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출장 간 사이 부하직원과 정사 나눈 아내...발각된 불륜의 결말은

 


남편 출장 간 사이 부하직원과 정사 나눈 아내...발각된 불륜의 결말은[사색(史色)]

강영운별 스토리

[사색-51] 남편이 집을 나갔습니다.
결혼한 지 4개월 만이었습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서,
더 이상 같이 살지 못하게 돼 미안하다는 편지 한장과 함께 사라졌지요.
그녀의 뱃속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과부 아닌 과부가 되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며칠 뒤 사교모임에 찾았습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느껴집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그 충격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 잠자리한다는 추문. 갓난아기를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릅니다.

첫 남편에게 일찍부터 버림받은 여인 <BR>조제핀. 그 뒤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BR>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사진 출처=소니픽처스]

첫 남편에게 일찍부터 버림받은 여인
조제핀. 그 뒤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사진 출처=소니픽처스]
©제공: 매일경제

외출도 삼가야 했던 날들의 지속. 손님이 한 명 찾아옵니다.
그녀를 떠났던 남편이었습니다.
그 여자와는 진지한 관계가 아니야.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당장 내쫓을만한 상황이 못됐습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앞둔 나라에서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요.

남편의 두 집 살림이 계속됐지만,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깨닫습니다.
나도 믿을만한 애인을 두겠어. 멍청하게 남편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야.그 뒤로 그녀는 프랑스 상류계층을 주도하는 ‘명기’로 거듭납니다.
성적 기술을 마음껏 활용해 귀족 유부남의 혼을 쏙 빼놓았지요.
그녀는 섹스를 인생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로는 권력을 위해서,
때로는 성욕을 위해서.

나폴레옹의 사랑 <BR>조제핀.

나폴레옹의 사랑
조제핀.
©제공: 매일경제

성공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성을 매개 삼아 여성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프랑스 황후에 올랐지요.
그녀의 이름은 로즈 드 보아르네. 우리에겐 ‘
조제핀’으로 알려진 나폴레옹의 부인이었지요.
나폴레옹의 이름에 가려진 그녀의 삶을 돌아봅니다.

기구한 여인
조제핀,
아니 ‘로즈 드 보아르네’

나는 쓰레기와 결혼했다.

나폴레옹을 만나기 전까지,

조제핀의 삶은 기구함 그 자체였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인 마르티니크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귀족인 알렉상드르라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가 마주한 건 남편의 바람이었지요.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다고 떠난 뒤에도 첫아들 외젠을 유괴하기도 했습니다.
이따금
조제핀을 찾아와 잠자리를 가져 아이를 갖기도 했었지요.

조제핀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쓰레기라도 남자는 필요한 시대였으니까요.

<BR>조제핀의 첫 남편 알렉상드르는 난봉꾼 중의 난봉꾼이었다.<BR> 조르주 루제 (1783~1869) 가 그린 그의 초상화.


조제핀의 첫 남편 알렉상드르는 난봉꾼 중의 난봉꾼이었다.
조르주 루제 (1783~1869) 가 그린 그의 초상화.
©제공: 매일경제


조제핀은 강해져야 했습니다.
남편만 믿고 살기에 18세기 프랑스는 녹록지 않은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힘 있고, 돈 있는 권력자의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것도 개의치 않았지요.
가족을 건사해야 했던 그녀로서는 마지막 선택지나 다름 없었던 셈입니다.

1789년 혁명이 터졌습니다.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등 혁명가들이 권력을 잡았지요.
하지만
조제핀의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남편 알렉상드르가 새로운 권력자들과 말싸움을 벌였다가 악명높은 카르메스 감옥에 투옥되면서입니다.
그녀 역시 불순분자로 몰려 같이 갇혀야만 했지요.
1794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

<BR>조제핀이 남편 알렉상드르와 투옥된 카르메스 감옥. 이곳은 집단 난교가 벌어진 곳으로도 이름 나 있다.<BR>


조제핀이 남편 알렉상드르와 투옥된 카르메스 감옥. 이곳은 집단 난교가 벌어진 곳으로도 이름 나 있다.
©제공: 매일경제

카르메스는 ‘거대한 사창가’로 이름이 난 장소였습니다.
곧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들이니,
죽기 전 쾌락이라도 느끼자는 이들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수인들 간에 수시로 성교가 이뤄졌지요.
저주받은 자들의 사교클럽이자,
끝없는 난교의 결합이었습니다.

거대한 사창가에서 인생을 배운
조제핀

나를 지킬 수 있다면,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겠어.

과거의
조제핀이라면 무너졌을 테지만,
그녀는 강해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귀족 계급의 남성들과 수시로 관계를 가졌고,
귀부인 뚜쟁이들과의 우정도 다졌던 것이지요.
유명한 장군이자 당시 함께 수감된 라자르 오슈와의 정사도 유명했지요.
출소 후 권력 기반을 회복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1794년 7월 22일 남편 알렉상드르가 처형당할 때도
조제핀은 의연하게 대처했지요.

프랑스혁명 그 자체이자,<BR> 공포정치의 원흉인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반동파에 습격당해 권력을 잃게된다.<BR> <BR>조제핀은 이 사건으로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BR> 19세기 프랑스 삽화.

프랑스혁명 그 자체이자,
공포정치의 원흉인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반동파에 습격당해 권력을 잃게된다.

조제핀은 이 사건으로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19세기 프랑스 삽화.
©제공: 매일경제

1794년 7월 27일이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에 환멸을 느낀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이었습니다.
모든 걸 뒤엎자는 자코뱅식 급진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습니다.
온건하게 세상을 점진적으로 바꾸자는 여론이 반동의 원동력이 되었지요.
귀족 출신
조제핀은 다시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됩니다.

감옥의 인연이 출세의 동아줄로

조제핀,저 남자가 지금 애인을 찾는대.

출소 후에도,

조제핀은 ‘옥중인맥’을 잊지 않았습니다.
귀부인 출신이던 테레자 탈리엥을 이용해 프랑스 정계의 핵심과 줄을 댔지요.
그 중 한명이 최고 권력자 중 하나였던 폴 바라스.프랑스의 정책을 정하는 국민공회 의장이었습니다.

동시에 감옥에서 만났던 오슈와도 다시 관계를 이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슈는 지인에게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그런 정사는 감옥에서는 허용될지는 몰라도,
밖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오.
침대에서 그녀는 분명 대단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그 욕정에 넌더리가 난다오.

어떤 남자를 꾀어야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19세기 <BR>조제핀 초상화. 작자미상.

어떤 남자를 꾀어야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19세기
조제핀 초상화. 작자미상.
©제공: 매일경제

냉철한 오슈와는 달리 바라스는 냉소적인 난봉꾼이었나 봅니다.
애인의 배경과 정조관념을 전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건 오로지 침대에서의 능력. 과부였던
조제핀의 농염함과 야망을 썩 마음에 들어했었지요.

조제핀은 이제 바라스의 침실을 자주 드나들 수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권력의 핵심인 곳이었지요.

바라스는 동시에 출구전략을 고민합니다.
나이도 많은
조제핀을 계속 애인으로 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제법 괜찮은 사내에게 장가보내는 방법이 최고의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때 바라스의 눈에 들어온 인물. 바로 프랑스의 떠오르는 신성 ‘나폴레옹’이었습니다.

<BR>조제핀,<BR> 나 말고 멋쟁이 연하 군인과 사귀어 보는 건 어때? 나폴레옹의 상관이자 <BR>조제핀의 애인이었던 폴 바라스.


조제핀,
나 말고 멋쟁이 연하 군인과 사귀어 보는 건 어때? 나폴레옹의 상관이자
조제핀의 애인이었던 폴 바라스.
©제공: 매일경제

6살 연하 나폴레옹과의 운명적 만남

1795년 10월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었습니다.

조제핀의 나이 32살,
나폴레옹은 고작 26살.
예쁘지도 않고,
이가 많이 썩은
조제핀이 나폴레옹은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가 원래 사귀던 사람까지 내팽개쳐 버릴 정도였으니까요.
본명이 로즈였던 그녀에게 ‘
조제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 것도 나폴레옹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편지는 지금까지도 전해집니다.

아침 7시,
나는 당신 생각으로 잠에서 깼소. 지난 밤 황홀했던 기억에 나의 오감은 아직 쉬지 못하오. 당신의 입술과 가슴에서 일어난 불길이 나를 태워버렸소. 천번의 키스를 보내오. 내게는 당신의 키스를 보내지 마시오. 내 피를 불사를 테니.

나 나폴레옹이,<BR> 한낱 과부에게 빠지다니. 앙리 펠릭스 에마뉘엘 필리포토가 그린 23세의 나폴레옹.

나 나폴레옹이,
한낱 과부에게 빠지다니. 앙리 펠릭스 에마뉘엘 필리포토가 그린 23세의 나폴레옹.
©제공: 매일경제


조제핀으로서는 횡재나 다름없는 애인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공화당 군의 포병 사령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끈 전쟁은 늘 승전보를 가져왔고,
나폴레옹은 프랑스 최고 군인으로 발돋움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파리의 모든 여자와 잘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바라스보다는 나폴레옹과 진지한 연애로 돌아서는 게
조제핀에게도 이득이었지요.
1796년 3월 두 사람이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증명서에서
조제핀은 4살을 줄이고 나폴레옹은 1년 6개월을 늘렸습니다.
두 사람이 연상연하라는 커플을 숨기고자 했던 것이지요.
)

나폴레옹,<BR> 내 남친 할 생각 없어요? 영화 ‘나폴레옹’에서 <BR>조제핀. [사진 출처=소니픽처스]

나폴레옹,
내 남친 할 생각 없어요? 영화 ‘나폴레옹’에서
조제핀. [사진 출처=소니픽처스]
©제공: 매일경제

프랑스 최고의 별 나폴레옹이 그저 그런
조제핀과 결혼한 배경에는 여러 설이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가 나폴레옹의 어머니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 레티치아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탓에 그녀와 닮은 사람에게 빠졌다는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이지요.

실제로 어머니 레티치아는 나폴레옹에 체벌을 가하며 함부로 대했고,
남편의 상사와 바람을 피우기도 했습니다(제2의
조제핀!). 엄마의 사랑을 못 받은 나폴레옹이 무의식적으로 (레티치아와 닮은)
조제핀을 통해 이를 충족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아버지 카를로 보나파르트와 레티치아. 엄마 레티치아는 카를로를 두고 그의 상사와 바람을 피웠다.<BR> [사진 출처=sailko]

나폴레옹의 아버지 카를로 보나파르트와 레티치아. 엄마 레티치아는 카를로를 두고 그의 상사와 바람을 피웠다.
[사진 출처=sailko]
©제공: 매일경제

천하무적 나폴레옹...침대에선 ‘토끼’와 다름없었다?

당대 최고의 결혼이었으나 두 사람의 결합은 견고(?)하지 못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장에서의 엄청난 능력과는 별개로 침대에서만큼은
조제핀을 만족시킬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신속한 성교’에 무척이나 실망감을 드러냈지요.

그녀가 친구에게 전한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쓸모 없는 놈이야. 나폴레옹은 어땠냐고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제핀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작은 음부를 가졌다.
그가 얼마나
조제핀에게 빠져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지요.

<BR>조제핀,<BR> 침대에서의 일을 누설하지 마시오. 앙투안 장 그로 (Antoine-Jean Gros) 가 그린 아르콜 다리의 보나파르트. 1796년 작품.

조제핀,
침대에서의 일을 누설하지 마시오. 앙투안 장 그로 (Antoine-Jean Gros) 가 그린 아르콜 다리의 보나파르트. 1796년 작품.
©제공: 매일경제


조제핀의 도를 넘은 불륜행각

욕망을 참는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조제핀은 나폴레옹의 직장상사이자 전 애인인 바라스와 다시 정사를 나눴습니다.
결혼식 전날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정치적인 안전망을 줄 수 있었지만,
성적 쾌락은 안기지 못한 탓입니다.

결혼 후에도
조제핀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성욕은 그가 일궈 놓은 모든 걸 무너뜨릴 위기의 실마리가 됐습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을 간 사이였습니다.

<BR>조제핀,<BR> 당신은 무얼하길래...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사진 출처=소니픽처스]

조제핀, 당신은 무얼하길래...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사진 출처=소니픽처스]©제공: 매일경제

그가 전장으로 떠나자마자 젊고 잘생긴 군인 히폴리테 샤를을 침대로 끌어들인 것이었습니다. 엄숙한 나폴레옹과 달리 시종일관 유머를 구사하던 그에게
조제핀이 욕구를 느낀 것이었지요.
이 역시 결혼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바보같은)나폴레옹은 그녀에게 애정의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
조제핀은 이때 히폴리테 샤를과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끝맺었지요.
당신의 가슴에 키스를,그리고 훨씬 더 아래에도 키스를.

스핑크스여,<BR> 나에게 말해달라,<BR> <BR>조제핀은 도대체 무얼하길래 편지가 없는 것인가? 장 레옹 제롬의 스핑크스 앞에 선 나폴레옹. 1886년 작품.

스핑크스여,
나에게 말해달라,

조제핀은 도대체 무얼하길래 편지가 없는 것인가? 장 레옹 제롬의 스핑크스 앞에 선 나폴레옹. 1886년 작품.
©제공: 매일경제

남편의 불같은 사랑에도
조제핀은 내연 관계를 결혼 직후부터 2년이나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갔을 때 보고서가 올라옵니다.
조제핀이 시종무관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공신력 있는 정보였기에 나폴레옹은 이를 믿을 수 밖에 없었지요.

불륜으로 금간 결혼은 다시 봉합되지 않았다

애처가 나폴레옹은 흑화하기 시작합니다.
이집트에 함께 원정 온 부하를 프랑스로 돌려보내고,
그 부인과 맞바람을 피웠던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다친 마음을 형 조제프에게 고백합니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찢어져 모든 감정이 말라버렸습니다.
더 이상 내 마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나는 모든 것에 지쳐버렸습니다.

나폴레옹 부인은 저렇게 음탕합니다.<BR> <BR>조제핀과 탈리엥 부인이 벌거벗고 폴 바라스 앞에서 나체로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영국 풍자화. 옆에서 몰래 지켜보는 인물이 나폴레옹이다.<BR> 프랑스의 적인 영국은 프랑스의 섹스 스캔들을 대놓고 저격했다.<BR>

나폴레옹 부인은 저렇게 음탕합니다.

조제핀과 탈리엥 부인이 벌거벗고 폴 바라스 앞에서 나체로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영국 풍자화. 옆에서 몰래 지켜보는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프랑스의 적인 영국은 프랑스의 섹스 스캔들을 대놓고 저격했다.
©제공: 매일경제

신도 무심하시지. 나폴레옹의 상처받은 마음이 절절하게 적힌 편지를 실은 배가 다른 함선에 의해 나포됩니다.
하필이면 적장이자 영국의 영웅 호레이쇼 넬슨 제독에 손에 들어간 것이었지요.
영국 런던 신문에 ‘오쟁이 진 나폴레옹’의 편지가 보도됩니다.
나폴레옹에겐 개망신이었고,

조제핀은 벼랑끝에 섰습니다.

1799년 10월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전장에서 1년만에 돌아왔죠.
조제핀은 나폴레옹을 찾아가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남자는 이제 나폴레옹 뿐이라고,
자신의 실수를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요.
두 사람의 방안에서는 수 시간 동안 고함과 고성 울분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문이 열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BR> 이제 바람 피우지 않을게요.<BR> 프랑수아 제라르가 그린 <BR>조제핀 초상화.

나폴레옹,
이제 바람 피우지 않을게요.
프랑수아 제라르가 그린
조제핀 초상화.
©제공: 매일경제

황제가 된 나폴레옹...
조제핀은 황태자를 낳지 못했다


조제핀은 그 이후로 다른 남성과 염문을 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달랐습니다.
그는 마음껏 여성들과 잠자리를 하고 다녔지요. 더 이상
조제핀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804년 6월입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조제핀은 황후로서 유럽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지요.
해피엔딩은 쉬이 오지 않았습니다.
황후로서 나폴레옹의 아기를 낳아야 하는 압박을 받아서였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이미 41세. 출산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나이였지요.

<BR>조제핀,<BR> 황후는 바람을 피워선 안 돼. 영화 ‘나폴레옹’ 한 장면. [사진 출처=소니픽처스]


조제핀,
황후는 바람을 피워선 안 돼. 영화 ‘나폴레옹’ 한 장면. [사진 출처=소니픽처스]
©제공: 매일경제

나폴레옹도 더 이상 그녀를 받아줄 만큼 순애보가 아니었습니다.
1809년 11월 30일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저녁 식사를 청합니다.
그가 얘기합니다.
상속자를 낳을 수 있는 아내를 찾아야 하오.
조제핀이 답합니다.
네 폐하,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약 1년이 지난 뒤,
성대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두 사람의 ‘이혼식’이었습니다.
엄숙하게 치러진 이 행사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준 열정과 헌신에 존경을 표시하면서 이별을 공식화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마리 루이즈를 신부로 맞이합니다.

그 동안 즐거웠소. <BR>조제핀과 나폴레옹의 이혼식. 앙리 프레데릭 쇼팽 (1804~1880) 의 그림.

그 동안 즐거웠소.
조제핀과 나폴레옹의 이혼식. 앙리 프레데릭 쇼팽 (1804~1880) 의 그림.
©제공: 매일경제

그럼에도 마음 마음속에는 여전히
조제핀이 남아 있었는지,
지인에게 이런 말을 남겼지요.
내가 결혼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자궁이다.
1811년 3월 나폴레옹 2세를 출산한 뒤,
그는
조제핀을 불러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보여주었지요.

나...나보고 자궁이라고? 나폴레옹의 두 번째 부인 마리 루이즈 황후와 나폴레옹 2세.

나...나보고 자궁이라고? 나폴레옹의 두 번째 부인 마리 루이즈 황후와 나폴레옹 2세.©제공: 매일경제

나폴레옹은 죽을 때에도 ‘
조제핀’을 생각했다

이혼 후 4년이 지났을 무렵입니다.

조제핀은 자신이 머물던 파리 인근 저택 말메종에서 폐렴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나폴레옹 역시 폐위된 채 엘바섬에서 망명 중이었지요.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은 그는 이틀 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흥망성쇠를 함께 한 진짜 소울메이트였던 셈입니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퇴각을 그린 아돌프 노던의 그림.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퇴각을 그린 아돌프 노던의 그림.©제공: 매일경제

나폴레옹 역시 1821년 세인트헬레나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France,l‘armee,tete d’armee,Josephine.(프랑스,군대,군대의 수장,그리고 조제핀)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폴레옹은 세상 모든 이야기꾼의 영감의 원천입니다.
세계적 거장 리들리 스콧이 ‘나폴레옹’을 발표한 이유기도 하겠지요.
다시 영화관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세계를 지배했지만,
한 여자를 지배하지 못한 남자,
나폴레옹의 이야기였습니다.

<BR>조제핀이 노년을 보낸 파리 인근 샤토 드 말뫼종. [사진 출처=Pedro Faber]


조제핀이 노년을 보낸 파리 인근 샤토 드 말뫼종. [사진 출처=Pedro Faber]
©제공: 매일경제

ㅇ나폴레옹의 아내
조제핀은 이혼녀로서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

ㅇ그녀는 첫 남편으로부터 바람을 맞은 뒤,
상류층과의 섹스를 무기 삼아서 힘을 키워왔다.

ㅇ동시에 색정광이었던 그녀는 나폴레옹과 결혼 뒤 젊은 군인과 불륜을 이어가기도 했다.
나폴레옹에게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해서였다.

ㅇ비밀을 안 나폴레옹은 맞바람을 피웠고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한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서로를 그리워했다.

ㅇ프랭크 매클린,
나폴레옹 야망과 운명,
교양인,
2016년

역사(史)에 색(色)을 더하는 콘텐츠 사색(史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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