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 없이 살고나서 그 다음 죽음을 만나면 된단다."


 

"여한 없이 살고나서 그 다음 죽음을 만나면 된단다."



제는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를 했습니다. 꽃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목련과 벚꽃이 만발하였더군요. 세상이 온통 하얗게 아름다운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넘쳤습니다. 어느 나무를 지나다가 작은 새 한 마리가 열심히 구멍을 파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아마 집을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민첩하게 구멍을 들락거리며 나뭇조각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화창한 봄날 꽃을 피우는 것도 새집을 만드는 것도 모두 생명의 부지런한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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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을 파고 있는 새

귀가하는 중에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들렀습니다. 다행히 아들이 저랑 목욕하는 걸 좋아해서, 아내와 딸은 집에 보내고 아들만 데리고 목욕을 했습니다. 이젠 아들이 커서 한증막에도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어도 버텨내는 것을 보며 성장한 아들이 대견했습니다. 반면 커다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무척 초라해 보였지요. 깊어진 주름의 그늘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여겨졌습니다. 봄날의 싱그러움과 탄력적인 아들의 몸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만, 늙어버린 내 몸은 그 둘의 콘트라스트만을 만들더군요.

많이 성장한 아들에게 이전에는 못 했던 말들을 조금씩 하게 됩니다. 엄마 몰래 약간 야한 영화를 보여주듯이... 목욕탕에서 나왔더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이제 몇 번이나 더 저 꽃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심중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했드랬습니다. 이전까진 금기어였는데, 목욕에 심신이 이완된 탓인지, 무심코 말해버린 셈입니다. 아들은 무섭다며,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무심하게 이렇게 말했죠. '저 아름다운 꽃들도 얼마 후엔 반드시 진단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아빠가 없어도 이젠 우리 아들은 잘 살 수 있을 거야.' 아들의 얼굴에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크게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젠 조금씩 이런 이야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내 밝은 분위기로 화제를 돌렸지만, 아들에게 못다 한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해주고픈 말입니다.

아들아, 죽음이 무섭지? 그래 당연히 무섭단다. 하지만 그 무서움에 익숙해져야 한단다. 너도 이제는 크고 강해졌으니까. 그 공포와 싸울 나이가 되었으니까.

아들아! 그건 매번 외면하고 회피할 수는 없단다. 살아있는 건 무엇이든 죽는 거거든. 슬퍼도 무서워도 어쩔 수 없는 것이거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저 꽃들처럼 활짝 피어나거라. 그래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거라. 그렇듯 여한 없이 살고나서 그 다음 죽음을 만나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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