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을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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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상대가 속상할만한 행동을 잔뜩 해놓고서는 "너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하거나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얘기할 때 역시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하는 등 상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감정, 믿음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들고 심한 경우 자신에 대해 미쳐있다거나 올바르게 생각할 능력이 저하되어 있다고 믿게 만드는 언행을 흔히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자기 자신이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비이성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사귀던 연인이 지속적으로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고 이야기했다.
일상 생활에서도 예를 들어 이런 음식, 옷, 음악, 사람 등을 좋아하다니 어딘가 특이하다고 하거나 좀 이상한 것 같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고 했다.
연인의 행동으로 인해 속상하고 화가 날 때에도 되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상대가 어딘가 정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면박을 주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가장 가깝고 자신을 잘 안다고 여겨지는 사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생각과 감정,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일이 잦다보니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이는 학대적인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맥길대의 연구자 윌리스 클레인은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경험과 학대적인 관계를 극복한 계기에 대해 인터뷰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열렬히 호감과 사랑을 표현해 온 연인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가스라이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로맨틱한 말과 선물 공세, 이벤트 등을 해오다가 관계가 충분히 친밀해지고 나면 그때부터 너무 예민하거나 감정적인 것 같다, 멍청한 것 아니냐 또는 정신 나간 것 아니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식의 비난도 자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가해자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타이밍에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 행동을 보이는 등 상대의 불안 수준을 높이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식으로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며 학대적인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행동 패턴을 보였다.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들은 자기개념이 위축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또한 다수가 인간관계에 조심스러워지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어려웠다고 보고했다.
가스라이팅을 스스로 이겨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시 키웠다고 보고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비교적 소수였다.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계기는 많은 경우 다른 친밀한 관계, 가족, 친구들의 도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적인 파트너는 흔히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지만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경우 학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이나 명상 같은 활동들도 자기가치감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몸을 움직이거나 과거에 자주 즐겼던 취미 활동들 다시 시작하는 것도 원래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기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극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자기가치감은 많은 부분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 형성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 소중한 친구, 연인으로부터 너는 쓸모 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는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들었을 경우 태생이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는 어렵다.
지속적으로 멍청하다거나 제정신이 아니라는 피드백을 들었을 경우에도 자신의 판단력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대적인 관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가지 원인이 이것이다.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정적이고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한 명이라도 이들 옆에서 그렇지 않다고 너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이의 존재가 중요하다.
같은 이유에서 학대적 관계의 피해자들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사회적 인식 또한 필요하다.
KleinW., LiS., & WoodS. (2023). A qualitative analysis of gaslighting in romantic relationshipsPersonal Relationships, 30(4), 1316–1340.※필자소개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혼자서도 행복한 '자족감'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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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과 대체로 사랑을 잘 주고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인간관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곤 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관계를 통해 맺는 애착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안정애착(secure attachment), 불안애착(anxious attachment), 회피애착(avoidant attachment)이 그들이다 (Fiske, 2009).

● 안정 VS 불안정 VS 회피애착일반적으로 과거 양육자나 연인 등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을 풍부하게 해 온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후에도 사랑을 주고 받음에 있어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애착 형태를 안정 애착이라고 한다.
반면 과거의 상처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사랑을 주는 것이나 받는 것 모두에 있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불안 애착(anxious attachment), 다른 하나가 회피 애착(avoidant attachment)이다.
불안 애착은 흔히 사람들의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낮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을 혹 싫어할까 항상 두려워하고 자신을 좋아해줄 것 같은 사람에게 집착하고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반면 회피 애착을 강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다.
불안 애착인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며 때론 지나치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회피애착인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려 하고 혼자 강해지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Shaver et al., 2016).● 애착 유형에 따라 달라요각 애착유형을 보이는 사람들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Feeney & Collins, 2001; Mikulincer et al., 2005). 연인들을 대상으로 각각 어려운 과제를 시킨 후 지금 연인이 많이 긴장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정보를 준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애착형태를 크게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어떻게 보살피는지를 살펴보았다.
우선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안정애착을 형성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연인에게 따듯한 말을 해주는 정서적 지지와 함께 고민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실제적 도움 또 힘들어하는 상대방을 대신해서 자기가 그 과제를 하겠다는 등의 희생 모두를 적절하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을 아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냈다.
반면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상대의 어려움에는 공감을 잘 하지만 도움을 줄 때 상대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다소 자기중심적인 목적이 우세한 경향을 보였다.
돕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적절한 말이나 조언을 하는데 실패하기도 한다.
또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도움을 주려고 하고 결과적으로 끼어들거나 오지랖을 부린 셈이 되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상대를 케어하는 데 있어 ‘강박적’이고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회피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불안정 애착과는 또 다르게 상대방의 어려움에 비교적 신경쓰지 않고 공감도 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 회피 애착인 사람들이 가장 봉사나 희생 의향이 낮았다.

안정 애착이나 불안정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현재 연인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으면 연인을 걱정하느라 자신의 과제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회피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은 딱히 상대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좋은 집중력을 보이기도 했다 (Feeney & Collins, 2001; Mikulincer et al., 2005).안정애착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한 쪽은 관심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너무 과하고 그걸 온전히 타인을 위해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불안정 애착), 다른 쪽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소속 욕구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를 관계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만 채우려고(회피 애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도 볼 수 있겠다.
결국 균형의 문제인 것일까.필립 세이버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UC Davis)의 심리학자는 안정애착인 사람의 중요한 특징이면서 불안 애착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을 ‘자족감(sense of self-sufficiency)’이라고 본다.
이들은 혼자라고 해서 지나치게 외로워지거나 불안해지지 않고 혼자서도 행복하게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관계 역시 타인을 통해 외로움을 지우거나 안정감을 얻고 싶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괜찮지만 함께 더 행복해지기 위해 타인과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같이 보다 자발적이고 건강한 목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런 애착유형은 한 번 정해지면 평생 가는 종류의 것이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려움 없이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 자기 자신과도 사이 좋게 지내는 경험을 쌓아보도록 하자.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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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몇 년 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길에 한정되었던 것이 차도로 넘어오더니 근처 길을 전부 갈아 엎기 시작했고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분명 처음에는 1년 안에 끝날 거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벌써 수 년 째 진행중이다.
모든 일에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라는 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처음의 계획이 틀어지고 일이 점점 길어지는 현상은 흔히 관찰된다.
몇 시간 정도면 집안 일을 다 마무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거나 시간 맞춰서 과제를 제출하는 사소한 일부터 다리를 만들고 빌딩을 세우는 큰 일까지 인간이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처음의 예상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늘 과소평가 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계획 오류라 부른다.
우리가 늘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마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 가지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타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을 처음 계획할 때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특히 새 해 맞이 결심처럼) 처음 계획 할 때는 원대한 포부와 열정, 기대감 같은 감정들이 끼어들곤 한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과거에 비슷한 일을 할 때 반복해서 실패하고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와 완전히 단절된 존재인 것 마냥 다 잘 될 거라는 장밋빛 예상을 하고 만다.
12월 31일에서 하루 지났을 뿐인데 새 해의 나는 갑자기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어 모든 일을 어떤 유혹이나 방해, 어려움, 미루기, 피로, 실수도 없이 착착 해낼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과거의 경험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착오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나는 올해에도 유혹에 약하고 방해를 받을 것이며 여러 어려움을 겪고 가끔은 미루기도 할 것이다.
피로와 실수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따라서 비슷한 일을 이미 해 본 적이 있다면 이전에 겪었던 어려움을 이번에도 그대로, 또는 더 심하게 겪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번에도 분명 쉽지 않을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현실적인 시각을 갖기 어렵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내 동생이나 친구 또는 직장 동료가 나와 비슷한 목표를 가졌다고 생각해보고 그 사람이 이 계획을 실현하는 데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지 현실적으로 얼마나 걸리겠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흔히 미래의 타인에 대한 기대보다는 ‘미래의 새로운 나’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장밋빛이기 때문이다.
(내 동생이나 친구, 직장 동료는 새 해가 되더라도 생활 습관 등에 있어 꽤 큰 관성을 유지할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예외일 것 같지만 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목표와 각 목표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최대한 세분화하는 것도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막연히 독서하기, 운동하기 같은 목표를 갖는 것보다 달력에 날짜와 시간을 명시해서 이 날 몇 시부터 무슨 책을 무슨 운동을 할 것인지 적어 두는 것이 좋다.
꾸준히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을 할 때 ‘두 달 후 완성’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단계를 나눠서 데드라인을 여러 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하루는 24시간임을 기억하자. 열정에 휘말려 지나치게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달성하려고 덤비는 경우 마치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일상의 상당히 많은 시간이 ‘현상 유지’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은 많아야 서너 시간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개를 다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작은 것이라도 제대로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자.어떤 날의 나는 피로에 발목을 붙잡힐 것이고 따라서 가급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는 시간 또한 분명히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자. 최소한의 정신 건강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시간들까지 전부 써버리겠다고 생각하는 경우 그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리해서 해내더라도 이후 몸과 마음에 청구되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
꼭 이루고 싶은 작은 목표 하나를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내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

나이 들수록 '행복감' 느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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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면 설렘도 크지만 또 한 살 더 먹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고 노화가 찾아오는 것을 달가워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소식이라면 적어도 ‘행복’에 있어서는 나이를 먹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의외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높은 행복도를 보고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특히 미혼 여성들의 경우 40대를 넘어가며 행복도가 가파르게 상승하여 20대에 비해 50%나 높은 행복도를 보이는 현상이 보고된 바 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는 가진 것도 없고 늘 불안하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불안이 없어진다고 내일이 오늘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한국의 경우 노인 빈곤율이 심각하게 높다는 문제가 존재함에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행복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최근 미국에서 25-95세 사이의 약 2000명을 대상으로 10년 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우선 나이가 들면 별로 즐거울 게 없다는 생각과 달리 긍정적 정서는 20~50 대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이후 다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의 경우 오히려 긍정적 정서를 점점 더 ‘쉽게’ 느끼게 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평소 하기 어려운 특별한 것을 하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특별한 곳을 가야만 재미있고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 자신을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나와 잘 맞는 사람과 환경을 더 잘 파악하고 나니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금은 아무런 유난스러움 없이도 공원에 홀로 앉아서 책을 읽거나, 새로운 산책로를 발견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다.
한 십년 전만 해도 남들은 다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핫플레이스들을 가는데 나만 안 갈 수는 없다는 FOMO (fear of missing out, 나만 좋은 경험을 놓치는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휘둘리며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들 하니까 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고 막상 해보니 별 거 없다는 실망감이나 공허함에 흔히 시달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게 별로 없다는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 없이도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재미란 별 게 아니며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어렸을 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일상 생활에서도 충분히 많은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연구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항상 슬프다’거나 ‘어떤 것도 나를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 정서 또한 대체로 감소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정서상태가 “평온”해진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팍팍한 기준을 들이미는 일들이 줄어드는 반면 자기 자신과 함께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무엇이 내 행복에 있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분별하는 능력도 더 좋아지고 의미 없는 것들보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지혜 또한 늘어날 것 같다.
또한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작은 일에도 크게 상처받거나 쉽게 좌절하는 일이 조금 덜 일어나기도 한다.
경험을 통해 이 정도의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을 극복해왔던 경험이 많을수록 사람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인식은 흔히 부정적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경제력이나 건강 등이 걱정될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이듦의 전부는 아니니까. 흔히 발달은 어렸을 때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변화와 시기에 따른 과업을 거치며 계속해서 발달해 간다.
내일은, 내년에는 또 어떤 내가 되어 있을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해보자.

10번 고맙다가 딱 1번 서운한 일만 기억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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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나 연인 사이에 갈등은 항상 있는 것이지만 쓸데 없이 갈등을 더 키우는 습관이 있다.
바로 선택적 기억이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작은 서운한 일이 생겼을 때 그 일로만 다투는 게 아니라 생각해보니 이 때도 그 때도 이런저런 서운한 일이 있었다며 과거의 모든 서운함을 한꺼번에 끌어모을 때가 있다.
보통 이럴 때는 상대방이 해준 것들 중에 고마웠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오로지 서운했던 일만 선택해서 기억하곤 한다.
열 번 부탁했을 때 상대방이 아홉번 들어주고 딱 한 번 안 해줬을 뿐이지만 그 한 번을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고서는 “그 때 내 부탁 안 들어줬잖아!”라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타인이 나에게 한 행동은 좋았던 것보다 나빴던 걸 더 강하게 기억하는 반면 내가 남에게 하는 행동을 기억할 때는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내가 타인에게 잘못했거나 상처줬던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잘 해줬던 일은 선택적으로 강하게 기억한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받기보다 주는 게 많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상처를 받은 사람이 많다면 준 사람도 많아야 계산이 맞지만) 다수가 자신은 상처를 주기보다 상처를 받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98%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는 대부분 사람들보다 훨씬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응답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네가 더 잘못이 많다’는 태도로 세상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작은 갈등도 서로 남 탓만 하며 심하게 격화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일대의 심리힉자 라이언 칼선 등의 연구에 의하면 특히 “이기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이런 선택적 기억 왜곡을 심하게 보이며 자신의 선행과 희생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타인의 배려나 도움을 받은 일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돈을 주고 또 다른 참가자와 함께 공평하게 얼마를 나눠 가지라고 했다.
나중에 이들에게 다시 아까 얼마를 나눠줬냐고 물었다.
실제 나눈 금액을 정확하게 기억해내면 추가적인 보상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평소 나누기에 인색하고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정확하게 기억해서 보상을 타내겠다는 동기가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소 욕심이 많고 인색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나눠준 금액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서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기적일수록 조금 나누고서도 실제보다 많이 나눈 것으로 왜곡해서 기억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돈을 주고 파트너와 얼마씩 나눠야 공평할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러고 나서 역시 다른 참가자에게 돈을 나눠주도록 한다.
이후 사람들에게 다시 돈을 얼마나 공평하게 나눈 것 같냐고 묻는다.
그러자 본인의 기준에서도 불공평한 적은 돈을 나눈 사람들이 공정하게 나눈 사람들에 비해 더 자신의 공정함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공정하지 못하게 타인의 몫을 가로챈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자신은 공정하게 행동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연구자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함으로써 이기적인 행동을 지속할 뿐 아니라 무의식적 수준에서 자신의 행동을 실제보다 덜 이기적인 것으로 왜곡해서 기억함으로써, 자신은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는 믿음 하에 계속해서 죄책감 없이 이기적인 행동을 지속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쩌면 내가 가장 손해보고 가장 많이 베푼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실제로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을 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욕심이 많고 이기심이 강해서 내가 배푼 것만 보이고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것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착취당하기만 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으므로 빨리 끊어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혹시 내가 잘 한 것과 상대방이 못한 것만 쏙쏙 집어 편파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는 것도 좋겠다.

사적인 영역, 선 넘지 않기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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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지내면서 한 가지 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벌써 함께 5년 이상 매주 회의를 하며 함께 일하고 있는 선생님의 사적인 정보(나이, 가족 구성, 집안 사정, 재산 상태, 최근의 고민 거리 등)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일에 대해서라면 작은 고민도 서슴없이 상담할 수 있지만 일 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입이나 귀에 담지 않아도 되는 프로페셔널한 관계다.
물론 일터에서 만났지만 사적으로 친해져서 일상적인 고민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선생님도 있지만 굳이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나의 아무 사적 정보도 오픈하지 않아도 되는, 또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을 억지로 귀에 담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비교적 많이 존재한다.
때로는 내가 상대방의 기준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정보를 오픈했을 경우 ‘어..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 나한테 이런 얘기해도 괜찮겠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기분 나빠 했던 적은 없다.
사람이 당황하면 할 말 안 할말을 다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적지 않다.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듯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도 최대한 지켜주고 존중해주는 것에 가깝달까.한국에서는 일부러 과한 음주와 함께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까발리고 ‘바닥’을 드러내면서 서로를 존중하기보다는 떳떳치 못한 일을 함께 벌인 ‘공범’으로서의 관계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지만 관계마다 원하는 만큼의 선을 개인이 설정할 수 있는 사회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바운더리들을 가진 관계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직장에서 난데없이 ‘가족’과 같은 끈끈함을 찾는 데서 오는 각종 오지랖과 요청하지 않은 조언,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 이야기 등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경계를 흐리는 일 없이 일은 일로, 사적인 영역은 사적인 채로 간직할 수 있어서 괜히 혼자 착각하고 상처 입거나 서운해 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미국 콜롬비아대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프로스트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관계에서 얻길 바라는 이상적인 친밀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또한 이 선이 지켜지는지의 여부가 우리의 행복과 관계만족도에 큰 영향을 준다.
프로스트와 동료들은 연인관계에 있는 약 17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 2년간의 추적조사 끝에 관계에서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친밀하지 못한 것도 행복과 관계의 질, 관계의 유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행복과 정신건강(우울, 좌절 등), 관계 유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Frost & Forrester, 2013).무조건 끈끈할수록 좋을 것 같은 연인 관계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원이 ‘나’ 또 다른 원이 ‘연인’이라고 했을 때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친밀도와 실제 친밀도가 다르면(원하는 것보다 멀거나 또는 원하는 것보다 가까움) 행복도와 정신건강이 비교적 좋지 않으며 더 빨리 헤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연구에서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친밀도보다 실제 친밀도가 더 높거나 낮으면, 다시 말해 상대가 자신이 설정한 바람직한 관계의 선을 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자신의 관계 만족도 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계 만족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상대가 바라는 이상적인 친밀도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친밀도의 차이(예, 상대는 최대 10에서 9의 친밀도를 원하지만 나는 7을 원하는 등)보다 상대방이 자신의 내적 바운더리를 넘어서고 있는지 여부가 더 관계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또는 다소 쿨한 관계를 원하는지는 그 자체로 크게 중요치 않지만 실제로 상대가 자신이 정한 선을 침범했다는 느낌이 들면 그 때부터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른 것은 괜찮지만 상대가 원하는 바를 무시하거나 위반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나 친구, 가족, 연인 사이의 관계 모두 우리는 서로 다른 관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다.
친구와는 한 없는 끈끈함을 원하지만 직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함께 일하는 남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체로 모든 관계에서 막역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연인이나 가족 사이에서도 충분히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마다 다 성격이 다르듯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얻고자 하는 것 또한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타인과의 관계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은 '존중'임을 잊지 말자. 관계를 통해 내가 나의 필요와 욕구가 채워지길 바라듯 타인 또한 그러하다.
서로가 바라는 바를 최대한 존중하고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나도 상대도 비로소 만족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약 딱히 나쁜 일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드는 관계가 있다면 자신이 이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고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누군가의 바운더리가 침해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타인에게 지나친 끈끈함을 강요한 적은 없는지 반대로 부담스러운데 자꾸 선을 넘어서 다가오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필요하다면 터놓고 대화를 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배웠다는 '착각'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는 모두가 자신은 적어도 ‘평균’은 한다고 생각하고 같은 주사위도 내가 던지면 더 원하는 숫자가 잘 나올거라고 생각하는 등 다소 오만하고 착각이 심한 경향이 있다.
이런 착각은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에서도 심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어떤 정보가 다소 쉬운 형태로 전달이 되면 뭔가 배운 것 같다는 착각을 크게 한다.
같은 정보를 좀 더 명료한 폰트에 큰 글자 사이즈, 다양한 색상, 다양한 사진과 이미지 등을 이용해서 전달하면 그러지 않았을 때에 비해 사람들은 자신이 더 많은 정보를 얻었고 따라서 더 많이 배웠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잘 배웠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 배움 사이에는 큰 괴리가 나타나서 실제 정보를 얼마나 잘 숙지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면 두 조건 사이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서 정보를 전달할수록 많이 배운 것 같다는 ‘자신감’은 높아지지만 실제로 더 많은 내용을 기억하는 현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강사의 강의 스타일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심리학자 알렉산더 토프트네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31분 짜리 강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 때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강사가 말을 유려하고 하고 아이컨택트도 적극적으로 하며 좀 더 열정적이고 흡인력 있게 가르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같은 내용이지만 강사가 말을 자신 없게 하고 책을 읽는 것처럼 재미 없게 가르치는 영향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강의를 본 사람들이 강의에서 등장한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강의 직후 그리고 하루 지나서 테스트해 보았다.
그 결과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강사의 강의를 본 사람들이 더 많이 배웠을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실제로는 두 그룹 사이에 성과 차이가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많이 배운 것 같다는 느낌에서는 큰 차이가 나서 열정적인 강사를 본 그룹의 사람들의 경우 자신감만큼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배웠다는 착각(illusion of learning)”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배움이란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스스로 계속 그 내용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다시 저장하는 노력을 거쳐야만 비로소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된다는 사실이 한 몫 할 것 같다.
마치 음식을 먹기 쉽고 맛있는 형태로 떠먹여 줘도 그걸 씹어서 삼키고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영양 흡수의 측면에서는 별로 실속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양한 매체나 열정적인 강사의 존재가 어떤 때는 되려 주의 집중을 흐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교과서에서 예쁜 사진이나 일러스트가 나오면 되려 갑자기 낙서를 하며 수업에서 멀어지거나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서 내용과 상관 없는 딴 생각에 빠지는 일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태블릿 PC를 통한 학습이나 인터넷 강의 같은 것도 양질의 학습 도구로 쓸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집중력만 점점 짧아지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이렇게 쉬운 형태의 정보 전달이 꼭 학습능력에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쩍 느끼고 있어서 떠먹여주는 형태의 강의나 멀티미디어 학습보다 재미 없어 보이는 책을 진득히 파고 드는 일을 다시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되려 손 쉽고 빠르게 얻은 정보보다 혼자 실수를 반복하며 어렵게 얻은 정보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적어도 ‘사연 있는’ 정보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관련해서 정보를 타이핑 하는 것보다 손 글씨로 직접 필기하는 것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었다.
눈으로만 스윽 보는 것보다 직접 읽는 것이 직접 읽으면서 손도 함께 움직여서 정보를 받아 적어보는 것이 더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학습에는 늘 어느 정도의 고생이 따라야 하고 따라서 ‘쉬운’ 학습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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