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한슬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머니레터 독자분들을 위해 준비한 돌봄에 관한 이야기, 어느덧 마지막 연재입니다.
의료와 구분되는 돌봄이란 무엇인지로 시작해, 돌봄 시설과 돌봄 인력, 그리고 돌봄
재정에 관한 얘기까지 모두 마쳤네요.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주제가 있어, <돌봄의 경제학> 연재의 닫는 글로써 준비했습니다.
바로 ‘존엄한 죽음’에 관한 논의예요.
연명치료라는 슬프고 느린 과정
미디어를 통해 ‘연명치료’라는 개념을 한 번쯤 접해 보셨을 것 같아요.
회복 가능성은 희박하나, 각종 처치를 통해 임종하기까지의 기간을 연장하는 의료 행위들을
일컫는 말이죠.
사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분들의 상당수는 연명치료를 받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길면 몇 년을 의식 없는 상태로 지내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의식이
없어도 이렇게 오래 누워계실 수 있는 이유는 외부에서 계속 영양 공급을 하기 때문이에요.
혈관으로 영양수액을 공급받거나, 위장으로 연결된 (흔히 ‘콧줄’이라고 부르는) 비위관을 통해 걸쭉한 액체 형태의 유동식을 섭취하는 방식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명치료에도 비용이 듭니다.
공동간병 형태로 간병비가 최소화된다고는 해도 치료비와 간병비를 합치면 매달 백만 원이 훌쩍 넘어요.
간절한 부탁과 되돌릴 수 없는 선택
가족이 연명치료를 시작하게 되기까지, 많은 보호자분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습니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져, 가족들이 급히 응급실로 달려옵니다.
다행히 환자의 목숨은
살렸지만 회복할 가능성이 낮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죠.
이때 환자에게 적극적인 연명치료를 할 것인지 보호자의 의사를 묻게 됩니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무조건 살려달라’라고 답합니다.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설명도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대부분의 연명치료는 보호자 스스로 정확히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앞으로 어떤 상황들과 마주하게 될지 알지
못한 채로요.
2004년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여기까지 읽으신 다음, ‘환자가 회복할 가망이 없을 때, 그때 가서 고민하고 그만둘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는 독자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관례적으로 가능하기도 했지만, 2004년을 기점으로 많은 게 바뀌었어요.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환자의 부인이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소생 가능성이 낮은 남편을 퇴원시키고자 했어요.
의료진의
만류에도 각서까지 쓰며 산소호흡기를 제거했고, 환자는 5분 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사건이 경찰에 고발되고 2004년, 보호자와 의료진까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보호자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자칫하면 살인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조건 살려달라’는 보호자들의 간절한 부탁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2018년부터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며 배우자와 19세 이상의 직계존비속* 전원이 동의할 때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러나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의미가 없고, 그 논의 과정 자체가 보호자인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본인을 기준으로 혈연관계에 속하는 윗세대와 아랫세대로 형제자매, 사위와 며느리 등은 포함하지 않아요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이 결정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스스로에게 소생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상황이 온다면,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비교적 존엄한 상태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것을 본인이 의식이 있을 때 미리 확약해 둘 수 있어요.
이런 의사를 체계적이고 법률적으로 작성해서 남기는 방법이 바로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이 닥쳤을 때 스스로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예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죽음은 먼 단어입니다.
내가 연명치료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커녕,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는
일도 드문 게 현실이에요.
그러니 ‘돌봄’을 고민하기 시작하셨다면, 더욱 이 문제를 주변과 나누고 미리 상의해 보시기를 권해드려요.
돌봄의 과정은 물론 그 끝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의 존엄이니까요.
내가 미래에 누릴 돌봄은 현재 결정됩니다
돌봄에 대해 전보다 잘 알게 되었더라도 여전히 나와는 먼 일로 느껴지는 분들도 많이 계실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현재 기성 세대가 받고 있는 돌봄이 바로 내가 받는 돌봄이 될 것이란 사실이에요.
내가 미래에 누릴 돌봄은 현재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돌봄 영역에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선에 참여해야 해요.
<돌봄의 경제학>이 독자분들이 만들어 나갈 돌봄의 모습을 그려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박한슬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돌봄의 경제학> 연재를 쭉 함께한 머니레터 독자분들은 돌봄의 영역도 결국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많이 느끼셨을 거예요.
돌봄 인력을
고용하려면 돈이 들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력을 고용하려면 더 많은 돈이 들며, 간병인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줄이는 데에도, 돌봄 시설에서 재활 치료를 병행하는 데에도 돈이 드니까요.
다시 말해, 지금까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복합적인 돌봄의 질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분명 나는 세금도 꽤 내고, 건강보험료도 적진 않게 내는 것 같은데. 나라에서 이런 중요한 문제에 쓸 돈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이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볼게요.
돌봄 재정이 부족한 첫 번째 이유:
역피라미드 인구구조, 높아지는 부양비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참 많이 보도됐어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런 현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혹시 노년부양비(Elderly Dependency Ratio)*라는 용어를 접해보셨을지 모르겠어요.
풀어보면 ‘일하는 청·장년’ 1명이 ‘은퇴한 노인’ 몇 명을 부양해야 하는지
비율로 나타낸 값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볼까요?
* 노년부양비: 노인인구를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값
- 젊은이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경우
: 노인 1명 ÷ 젊은이 5명 = 1/5 = 노년부양비 0.20
-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경우
: 노인 1명 ÷ 젊은이 4명 = 1/4 = 노년부양비 0.25
- 젊은이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경우
: 노인 1명 ÷ 젊은이 3명 = 1/3 = 노년부양비 0.33
- 젊은이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경우
: 노인 1명 ÷ 젊은이 2명 = 1/2 = 노년부양비 0.50
현재 유럽 등의 주요 선진국들은 노년부양비가 0.25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돈을 버는 청·장년 4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하는 구조예요.
우리나라도 2023년 기준으로 이 수치가 0.26이니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15년 정도만
지나도 이 수치가 급격하게 나빠진다는 거예요.
작년인 2023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15살이 되어 ‘생산가능인구’에 포함되는 해가 바로 2038년입니다.
이때가 되면, 노년부양비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0.55 정도로 치솟습니다.
지금은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하고 있지만, 15년만 지나면 젊은이 2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요.
현재의 돌봄 재정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노인 1명에게 쓸 수 있는 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런 예측 때문에 현재는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걸 최대한 억제하고 있어요.
돌봄 재정이 부족한 두 번째 이유:
한국의 노후대비와 세금의 구조적 특징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일부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은 편입니다.
애초에 연금이라는 제도가
출발한 곳이 유럽 지역이에요.
두 지역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본격적인 연금제도가 자리를 잡아, 1970년대 이후로는 거의 전 국민을 포괄하는 연금제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어요.
일부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선 연금제도가 자리잡은지 최소 100년이 넘은 셈입니다.
그러니 직장인들도 은퇴 이후의 생활비를 연금의 형태로
저축해 두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제도에 맞춰 ‘소득’에 과세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어요.
소득은 비교적 과세하기 용이하고,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큰 데다 경제활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부과할 수 있어요.
증세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소득세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유에요.
반면, 우리나라는 연금제도의 역사가 짧은 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한 어르신들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얘기보단
‘노후 자금’으로 생활한다는 얘기가 더 익숙해요.
노후 자금은 보통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구매하거나, 매달 월세를 받기 위한 수익형 부동산을 매입하는 형태로 사용돼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은퇴 후 매달 생기는 일정 금액의 ‘소득’이 아닌, 목돈을 모아 구매한 ‘자산’을 통해 노후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방식을 제주대 김도균 교수는 ‘자산 기반 복지’라고 정의했어요.
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를 지탱하는 건강보험은 물론이고 노인 돌봄에 대한 재원으로 쓰이는 장기요양보험 역시 실질적으로 ‘소득’에만 부과**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많은 사람이 노후 대비를 자산 형태로 했는데,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걷는 건 소득에 대해서만 진행되니 재원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꾸준한 현금 흐름 없이, 은퇴 후 집 한 채가 거의 전 재산인 분들의 삶이 쉽게 궁핍해지기도 하고요.
** 현재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는 재산에 따라서 보험료를 일정부분 부과하고 있긴 합니다
지금 사는 내 집을 나라에 담보로 맡기고, 매달 생활비를 대출받다가, 사후에는 주택을 매각하는 방식의 제도를 주택연금이라고 하는데요.
반드시 주택연금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내 노후를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방식이 바뀔 필요는 있습니다.
돌봄 재정이 부족한 세 번째 이유:
복지 재정을 둘러싼 딜레마
인구구조 문제와 재정 문제만으로도 이미 상황이 어려운데,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바로 복지 재정을 둘러싼 딜레마예요.
이 부분은
예시를 통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최근 일본에선 어린이 놀이터들이 노인들을 위한 생활운동시설로 바뀌고 있어요.
어린이가 줄고, 노인이 늘어나니 벌어지는 당연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찬반 대립이 존재합니다.
‘한정된 공공부지’에 어떤 시설을 들여놓을 것인가를 두고 어느 쪽을 택해도 정답이 아닌,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죠.
공공부지가 한정되어 있듯, 우리 사회의 복지 재정도 규모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확인한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노인에 대한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놀이터나 생활운동시설이냐 하는 문제처럼, 재정을 놓고도 의료와 돌봄 사이에서도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지 갑론을박이 발생해요.
조금
더 시선을 넓히면 노인에 대한 복지 지출은 교육이나 보육, 장애인 같은 소수자 복지와도 재정을 둘러싼 슬픈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복지 재정은 한정돼있습니다.
이 재정을 미혼모에 대한 양육비 지원에 더 많이 써야 할까요, 아니면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우선해서 써야
할까요, 아니면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재활 운동에 먼저 써야 할까요?
세금과 보험료 개편이 필요해요
윤리적 딜레마를 불러일으키는 현실에 놓이지 않으려면, 복지 재정의 절대적 규모 자체를 늘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의 형태가 되었든,
아니면 특정한 목적에만 쓰게끔 만든 사회보험의 형태가 되었든 간에 재원 자체가 늘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렇지만 재원 자체의 확대에 대한 반대나 저항도 그만큼 크다는 게 현실입니다.
만약 상위 1%나 상위 10% 같은 부유층에게 엄청나게 높은
소득세를 부과하더라도, 실제로 계산해 보면 필요한 복지재원에선 한참 모자라요.
결국은 중산층부터 상위층까지 모두가 동참해야 그 정도 규모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어요.
흔히 복지 선진국이라고 얘기되는 스웨덴 같은 국가는 소득세율이 32% 수준이며, 직접적인 소득세를 안 내는 인구가 전체의 6.6% 수준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33.6% 정도의 국민이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습니다.
스웨덴과 같은 국가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넓고 촘촘한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세금도 그만큼 넓고, 촘촘하게 걷어가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연봉 3,600만 원을 받는 1인 가구 직장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한국과 스웨덴의 세금 납부액을 비교해 볼게요.
- 한국:근로소득세와 지방세를 포함해 연간 70만원 정도의 세금을 내요
- 국민연금, 건강보험 같은 4대보험 금액을 모두 합치면 연간 390만원 정도를 내요
- 스웨덴:근로소득세와 지방세를 포함해 연간 1,152만원 정도의 세금을 내요
- 스웨덴은 사회보험료를 근로자와 기업이 반씩 나눠 내는 게 아니라, 기업이 100% 부담해요
한국과 스웨덴은 내는 금액 자체가 너무 차이가 나죠? 스웨덴의 경우는 ‘조금 더 내고, 많이 받는다’가 아니라 ‘많이 내고, 대신 그만큼 받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꼭 세금을 올려야만 하나요?
부족한 복지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꼭 세금을 올려야만 하는지 궁금증을 갖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복지재정을 늘리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분야에 쓰이는 세금을 줄이고, 그만큼을 복지재정으로 돌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2024년 기준으로, 1년 예산의 32%가 사회복지 재정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유관 분야인 보건까지 포괄하면 46%를 관련 분야에
쓰는 중이라,
다른 분야의 세출을 조정하기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에요.
두 번째는 국가에서 우선 빚을 내 복지재정으로 사용하고, 나중에 이를 갚는 형태예요.
국가채무, 보통은 줄임말인 ‘국채’로 더 많이 쓰는 식의 재정확보 방법인데요.
우리나라는 다른 OECD 선진국과 비교해 국가채무 비율이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미래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건 일반 대출과 다를 바가 없어서, 지금 발행되는 국채를 후속 세대가 갚아야만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의 증세를 유예하여 미래 세대가 세금을 더 내게 만드는 거죠.
다만, 국채 발행은 재정확보 목적만이 아닌 경기 부양 등 복잡한 효과를 내서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앞서 설명드린 대로, 나라에서 걷는 세금을 늘리는 방식이에요.
다만, 소득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무한정 늘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처럼 소비에 붙는 세금은 도리어 저소득층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어요.
소득재분배를 수행하려면, 저항을 감수하더라도 소득이나 자산에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게 가장 현실성이 있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결국
세금은 모두가 내기 싫어하지만, 충분한 복지재정을 확보하려면 일정 정도의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장차 불가피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갑자기 스웨덴만큼은 아니라도,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충분히 높아지지 않는다면, 돌봄이 ‘외주화’를 벗어나 ‘사회화’된 형태로 자리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합의를 이룰지가 중요한 이유예요.
글, 박한슬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삶의 종점이 되는 돌봄시설
지난해 10월, 의미 있는 법안 하나가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올해 8월부터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 ‘임종실’을 별도로 설치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거든요.
병원에 임종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도록 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나라 사망자의 절대다수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조금 더 깊게 살펴볼까요?
통계청에서 매년 발표하는 사망통계를 살펴보면,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망자의 약 75%가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해요.
연령대를
65세에서 84세 사이로 좁혀 보면, 이 나이대에 돌아가시는 분의 약 81%는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치는 걸로 나옵니다.
이 나이대의 사망자분들이 모두 갑작스럽게 큰 병을 앓거나, 생사에 영향을
주는 큰 사고를 당했다고 보긴 어렵겠죠. 실질적으로 이분들이 삶을 마감한 의료기관이라는 건 ‘요양병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앞선 연재에서 살펴봤듯, 명목상으론 의료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돌봄기관인 곳에서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아요.
악순환을 부르는 요양병원의 침대
안타깝게도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감하는 방식은 흔히 상상하는 것에 비해 충분히 존엄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은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더라도 면회가 극도로 제한되는 중환자실에 있는 경우가 많아, 마지막 순간 가까운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환경이거든요.
요양병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6인 병실에서 누군가 임종을 맞이하고, 남은 가족들이 슬퍼하는 광경을 병실의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마지막 순간의 사생활과 엄숙함이 지켜지기란 쉽지 않아요.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에 속하는 많은 분들이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침대 때문이에요.
요양병원에 있는 침대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등 대고 누울 수 있는 평범한 침대들이고, 어떤 침대는 한자리에 가만히 너무 오래 누워있으면
생기는 욕창(褥瘡)을 방지하는 기능이 추가된 것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일반 침대보다 낫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정말 문제가 되는 건, 환자들이 하루 내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지내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수술 등으로 인해 절대 안정과 회복이 필요할
때는 이런 방식이 필요하지만요.
그 기간이 너무 늘어나면, 환자에게 독이 되기 시작합니다.
근육이 사라지거든요.
근육 1kg이 400만원의 값어치를 갖는 이유
근육은 사용할수록 늘고, 사용하지 않을수록 줄어드는 정직한 신체 기관입니다.
젊을 때는 일정 부분 유지가 되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노화를
겪는 65세 이상부터는 적당량의 신체 활동량이 없을 시 우리 몸은 매년 3% 정도의 근육을 소실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돌봄기관에 입원한 후, 침대에 눕는 순간 이 모든 것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힘겹게나마 걸을 수 있던 분들도 누워 지낸 기간이 길어지면 점차
다리 근력을 상실해 나중엔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걷기가 어려워지면 활동량이 크게 줄고, 그러면 하체 외의 다른 근육도 계속 소실되어 나중엔 근육감소증이라 불리는 질병 상태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노년기 근육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복리로 빠진다’고 표현한 바 있어요.
근육 건강을 잃은 후 노년에 드는 의료비와 간병비를 계산하면, 73세 이후 약 18억 7,500만 원이 필요하는 계산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재활 치료, 바람직한 돌봄기관의 핵심 가치
그렇다면 이미 돌봄기관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분들은 어떻게 하면 근육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재활 치료’입니다.
의학에서는 신체기능이 저하된 환자를 치료하는 걸 전문으로 하는 재활의학(Rehabilitation Medicine)이란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고로 잘 걷지 못하게 되었다든지, 뇌졸중과 같은 신경계 질환으로 인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든지 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분야예요.
재활의학을 전공한 의사 외에도 의사와 협력해 환자들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시키고, 보조하는 일을 하는 전문 인력도 따로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가 이에 해당해요.
부상에서 회복한 스포츠선수들이 복귀를 위해 재활 훈련을 하는 것처럼, 신체기능이 저하된 환자들도 재활 치료를 거쳐야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돌봄시설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방법 두 가지
살펴본 것처럼, 돌봄시설에서 걸어서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유념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미리 근육을 잘 ‘저축’해 놓는
거예요.
새로이 근육량 증가가 어려운 60대 이후가 도래하기 전에, 40대와 50대부터 근육량을 꾸준히 늘려 놔야만 하는 거죠.
그렇지만 국내 운동 시장이 극도로 양극화되어 ‘애매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이용할 서비스가 적다는 게 문제입니다.
거동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돕는 재활 치료도 있고, 운동기능이 아주 좋은 분들이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크로스핏 같은 운동도 있지만, ‘젊은 시니어’가 할만한 운동은 적습니다.
장기적으로 관련 시장이 더 성숙해야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돌봄시설이 충분한 재활 운동을 제공하는 거예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요양병원 등급평가를 잘 따져보고, 최소한 1~3등급을
받은 요양병원을 찾는 게 가족 혹은 스스로의 빠른 일상 복귀에 중요해요.
심평원에서 제공하는병원, 약국 찾기 서비스를 이용하면 비교적 쉽게 확인이 가능해요.
지역과 여건에 따라 선택지가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막연한 소문이나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지 않고 조금 더 객관적인 자료를 볼 수 있는 방법이에요.
모두가 원하는 좋은 돌봄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됩니다.
다음 연재에서 ‘돌봄 재정’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
나눠볼게요.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 <돌봄의 경제학> 지난 연재 모아 보기
외주화된 돌봄의 그늘, 간병 학대
지난 연재를 통해서 돌봄 시설부터 인력, 비용까지 살펴보았는데요.
돌봄 관련해서는 이것들 외에도 고민해야 할 것이 정말 많고, 그중엔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불안감도 포함되죠. 바로 종종 뉴스에도 보도되는 ‘간병 학대’의 피해자가 혹시 내 가족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에요.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학대가 문제입니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살펴보면, 요양원에서 발생한 노인 학대 신고는 2018년에서 2022년까지
5년간 74% 증가했고, 요양병원에서의 노인 학대 신고는 같은 기간 32% 증가했어요.
치매 등의 질환으로 인해 당사자조차 학대를 인지하지 못하는 암수(暗數) 범죄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은 통계 숫자로 보는 것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시설에서도 간병 학대에 관한 환자와보호자들의 불안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하는 대책이 조금씩 엇나간 모습이에요.
대한요양병원협회는 ‘간병비를 국가가 지원하면, 간병 학대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폅니다.
이에노인복지중앙회는 ‘간병비 급여화를 안 해주면 계속 구타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라는 날 선 반응을 내놨죠.
자격 갖춘 간병인이 해법?
정부에서 추진 중인 방안은 간병인에게 교육을 제공하자는 겁니다.
앞선 연재에서도 다루었듯이 지금은 자격 없이도 간병인 일을 할 수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이런 ‘무자격 간병인’이 간병 학대 등 문제로 이어지니, 우선은 간병인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걸로 첫걸음을 떼보자는 건데요.
여기서 조금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의사나 간호사, 약사와 같은 전문적인 보건 인력이 직업윤리에 반하여 환자를 학대하거나 약물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극히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높은 수준의 도덕 교육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각 전문직 직업 수행에 필요한 ‘면허’가 정지되거나 박탈되어 더는 직업을 유지할 수가 없어지는 점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간병인의 경우를 볼까요? 간병인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거친다면 당연히 여러모로 이전보다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간병인이
직접적인 ‘학대’나 돌봄을 게을리하는 ‘태업’을 저질렀다 적발된다고 해도, 다른 돌봄 일자리에 재취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만 상업적 돌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자격을 박탈해 배제하는 규제가 동시에 필요한 이유예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긴 마찬가지예요.
국내에서 간병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보면,
애초에 간병인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 이상으로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거든요.
‘공동간병’이라는 험한 구조
지난 글에서 간병비에 관해 설명하며, ‘공동간병’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걸 잠시 언급했습니다.
하루 12만 원 정도인 간병인의 인건비를 환자
한 명이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 병실을 나눠 쓰는 여러 명의 환자가 그 비용을 각출해서 부담하는 방식인데요.
일반적인 요양병원이 6인실이니, 공동간병 병실에 입원하면 인당 하루 2만 원 정도의 저렴한 간병비만 내면 돼요.
그런데 관점을 바꿔 이 상황을 다시 살펴볼게요.
정말 간병인 한 명이 환자 여섯 명을 볼 수 있을까요? 물론 돌봄 인력 한 명이 돌봄 대상자
몇 명을 담당하는 게 바람직한가에 정답은 없습니다.
인력의 숙련도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고, 돌봄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다만 주요 선진국에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의 기준이 있어요.
해외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간병이라 불리는 환자 돌봄 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평균적으로 4명 정도예요.
우리나라 요양시설에서는 돌봄 인력이 선진국 기준으로 적정 인원을 넘는 돌봄 대상자를 매일 보고 있는 겁니다.
돌봄 노동은 노동자가 업무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통제권이 주어지지 않은 채, 피크 시간이나 한가한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고강도 노동이
업무시간 내내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정말 ‘제대로’ 돌봄을 하려면 환자 서너 명도 벅찬데, 돌볼 사람이 그보다 두셋이 더 있으니 하루 내내 대부분 사람의 체력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서게 돼요.
그런 상황에서 유독 행동이 과격하거나 증상이 심한 환자가 있으면 간병 학대 문제에 있어 더욱 취약한 상황이 돼요.
처음엔 말로 타이르다,
점차 폭언이 나오고, 나중엔 폭행이나 학대에 가까운 결박까지 이어지는 것이 간병 학대의 비극적이고도 흔한 수순입니다.
당연히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고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가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만 자는 요양병원 환자들
요양시설들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뒀다가는 돌봄 노동자도 계속해서 감당 못 할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그런 업무환경이 이어지면
환자가 고통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렇다고 간병인을 추가로 투입하기엔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찾은 해법 아닌 해법이 환자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여 밤낮 없이 잠을 자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간병인은 돌봄 강도가 줄어들고,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스스로나 간병인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환자의 건강은 나빠지게 되죠.
인체는 꾸준히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게 되어 있어요.
조금이라도 움직이며 재활하는 노인들은 근육량을 유지하고, 걷는 능력도 보존할
수 있지만, 하루 내내 침대에 누워만 있는 분들은 점차 근육이 소실되고 말아요.
얼마 못 가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부터는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누워서만 지내셔야 하는 거죠. 어르신들 사이에 퍼져 있는 ‘한번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온다’는
인식은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재정입니다.
돌봄 노동자를 추가로 투입한다면 저런 문제도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간병비
문제로 부득이하게 ‘공동간병’을 택하는 상황을 과연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요.
돌봄을 사회화하고, 간병비에 대한 국가 개입하는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워요.
간병 학대를 막으려면
살펴본 것처럼 간병 학대는 단순히 ‘나쁜 간병인’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학대 문제는 돌봄 시설에 있는 환자들 삶의 질과
건강 회복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정말 굉장히 복합적인 이슈에요.
사회적으로 필요한 조치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서 살펴볼게요.
첫 번째는 사회적인 접근으로, 간병과 같은 돌봄 영역에 ‘적정 인력 기준’을 만들어야 해요.
돌봄 노동자가 최대 몇 명의 돌봄 대상자를
돌볼지를 정하는 거죠.
- 우리나라는 전문 의료인인 간호사에 대해서도 인력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한동안 쟁점이 됐던 ‘간호법’이 이런 개선을 이끌 수도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법안 도입은 무산됐어요
- 둘 중 어떤 분야에 먼저 규정이 생길 수는 알 수 없지만, 돌봄과 간호 영역 모두에서 적정 인력 기준을 세우는 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접근입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는 요양병원의 ‘등급’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가족분을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한다면, 이런 정보를 미리 한번 확인해서 혹시나 모를 간병 학대에 대한 염려를 조금이나마 더실 수 있을 거예요.
공동간병은 이미 구조적으로 모든 간병 대상자가 필요한 만큼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최대한 이것이 내 가족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글, 박한슬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간병인을 구하는 방법
지난 머니레터 연재를 통해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무엇이 다른지, 간병인과 요양보호사가 어떤 분들인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번엔 간병인에게 지급하는
간병비가 어느 정도인지, 또 간병인을 어떻게 구하는지를 알려드리려 해요.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이해하신 다음이라 오늘 알려드릴 내용들이 더 잘 와닿으실 거예요.
우선 간병인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볼까요? 현재는 간병인에게 자격이나 교육을 요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원론적으로는 간병인을 구하는
경로도 정말 다양합니다.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에 ‘간병인을 구한다’라고 글을 올리고, 거기 응하는 사람을 고용할 수도,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고용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주된 방법은 ‘간병 중개업체’를 통해 구하는 거예요.
업체에서는 보통 어느 정도 간병 경력이 있는 분을 연계해 주죠. 최근에는 중개업체의
역할을 수행하는 간병 중개플랫폼도 나와 있어서, 지역에 기반을 둔 오래된 간병 중개업체를 이용할지 혹은 전국 단위의 중개플랫폼을 이용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개플랫폼이 계약 조건이나 결제 등을 투명하게 해주는 장점은 있지만, 아래에서 설명할 간병 산업의 ‘음성적’인 특성상 고숙련 간병인들은 지역 업체들의
연계를 기반으로 한 현금 거래를 선호하기 때문에 일장일단이 있어요.
협상으로 정해지는 간병 비용
우선 알아야 할 건, 간병비에 뚜렷한 기준이 있지 않다는 점이에요.
간병인분들은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리랜서 계약은
안정적인 장기간의 일자리일수록 건당 단가가 낮고, 계약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단기적인 일자리일수록 건당 단가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이는 간병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기적인 간병은 일당 12만 원 정도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일당이 조금 내려가요.
일종의
협상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죠.
간병비 협상에서는 기간 외에도 돌봄이 필요한 환자의 상태도 고려 대상입니다.
환자가 아무런 거동을 하지 못하는 중증일수록 돌봄의 강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간병 비용은 훨씬 높아지게 되고, 반대로 거동할 수 있고 단기적인 회복 보조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면 간병 비용은 상대적으로 내려가게 돼요.
이렇듯 간병인에 따라 또 중개업체에 따라 가격은 달라질 수 있고, 지역의 인력 공급에 따라서도, 돌봄 기간 및 강도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니 콕 집어 얼마라고
하기가 어려워요.
그렇지만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자료는 있습니다.
한국 소비자원에서 2022년에 발간한 <간병인 중개서비스 이용 실태조사>에 실린 내용인데요.
소비자원이 전국 115개의 간병 중개업체에 대해 기본 간병 요금을 조사한 결과는 대략 이렇습니다.
- 기본 간병료:1일 기준 최소 7만 원~최대 13만 원(평균 10.9만 원)
- 중증 환자 추가료:1일 기준 1~2만 원
정리하면 대략 하루에 11에서 12만 원 정도입니다.
열흘이면 120만 원, 한 달이면 360만 원 정도가 꼬박 간병인 쓰는 비용으로만 들어가는 거죠. 실제로
큰 수술을 받더라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실제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이 크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 직접적인 의료비보다 간병비 부담이 훨씬 더 크다고도 볼 수 있어요.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도 해요
금액 자체가 높은 것도 곤란함이 크지만요, 이런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간병비는 대부분 현금이나 계좌이체 형태로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여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어요.
중개 업체는 연결만 해 주고 비용은 간병인에게 직접 지불해야 하는데, 간병인분들은 개인사업자는커녕 법적으로는 아무런 노동을 하고 있지 않으신 상태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건 물론이고 현금영수증 처리도 불가능해요.
현금으로 음성적인 거래가 가능한 지하경제 상황을 유지하는 중인
거죠. 그러니 간병비로 꽤 큰 금액을 지출해도 공식적으로 지출을 인정받지 못해, 금액 보조는커녕 소득공제도 받지 못해요.
마찬가지 이유로 고용계약서도 돌봄 영역에선 낯선 광경입니다.
그렇다 보니 초기에 합의한 금액 외에 추가금이 덧붙는 일이 흔합니다.
식사비 별도
제공이나, 야간이나 공휴일 수당, 명절 수고비 등의 명목으로 추가적인 간병비를 요구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해요.
처음에 약속한 것에서 벗어나는 요구라 하더라도 가족을 맡겨 둔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쉽지 않은 일이죠.
병원에서 제공하는 ‘공동간병’
이런 식으로 개인이 직접 찾아서 고용하는 형태의 간병이 아닌, 병원에서 제공하는 형태의 간병도 있습니다.
주로 요양병원에서 이런 방식의 간병을 많이
택하는데요, 요양병원은 방 하나에 침대가 4~6개 정도 들어가는 형태의 다인 병실이 가장 보편적입니다.
그런 병실 하나에서 간병인 한 명을 두고, 공동으로 간병비를 각출해서 내는 식으로 부담을 더는 거예요.
6인 병실에 환자가 6명이 있다면, 간병인 1인 간병비를 6명이 나눠서 냅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12만 원을 받는 간병인이라고 한다면, 간병인에게 줄 돈
12만 원을 환자 수 6명으로 나눠 환자 한 명당 하루에 2만 원씩 내게 돼요.
병원에 직접 고용된 경우에는 병원비를 납부할 때 이 돈을 같이 내기도 하고, 간병인에게 따로 돈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은 저렴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돌봄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간병인 한 명이 환자 한 명을 보는 것과 환자 대여섯 명을 보는 건 업무
강도부터 많이 다른 일이거든요.
이런 환경이 ‘학대’라는 비극적 사건을 만드는 환경적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 주제는 나중에 별도로 다뤄볼게요.
간병,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간병비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보니 어떠신가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곳곳에 문제가 많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차근차근 원인을 짚어가다 보면 문제의 원인은 두 가지로 수렴합니다.
상업적 돌봄을 하는 간병인에게 아무런 자격요건이 없고, 상업적 돌봄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점이 복합적인 문제점들을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해결법도 이 두 가지에 집중하는 게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상업적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일정한 자격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간병인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 자격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인력에
대한 규제가 가능해요.
지금은 간병인이 어떤 환자를 돌보다 문제를 일으켜도,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새로 일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거든요.
두 번째, 상업적 돌봄에 대한 계약을 의무화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음성적인 형태로 간병이 이루어지면, 돌봄에 대한 국가 지원도 어려워져요.
공식적인
간병 통계가 있어야 나라에서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항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하경제에 머무는 돌봄 영역을 양지로 끌어내야 해요.
이런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야 간병비에 대한 국가 지원이나, 간병비 소득공제 같은 후속 정책을 펼 수 있어요.
허위로 간병비를 청구하거나, 간병인이
아닌 사람에게 간병비를 주는 등의 일을 지금 상태로는 막기 어렵기 때문이죠.
글, 박한슬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이름도 낯선 ‘돌봄 인력’
처음 돌봄이 필요한 상황과 마주하면 알아야 할 게 참 많습니다.
지난 글에서 살핀 것처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대표적인 돌봄 시설의 차이도 알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 나 자신이나 내 가족에게 돌봄을 제공해 주는지’일 거예요.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큰 병원에 입원하면 간호사가 돌봄을 전담해 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 환자에게 필요한 의학적 처치와 간호는 간호사가 수행합니다.
혈압과 체온을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환자에게 처방된 약을 안내하며, 수액제를 관리하는 등 간호사분들이 다양한 간호 업무를 담당해요.
하지만 그 외에 몸을 씻고, 한 자세로 너무 오래 누워있지 않게 자세를 바꾸고, 식사를 하고, 용변을 보는 등의 일은 환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을 혼자서 해낼 수 없는
환자를 위해 돌봄이 필요한 거고요.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업무를 주로 가족, 특히 여성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늘고, 맞벌이가 보편화되며 ‘돌봄 노동 공백’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어요.
그 자리를 채우게 된 게 바로 ‘간병인’이라고 불리는 돌봄 인력입니다.
전문성 갖출 기회를 놓친 돌봄 노동
앞선 세대에서 일부 가족 구성원이 일방적으로 돌봄 노동을 전담한 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니, 돌봄에 대한 사회적인
투자나 교육의 필요성도 대두되지 못했어요.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사람이 한 자세로 너무 오래 누워있으면, 특정 부위에만 체중이 실려 피부가 짓무르는 ‘욕창’이라는 증상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누운
자세를 계속 바꿔줘야 해요.
이때 자세를 바꿔주는 시간 간격을 얼마로 잡아야 할까요? 정답은 두 시간입니다.
하지만 지식도 경험도 없이 갑자기 돌봄노동에 투입된 이들이 이런 지식을 알 수는 없습니다.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여러모로 고역인 거예요.
이렇듯 원래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돌봄이란 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돈을 주고 고용하는 간병인에게도 돌봄에 대한 별도의 지식이나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돌봄 노동을 요구받던 가족 구성원을 대신할 간병인들의 ‘시간을 사는 데’ 그칠 뿐이었죠.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조선족 여성들이 간병 시장에 대규모로 진출하게 됐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조선족 간병인’이 등장한 거예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간병인에 의한 학대 같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적’이 아니라 ‘돌봄 인력이 별다른 돌봄 교육을 받지 못한 데’ 있어요.
아이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쉽게 매를 들 듯, 치매 같은 질환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투입된 것이 문제였죠.
교육받은 인력 ‘요양보호사’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돌봄 인력의 문제점은 이미 정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짧게나마 교육과 실습을 통해 훈련된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로
2008년부터 시작된 ‘요양보호사’ 자격 제도입니다.
고령화 선진국인 일본에서 운영하던 ‘개호복지사’ 제도를 유사하게 빌려왔어요.
요양보호사 제도가 운영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 의료기관에 입원해서 의료서비스를 받으면
- 건강보험공단에서 총 금액의 80% 정도를 부담하고
- 개인이 직접 부담하는 금액은 20% 정도예요
- 비슷하게 요양원과 같은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요양 서비스를 받으면
- 장기요양보험에서 총 금액의 80%를 부담하고
- 개인이 직접 부담하는 금액은 20%인 식입니다.
이런 보조를 받으려면 요양보호사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요양원은 요양보호사들을 필수적으로 고용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요양보호사가 꼭 요양원에서만 근무하는 건 아닙니다.
간병인 중에서도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신 분들이 있습니다.
일반 간병인보다 구인이 어렵고, 그만큼 비용도 더
많이 들지만 돌봄에 대해 전문적 교육을 받은 분들이니 실력 면에서 낫다고 할 수 있죠.
요양보호사로 나라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것보다 사설 간병인으로 일하는 경우 수입이 더 크기 때문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도 요양 보호사가 아닌 사설 간병인으로 일하는 분들은
계속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현재 민간 간병비 수준의 간병비를 지급하기엔 장기요양보험의 재정이 어려워 요양보호사들의 돌봄 노동에 제값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에요.
해외 선진국들의 ‘돌봄 인력’ 쟁탈전
우리나라에선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일이지만, 해외의 주요 선진국은 이미 돌봄 인력의 확보를 위한 인력 쟁탈전을 벌이는 중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여성 간호사들이 독일에 파견되었던
것처럼, 몇몇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의 간호 인력이나 돌봄 인력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웃 나라인 일본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본은 2008년부터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경제협력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EPA)을 맺고 간호와 개호(이하 돌봄)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오고 있거든요.
단순히 인력만 수입하는 게 아니라 일본어 교육을 받고, 개호복지사(요양보호사) 교육까지 받은 후에 일본에서 돌봄 인력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본에 들어온 외국인 돌봄 인력이 4만 명 정도예요.
우리나라가 이런 경쟁에서 빗겨날 수 있었던 데는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 재외동포분들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현대 한국어와는 조금 다르지만 조선말을 쓸 줄 알고, 상대적 저임금에도
일하는 인력이 있었으니 고민을 덜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요즘 젊은 조선족들은 중국의 동화 정책에 따라 조선말을 할 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중국의 조선족 인구 자체도 줄고 있어, 나중엔 조선족으로 이런 돌봄 인력을 충당하기 힘든
시기가 도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인재확보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도 간병인을 구하기 힘들어지고, 점차 간병 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는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쉽게 확보할 수 있던 조선족 돌봄 인력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돌봄 인력을 끌어 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중국 동포용
비자 외에도 외국인 돌봄 인력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어요.
그럼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쓸 수 있는 돌봄 인력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간병 비용이 국가의 관리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면, 결국은 내가 그 비용을 낼 준비를 해야만 해요.
보험사들은 이런 일을 대비해 간병비
보험 상품도 개발해 둔 상태입니다.
이미 직접적인 의료비용보다 간병비가 커진 상황이니, 민간 보험 형태로라도 위험에 대비하는 게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결국은 간병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겠죠? 다음 연재에서 이 내용을 조금 더 깊게 짚어보겠습니다.
글, 박한슬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돌봄’
어피티 독자분들께서는 ‘돌봄’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순 우리말이라서 단어 자체의 의미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는 한편, 각종 기사와
뉴스에서 말하는 ‘돌봄’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와닿지는 않는 경험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논의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돌봄이라는 분야는 별다른 이름도 없이, 주로 가족 중 여성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 중 하나였습니다.
어린 가족구성원에 대한
돌봄, 질병을 앓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돌봄, 노령의 가족구성원에 대한 돌봄까지. 모든 돌봄을 여성들이 주로 도맡아 하되, ‘일’로 여기진 않았죠.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한 것처럼 철저한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 속해 있던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런 ‘돌봄노동’을 처음 인식하게 된 건, 가정에 매여있던 많은 여성들이 사회로 나오며 가정 내에서 돌봄노동을 담당할 사람이 사라진 이후의 일이에요.
그제야 돌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라는 인식과 함께, 공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돌봄이 ‘사회화’되기보단, ‘상업화’되는 형식으로 해결됐다는 거예요.
독박돌봄이 기본값인 사회
가장 대표적인 게 어린이에 대한 돌봄 행태 변화예요.
과거엔 주로 어머니들이 집에서 전담하던 자녀 보육은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며 점차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같은 곳들에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맡기는 형태로 ‘외주화’됐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집에 혼자 방치되는 식이었죠.
2000년대 즈음부터는 비슷한 일이 아픈 노인에 대한 간병을 중심으로 똑같이 반복됐습니다.
맏며느리가 시부모를 간병하는 형태의 가족돌봄모델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간병 역시 사회적 돌봄이 아닌 ‘상업화’되는 형태로 해결되기 시작했거든요.
초기에는 간병인 고용을 두고 멀쩡한 자녀들이 자식된 도리를 저버렸다는 식으로 여겨졌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지불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다들 돈 주고 간병인을 고용하게 됐어요.
시설에서 간병을 진행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에는 요양원이나 주간돌봄(데이케어) 센터, 요양병원 등에 노인을 모시는 일에 대해 사회의 윤리적
비난은 물론, 당사자인 노인들의 거부감도 컸어요.
현재는 초고가 프리미엄 실버타운 형태의 고급 돌봄 시설도 곳곳에 들어선 상태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평범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같은 시설
역시 상당 수준의 비용 부담 없이는 입소조차 어렵죠.
안타까운 점은 이렇듯 개개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의 돌봄 전환이 다양한 문제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서툴게 상업화된 돌봄의 문제점
첫 번째 문제점은 돌봄의 질이에요.
돌봄은 과거의 왜곡된 인식 탓에 전문성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질 못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돌봄을 외주 주는 과정에서도
돌봄노동자의 자격 요건이나 돌봄의 질에 대한 요구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 20년 넘게 방치된 탓에, 지금도 간병인은 아무런 자격 없이 일할 수 있어요.
추후 연재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이런 상황이 ‘노인 학대’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노인에 대한 돌봄이 의료와 혼재되며, 고유성 있는 분야로 인식되질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현재 우리나라 돌봄은 상당부분 의료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노인에 대한 돌봄이라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돌봄을 전담하는 전문적 돌봄 시설이 아닌
‘요양병원’이란 의료기관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태니까요.
의료와 관련된 이슈에 밀린 돌봄 영역은 아직 사회적 의제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점은 돌봄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사교육비를 낼 수 없는 아이들은 학원이란 돌봄 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듯, 간병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간병인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큰 고통을 가족 단위에서 감당해야만 한다는 뜻이죠.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직업을 포기하고 돌봄에 종사하게 되거나, 방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이대로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현재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고령화예요.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서 돌봄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거고, 특히나 대략 1950-60년대생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령인구에 접어들면 이들의 돌봄은 자녀 세대인 80-90년대 생의 책임이 되죠. 돌봄이 지금과 같은 상업화된 형태를 유지한다면 우리에겐 세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남습니다.
- 부모님의 돌봄을 위해 일시적 휴직이나 퇴직을 선택하고 직접 돌봅니다
- 월급의 상당 부분을 간병인 등에게 지불하여 돌봄을 위탁합니다
- 키워주신 부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눈 딱 감고 모른 체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리 만만하게 고를 수 있는 건 없죠? 더군다나 각각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여러 가지 문제를 낳습니다.
윤리적 문제가 있는 세 번째
선택지를 제외하면, 사회는 각각의 경우에 다음과 같은 타격을 입게 됩니다.
- 직접 돌봄 선택 시, 노동 가능한 인력이 돌봄 영역으로 쏠려 노동력이 부족해집니다
- 비싼 사설 돌봄을 선택 시, 가처분소득이 감소해 소비가 위축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결국 현재와 같은 상황을 유지하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할까
중요한 건 과거의 가족 중심 돌봄 모델이 붕괴하였음을 인정하고, 사회가 함께하는 돌봄 모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의료와 딱 붙어 구분되지 않고 있는 돌봄을 고유성 있는 분야로 분리해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현재의 고령 세대를 위한 해결책만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 두셔야 해요.
딩크 부부나 1인 비혼 가구 역시도 고령이 되었을 때 돌봄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낯선 얘기에 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돌봄의 현주소를 살피고, 어떤 해결 과제가 있는지 살피다 보면 우리가 사회가 나아갈 길도 가늠이 되기 시작하실 거예요.
부족하지만 거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