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따뜻해야 타인도 보듬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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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자신에게 "또야? 너(내)가 이러니까 안 되지. 인생 망했네" 같은 악담을 쏟아부으며 이미 많은 상처를 더 늘려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고 누구든지 넘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그 일로 인해 내가 상심이크구나"하고힘들어하는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사람들을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높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연구들에 의하면힘들 때조차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구는 사람들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은 누구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듯 자신에게도 자애로움을 보일 줄 아는 사람들이 우울 증상과 불안,
곱씹기 등을 낮은 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자존감을 보이는 등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한 경향을 보인다(Neff & Vonk,2009).

언뜻 들으면 이들은 결국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아닌가 싶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멋지고 특별하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는 긍정적 자기지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비교적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더라도 팀원들을 가혹하게 굴려서 좋은 성과를 뽑아내는 상사처럼 자신을 착취해 가며 높은 성취와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Crocker & Park,2004).

또한 평상시에는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삶이 조금만 힘들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와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는 자존감과 상관없이 자기 자비를 연습할 것을 추천한다.

●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 서툴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 자비의 요소로 다음의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Neff,2003).

1) 자기 자신을 향한 친절(self-kindness):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비난보다 따뜻한 말을 건네듯 나에게도 따뜻할 것2)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 인지하기: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며 인생 1회차인 우리들에겐 매 순간이 어려운 것이 당연하므로 오직 나만 힘들게 산다던가 실패하는 건 비정상이라고 보는 오만함 버리기3) 판단하지 않기(mindfulness): 힘들 때 이런 걸로 슬퍼하고 좌절하는 내가 싫다,
이런 일로 슬퍼하고 좌절하는 나를 싫어하는 내가 싫다 등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판단하려 들지 말고 그저 "지금 내가 많이 힘들구나. 그 일이 내게 많이 중요했구나"하고 바라봐주기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자기 자비를 실천할 줄 아는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너그러운 편이다.

일례로 자신에게 아주 높은 기대치를 요구하며 조금의 흠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들의 경우 타인에게도 비슷하게 높은 기대치를 설정 -> 애초에 비현실적인 기대치라서 상대방이 이를 만족시킬 가능성이 낮음 -> 똑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도 더 쉽게 실망하고 좌절함. 좌절을 사서 함 -> 사람과 관계에 대해 시니컬한 태도를 갖게 됨의 부적응적인 사이클을 보이곤 한다.

반면 높은 자기 자비를 보이는 사람들은 애초에 자기 자신을 포함 한계가 많은 인간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상대의 실수나 잘못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과대 해석하며 호들갑을 떨거나 '원래 그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쉽게 판단하는 일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내가 실수했을 때 용서를 구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길 원하듯 저 사람에게도 만회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Welp & Brown,2014).

● 나에게 따뜻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연인과의 관계 또한 더 잘 유지하는 편이다.

1년 이상 관계를 유지한 커플 약 2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줄 아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케어하는 경향을 보였다(Neff & Beretvas,2013).

흔히 관계에서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의 경우 결국 상대방이나 관계보다는 '나의 안전',
'나의 결핍이 채워지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결과적으로 상대방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크게 신경 쓰는 다소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Lavigne et al.,
2011). 그러다 상대가 지쳐 떨어지곤 하는데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는 반면 구속하지 않고 관계에서 더 많은 주도권을 차지하고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구 또한 적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어느 정도 보듬을 줄 알기 때문에 굳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따라서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낮은 사람들에 비해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쾅 닫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 또한 덜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의 이익이 충돌할 때 자신의 욕구만 채우려는 이기적인 모습 또한 덜 보였다(Yarnell & Neff,2013).

상대방에게 맞추는 이유 또한 '헤어지기 싫어서,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게 싫어서' 같은 다소 방어적이고 또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이 아니라 상대와 나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에 의함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이 설명이다.

한편 자존감은 관계의 질이나 상대방을 케어하는 것,
집착하지 않고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
공격적인 태도 등과 별다른 상관을 보이지 않았다(Neff & Beretvas,2013). 내가 나를 좋거나 나쁘게 생각하는 것과 상관없이 나를 포함한 인간 전반을 대하는 '태도'가 관계 유지에는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또한,
단순히 내가 멋지고 괜찮은 사람임을 떠올리라는 게 아니라 나의 부족함도 타인의 부족함도 감싸 안을 수 있는 자애로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외로움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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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지표를 하나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외로움'이다.
외로움이 각종 건강과 관련된 지표들,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과 적은 수면,
심혈관 질환 등에 걸릴 확률과 비교적 나쁜 예후 등과 관련을 보이며 결과적으로 높은 사망률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들이 다수 있었다.

외로움은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
고칼로리 선호,
폭식,
적은 운동량,
높은 스트레스,
나쁜 스트레스 대처법과 관련을 보이며 '노화'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외로움에 의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자살 또한 외로움이 목숨을 앗아가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다.
소데르튼대의 연구자 앤드루 스티클리는 7403명의 가구를 아우르는 대규모 조사에서 자살과 관련된 행동 지표에 있어서 외로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적게는 세 배에서(살면서 적어도 한 번 자살 시도를 함) 많게는 17배까지(지난 일년 동안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음) 높은 위험도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외로움과 자살률 간의 관계는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강박장애,
사회공포증 등과 관계 없이 유효했다.

외로운 사람들이 적지 않고 관계보다 그 외적인 요소 특히 물질적인 요소에서 행복을 찾는 한국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행복도는 유독 낮으면서 자살율은 유독 높다는 특징 또한 일부는 외로움과 외로움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는 것,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양질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지지망이 부족한 것에서 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외로우면 혼자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는 식으로 외로움을 해소하고 있다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양질의 관계에 대한 배고픔인만큼 다른 요소로 덮으려는 시도는 잠깐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많을 필요는 없지만 단 한 명이라도 진정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서로 아끼고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배고픔이 음식을 먹는 행동을 유발하듯 사회적 배고픔인 외로움 역시 사회적 관계를 탐색하는 행동을 일으켜야 하지만 외로움이 오래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람에 대해 불신을 쌓게 되어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외로움을 먼저 해소하는 개입이 필요하다.

외로움이 오래된 경우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술,
도박,
약물 중독 등에 빠져드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이 경우에도 외로움 해소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지나친 물질주의 또한 한편으로는 부가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나름 외로운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줄 수 있겠으나 이 역시 그 자체로 양질의 관계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양질의 식습관이나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는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 사회에 단순히 동기가 부족하거나(별로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나) 자기통제력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혼자 하는 게 싫어서 등의 이유로 이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 공공보건의 측면에서도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히 하는 것이 중요할지 모른다.

선행은 '작은 친절과 위로'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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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행동에 대한 고전적인 사회심리학 연구 중 '선한 사마리아인'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연구가 있다.
프린스턴대의 연구자 존 달리와 다니엘 뱃슨은 신학대에 재학중인 예비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도록 했다.

이 때 조건을 나누어 한 조건에서는 늦었으니 서둘러서 설교 장소로 이동하라는 이야기를 한 반면(빨리빨리 조건)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천천히 이동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때마침 설교 장소로 이동하는 길목에는 남루한 차림을 하고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연구자와 공모한 연기자이다.
이 때 어떤 조건의 사람들이 얼마나 더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도왔을까.

참가자들이 성직자들이고 낯선 사람도 곤경에 빠졌다면 도움을 줘야 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준비한 만큼 조건에 상관 없이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두르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은 약 60%가 낯선 이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서두른 조건의 사람들은 10% 정도만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이 바쁘고 여유가 없으면 시야가 좁아져 면전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성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약 90%의 사람들이 자신은 도덕성과 인격에 있어 적어도 평균 이상은 간다고 응답한다.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남들과 다르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의 실험처럼 무심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선행이라고 하면 거액의 기부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등 크고 멋진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대부분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필요한 경우일 때가 많다.

선행을 실천할 기회가 잘 없다는 생각과 다르게 선행은 작은 친절과 위로를 통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어떠냐고,
잘 지내고 있냐고 묻는 안부와 지금도 잘 하고 있다고 하는 작은 응원이 그 사람에게는 그 날 하루를 밝혀주는 따스함이 될 수도 있다.

다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만 잠깐씩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가스라이팅'을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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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상대가 속상할만한 행동을 잔뜩 해놓고서는 "너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하거나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얘기할 때 역시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하는 등 상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감정,
믿음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들고 심한 경우 자신에 대해 미쳐있다거나 올바르게 생각할 능력이 저하되어 있다고 믿게 만드는 언행을 흔히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자기 자신이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비이성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사귀던 연인이 지속적으로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고 이야기했다.

일상 생활에서도 예를 들어 이런 음식,
옷,
음악,
사람 등을 좋아하다니 어딘가 특이하다고 하거나 좀 이상한 것같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고 했다.
연인의 행동으로 인해 속상하고 화가 날 때에도 되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상대가 어딘가 정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면박을 주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가장 가깝고 자신을 잘 안다고 여겨지는 사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생각과 감정,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일이 잦다보니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이는 학대적인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맥길대의 연구자 윌리스 클레인은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경험과 학대적인 관계를 극복한 계기에 대해 인터뷰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열렬히 호감과 사랑을 표현해 온 연인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가스라이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로맨틱한 말과 선물 공세,
이벤트 등을 해오다가 관계가 충분히 친밀해지고 나면 그때부터 너무 예민하거나 감정적인 것같다,
멍청한 것 아니냐 또는 정신 나간 것아니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식의 비난도 자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가해자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타이밍에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행동을 보이는 등상대의 불안 수준을 높이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식으로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며 학대적인 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행동 패턴을 보였다.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들은 자기개념이 위축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또한 다수가 인간관계에조심스러워지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어려웠다고 보고했다.
가스라이팅을 스스로 이겨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시 키웠다고 보고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비교적 소수였다.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계기는 많은 경우 다른 친밀한 관계,
가족,
친구들의 도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적인 파트너는 흔히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지만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경우 학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이나 명상 같은 활동들도 자기가치감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몸을 움직이거나 과거에 자주 즐겼던 취미 활동들 다시 시작하는 것도 원래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기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극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자기가치감은 많은 부분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 형성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
소중한 친구,
연인으로부터 너는 쓸모 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는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들었을 경우 태생이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는 어렵다.

지속적으로 멍청하다거나 제정신이 아니라는 피드백을 들었을 경우에도 자신의 판단력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대적인 관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가지 원인이 이것이다.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정적이고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한 명이라도 이들 옆에서 그렇지 않다고 너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이의 존재가 중요하다.
같은 이유에서 학대적 관계의 피해자들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사회적 인식 또한 필요하다.

함께 하는 성취가 더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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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뜻 깊었던 순간에는 무엇이 있는가. 삶에서 가장 뜻 깊었던 시간들을 정의할 때 사람들은 보통 즐거움과 행복 같은 긍정적 정서뿐 아니라 어떤 경험이 얼마나 큰 '의미감'을 주었는지를 함께 고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도박이나 마약 같이 큰 쾌락을 가져다 주지만 딱히 의미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경험들을 삶에서 잊지 못할 뜻 깊은 경험으로 꼽는 일은 많지 않다.
되려 즐거움만 있지는 않았지만 큰 의미가 있었던 사건들,
힘겨운 시간 끝에 새 삶을 살게 된 경험 같이 어느 정도의 기쁨과 의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경험들을 뜻 깊었다고 이야기한다.

참고로 긍정적 정서만 있지는 않지만 의미감이 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경험에는 '육아'가 있다.
아이가 나를 향해 처음 웃어주었던 순간,
처음 엄마 아빠라고 불렀던 순간 등 육아라는 전쟁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들은 사실 비교적 짧지만 이런 순간들이 주는 의미가 크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을 가장 소중하고 뜻 깊었던 경험 중 하나로 꼽는다.

베일러대의 연구자 마이클 프린징 등의 연구에 의하면 타인과 긍정적 정서를 나누는 경험,
서로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고 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의미감 또한 높이는 경향을 보인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일상생활에서 같은 농담에 웃는 등 타인과 즐거움을 함께 나눈 경험 또한 타인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푼 경험들이 혼자 즐거움을 느꼈던 경험들에 비해 더 '삶의 의미감'을 크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은 즐거움도 타인과 함께 나눈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타인에 대한 신뢰,
도움을 요청하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사회적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삶이 의미있다는 느낌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성취한 경험 역시 이를 통해 팀원들과 관계가 돈독해졌다던가,
혹은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거나 존경할만한 멘토를 발견하거나 나의 성취가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는 등의 사회적 경험이 더해지면 더더욱 뜻 깊은 경험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큰 성취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외톨이가 되거나 가족,
친구들과 멀어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쳤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것이 뜻 깊은 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벌써 새 해의 3월이 지나가고 있다니 시간의 빠름을 믿을 수 없지만 타인과 즐거움을 나누는 경험을 통해 별 다른 의미 없이 지나갈 나의 하루를 좀 더 뜻 깊은 하루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소개

박진영.《나,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혼자서도 행복한 '자족감'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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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과 대체로 사랑을 잘 주고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여부에 따라 인간관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곤 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관계를 통해 맺는 애착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안정애착(secure attachment),
불안애착(anxious attachment),
회피애착(avoidant attachment)이 그들이다 (Fiske,2009).

● 안정 VS불안정 VS회피애착

일반적으로 과거 양육자나 연인 등 자신에게중요한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을 풍부하게 해 온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후에도 사랑을 주고 받음에 있어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애착 형태를 안정 애착이라고 한다.

반면 과거의 상처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사랑을 주는 것이나 받는 것 모두에 있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불안 애착(anxious attachment),
다른 하나가 회피 애착(avoidant attachment)이다.

불안 애착은 흔히 사람들의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낮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을 혹 싫어할까 항상 두려워하고 자신을 좋아해줄 것 같은 사람에게 집착하고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반면 회피 애착을 강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다.
불안 애착인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며 때론 지나치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회피애착인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려 하고 혼자 강해지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Shaver et al.,2016).

● 애착 유형에 따라 달라요

각 애착유형을 보이는 사람들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Feeney & Collins,
2001; Mikulincer et al.,
2005). 연인들을 대상으로 각각 어려운 과제를 시킨 후 지금 연인이 많이 긴장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정보를 준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애착형태를 크게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어떻게 보살피는지를 살펴보았다.

우선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안정애착을 형성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연인에게 따듯한 말을 해주는 정서적 지지와 함께 고민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실제적 도움 또 힘들어하는 상대방을 대신해서 자기가 그 과제를 하겠다는 등의 희생 모두를 적절하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을 아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냈다.

반면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상대의 어려움에는 공감을 잘 하지만 도움을 줄 때 상대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다소 자기중심적인 목적이 우세한 경향을 보였다.
돕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적절한 말이나 조언을 하는데 실패하기도 한다.

또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도움을 주려고 하고 결과적으로 끼어들거나 오지랖을 부린 셈이 되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상대를 케어하는 데 있어 ‘강박적’이고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회피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불안정 애착과는 또 다르게 상대방의 어려움에 비교적 신경쓰지 않고 공감도 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 회피 애착인 사람들이 가장 봉사나 희생 의향이 낮았다.

안정 애착이나 불안정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현재 연인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으면 연인을 걱정하느라 자신의 과제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회피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은 딱히 상대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좋은 집중력을 보이기도 했다 (Feeney & Collins, 2001; Mikulincer et al., 2005).

안정애착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한 쪽은 관심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너무 과하고 그걸 온전히 타인을 위해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불안정 애착),
다른 쪽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소속 욕구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를 관계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만 채우려고(회피 애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도 볼 수 있겠다.
결국 균형의 문제인 것일까.

필립 세이버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UC Davis)의 심리학자는 안정애착인 사람의 중요한 특징이면서 불안 애착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을 ‘자족감(sense of self-sufficiency)’이라고 본다.
이들은 혼자라고 해서 지나치게 외로워지거나 불안해지지 않고 혼자서도 행복하게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관계 역시 타인을 통해 외로움을 지우거나 안정감을 얻고 싶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괜찮지만 함께 더 행복해지기 위해 타인과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같이 보다 자발적이고 건강한 목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런 애착유형은 한 번 정해지면 평생 가는 종류의 것이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려움 없이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 자기 자신과도 사이 좋게 지내는 경험을 쌓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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