재를 사기만 한 것이 아니다.
분재를 사면 만들고 싶어진다.
사장님은 분재 화분의 흙을 3층으로 구분했다.
가장 밑에는 배수가 잘되는 흙을,
중간에는 뿌리가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흙을,
그리고 맨 위에는 깔끔하게 화분을 마무리할 수 있는 흙을 썼다.
사장님은 각각 흙을 한 봉지씩 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그곳의 단골이 되었다.

식물과 화분,
그리고 흙이 생긴 우리는 집에서 분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분재가 되지 않은 식물들을 사서 분재로 만들었다.
원래 화분에서 뿌리를 뽑고,
물로 깨끗이 씻고,
새 화분 크기에 맞게 뿌리를 잘라준다.
화분에 배수가 잘되는 흙을 깔고 뿌리를 올린다.
그런 다음 뿌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흙으로 뿌리를 덮는다.
나는 약간 굵은 나무젓가락 하나로 흙을 군데군데 찔러주었다.
흙과 뿌리를 더 촘촘히 결합해서 그 사이의 공기를 빼주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위에 흙을 덮고 물을 흠뻑 적셔준다.
그리고 (반)음지에서 뿌리가 안정화될 수 있도록 해준다.

몇 달 동안 나는 분재에 푹 빠져 살았다.
아주 작은 편백인 청짜보,
향나무,
피라칸사스(혹은 피라칸타),
그리고 이제는 하나하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식물을 분재로 만들었다.
식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너무 많이 길렀고,
이제는 없다는 뜻. 동물이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집에서 기른 식물은 화분을 남기는 걸까. 베란다에는 텅 빈 화분들이 쌓여 있다.
모종을 살 때 받은 얇은 플라스틱 화분부터,
마음을 많이 쓴 식물들이 집으로 삼았던 도자기 화분들까지.

고백하건대,
초기에 만든 분재 중 남아 있는 것은 몇 없다.
나와 아버지는 서오릉에서뿐만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나 식물 판매 사이트에서 식물을 사기도 했는데,
튼튼하고 잘 자란다는 피라칸사스도 지금은 없다.
청짜보도 하나 빼고는 어느새 사라졌다.
베란다의 빈 화분들은 한때 매일 아침 보살폈으나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식물들의 흔적이다.
사랑,
망각,
보살핌,
방치의 흔적.

식물을 그냥 기르다가 실패하면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분재가 죽으면 내 책임이 더 커진다.
분재는 사람에 대한 식물의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먹고 남은 씨앗을 기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우리 미감에 맞게 식물을 기르기보다,
식물들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아졌다.
매일 열과 성을 다해서 돌보고 보살피는 것이 반드시 식물을 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비어 있는 분재 화분들을 채우지 않는다고 식물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는 뜻은 아니리라.


“바질이 사실 칼 갈고 있는 거 아냐? 너한테 복수하려고”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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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식물의 전기신호에 연결된 로봇칼’ 영상을 본 이후 바질을 뜯을 때마다 주춤하게 되었다.
ⓒ안희제 제공

유튜브에서 한 동영상을 봤다.
공학도들이 모여서 특이한 발명품들을 만드는 ‘긱블’이라는 채널인데,
식물이 로봇팔을 장착하고 칼을 들고 있는 섬네일이 너무 강렬해서 재생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은 식물의 기억력과 전기반응에 관한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영상에 등장한 식물은 자신을 쓰다듬은 사람과 잎을 뜯은 사람을 기억하는 듯이 다르게 반응했다.
식물이 생성하는 전기신호가 로봇팔로 이어지도록 장치를 만들고 그 로봇팔에 칼을 쥐여주자,
식물은 잎을 뜯은 사람을 향해 칼을 마구 휘둘렀다.
복수라도 하듯이.

물론 식물이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하거나 감정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은 물리적인 구조,
즉 몸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실험이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기억이나 감정과 같은 것이,
특정한 구조를 지닌 몸,
이를테면 인간과 같은 동물의 몸만이 아니라 다른 몸에서도 작용할지 모른다는 의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식물에 감정이나 기억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식물에 대한 실험을 토대로 기억과 감정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영상을 함께 본 이후 우리 가족은 식물을 대할 때 묘하게 어색해졌다.
“바질들이 사실 칼 갈고 있는 거 아냐? 너한테 복수하려고.” 우리는 요리하는 데 필요할 때마다 바질과 로즈마리를 뜯었다.
뜯는 건 주로 내 몫이었다.
어쩌면 바질과 로즈마리는 나를 기억하고 주변 식물들에 전기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놈 조심하라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괜히 바질을 뜯으러 갈 때마다 한 번씩 주춤하게 되었다.
뜯기는 뜯되 이전보다 조심스럽게 뜯는다고 해야 하나. 이 녀석들이 우리를 인식하고 우리를 기억하고 어쩌면 우리의 행동에 따라 짜증이나 화가 날지도 모르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식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일은 나에게 인간의 몸과 영혼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상기하게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에스파냐인들은 원주민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인지 알기 위해 종교· 윤리·양심을 지녔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이는 영혼을 상징했다.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판단은 학살을 부추겼을 테다.
그들에게 인간이란 ‘인간의 영혼’을 지닌 존재다.
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이 정령인지 인간인지 확인하기 위해 백인들을 물에 빠뜨렸다.
시체가 물 위로 떠오른다면 일단 정령은 아닐 것이다.
이들에게 인간은 ‘인간의 몸’을 지닌 존재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관점에서는 재규어,
바질,
거미도 원래는 인간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다른 몸에 스며들어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때 우리 집에 있는 바질은 인간의 영혼과 식물의 몸을 지닌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바질도 기억과 감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건 식물의 몸에 맞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로봇팔 실험은 식물의 몸을 바꾸어 식물이 감각한 것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그렇게 식물에 깃든 ‘인간의 영혼’에 닿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식물은 잎과 열매,
뿌리의 모양과 색깔 같은 요소들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소통해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식물의 효율적인 재배 방법보다,
식물의 신호에 감응하는 조심스러운 소통 방식을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식물을 기를 때 사람은 벌레의 몫을 하게 된다 [반려인의 오후]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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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방에서 만난 거미를 데려다가 거실의 화분에 내려주었다.
ⓒ안희제 제공

가능한 날에는 꼭 걷기 운동을 하려 한다.
함께 걷는 친구는 화단에서 거의 농사를 짓다시피 한다.
그 친구와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식물 이야기가 나온다.
파프리카,
레몬,
가지,
고추… 그는 올해 새로 어떤 식물을 심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 와중에 그에게는 새 고민이 생겼다.
밖에서 오랫동안 기르던 레몬 나무를 추위 때문에 화분에 옮겨 최근 집으로 들였는데 집에 자꾸 날파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오른 건 뿌리파리였다.
나도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

집에서 식물을 기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벌레다.
실내 공간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분법 중 하나는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라는 위생의 구분이다.
그리고 벌레는 더러운 것에 속한다.
벌레를 죽이는 이유는 단지 벌레가 눈에 거슬려서가 아니라,
더러워서다.

그런데 뿌리파리는 눈에 거슬리거나 더러운 문제를 넘어 식물에게 실제로 위협이 된다.
보통 초파리보다 작은 뿌리파리는 방충망이나 전기 파리채에도 잘 걸리지 않고 심지어 식물의 뿌리를 파먹기까지 한다.
인터넷에 뿌리파리를 검색하면 퇴치법을 찾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친구를 힘들게 한 건 뿌리파리만이 아니다.
그는 집에서 사과를 기르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모조리 실패했다.
물론 사과는 원래 기르기가 힘들고,
나도 싹을 틔운 게 몇 번이 안 된다.
싹을 틔워도 어느 크기 이상으로 자라기 전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죽었다.
친구의 사과를 죽인 건 뿌리파리는 아니었다.
그는 개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물론 밖에서도 벌레가 식물을 해치곤 한다.
친구의 레몬 나무에는 나비 애벌레가 앉아 말 그대로 모든 잎을 갉아 먹었다고 하니까. 그런데 뿌리파리나 개미의 문제는 화분이 집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집 밖에도 벌레들은 있지만,
 집 밖의 화단에서 기를 때는 뿌리파리나 개미도 벌레들의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잡아먹히기도 하고 영역 싸움에서 져 식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기도 할 테다.
거미처럼 식물에는 별 관심이 없고 식물에 접근하는 다른 벌레들에게만 관심 있는 것들이 식물을 지켜주기도 한다.

한때 나는 집 밖에 있는 식물들을 거미가 지켜줄 때 그들이 내 일을 대신해준다고 생각했다.
식물은 내 몫인데 그걸 벌레가 지켜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건 애초에 벌레들 몫이었다.
식물 주변을 거처로 삼는 것도,
다른 벌레들을 잡아먹어서 뜻밖에 그 식물을 지키는 것도 벌레들 몫이지 사람 몫은 아니었다.
그러니 식물을 기를 때 사람은 벌레의 몫을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깨끗한 것은 집에 있어도 되지만 더러운 것은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제자리에 있지 못한 것은 더러운 것이다.
벌레를 없애 위생을 유지하려는 사람의 일도 사실 벌레의 일이라서,
어떤 의미에서 벌레를 없애는 일이 벌레의 일이기도 할 때 이런 위생의 이분법은 다소간 흔들리기 시작한다.
얼마 전 나는 내 방에서 만난 거미를 데려다가 거실의 어느 화분에 내려주었다.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여기서 함께 지내자는 마음으로. 식물과 함께하는 것은 벌레를 쫓는 일만이 아니라 벌레와도 함께 살길을 찾는 일이었다.
봄이 왔다.


그 많던 레몬 나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반려인의 오후]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레몬 씨앗을 싹 틔우기는 쉽지만,
레몬 나무가 잘 자랄 확률은 높지 않다.
ⓒ안희제 제공

3년4개월. 마지막 남은 레몬과 내가 함께한 시간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레몬이 기르기 쉬운 식물인 줄 알았고,
그건 한편으로 분명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남은 레몬 나무는 한 그루뿐이다.

식물과의 일상을 다룬 책 〈식물의 시간〉을 쓴 이후,
나는 식물을 길러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레몬 나무부터 시작해보자고 제안하곤 했다.
신맛을 좋아하는 나와 어머니가 먹기 위해 우리는 이따금 마트에서 레몬을 잔뜩 사곤 한다.
껍질은 베이킹 소다와 소금으로 박박 씻어서 요리에 썼다.
일부는 퓨어 올리브오일에 넣어 레몬 오일을 만들기도 했고,
일부는 그대로 갈아서 샐러드에 올리기도 했다.
파스타에 조금씩 넣어 먹어도 별미였다.

껍질을 요리에 전부 쓰진 않았다.
껍질 일부를 구연산에 잠시 절여두었다가 물과 레몬즙을 적정량 섞어서 갈아 쓰면 레몬즙의 맛은 그대로이면서 양은 몇 배가 되는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보고 따라 했다.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덜 만들고,
같은 재료도 오랫동안 쓸 방법을 한창 궁리하던 시기였다.
레몬에서 나오는 씨앗을 심겠다는 생각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껍질이 아까웠던 만큼,
씨앗도 아까웠다.
그렇다고 난데없이 씨앗에서 기름을 뽑아보겠다며 설칠 수는 없으니 씨앗을 무작정 심어본 것이다.

레몬 씨앗의 싹을 틔우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나와 아버지가 주로 활용한 건 키친타월이었다.
레몬 씨앗의 겉껍질을 벗겨두고,
물에 살짝 적신 키친타월을 작은 접시에 올려둔다.
그 중앙에 레몬 씨앗을 올리고,
키친타월이 마르지 않도록 종종 물을 조금씩 더 뿌려준다.
그렇게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가득 올라왔다.
우리는 그 싹들을 다른 식물을 사올 때 생긴 플라스틱 포트에 옮겨 심었다.

시작이 몇 포기였는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레몬 씨앗의 싹을 틔우는 건 쉬운 일이었고,
옮겨 심은 포트(모종 그릇)도 너무 많아서 자라나는 레몬이 몇 개인지 세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레몬은 많았다.
아주 튼튼하게 자라는 녀석도 여럿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니 레몬은 네 포기 남아 있었다.
그때도 특별히 이 레몬 나무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셀 필요도 없이 많았던 레몬 나무가 넷밖에 안 남았는데도 사라짐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는 게.

그리고 넷 중 둘은 그저 어느 날 이유도 모르게 죽어 있었다.
식물과 함께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생긴다.
여느 때처럼 관리해주었는데 어느 날 보면 잎이 바삭하게 말라 있는 일들. 하나는 겨울에 집안에서 안전하게 관리하는데도 잎이 감자칩처럼 말라 있었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미 눈앞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버지는 죽은 나무를 흙에 묻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레몬 나무를 기르기 시작한 친구도 비슷했다.
그는 처음에 씨앗을 40개 뿌렸는데 이제 남은 건 두 개라며,
레몬 나무가 잘 자랄 확률은 5%라고 얘기했다.

이쯤 되면 마지막 남은 레몬에게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까. 어차피 하나뿐이니 굳이 이름까지는 필요가 없을까. 아주 듬직하게 목질화된 줄기와 파릇파릇한 이파리들,
그리고 영양제와 물조리개를 보며 믿어본다.
너만은 여기에 남아 있으리라고. 열매도 맺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잘해보자,
다음 3년도.


바람 타고 들어온 이름 모를 동반자 [반려인의 오후]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바질 화분에서 이름 모를 식물이 자랐다.
ⓒ안희제 제공

코로나19가 터지기 몇 달 전부터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으니,
집에서 식물들과 함께 산 지 이제 3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이름과 성격을 분명히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꽤 유명한 아이들 위주로 데려왔다.
공기정화에 좋다는 파키라,
분재 가게 사장님이 좋아하는 마삭,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한 몬스테라,
생명력이 강해서 초보도 잘 기를 수 있다는 스파티필럼,
토마토와 잘 어울리는 바질 등등.

화분이 늘어난다는 건 식물을 더 데려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기본적으로 흙이 늘어나는 것이고,
물이 늘어난다는 것이며,
벌레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집의 습기가 높아지고,
별개의 화분에 심긴 식물들이 점차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화분들에서 자라기 시작한 다양한 종류의 이끼는 생태계의 증거. 이렇게 만들어진 생태계에서는 내가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처음은 괭이밥이었다.
얼핏 보면 색깔이 탁한 클로버 같기도 한 녀석이 작고 노란 꽃을 피웠다.
이름도 아버지가 알려주시기 전에는 몰랐다.
해가 뜨면 그쪽으로 활짝 펼쳐지고,
해가 지면 오므리는 이 식물의 생명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아무 화분에서나 자라게 그냥 두면 그 화분에 원래 자라는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뽑기는 뽑았는데,
그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화단에 휙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화분을 찾아서 흙을 채웠다.
그리고 뽑은 괭이밥 뿌리를 그곳에 툭 심었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늘어났고,
괭이밥은 어느새 화분의 흙이 안 보일 정도로 자랐다.
그 속도를 집에서 감당하기가 힘들어 끝까지 키우지는 못했다.
어떤 괭이밥은 죽었고,
어떤 괭이밥은 화단에 옮겨주었다.

눈과 손으로는 구분할 수 있지만 이름을 하나하나 알지 못하는 식물들은 이끼와 괭이밥만이 아니었다.
바깥에 둔 아레카야자 화분에 어느 여름날의 바람을 타고 떨어져 자라기 시작한 다육식물은 지금 여러 화분에서 잘 크고 있다.
물 주고,
화분도 옮겨주고,
다른 화분에 심어서 개체수도 늘려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녀석의 이름을 모른다.

아버지는 베란다의 물 빠지는 구멍에서 향기별꽃으로 보이는 식물을 발견했다.
해가 뜨면 예쁜 꽃을 펼쳐내던 향기별꽃은 추위에 약해서 우리가 딱 하루 화분을 집 안으로 옮기는 걸 잊은 사이에 얼어 죽어버렸다.
그런데 그 식물의 잎은 너무나 향기별꽃의 잎 같았고,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이 녀석을 화분에 옮겼다.
날이 갈수록 잎은 훨씬 길어졌으나,
꽃은 피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이 이름 모를 식물을 그냥 데리고 산다.

바질 화분에서도 아주 가늘고 긴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해서,
벌써 그 높이가 한 해 내내 자란 바질과 맞먹으려 한다.
창문 밖 화분걸이에 두었을 때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온 걸까? 뿌리가 생각보다 깊던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이름 모를 식물이 또 생겼다.

날이 갈수록 이름은 별로 중요치 않다.
따로 이름 붙인 식물은 없고,
이름 모를 식물이 많은 집에서 우리는 맘먹고 새로 화분을 들이지는 않지만 일단 식물이 생기면 함께 살아본다.
당연히 자기 집인 듯 우리 화분에 자리 잡는 식물들과 살며,
별생각 없는 환대를 배워간다.


할머니는 창가에 항상 꽃병을 두었다 [반려인의 오후]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꽃병은 잃어버릴 일 없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다.
ⓒ안희제 제공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고,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폐암 말기 상황이었다.
서로를 돌볼 수 없는 두 사람을 우리는 집 근처로 모셨다.

할머니는 꽃을 좋아한다.
젊을 때는 꽃무늬 옷을 선호하진 않았는데,
이제 옷에도 꽃무늬가 있으면 좋아한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헷갈린다.
부산에서 사실 때 집에는 항상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봄에 할머니 댁에 가본 적이 없어서 꽃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림 그리길 좋아하셨던 할머니가 직접 그려서 발코니에 걸어둔 꽃은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돈도 많이 들고 귀찮다며 이제 그림은 안 그리는 대신,
할머니는 창가에 항상 꽃병을 두었다.
때로는 선물받은 꽃이,
때로는 어디선가 꺾어온 꽃이 담겨 있다.
함부로 꽃을 꺾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려도 소용없었다.

할머니는 자주 지갑이나 통장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고,
우리는 자주 할머니와 은행에 가서 통장을 새로 발급받았다.
지갑과 통장의 위치가 계속 바뀐 것처럼 꽃병의 배치도 조금씩 달라졌다.
다행히도 지갑이나 통장과 달리 꽃병은 언제나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있다.
그래서 꽃병은 잃어버릴 일이 없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는 동네에 있는 치매안심센터를 노인정이라고 부른다.
정말 노인정으로 알고 계시는지,
차마 본인 입에 ‘치매’라는 단어를 올리고 싶지 않은지는 알 수 없다.
어머니 입에서 ‘치매’라는 단어가 나올 때면,
할머니는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신다.
‘치매’라는 단어가 차별적이라서 그걸 대체하기 위해 나온 다른 단어들은 할머니가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 무의미했다.
우리 가족 안에서 그것은 ‘치매’일 수밖에 없었지만,
할머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노인정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노래를 같이 부르거나 여름에는 부채를 함께 만들기도 한다.
색칠 공부를 하기도 한다.
할머니가 만든 부채에는 꽃이 그려져 있다.
손잡이가 자꾸 떨어져서 제대로 쓸 수는 없지만 할머니는 망가진 부채를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화분이 늘어나 있었다.
할머니가 다니는 노인정에서 작은 화분을 줬고,
할머니는 그걸 받아와서 꽃병 옆에 두었다.
그리고 화분의 식물 일부분을 원래 갖고 계시던 주석 잔에 옮겨두었다.

적어도 결혼하신 이후로,
어머니가 본 바로는,
할아버지는 생전에 할머니를 위해서 한 것이 거의 없었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집안일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오랫동안 일도 안 했다.
그러다 노인 일자리로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점심을 마트에서 파는,
몸에 안 좋은 빵으로 몇 년이나 해결했다.
할머니의 일이 조금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둘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할머니 생신에 할아버지는 꽃을 선물했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내게 용돈을 주라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닦달한 것처럼,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할머니께 꽃을 선물하라고 시켰다.
그 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로 갔는지,
이미 시들어서 다 버려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꽃들이 버려지기 전에 그것들은 분명 저 꽃병에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가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꽃병 앞에서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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