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비만약, 21세기판 만병통치약 될까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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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렸을 때 배고픔은 ‘악마’와 같다.
배고픔은 뇌의 가장 오래되고 원시적인 부분에서 깨어나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다른 신경 메커니즘을 동원해 명령을 수행한다.

세계적 신경학자인 브래드퍼드 로웰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교수는 테크 매거진 MIT(매사추세츠공대)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배고픔을 ‘악마’라 칭한다.
그런데 만약 이 무서운 배고픔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리모컨이 있다면 어떨까.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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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고픔 조절 리모컨 역할을 해주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이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약물은 혈당 수치를 조절하고 음식이 위를 떠나는 속도를 늦추며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GLP-1)을 모방해서 살을 빼게 해주는 비만 치료제다.
원래는 당뇨병 치료제로 나왔지만, 체중 감량이란 깜짝 효과를 보여 최근엔 되레 비만 치료제로 더 각광받는다.
이뿐만 아니다.
이 치료제는 인간의 욕망까지 다스리는 ‘마법의 리모컨’ 역할을 하며 21세기판 만병통치약에 등극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2030년 관련 시장 규모는 14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WEEKLY BIZ는 이 치료제의 3대 개척자로 통하는 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조엘 해버너 교수, 캐나다 토론토대 대니얼 드러커 교수, 덴마크 코펜하겐대 옌스 홀스트 교수를 포함한 과학자 15명을 인터뷰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 비만 치료제 시장을 양분하는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2곳에도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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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알람을 음소거하라

비만은 인류 건강의 최대 적이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8명 중 1명이 비만이다.
WHO는 2022년 기준 전 세계 비만 인구가 10억5000만명(성인 8억9000만명·미성년자 1억6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비만 치료제 시장을 이끄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은 평균수명 단축과 삶의 질 하락을 가져오며, 수많은 질환을 불러오는 ‘관문 질환(gateway disease)’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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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과체중·비만인 사람들에게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2035년 기준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4조달러(약 5600조원)에 이를 것이란 게 이 제약사 예측이다.
비만 치료제 시장을 양분하는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케빈 림 북아시아태평양허브 의학부 부사장은 “비만과 과체중의 영향으로 연간 280만명 정도의 성인이 사망한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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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비만 문제에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게임 체인저로 등판했다.
GLP-1은 장이 음식을 소화시키는 과정에 분비하는 아주 강력한 인슐린 분비 자극 호르몬이다.
체내에서 금방 분해되는 성질의 GLP-1을 천천히 분해되도록 개량한 게 ‘GLP-1 유사체’였다.
해버너 교수는 “인슐린은 직접 투약할 경우 자칫 저혈당증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이에 체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약물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약을 처방받다 보니 배고픔을 잘 못 느끼고 살이 쭉쭉 빠지는 의외의 효과가 나타나 비만 치료제로 유명해진 것이다.
드러커 교수는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안정적인 혈당 조절, 전례 없는 체중 감량 효과와 함께 심장·신장 질환의 예방 효과까지 갖춰 ‘인류 건강의 큰 진보’라 부를 만하다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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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문 발견

‘기적의 비만약’은 한 사람의 힘으로 태동한 것은 아니다.
생물의학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게어드너 국제상을 2021년 공동 수상한 해버너 교수, 드러커 교수, 홀스트 교수가 3대 개척자로 꼽힌다.
하버드 메디컬스쿨에 따르면, 우선 홀스트 교수는 1970년대 이미 장 수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다 어떤 ‘특정한 물질’이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비슷한 시기 해버너 교수는 아귀 췌장 세포 연구에서 이 ‘특정한 물질’에 대한 힌트를 얻은 뒤, 추가 포유류 연구에서 이 물질이 GLP-1이란 호르몬이란 점을 알아낸다.

그러나 이 물질은 약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GLP-1의 체내 반감기(물질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가 2분 정도로 짧았기 때문이다.
이때 드러커 교수는 미국 남서부 지역에 사는, 힐라강의 괴물이란 뜻을 지닌 독도마뱀 ‘힐라 몬스터(Gila Monster)’를 주목한다.
이 도마뱀은 봄에 3~4번 정도만 먹이를 먹고 영양분을 꼬리에 저장한 뒤 1년을 버티는 특이한 습성을 지녔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독도마뱀 타액에 포함된 ‘엑센딘-4′라는 호르몬 덕분이었다.
드러커 교수는 이에 GLP-1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반감기도 30분으로 긴 엑센딘-4로 당뇨병 치료 약물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고, 엑센딘-4를 활용해 만든 당뇨병 치료제 ‘엑세나타이드’가 2005년 4월 미국에서 승인받기에 이른다.
비만 치료제로 가는 첫 관문도 열리게 된 셈이다.

◇인간의 욕망을 다스려라

당뇨약으로 처음 활용된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이제 비만약을 넘어 ‘중독 치료’란 부수 효과로도 조명받고 있다.
비만 치료제는 쾌감·즐거움과 관련한 도파민 분비를 제어해 식욕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알코올이나 담배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 마약에 대한 욕망까지 억누르는 효과까지 기대해 볼 만하다는 얘기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약물중독연구소의 노라 볼코 소장은 “최근 (비만 치료제의 핵심 물질인) GLP-1 유사체가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제어하고, 스트레스·기억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며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범용 중독 치료제로도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특히 술 생각을 사라지게 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다.
엘리사베트 홀름 스웨덴 예테보리대 교수는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을 투약했을 때 술 섭취량이 줄어들 뿐 아니라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까지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알코올중독으로 치료받는 사람들이 다시 술을 찾게 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안데르스 핑크옌센 코펜하겐대 교수는 “MRI(자기 공명 영상 진단) 촬영을 통해 분석한 결과, 알코올 사용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을 투약하면 술과 관련된 이미지를 보여줘도 뇌의 보상 중추(reward center)가 덜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담배나 대마초 흡연 욕구를 줄여주는 부분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핑크옌센 교수는 “동물 실험에서는 니코틴에 대한 욕구를 줄여준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금연 이후 체중이 불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담배를 끊은 뒤에도) 살이 찌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중독성 높은 마약을 끊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이어진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선 코카인을 투여했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혀진 것이다.
스콧 카노스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동물 실험에서는 (마약류인) 암페타민과 오피오이드에 대한 욕망을 제어해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술과 담배, 마약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치료 약물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켄트 베리지 미시간대 교수는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을 쓰면 인간의 정상적인 욕구를 감소시키지는 않고, 알코올이나 니코틴에 대한 지나친 욕구를 적절히 억눌러 주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만병통치약이란 꿈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이제 치매와의 전쟁에까지 참전하며 ‘21세기 만병통치약’ 후보로 조명받는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치매 환자는 5500만명이 넘는다.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2019년 기준 1조3000억달러로 추산됐다.
이반 코이체프 옥스퍼드대 선임연구원은 “당뇨병 치료를 위해 GLP-1 유사체 기반 약품을 투약했던 사람들은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이 30% 정도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파킨슨병 치료 효과도 주목받고 있다.
파킨슨병은 신경세포가 퇴화해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 줄면서 생기는 병이다.
올리비에 라스콜 프랑스 툴루즈대 병원 교수는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인 ‘릭시세나타이드’를 투약한 파킨슨병 환자는 투약 중단 두 달 후에도 도파민 분비가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며 “투약할 때만 일시적으로 도파민 분비를 돕는 게 아니라 신경세포 퇴화를 막아 증상 진행을 늦춰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 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로드리고 만수르 토론토대 교수는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혈당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뇌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며 “이 같은 원리로 우울증 같은 기분 장애나 인지 기능 장애까지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 약물은 난임 치료에까지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선 이미 비만 치료제인 오젬픽을 투약하던 사람이 임신에 성공하면서 ‘오젬픽 베이비’란 말까지 쓰인다.
로버트 노먼 호주 애들레이드대 교수는 “비만은 여성의 배란을 방해하고, 난자의 질 저하·자궁내막 상태 악화 등을 초래한다며 “체중 감량은 임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고 했다.
카린 하마버그 호주 모내시대 선임연구원은 “비만은 정자의 질도 저하시킨다며 “비만 치료는 남녀 모두의 생식 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비싼 가격이 흠

이 비만 치료제의 인기는 광풍(狂風) 수준이다.
공급 부족이 이어지자 지난 20일 WHO는 ‘가짜 비만 치료제’에 대한 경고까지 내놨을 정도다.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이 2030년에는 최대 144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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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싼 가격 때문에 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온다.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미국에서 4주분이 1300~1600달러(약 180만~200만원)다.
만약 국내에도 미국과 비슷한 가격으로 출시되고, 건강보험이나 실손 보험 적용이 안 될 경우 한 달 약값만 200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접종하면 되는 위고비 같은 치료제들은 글로벌 공급 부족 여파로 국내에선 아직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고, 출시 시기도 미정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당뇨병 치료제)과 위고비(비만 치료제),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당뇨병·비만 치료제)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까지 받아뒀지만, 아직 국내에 공급이 안 된다.
위고비는 현재 미국 등 총 8국에서만 판매된다.
이 약품들은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이라 해외에서 직구로 구입해서도 안 된다.
다만 매일 투약해야 하는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는 현재 국내에서 처방이 가능한 상태다.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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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료, 주류·담배 시장까지 여파

비만 치료제의 인기가 치솟으며, 전 세계 식음료 시장과 주류·담배 시장 지형까지 흔들릴 전망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비만 치료제 처방이 늘면서 2035년에는 전체 미국인의 칼로리 섭취량이 현재 대비 1~2%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쿠키, 사탕, 초콜릿, 냉동 피자, 과자, 탄산음료의 소비는 4~5% 정도 줄 것이란 게 모건스탠리 예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의 칼 쿼시 연구원(간편식·영양 관련 리서치 총괄)은 “올해 진행된 유로모니터의 최신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5.8% 정도만 비만 치료제를 처방받아 투약해 본 것으로 나타났기에 앞으로 투약자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데이터의 닐 사운더스 연구원(유통업 담당)은 “이미 담배 산업은 죽어가고 있었는데, 비만 치료제의 중독 치료 효과가 입증된다면 관련 산업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건강식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세계적인 식품 기업 네슬레는 지난 5월 비만 치료제를 처방받은 사람들을 겨냥한 간편식 브랜드 ‘바이털 퍼수트(Vital Pursuit)’를 올해 4분기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단백질과 섬유질, 비타민 A와 칼슘이 많이 함유된 간편식으로 다이어트족을 공략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비만약의 효과가 아무리 좋아도 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삶의 방식을 건강하게 개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당부한다.
건강식이나 운동 관련 산업이 함께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WHO는 “의학적인 치료가 비만 관리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인식돼선 안 된다고 했다.
EMA 역시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의 사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스로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는 등 삶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비만치료제의 아버지 옌스 홀스트 교수 "더 좋은 비만치료제 속속 개발 중"

세계 인구 8명 중 1명이 비만인 시대입니다.
비만은 200여개 질병으로 가는 ‘관문 질병(Gateway disease)’입니다.
비만을 치료하면 수많은 질병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되었던 비만치료제는 식욕뿐만 아니라 술이나 담배, 마약에 대한 갈망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받고 있습니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기반 비만치료제가 ‘21세판 만병치료제’로 등극할 수 있을까요?

비만치료제의 아버지 옌스 홀스트 코펜하겐대 교수

비만치료제의 아버지 옌스 홀스트 코펜하겐대 교수

WEEKLY BIZ는 GLP-1 유사체의 발견에 큰 공헌을 한 과학자들과 중독, 치매, 알츠하이머병, 난임 치료 효과에 대해 검증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옌스 홀스트 교수는 “2013년 삭센다를 가지고 노보노디스크가 비만 치료를 하겠다고 할 때도 경제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며 “중독 치료에 대해서도 그 결과를 예단할 순 없다고 했습니다.

-GLP-1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인슐린 분비(insulin secretion)를 자극할 수 있는 물질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여러 가지 생화학적 트릭(biochemical tricks)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1986년 때의 일이니까 꽤 오래전 일이죠.

-돌파구가 된 연구가 있었다면요?

“진정한 돌파구는 1993년 GLP-1 주입이 실제로 당뇨병 환자의 정상적인 글루카곤(glucagon)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다이아비톨로지아(Diabetologia·당뇨병 학술지)에 실렸죠. 당뇨병 치료와 체중 관리 효과에 대한 초기 연구였다고 할 수 있죠. 2002년에는 인슐린 펌프에 피하주입(subcutaneous infusion) 하면 6주 안에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의약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내놨죠.

GLP-1이 체내에서 2분 이내에 분해된다는 점도 우리 연구팀이 발견했어요. GLP-1이 빠르게 분해되는 게 디펩티딜 펩티다제-4(DPP-4)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DPP-4 억제제 기반 시타글립틴도 이 과정에서 발견된 겁니다.
그래서 저는 독도마뱀인 ‘힐라 몬스터’의 타액에서 발견된 엑센딘-4가 GLP-1 수용체에 작용하는 물질이었다는 점이 돌파구라고 보긴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이 물질은 정맥 내 반감기가 30분이고, 이를 통해서 엑세나타이드라는 약물이 개발됐지만요.

-GLP-1의 식욕 억제 효과에 대해선 어떻게 연구가 이뤄졌을까요.

“1993년 독일 뮌헨의 한 연구팀이 대뇌에 GLP-1을 주사하면 음식 섭취가 억제되는 것을 발견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스티븐 블룸이 추가 연구를 해서 1996년 네이처지에 논문 형태로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건 동물 실험에서 이야기고 사람에게선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말초 주입(peripheral infusion)으로 투여했을 때 식욕 억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1998년에 발표했어요. 투약 용량을 늘리면 식욕을 더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은 2001년에 발표했습니다.

이제는 짧은 반감기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번 아미노산 잔기를 조작해 GLP-1 유사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후 연구에서 팔미트산이라는 지방산을 GLP-1 분자에 추가하는 연구가 성공을 거뒀고, 이후 리라글루타이드가 탄생했습니다.
2013년에는 리라글루타이드를 사용한 약물인 삭센다가 탄생합니다.
이후 개발된 세마글루타이드는 체중 조절용 약물 위고비의 핵심 성분이 됩니다.

-주사제가 아닌 먹는 약물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세마글루타이드를 먹는 약으로 만들 수는 있습니다.
위장에서 흡수가 잘 안 된다는 점입니다.
투약한 약물의 0.5%만 몸속에서 효과를 내고 99.5%가 파괴됩니다.
35mg과 50mg의 세마글루타이드를 경구 투여하는 실험과 연구를 수행했으며, 꽤 괜찮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세마글루타이드와 동일한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매일 복용해야 합니다.

저분자 물질(small molecule)이라고 불리는 완전히 다른 경구용 GLP-1 작용제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는데, 일라이릴리(Eli Lilly)에서 만든 오르포글리프론(orforglipron) 이라는 약이 있는데, 매우 유망해 보입니다.
완전히 다른 화합물입니다.
물론 매일 복용하는 약이 될 것입니다.

-GLP-1 유사체를 사용해 살을 뺐을 때 근육 손실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이야기(인터뷰) 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기 직전에 특수 단백질을 개발하는 회사의 광고를 봤거든요. 우리는 근육 손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좋은 맛의 단백질을 개발할 수 있고 이것이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글루카곤 작용제(glucagon agonist)로 인한 근육 소모(muscle wasting)를 막기 위해 단백질 공급제(protein supplies)를 연구한 또 다른 연구를 보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더 중요한 건 GLP-1 작용제를 복용하는 동안의 특정한 근육 소모는 없습니다.
근육에 수용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GLP-1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근육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음식물 섭취가 줄면서 단백질 섭취도 줄고, 몸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 운반이 줄면서 근육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입니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아주 아주 간단한데, 운동으로 활동량을 늘려서 체중 감소로 인한 손실을 효과적으로 막는 것입니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체중을 감량할수록 운동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체중을 감량하면 운동을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말,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식욕을 잃더라도 필수 영양을 모두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식단도 잘 고려해야 합니다.
필수 요소를 놓치지 않도록 식단 계획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비만치료제 투약을 멈추면 다시 살이 찐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모든 연구에 따르면 치료를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증가합니다.
하지만 신체 활동을 늘리고 식단을 바꾸는 것도 가능합니다.
음식에 대한 갈망을 낮춰주기 때문에 투약 중에 생활 습관을 바꾼다면 감량한 상태의 체중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체중이 다시 는다면 당뇨병이 재발하고, 심혈관 위험도 다시 커질 순 있습니다.
그런데 비만치료제를 이용해 치료를 받기 전만큼 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1~2년 동안 효과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일종의 기억 효과 (memory effect)가 있다는 좋은 데이터가 있습니다.
이는 향후 위험 감소로 나타날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치료제의 비싼 가격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가격을 낮출 방법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세마글루타이드를 생산하는 13개 회사가 특허가 끝나는 걸 기다리고 있다는 거 같아요. 다른 국가에서는 특허 만료가 2030년이라면 중국에선 2026년입니다.
그 이후엔 같은 성분의 약물이 많이 나올 겁니다.
러시아 등에선 ‘불법’으로 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이 팔리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구 투약용 비만치료제가 개발 중입니다.
상대적으로 대량 생산이 쉬울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정치적 문제입니다.
회사들은 기술 개발에 대한 대가를 얻길 원합니다.
이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죠. 다만 비만과 관련한 심혈관계 문제나 대사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약을 투약했을 때 위험을 크게 낮추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선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효과 좋은 약물이 나올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경구용 저분자 약물(oral small molecules)이죠. 5~6개의 매우 유망해 보이는 후보 물질이 있죠. 그리고 GLP-1 수용체 작용제에서도 새로운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소위 ‘편향된(biased)’ 작용제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세포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시스템에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작용제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이는 경구용 저분자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단계는 다른 화합물과의 조합이며 우리는 이미 인슐린 분비 자극 폴리펩타이드(GIP)와 GLP-1의 조합인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가 있습니다.
GIP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GLP-1의 부작용을 줄이는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용량의 티르제파타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GIP 성분이 단독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밀린(amylin)도 있기 때문에 GIP 성분에 의해 유발되는 부작용이 완화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마그루맙(Bimagrumab)이라는 미오스타틴(myostatin) 수용체 작용제와 조합도 있어요. 근육 감소라는 부작용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있는 약물이죠. 제약 업계에서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 나는지 지켜 봅시다.

-GLP-1이 중독 치료에 효과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GLP-1은 뇌에서 신경세포를 통해 식욕을 조절하고, 동시에 뇌의 보상체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몇 가지 연구가 있는데 알코올 문제와 대마초 중독 문제를 가진8만 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GLP-1 유사체를 사용했을 때 중독 악화 위험이 50% 감소했습니다.
50 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비만치료제는 사람들의 건강을 바로 개선할 수 있고 몸매 개선에 대한 관심도 커서 ‘수익성’이 있습니다.
반면 중독치료제에 대해서는 제약사가 ‘경제적 이익’ 관점에서 관심이 적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죠.

“질문의 취지를 이해합니다.
이 질문은 노보노디스크가 비만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2013년에 이 연구가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모든 사람이 “기업에 손해를 끼칠 나쁜 생각이라거나 “시장성이 없다고 했어요. 그럼에도 노보노디스크는 “어쨌든 해보자라고 비만치료제를 개발했어요. 삭센다를 가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리가 비만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했어요. 서서히 비만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쌓여갔습니다.
그리고 위고비 출시로 시장의 관심은 로켓처럼 날아올랐죠. 중독치료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부자만 살 빼는 세상? '건강 불평등' 정부는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일론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서 2022년 10월 몸매 관리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절식과 위고비"라고 답했다.<BR>/X 캡처

일론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서 2022년 10월 몸매 관리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절식과 위고비"라고 답했다.
/X 캡처

“절식과 ‘위고비’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2년 10월 X(옛 트위터)에서 ‘몸매 관리 비결’에 대해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위고비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기반 비만 치료제입니다.

효과는 좋다지만, 문제는 가격입니다.
한 달 치 위고비 가격은 미국에서 1300~1600달러(약 180만~200만원)에 이릅니다.
또 다른 비만약 오젬픽도 900달러가 넘습니다.
미국의 진보 정치인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 3월 보도 자료를 통해 “예일대 연구에 따르면 오젬픽 생산 비용은 5달러 미만인데, 미국에선 1000달러 가까운 가격에 팔고 있다며 노보 노디스크를 비판했습니다.
민간 의료보험 적용을 받으면 비교적 싸게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젠 보험사들도 비용 부담이 커진다며 이 치료제를 보험 보장 범위에서 빼겠다고 합니다.
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조엘 해버너 교수는 “지방간과 심혈관 질환, 중독 치료에 효과가 있다면 (병원 갈 일이 줄어) 장기적으론 보험사에도 이익이라고 하지만, 보험사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효능 좋은 비만 치료제 같은 획기적인 약물이 계속 등장할 겁니다.
그러나 비싼 약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건강 불평등’도 커질 겁니다.
정부가 잘 대처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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