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 우리 삶을 바꿀 '과학' 성과들

 


글씨가 잘 안보이시나요?
오늘은 3월 1일, 삼일절 휴일입니다. 레터를 쉬어 가는 날이지만 최근 놓친 괄목할만한 ‘과학’ 소식들이 많아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고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뉴럴링크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비롯해 CAR-T 치료제 임상, 바이러스 저항성 돼지 등이 바로 그것인데요, 이 중 두 가지 성과, 즉 CAR-T 치료제와 저항성 돼지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삶을 180도 바꿀 수 있는 성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일에 보시는 만큼 핵심만 꼽아서 간결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시작합니다.
   오늘의 에디션  
  1. 뉴럴링크 "뇌로 커서를 움직였다" vs "소 왓?"
  2. 카티 치료제, 암 말고 '자가면역질환'에도 효과
  3. 유전자 교정 돼지, 식용 허용?
  4. 호주는 왜 유전자 교정 바나나를 허용했을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뇌에 칩을 심은 뒤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조종, 음료를 마시는 데 성공하는 실험 장면입니다. 이 실험이 성공한 시기는 2012년이에요. [사진=브라운대]

뉴럴링크 "뇌로 커서를 움직였다" vs "소 왓?"

지난 1월 말,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겠다는 목표를 구현하려는 뉴럴링크의 연구 성과가 뜨거웠습니다. 뉴럴링크가 개발한 ‘칩’을 첫 번째 환자에게 이식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X를 통해 “뉴럴링크의 첫 제품은 ‘텔레파시’다. 인간이 생각만으로 전화나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해요. 또한 “스티븐 호킹이 빠르게 타이핑을 하는 경매인보다 더 빠르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기사).

뇌에 넣은 칩을 이용, 사람이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는 내용은 대단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과연 학계에서도 그렇게 볼까요. 

이전 레터에서도 한번 말씀드렸듯이(👉뉴럴링크 혁신인가 무모한 도전인가뉴럴링크가 지금 보여준 성과들은 이미 많게는 10여년 전에 인류가 이룩했던 성과들입니다. 뇌에 칩을 넣고, 생각만으로 커서를 움직이는 연구 역시 마찬가지예요.

한 과학자는 네이처에 “이미 2004년도에 인류가 보인 성과”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이미 생각만으로 커서를 움직이는 데서 나아가 마우스를 클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뇌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로봇으로 전달,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일도 이미 10여년 전에 선보인 기술들이에요(기사).

여전히 이 분야 연구자들은 머스크가 이야기하는 뇌와 컴퓨터의 결합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물론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 과학 기술 수준으로는 10년? 20년? 이런 기간 안에는 어림없는 일이라는 게 여러 연구자의 생각입니다. 길게는 10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보는 과학자도 있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뉴럴링크의 출현은 해당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투자금도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이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카티 치료제 원리입니다. [그래픽=NIH]  
카티 치료제, 암 말고 자가면역질환에도 효과


바이오 기술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카티(CAR-T)’ 치료제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자기 유전자를 조작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치료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암에 걸린 환자의 몸에서 ‘T세포’를 추출합니다.


T세포는 아시다시피 우리 몸에서 암세포는 물론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항원) 공격하는 세포(항체)에요. T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암세포 공격력을 증가시킵니다. 이렇게 만든 T세포를 대량으로 생산한 뒤, 이를 다시 환자의 몸에 넣습니다. ‘풀네임’은 ‘키메라 어쩌고저쩌고’ 인데요 쉬는 날 머리가 아프시면 안 되니 이는 다음에 설명해 드릴게요.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이 기술은 수많은 연구와 임상을 거쳐 2017년 드디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게 됩니다. 현재는 혈액암(백혈병) 치료제로 사용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암을 치료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까지 카티 치료제는 ‘꿈의 항암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효과가 좋거든요. 문제는, 개인 맞춤형인 만큼 가격이 비싸요. 한국에 들어온 노바티스의 ‘킴리아’는 비용이 5억원이 넘는다고 해요. 


하여튼, 최근 이러한 카티 치료제가 암뿐 아니라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의 임상을 시작합니다. 다발성 경화증이란 뇌, 척수, 시신경으로 구성된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만성질환이라고 해요(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환자의 면역체계가 건강한 세포와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 과학자들이 다발성경화증, 즉 자가면역질환에도 카티 치료제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 보고 여러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이미 소규모 임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임상 1상을 위한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기사).

이제 막 발걸음을 뗐지만 연구계에서는 자가면역질환에 카티 치료제가 효과를 보일 경우 ‘엄청난 패러다임 변화’가 올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이 좀처럼 낫기 어려운 질병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아토피를 비롯해 류머티즘 관절염, 탈모증 등 다양한 질병이 자가면역질환으로 꼽힙니다. 이제 임상 1상이 시작되고 있으니 몇 년만 기다리면 효과 좋은 치료제가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아직 비싼 가격이 흠이긴 하지만요.

유전자 가위의 힘을 제일 잘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근육이 넘쳐나는 돼지, 유전자 가위로 만들었어요. [사진=Credit: Xi-jun Yin]

유전자 교정 돼지, 식용 허용?

영국 기업인 지너스 피엘씨(Genus plc)라는 기업이 올해 연말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전자가 교정된 돼지의 식용을 공식 승인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어요(기사).

미라클레터에서 몇 차례 '유전자 가위'를 다룬 적이 있는데요(👉머스크 없어도 뜨는 유전자 가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유전적 특성을 변화시킨 돼지의 식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유전자 교정된 돼지가 식용이 가능해지려면 안정성, 위해성 등에 대한 복잡한 규제를 통과해야 하는데요, 현재 유전자 가위로 DNA를 변화시킬 경우 FDA는 이를 '신약'으로 보고 있는 만큼 철저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해요. 물론 과학자들은 "유전자 가위로 유발한 돌연변이가 자연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와 차이가 없는 만큼 이러한 규제는 불필요하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요. 
 
짧게 지너스가 만든 유전자 돼지를 설명해볼게요. 지너스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돼지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저항 능력을 가진 돼지를 만들었습니다.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porcine reproductive and respiratory syndrome)'이라는 질병인데요(설명). 단일질병으로 돼지 농가에 가장 큰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병이라고 합니다. 

지너스 피엘씨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돼지 배야의 유전자를 조작해 해당 질병에 내성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이어 이 배아를 돼지의 자궁에 착상시켜 유전자가 교정된 돼지를 태어나게 했어요.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해요.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에 내성을 갖으려면 특정 유전자에 변형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자연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해요. 지너스 피씨엘은 "FDA와 좋은 진전을 이루고 있으며, 몇가지 작은 사항이 남아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FDA는 '빨리 자라는 연어'와 '갈세이프 돼지', 이렇게 두 종의 유전자 교정 동물을 식용으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갈세이프 돼지는 돼지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이 먹어도 문제가 없는 돼지라고 해요. 다만 빨리 자라는 연어는 잘 팔리지 않고 있고, 갈세이프 돼지 역시 아직 식용으로는 판매하고 있지 않다고 해요. 
 
현재 콜롬비아는 지너스의 유전자 교정 돼지를 기존 돼지와 동일하게 취급하겠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지너스 피엘씨는 전 세계에서 돼지고기 소비가 가장 많은 중국에서도 승인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요. 돼지 가격이 떨어지게 될까요? 아니면 오히려 관련 산업이 부흥하게 될까요. 
20년 동안 바나나를 연구한 호주 퀸즐랜드공대의 제임스 데일 교수 [사진=GLC]

호주는 왜 유전자 교정 바나나를 허용했을까

유전자 교정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가지 소식이 더 떠올랐어요. 바로 '바나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바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기사 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현재 우리가 즐겨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인데, 껍질이 두꺼워 '이동'에 상당히 유리합니다.

인류가 바나나 재배의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품종인데요,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바나나는 모두 캐번디시라고 보셔도 됩니다. 전 세계 바나나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캐번디시가 차지하고 있어요(기사).

단일 종이 시장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보니 질병에 취약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1950년대에는 '미셸'이라는 품종이 시장을 지배했는데 곰팡이로 인한 전염병으로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당시 유행하던 곰팡이에 강한 캐번디시는 살아남았는데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나타난 곰팡이 때문에 잊을만 하면 한 번씩 고초를 겪고 있어요.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졌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지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 많은 과학자 곰팡이에 강한 바나나 품종을 개발해 왔는데요, 지난 2월 16일, 호주·뉴질랜드 정부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교정 바나나의 식용을 허용합니다(기사).

호주퀸즐랜드 공대가 개발한 새로운 바나나는 개발하는 데 무려 20여년이 걸렸다고 해요. 무려 7년여 기간 동안 현장 시험을 통해 실제 질병에 강함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품종을 만들 때 유전자 가위를 사용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이번 연구를 이끈 제임스 데일 교수의 논문을 찾아보니 2017년 이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이러한 실험을 많이 한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논문).
맺음말

일론 머스크는 마음이 급하겠지만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이 하루 아침에 될리 없습니다. 마음이 앞서고 서두른다고 안 될 일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과학기술에서는 우연한 발견이 많습니다. 실수였던, 우연이었던 어느 순간 획기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페니실린’의 발견이 그랬고,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의 발견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획기적인 성과는 한순간에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큰 노력과 연구 성과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넘쳐흐르면서 성과가 나옵니다.


그래핀을 예로 들면, 탄소 원자 1개가 배열된 그래핀이 ‘우연히’ 발견되기 전, 탄소 원자를 5~6개 층까지 분리해 내는 실험이 이미 성공한 상황이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던 거죠. 챗GPT 역시 마찬가지고요.


유전자 교정 바나나를 개발한 호주퀸즐랜드 공대의 부총장은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20여년의 연구 지원이 이러한 결실을 볼 수 있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20여년 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과학자, 그리고 20년 동안 지원을 해 준 정부와 학교.


앞서 말씀드린 모든 연구가 같습니다. 카티 치료제는 1980년대부터 연구가 이어진 뒤 2017년에야 신약으로 허가받았습니다. 생명공학계의 혁명이라 불리는 유전자 가위 역시 마찬가지고요.


하루하루, 꾸준히 노력하시는 독자님들을 응원합니다. 노력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


주말은 원래 이틀이지만 이번 주는 3일입니다.  연휴 첫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함께 적어가겠습니다.
원호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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