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에서 보내는 사적인 레터

 


노석조의 외설(外說)

우물 밖(外) 책을 읽고 이야기(說)합니다.
기사 밖으로도 나가 독자님을 만나렵니다. 함께 ‘외설’을 나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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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 기자

당신은 지금 미국 최신 베스트셀러 등 미번역 외서를 가장 빨리 읽고 우리말로 해제해 드리는 세계 유일의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外說)’을 읽고 계십니다.
워싱턴 D.C에서 보내는 사적인 레터
도착 첫날 짐을 풀고나니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차는 아직 마련이 안 됐고, 휴대폰 등 통신도 연결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경성택시’를 타고 공항에서 지체 없이 곧장 ‘미리’ 구한 집에 ‘호기롭게’ ‘스무스하게’ 올 때만 해도 별걱정이 없었는데, 경성택시가 떠나고 덩그러니 집에 남으니 순간 막막했습니다.

저랑 아내는 배고파도 일단 좀 참고 끼니도 걸러도 됩니다. 하지만, 이제 미국 나이로 7살(16년 12월생), 4살(19년 3월생)인 아이들은 그게 안 됩니다.

급한 마음에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근처에 뭐라도 살 수 있는 편의점은 없나 ‘수색 작전(?)’에 나섰습니다. 보병 1사단 전진부대 GP수색병 출신으로, 주변 지형지물 탐색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한국의 씨유나 지에스25 같은 편의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은 고사하고 그 어떤 샵도 나오지 않고, 주택가만 나왔습니다. 비엔나 전철역이 금세 나오긴 했는데 웬걸 역사에 우동집부터 꽃집, 양말가게 등 온갖 상점이 즐비한 한국과 달리 여기에는 뭘 살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넓디넓은 공간에 역점 직원만 있고 티켓 발급 기계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습니다.

자투리 공간만 있으면 세를 내주고 상점을 입점시키는 한국과 공간에 대한 개념과 공간 활용법이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크니 사람이 아무래도 덜 몰릴 테고, 이용객이 붐비지 않으니 역사에 상점이 들어서는 것도 수지가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해서 잠 한숨 못 자고(혼자면 모르겠는데 애들이 있으니 부모의 책임 같은 게 생겨 대충 넘어가지 못하고 뭘 계속 챙기게 되더라고요) 몇 시간 집 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와 걸어 돌아다니니 힘이 쭉쭉 빠졌습니다. 인터넷이라도 되면 구글 지도로 검색도 해볼 텐데 그러지 않으니 그냥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 안 되겠다 싶어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걸으며 두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얼른 통신과 이동수단(차)을 확보하자.’ 한국에서 “미국은 차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을 들을 때는 비유가 섞인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더군요.

집에 돌아온 저는 짐이 쌓인 거실에 앉아 한국에서 가져온 폰으로 연락을 해 한국 통신사의 로밍 서비스를 개통했습니다. 3만원이면 한 달간 미국에서 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진작에 할 걸 그랬습니다.

‘인터넷 세상’과 연결이 되자 저는 바로 우버를 깔았습니다. 벌써 해가 져가고 있었고, 서둘러 아이들 끼니를 해결해줘야 했습니다.

우버로 택시를 불러 가까운 마트를 찾아갔습니다. 가족과 미국에서의 첫 출타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들떠 보였습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저희의 첫 마트는 해리스 티터(Harris Teeter)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마트 이름이라 그런지 괜스레 더 미국적, 이국적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 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당장 내일 아침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해리스 티터로 가는 길에는 ‘세이프웨이’ 등 여러 마트와 식당, CVS같은 약국들이 보였습니다. 걸을 때는 주택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차를 타니 10분 만에 많은 게 보였습니다. 패어팩스 지역에 뭐가 많구나 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눈이 뜨였습니다. 기동력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지난 1월 25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시내에서는 '붕어빵 디저트 카페'인 '라이스 컬쳐'가 영업 중이었다. /노석조 기자
마트에서 장을 보기 전 허기를 달래기로 했습니다. 바로 옆에 ‘라이스 컬쳐(rice culture)’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자석에 이끌리듯 우리 가족을 후다닥 달려갔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메뉴에 비빔밥이나 된장찌개, 덮밥 같은 건 안보이고, 세상에 웬걸 붕어빵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라이스 컬쳐라는 게 ‘쌀밥(라이스)’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라는 뜻으로 ‘붕어빵’ 같이 한국의 아주 대중적인 길거리 먹을거리를 선보인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붕어빵에는 쌀이 들어가지 않는 데 말이죠. ‘라이스 컬쳐’ 안을 들여다봤더니 10대로 보이는 미국인들이 테이블을 꽉 채워 앉았습니다.

한국에서 K푸드가 미국에서 인기라고 들었는데, 괜한 국뽕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현상이라는 하나의 샘플을 입국 당일부터 확인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흔하디흔한, 어쩌보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미국에서는 ‘신선한 외국 디저트 메뉴’로 젊은이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다음에 이 ‘붕어빵 디저트 카페’를 찾아가 ‘취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결과물은 뉴스레터 외설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아무리 반가운 붕어빵이었지만 미국에서의 허기를 붕어빵으로 달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잉카 소셜(Inca Social)’이라는 남미 식당이 있었습니다. 지난 2022년 11월 한국·미국 국방부 장관이 주재하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취재차 펜타곤 출장을 왔을 때(저의 첫 미국 여행이었습니다) 알링턴에서 가본 식당이었습니다. 당시 제 조선일보 후배인 이민석 워싱턴특파원, 그리고 조선일보에 있다가 미국의 소리(VOA)로 옮긴 박승혁 선배(현재 삼성 미국 법인 근무)와 만나 식사를 나눈 곳이었습니다.

당시 볶은 밥부터 여러 해산물 요리를 내놓았던 기억이 나서 이곳에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펍 느낌이 나서 저녁 8시 무렵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괜찮을까? 조금 걱정이 됐지만, 당장 다른 옵션이 없었습니다.

인가 소셜은 식당 이름답게 페루 출신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페루는 그 국명 자체를 들어볼 일이 일상 속에서 거의 없는데, 미국에서는 페루 식당이 이렇게 프랜차이즈로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이민자가 많겠지만, 특히 페루가 갖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추후 한번 페루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미국에 한인 커뮤니티가 크게 형성돼 있듯이, 사실 페루 말고도 에티오피아, 인도, 이집트, 일본, 중국, 필리핀 등 각국, 각 민족 이민 사회가 미국에 존재할 텐데, 각 특색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미국의 시작은 인디언 원주민의 땅에 영국을 떠나온 청교도인과 이민자들이 세우면서지만, 현재는 세계 온 민족, 나라, 인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가지각색의 천 조각들과 실타래가 촘촘하게 꿰매지고 짜인 커다란 양탄자 또는 태피스트리(tapestry) 같은 나라가 미국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희 가족의 미국 첫 식사는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미국식 햄버거나 한식도 아닌 잉카의 후예 페루 요리였습니다. 해산물 볶음밥과 야채샐러드였는데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저희는 해리스 티터로 들어가 물과 빵, 요구르트, 감자칩 스낵, 비누 등을 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우버를 불렀습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버 운전기사의 이름은 딱 들어도 무슬림임을 드러내는 ‘무함마드’였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차장 밖으로는 ‘할랄 푸드’ 식당이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은 백인인 바이든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 등 IT기업, 그리고 흑인 선수들로 가득한 NBA 등 스포츠 등으로 비추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한국에서 정치부에서 있었던 저는 미국 하면 미 대선, 미 행정부의 정책이 미치는 국제적 영향 또는 한국에 대한 파장, 그리고 한미동맹이나 북핵·미사일과 같은 키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직접 와보니 이런 이슈도 중요하겠지만 당장 미국 사회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날 밤 저희 가족은 거실에 한국에서 가져온 이불을 길게 깔아놓고 나란히 누워 다 같이 잠을 청했습니다. 앞으로 1년간 연수하면서 그간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미국 사회의 속살도 잘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워싱턴 D.C.에서 보내는 사적인 레터3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구독자님.

2월 4일 북(北)버지니아 패어 팩스 비엔나에서

돌새(stonebird) 노석조 기자·조지타운 방문연구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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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서 보내는 사적인 레터
안녕하십니까? 구독자님,

뉴스레터 외설 구독자님께만 드리는 ‘뉴스 아닌’ 사적 레터를 씁니다.

조선닷컴이나 네이버 등 뉴스포털에 노출되지 않고 구독자님들의 이메일로만 전달되는 글입니다.

저는 2024년 1월 25일 오전 10시 15분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미 동부 시각으로 25일 오전 9시 50분 무렵 패어팩스 카운티의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딸·아들)와 함께 했습니다. 컨테이너 없이 이민 가방 11개(마일리지가 많이 깎였습니다)에 옷가지와 이불(저는 제 전용 베개까지 챙겼습니다), 그리고 상비약 정도를 챙겨 넣고 가져왔습니다.

2024년 2월 첫주부터 2025년 1월까지 1년간 워싱턴 D.C. 조지타운 대학의 에드먼드 A. 왈시 외교학교((Edmund A. Walsh School of Foreign Service)의 아시안 연구 프로그램(Asian Studies Program)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오는 2월 6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1년간 조지타운에서의 여정이 펼쳐집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2009년 12월 여의도에 있는 국민일보에 입사하면서 직업 기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2012년 8월 조선일보에 영입됐습니다. 도합 만 14년을 쉬지 일하고 15년차를 맞는 해에 잠시 취재 현장에서 벗어나 쉼표를 찍게 됐습니다. 기자증을 손에 처음으로 쥐었던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는데 어느덧 마흔둘이 됐습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 밤에 일하고 오늘 기사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해야 했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낮과 밤이 맞물린 일간지 기자의 삶을 살다 조금은 긴 호흡의 일상을 갖게 됐습니다. 삶의 챕터가 다음으로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한국에서도, 일을 하면서도, 삶의 챕터를 넘길 수는 있겠지만, 미국이라는 외국에서 잠시 일을 내려두고 조지타운이라는 역사 깊은 학교에서 직분을 갖고 사색에 잠기고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성년이 될 때 성인식을 치르듯이 40대 초반 중견으로 넘어가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려 하는 것도 있고요.

신문에 매일같이 기사는 쓰지 않지만, 뉴스레터를 통해서는 구독자님과 소통하려 합니다. 조지타운에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도 나누려고 합니다.

많은 격려와 관심, 그리고 의견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워싱턴 D.C.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아들 녀석이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사진입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과 뭐가 다른지 왜 그런지 잘 관찰해볼 생각입니다. 감사드립니다.

2024년 1월 31일 새벽 워싱턴 D.C. 외곽 Vienna, Virginia에서

돌새 노석조 올림

시차 때문에 내가 지금 한국 시간상 ‘오늘’에 있는 건지 ‘어제’에 아직 머물러 있는 건지 헷갈립니다. 시차가 14시간이니 한국 시각에서 2를 빼고 낮과 밤을 바꾸면 되는데, 날짜도 하루 빼면 되는지 분간이 바로 안 섭니다. 당장 미 동부에 있는 제가 2월 1일에 있는지 1월 31일인지 애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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