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사춘기 전문가 김현수 교수에게 요즘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어봤다.
“몰라요” “싫어요” “귀찮아” “짜증 나”. 사춘기 아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부모는 적대적 태도인 아이들과 대화가 어렵고, 아이들은 사사건건 간섭하려는 부모와 이야기하기 싫다.
또 외동아이가 대부분인 요즘에는 집에서 일상 대화를 나눌 형제자매도 없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을 받은 아이들은 “외롭다”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한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사춘기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 마음의 다리, 대화의 다리를 놓는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다.
공중보건의로 소년교도소에 근무했던 그는 ‘문제 행동은
심리적 구조 신호’라는 것을 절감하고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주대학교 의대에서 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 봉천동에 신경정신과의원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청소년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아이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사재를 털어 치유형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을 운영 중이다.
사춘기 시절 우울감과 반항, 일탈은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김 교수는 “사춘기 아이들은
상상 이상으로
외로워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자식의 마음이나 생각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는 것. 아이는 서서히 대화의 문을 닫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도 모른 채 부모에게 끌려다니며 분노하거나 외로워한다.
김 교수에게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가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물었다.
그는 “부모의 인내심은 약이고, 조바심은 독”이라고 답했다.
저출생 시대, 아이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클 것 같아요.
부모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부쩍 외로워합니다.
형제가 없거나 아주 적기 때문이죠.
부모는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것’을 힘들어하고, 아이는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것’을 걱정해요.
가끔 부모님들이 “우린 너밖에 없어” “우린 너만 보고 살아”라는 이야기를 하죠.
부모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얼마 전 자해를 시도한 여중생을 상담했는데, 자신은 사실 공부도 못하고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성적을 속였다는 거예요.
들키면 부모님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자살 시도를 한 거죠.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아이의 부담감이 크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죠.
서로를 원망하기도 하고요.
“너밖에 없다”는 것은 결코 사랑을 증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는 기대와 집착으로 다가와요.
더 외로워질 뿐이죠.
사랑과 희망이 결핍된 요즘 아이들
김현수 교수와 치유형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 재학생들.
성별에 따라 사춘기도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나요.
사춘기가 되면 남녀 뇌 발달의 격차가 커져요.
보통 여학생이 앞서가죠.
이는 여성의 뇌 발달 속도가 남성보다 빠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의 뇌는 폭발적인 호르몬 분비와 가지치기를 진행해요.
이 시기에 뜻하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남자아이들은 회피하고, 은둔하고, 중독되는 경향이 있어요.
여자아이들은 자책하면서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면서 심하면 자해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고요.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자해, 자살시도가 더 많나요.
여학생이 훨씬 많아요.
자살 시도로 응급실을 찾아오는 여학생이 남학생의 3배 정도예요.
게임 등 무언가에 중독되는 확률은 남학생이 훨씬 많고요.
흔히 말하는 은둔형외톨이에 해당하는 아이들의 성별을 분석해보면 남학생이 압도적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남학생은 직면하기보다 회피하는 편이에요.
여학생은 스트레스를 후벼 파며 괴로워하죠.
자녀가 무언가를 제대로, 열심히 하지 않고 매사에
의욕이 없다며 걱정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요즘은
부모와의 갈등보다
무의욕, 무도전, 무희망 같은 결핍 때문에 상담을 의뢰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시대는 풍요로워졌지만 아이들의 결핍은 더 심해진 거죠.
무기력과 무의욕이 양산되는 주된 이유는 사랑과 희망을 결핍시키는 부모와 사회에 있습니다.
대부분 부모의 주 관심사는 공부예요.
그것도 오직 입시 관련 공부죠.
가족과 사회의 압박으로 아이는 자신의 진짜 꿈을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한 채 공부에 끌려다닙니다.
이 모습이 부모의 눈에는 한없이 의욕 없고 무기력해 보이겠죠.
처음부터 무기력한 아이는
없지
않나요.
물론이죠.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지 못할 때 무기력함을 선택합니다.
무기력을 전적으로 아이들만의 잘못으로 호도하지 않았으면 해요.
저는 결핍에 대항하는 말로 ‘충만함’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요.
결핍이 양적인 표현이라면 충만함은 질적인 표현이거든요.
충만함은 내적 행복과 만족을 의미합니다.
가족과 친구 등 주위로부터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충만함을 경험하면 무기력해질 수 없죠.
자신은 사랑받고 있으며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되니까요.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적 영양제 ‘힘그괜’ 대화법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 단절 이유로 스마트폰을 꼽기도 해요.
절대적 이유가 될 순 없지만 스마트폰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부모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해요.
몸은 집에 있지만 대화는 스마트폰 속 친구들이나 유튜버와 하는 거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 하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말도 안 통하고, 심지어 말투도 짜증 나게 느껴져요.
그러면 부모님과
이야기하기 싫어지고, 대화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대화하고 난 뒤
기분 좋았던 적이 없으니까요.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춘기를 보낸 아이들이에요.
직접 경험은 줄고 스크린 타임은 늘었죠.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요.
간단해요.
가족이 함께 원칙과 규칙을 정하는 겁니다.
밥 먹을 때는 스마트폰 보지 않기, 부모와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기 식으로요.
집에서는 스마트폰 꺼놓기처럼 강압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은 오히려 아이에게 반항심을 유발합니다.
서로 조율하며 지킬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부모의 솔선수범이고요.
사춘기 아이에게 친구는 어떤 존재인가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확연히 달라지는 것 중 하나는 친구 관계예요.
사실 중학교 때 친구 관계가 모든 친구 관계의 원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때의 경험이 이후 친구 관계의 기초가 되니까요.
또래 친구, 단짝 친구는 상상 이상으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친구와의 좋은 관계 덕분에 사춘기를 무탈하게 보내는 경우도 많고요.
또 사춘기는 우정을 체험하고 배우면서 새로운 소속감과
힘을 얻는 시기예요.
따라서 친구
관계가 틀어지면 아이가 큰 충격을 받고 방황할 수밖에 없죠.
부모는 친구를 대신할 수 없으니까요.
아이에게 친구가 많지 않아 고민인 부모님도 있어요.
친구 수나 인기도가 행복한 친구 관계를 보장하지는 않아요.
아이와 결이 맞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만 있어도 됩니다.
사교성 좋은 아이들 모두가 학교생활을 잘하진 않잖아요.
아이의 친구 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녀와 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요.
아이의
친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아요.
아이들은 친구와 자신을 동일시해요.
친구를 나쁘게 이야기하면 자신도 나쁜 아이라고 인식하거든요.
또 자녀의 친구 문제에 너무 깊숙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사춘기가 되면 다른 아이처럼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평생을 살면서 부모를 제일 미워하는 시절은 보통 사춘기예요.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마음으로 서서히 부모를 떠나는 연습을 시작해요.
그러다 사춘기가 되면 몸과 마음 모두
독립하게 되죠.
따라서 훈육은 초등학교로 끝내야 해요.
인격체를 갖추기 시작한 사춘기 아이와는 훈육이 아닌 상의하는 대화법으로 갈등을 해소해야 합니다.
통제보다 협상이 효과적이죠.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이해하기’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해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이자 결과예요.
마음을 이해받으면 적대감이나 원망, 분노는 줄어들어요.
때론 이해받았다는 느낌만으로 미움이 녹아내리기도 합니다.
아이가 마음을 이해받은 것은
큰 선물을 받은 것과 같아요.
사춘기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아이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해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대화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힘그괜’ 대화법을 추천합니다.
먼저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힘들지?” “힘들지 않니?” “힘들었지?”라는 말을 해보세요.
그 한마디로 아이들은 온기를 느끼게 됩니다.
또 아이와 대화를 할 때 “그렇구나”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맞장구쳐주세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화하려
노력하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이 생길 거예요.
마지막은 “괜찮아” “괜찮다” “이제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아이를 안심시키고 포용하고 격려하는 말을 자주 해주는 겁니다.
이런 말들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를 믿고 자존감이 향상돼요.
“괜찮아”라는 말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는 심리적 영양제나 다름없어요.
사춘기 자녀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화법이 있다면요.
“했니, 안 했니”요.
무언가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뉘앙스의 말을 반복하면 아이들은
관계를 피하게 돼요.
또
“네 말은 뻔해. 들으나 마나야”라고 아이의 의견이나 주장을 무시하는 화법도 피해야 합니다.
“엄마 말이 맞지? 엄마니까 이런 말 해주는 거야”라는 식으로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도 아이들을 숨 막히게 하죠.
마지막으로 모든 대화의 귀결이 공부로 끝나는 상황도 지양해야 합니다.
“영화 봤으니 이제 공부해, 옷 사줬으니 공부해야지”라는 말은 대화는 물론 무언가를 같이 하는 행위 자체도 싫어지게 만들죠.
사춘기 아이를 대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이해와 존중 그리고
격려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아이가 먼저 부모에게 대화를 요청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컸다는 것을 존중하면서 약간의 거리를 두면 서로 상처받을 일도 줄어들죠.
또 부모의 격려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어요.
격려하지 않는 부모에게 힘든 부분을 내색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아이들은 “안 된다”는 말보다 “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된다는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힘까지 만들어주니까요.
또 부모가 아이들의 삶에 중요한 멘토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게 여행, 깊은 대화 등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삶의 가치를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사춘기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주변 어른을 만들어주세요.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함께할 어른이 주변에 많고 그 어른들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사춘기는 누구나 겪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출발선상에 있는 아이들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여유 있게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