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유난히 세상 참 오래 살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느덧 반백년을 넘게 살았으니까요. 동물의 왕국에선 이렇게 오래 사는 동물은 극히 드물지요. 오래 살면서 못 볼 것도 참 많이 봤습니다.
남들이 그런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 자신의 못 볼 꼴도 참 많았지요. 몇 년 전, 존경하는 시인 정현종 선생님께서 제게 과분한 선물을 주셨더랬죠.
철학의 맑은 얼굴 – 김동규
철학자 김동규 교수는
산을 좋아해서
내가 학생들과 북한산을 오를 때 합류하곤 했는데요,
높은 산을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의 등산은 필경
그의 정신의 타고난 생리인
상승하려는 의지의 한 발로일 텐데요,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철학적 탐구는
정신의 깊이와 높이를 아울러 기약하면서
인간 사랑에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에 대한 드문 민감성과 세밀함도
사유의 다함없는 철저함을 보여주고요.
나는 관상도 좀 본다고 자처하곤 하는데,
김동규 교수의 맑은 얼굴은
그냥 순수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현종,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문학과지성, 2022.
"순수의 결정", 정말 과분한 칭찬입니다.
시인의 관상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아마 시인을 처음 만났던 과거에는 맑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얼굴에서,
과연 해맑음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기나 할까요?
'없다'는 게 오늘의 판단입니다.
이 시를 처음 받았을 때, 지금껏 모자랐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만큼은 시처럼 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던 지천명으로 삼으려 했지요. 하지만 점점 그러기 힘들다는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길을 잃었다는 뒤늦은 자각이 날 선 칼날처럼 제 목을 겨누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순수의 결정'이 되기 위해서,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무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니체에게서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바다가 되어야 한다.
(니체 전집16, 210)
수평선 너머 무한에 이르는 거대한 바다가 되면 더러운 개천 물 때쯤은 무한소(無限小)로 여겨지겠지요. 그게 니체의 해법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바다가 될 수 있을까요? 유한한 존재가 어떻게 무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요? 원체 깜냥이 작은 놈이 어떻게 무한히 커질 수 있을까요? 이렇게만 보면, 더러워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가슴속 고민을 담배 한 모금으로 내뱉다가, 문득 끽연 경력이 30년이 넘었음을 자각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관지와 폐에 독한 담배 연기를 밀어 넣었던 셈입니다.
갑자기 '그런데 어떻게 아직 내 몸이 버틸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굴뚝이나 연통을 잠깐만 청소해 주지 않아도 꽉 막힐 정도로 더러워지는데, 어떻게 30년 넘게 한 번도 청소 못한 내 기관지나 허파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더러워진 세포들이 죽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포들이 돋아났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여기에 해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다움은 찾아나가는 동시에 만들어나가는 것
나다움은 찾아나가는 동시에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찾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나답지 않은 것이 나에게 강요될 때 나는 불편감을 느낍니다.
실존철학에서는 이를 ‘미제’의 느낌이라 합니다.
‘이건 아니다’의 느낌이지요. 어떤
일을 만날 때 그 일이 나를 불편하게 하면 불편의 신호가 울리고 나의 존재를 평안하게 하면 ‘이거다’하는 신호가 울리지요. 이 신호를 잘 들으려면 내가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기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는다는 사실부터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드렸구요.
죽는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며 생각을 비논리적으로 하지 않으려 노력하다보면 나의 심리적 무의식적 특징을 알아가게 되고 그러면서 ‘이런 나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이 미제와 확신의 신호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점점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나 자신에게 어떤 경향성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고정되어 있어서 찾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경향성은 ‘존재의 결’ 같은 것입니다.
나의 존재의 결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내가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도 중요합니다.
존재의 결을 알아서 존재의 결을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나의 존재방식을 찾아나가며 형성해가는 것이 나답게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자신이 던져진 조건(피투된 조건)이 모두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방식상 자신이 가진 조건 중 가장 안좋은 조건을 보면서 괴로워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좋은 조건을 보며
만족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조건을 보며 괴로워하기 마련인 것이죠. 친구가 가진 좋은 조건이 내 눈에는 보이는데 정작 친구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험 많이들 하셨을 겁니다.
자기가 가진 좋은 조건은 의식하기 어렵습니다.
그 조건이 사라져야만 그 조건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 인식의 한계입니다.
백수는 시간의 자유가 있다는 좋은
점보다 경제력이 없다는 나쁜 점에 주목합니다.
취업을 한 사람은 경제력이 있다는 좋은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시간의 자유가 없다는 나쁜 점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억울하게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자신의 인식경향성에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아야만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철학커뮤니케이터 박은미
건국대학교 강의교수와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일반인을 위한 철학저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철학적 성찰력의 힘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 삶에 닿아있는 철학을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일반인과 철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철학커뮤니케이터로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올리고자 한다.
저서로 아주 일상적인 철학 : 네이버 도서 (naver.com)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 <삶이
불쾌한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영화리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파파로티> 리뷰
"정치권 이슈를 은폐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길 바란다."
구속된 가수 김호중의 일부 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김호중 갤러리'에 낸 공식 성명문 내용이다.
성명문에는 "24일 법원에서 김호중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과 관련해 팬들은 재판부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동안 김호중과 소속사 측의 잘못된 행동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
김호중이 향후 성실하게 조사받고 재판을 통해 합당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면서도,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김호중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 팬들의 진심을 너무 곡해하지
말아달라. 훗날 김호중이 다시금 피어오를 그날을 학수고대하겠다"고 적혀 있다.
성명문에는 "잘못한 것에 비해 너무 과한 몰매를 맞았다", "어떻게 모든 수사 과정이 언론에 노출될 수 있나", "김호중이 오죽했으면 자존심
운운했겠냐", "성명문 적극 공감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이다.
일부 팬들은 김호중과 김호중 소속사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식으로 여전히 그의 편에 섰다.
맹목적
지지다.
음주우전은 대한민국 현행법상 도로교통법 제44조에서 규정하는 범죄다.
알코올이 반응 속도를 늦추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탓에 음주운전은 졸음운전보다 더
위험한 행위에 속한다.
또 시야를 제한해 운전자는 교통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때문에 사고나도 나면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그런데 김호중은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뒤 사건 은폐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고를 낸 후 보름 만에 구속됐다.
단순한 음주운전을 넘어서 도주·은폐
시도 혐의가 중대하고, 추가 증거 인멸이나 도주를 할 우려가 있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속사 대표와 본부장도 함께 구속됐다.
이들은 범인도피 교사 혐의와 함께 김호중 매니저에게 거짓 자수를 지시하고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없앤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김호중과 김호중 소속사 측이 공연을 앞두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잔은 입에 댔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 술은 마셨지만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등의 거짓말만 늘어놓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로 번지진 않았을까.
김호중과 김호중 소속사 대표, 본부장은 죄질이 나쁘고 사회적 해악이 크다.
조직적, 반복적으로 증거를 없애고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게 오히려 화를 키운 것이다.
김호중 측이 처음 내놓은 답변처럼 애초 공연을 앞두고 술자리를 가질 일이 아니었다.
팬을 소중하게 여겼다면 소중한 팬에게 멋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연습실에서
완벽한 공연을 위해 연습에 매진했어야 한다.
스스로 프로라고 여긴다면.
가수 김호중은 인생역전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유흥업소 뒷일을 보던 폭력조직의 말단이었다.
하지만 은사인 교사의 헌신을 통해 성악 영재로 변신했다.
2009년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고딩 파바로티'로 출연한 뒤로는 승승장구했다.
대통령 표창을 받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파파로티(2013년)>는 김호중의 10대 시절을 그렸다.
서수용 전 김천예고 교장의 헌신을 통해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훌륭한 테너로 성장할 수 있었던 사연을 각색했다.
실제 김호중은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뒤로는 성악가이자 트로트 가수로 발돋움했다.
2019년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최종 4위에 올라섰다.
울산에서 태어난 김호중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혼한 부모 대신 조모가 손자를 맡은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축구선수, 중학생이 돼서는 경호원의 꿈을 키웠다.
중학생 때 이종격투기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런데 음반 매장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를 듣고 성악의 길로 접어든다.
울산 임마누엘 교회에서 지도받고 경북예고에 합격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가난으로 음악 레슨을 받을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방황하게 된다.
고1 때 조폭 세계에 몸을 담았다고 한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자연스럽게 학교와 멀어지게 되면서 수업 일수도 채우지 못하고 퇴학을 당할 처지에 김천예고로 전학한다.
그 무렵 할머니는 대장암으로 사망한다.
유언은 "하늘에서 지켜볼테니 똑바로 살아라"였다.
때마침 김천예고 서수용 교사가 김호중의 재능을 알아보고
학교로 다시 이끌어준다.
방황하던 김호중은 성악 영재로 변신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2008년 세종 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전국 수리 음악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하지만 김호중의 곁에는 늘 논란이 뒤따랐다.
전 매니저와의 관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소송전을 치렀다.
이후에는 병역을 피하기 위해 병무청에 로비했다는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다.
병무청의 재심 결과 대관절로 최종 4급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
지난 2020년에는 김호중의 전 여자친구 부친이 김호중이 전 여자친구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폭행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이 사그라들지도
않았는데 팬카페에서 김호중이 불법 스포츠도박을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지인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불법인 줄은 몰랐다고 사과했다.
논란이 일 때마다 김호중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생역전 이야기에 감동한 팬들이 맹목적으로 김호중의 편에 서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자초했다.
사태가 위중한데도 공연을 강행하면서, 맹목적으로 김호중의 편에 선 팬들은 제외한 여론은 싸늘하다.
공연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는 공연을 중단하면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보게 되기 떄문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손익 계산만을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실이 밝혀진 뒤 그는 더 이상 대중 앞에 설 수 없다.
범죄와 낙인: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
하워드 베커는 미국 시카고대학 사회학자로 상호작용주의 이론을 적용해 범죄, 일탈, 예술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로 유명하다.
1963년 베커는 <아웃사이더>(Outsiders)에서 사회에서 특정 집단이 일탈(deiviance)을
정의하는 규칙을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여 ‘아웃사이더’라고 낙인(labeling)을 찍는다고 주장했다.
베커에 따르면, 인간은 삶은 구조에 의해 결정되기보다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어떤 집단에서는 일탈 행위가 다른 집단에서는 정상적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 살인은 범죄이지만 다른 경우에는 정의의 실현이 될 수 있다.
사람의 행동은 내부자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재능뿐 아니라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뉴욕 마피아의 은밀한 세계
2023년 벽두 미국 로스엔잴스(LA)의 아카데미 뮤지엄에서 영화 <대부>에 관한 특별 전시회를 개최했다.
1972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영화사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기념비적 작품이다.
미국 영화는 대부분 고전적 서부 영화와 전쟁 영화처럼 선악의 대결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플롯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는 사회에서 악한 집단을 대표하는 마피아라는 범죄 조직을 내부자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외부자의 눈으로 본 선악의 이분법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에게 정의를 위해 우리가 돈 콜리오네에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첫 장면에서 평범한 한 사람이 이탈리아 억양으로 자신의 딸이 살해당했는데 가해자들이 처벌 대신 재판에서 석방되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말론 브라느가 연기하는 돈 콜리오네가 말한다.
“너는 미국에서 천국을 발견했지. 너는 잘 살고 경찰의 보호를 받고 법정도 있었지. 너는 나 같은 친구는 필요하지 않았지. 그런데 너는 나를 찾아와서 돈 콜리오네에게 정의를 달라고 말하지” 이렇게 <대부>는
미국 사법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60년대의 반문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어린 시절 뉴욕시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플루트를 연주했고 형은 문학과 연극에 재능이 많았다.
코폴라 역시 소설을 쓰고 싶어했으나, 1960년대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영화학과에서 공부했다.
코폴라는 에이젠슈타인의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보면서 영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각본을 썼지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야심을 가졌다.
코폴라는 UCLA 영화학과에서 동료 학생이었던 짐 모리슨을 만났다.
'도어즈'를 이끈 짐 모리슨은 사이키델릭 락을 이끌고 락큰롤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들은 ‘1960년대 세대’로 미국의 대중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운명을 가지게 되었다.
샌프란시코 노스 비치에서 불타올랐던 히피 문화와 급진적인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뒤섞이면서 젊은이들의 반문화(counter-culture)는 기성세대의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코폴라는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다.
범죄자를 주류 사회의 관점이 아니라 내부자의 관점으로 보려고 시도했다.
권력과 세익스피어의 관점
코폴라는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으며, 비록 가족들은 영어로 말했지만 누구보다도 이탈리아계 미국인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
뉴욕의 마피아 세계는 전혀 몰랐지만 이탈리아계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 구조는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개인적 체험은 영화에서도 세심하게 잘 표현된다.
하지만 코폴라의 영화는 이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서 모두가 공감할 보편적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코폴라의 <대부>는 평범한 범죄 영화라기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같은 분위기가 느끼게 한다.
또한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비열한 거리>와 같은 범죄 영화와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한 코폴라는 소설 <대부>를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극적인 효과를 탁월하게 연출했다.
매우 현대적 영화이지만 고전적 느낌을 주는 것은 코폴라가 가진 연극적 감각이 만든 결과이다.
코폴라의 장인 정신을 통해 영화 <대부>는 단지 뉴욕 마피아의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과 승계에 관한 정치적 분석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어떤 조직에서나 권력자는 경쟁자의 도전에 둘러싸이고 자신의 후계자를 선택하는 문제로 고민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는 범죄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삶의 원칙을 보여준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본다.
아무리 뛰어난 영화를 만들어도 그 시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코폴라는 반항의 시대라는 거센 파도를 타고 자신의 목적지에 당도 할 수 있었다.
영화를 통해 20대 코폴라의 삶도 극적으로 변화했다.
그는 <대부>의 예기치 못한 성공으로 엄청난 명성과 부를 얻었다.
누구나 그에게 영화 제작을 맡기고 싶어했지만, 그는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해 상업적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또 다른 대작에 도전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얻은 자신이 놀라운 권력을 활용하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공공정책대학 사회학 교수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저서로 <모두를 위한 사회과학>, <시민의 세계사>, <사회적 인간의 몰락>, <문화사회학의 이해>(공저)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