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나올 것"…'젊은 땅' 포항·영일만에 눈독 들이는 이유

"석유 나올 것"…'젊은 땅' 포항·영일만에 눈독 들이는 이유

정부는 6월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를 발표했다.<BR> 연합뉴스 제공

정부는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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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하면서 관심이 뜨겁다.
포항은 약 50년 전인 1976년에도 석유가 있다는 추측이 나와 주목받은 곳이다.
7년 전엔 포항 한 공사장에서 땅을 파다가 천연가스가 나오기도 했다.

포항이 석유, 천연가스로 지금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퇴적학 연구의보고'이기 때문이다.
13일 포항의 퇴적 지형을 40년 넘게 연구 중인 황인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명예연구원에 따르면포항은 국내에서 가장 희귀하고 연구거리가 많은 퇴적 지형이다.
포항이 석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석유 있다추측 과학적으론 일리 있어"

여러 석유 발생 이론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생물발생설'이다.
유기성인설이라고도 불린다.
유기물의 사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될 때 열과 압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진다는 내용이다.
유기물이 열과 압력을 받으면 끈적끈적한 물질 '등유'가 된다.
등유가 자연 상태에서 탄소와 수소 원자로만 구성된 더 작고 가벼운 입자로 바뀌는데 이 물질이 액체가 되면 석유, 기체가 되면 천연가스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생물발생설에 따르면 석유는당연히 퇴적 지형에서 발견된다.
한국석유공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석유생성과정'에 대해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유전'이 생성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유기물을 함유한 퇴적암이 널리 발달해큰 퇴적 분지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적절한 온도와 압력에 의해 화학변화가 진행돼야 한다.
또 지각의 변동에 의해 석유가 고이기 쉬운 지층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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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는 유기물의 사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될 때 열과 압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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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이같은 조건에 대체로 부합해 오랫동안 석유가 있을 것으로추측됐다.
한반도는 대부분의 지역이 중생대, 고생대에 만들어진 매우 오래된 지질 구조를 갖고 있다.
지반이 거의 화강암이나 변성암이다.
포항은 다르다.
포항-경주 일대는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퇴적층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젋은 땅이라 불리는 이유다.
약 1500만 년 전에는 깊은 바다 속에 있었다고 알려진다.

황 연구원은"포항은 육지에서 퇴적된 퇴적층과 심해에서 퇴적된 퇴적층 모두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700만 년 전부터 신생대 제3기에 포항 분지가 바다로 변하면서 빠른 속도로 침강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1500만 년 전 현재 포항 시내가1500m 수심에 가라 앉아 있었다가 600만 년 전부터 육지로 일부 땅이 올라온 것으로 분석된다.
침강은 외부의 자연적인 힘으로 인해 땅덩어리가 주변보다 낮아지는 현상이다.
포항 땅에유기물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다.

또 포항 지반은 석유가 만들어지기 위한 고온 환경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항은 과거 지구 내부의 열을 이용해 전력을 만들어내는 지열발전이 시도된 곳이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곡리의 경우 지하 1.3㎞ 지점에서 50℃, 지하 2.3㎞ 지점에서 90℃ 정도의 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선 보통 지하 1㎞ 지점에선 30~35℃의 물이 나온다.
한반도에서 울릉도를 빼고 가장 지열이 높은 지역이 포항이다.

11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불의 정원 인근에 ″대한민국 산유국의 꿈 포항 철길숲 불의 정원에서 시작하다″란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BR> 불의 정원 불꽃은 2017년 공원 조성 과정에서 관정을 파던 중 땅속에서 나온 천연가스로 인해 굴착기에 붙은 뒤 현재까지 타고 있다.<BR>

11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불의 정원 인근에 '대한민국 산유국의 꿈 포항 철길숲 불의 정원에서 시작하다'란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불의 정원 불꽃은 2017년 공원 조성 과정에서 관정을 파던 중 땅속에서 나온 천연가스로 인해 굴착기에 붙은 뒤 현재까지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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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열이 높은 이유는 포항 땅이 신생대 3기 퇴적층이기 때문이다.
젊은 땅이라 땅이 덜 식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층은 열전도도가낮아 열보존 효과가 높다.
심부로부터 더 많은 열원이 공급될 수 있다.

황 연구원은 "한반도와 일본 땅이 붙어있다가 벌어지며 동해 바다가 생겨났다"면서 "특히 포항 일대는 땅이 벌어지는 속도가 100만년에 400~500km씩 벌어질 정도로 빨랐기 떄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땅이 벌어지는 속도가 빠르면그 사이 지각이 넓고 얇게 퍼진다.
지각이 얇아 아래에있는 뜨거운 맨틀과 지표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지열이 높아지는 원리다.

마지막으로 포항은 석유 생성의 마지막 조건인 지각의 변동에 의해 석유가 고이기 쉬운 지층 구조를 갖고 있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 매장 분석을 담당한 비토르 아브레우 미국 액트지오 고문은 7일 정부 브리핑에서 "우리가 분석한 모든 유정이 석유와 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모든 제반 요소를 갖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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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원준 한국석유공사 수석위원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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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모든 제반 요소는 저류층인 모래, 덮개암인 진흙, 기반암, 트랩 등 4가지로 석유가 고이기 쉬운 지층 구조를 가리킨다.
석유와 가스는 지형을 따라 이동하는데 모래로 이뤄진 저류층을 만나면 쌓인다.
이때 진흙·암염 등이 덮개암 역할을 하면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석유·가스를 가두는 구조인 트랩을 형성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이 제반 요소가 석유가 있는지 없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했다.

물론 석유 생성 조건에 부합한다고 해서 석유가 항상 나는 것은 아니다.
변수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빈 공간을 의미하는 공극률과 통과 척도를 뜻하는 투수율이 높을수록 많은 양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다.
공극률과 투수율이 낮으면 경제성이 낮을 수 있다.
또 근원암에서 아무리 많은 석유가 만들어져 저류암으로 이동해도 뚜껑 역할을 하는 덮개암이 부실하다면 물보다 가벼운 석유 특성상 모여쌓이기 어렵다.

● '화석 박물관' 포항

포항 지역은 학계에서 퇴적 지형 연구를 위한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1983년부터 포항에 관심을 가진 황 연구원은포항 시내에서도 발견된 무수한 양의 화석을 보며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퇴적학 전공인 그는 "시내를 걷다 보면 미생물, 곤충, 식물 등 화석이 발견될 정도"라면서 "포항은 화석 박물관 같다"고 포항을 치켜세웠다.

지난해 2월 포항 남구 구룡포읍 블루밸리산단 내 소하천에서 길이가 10.2m인 대형 나무화석이 발견됐다.
나무화석은 올 3월 대전의 문화재청 관련 기관으로 이송됐다.
이 화석은 지난해 1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포항 금광리 신생대 나무화석'이 발견된 곳과 가까운 데서 발견됐고 길이가 5m 넘어 학계 관심을 끌고 있다.

포항 금광리 신생대 나무화석이 발견된 '포항 금광동층 신생대 화석산지'는 메타세쿼이아, 너도밤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등과 각종 미기록 종을 포함해 식물화석이 60여 종 넘게 나온 곳이다.
우리나라 내륙에서 주로 발견되지 않는 식물화석도 발견돼 한반도 신생대 전기의 지형과 기후환경, 식생 변화 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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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월 경북 포항시 남구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 내 소하천에 대형 나무화석이 놓여 있다.
포항시는 화석을 대전의 문화재청 관련 기관으로 이송하기 위해 최근 암반에서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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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지질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국내 타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벤토나이트, 산성백토, 불석, 규조토 등 광물자원이 발견된다.
규조토는 단세포 생물인 규조가 죽은 후 그 유해가 쌓여서 형성된 암석이나 퇴적물을 말한다.
규조는 호수나 바다에 서식하는 미세한 생물이다.
황 연구원에 따르면 1200만 년 전 포항전체에 규조가 분포했다.

벤토나이트는 지각변동으로 2200만 년 전 일본과 한국이갈라질 때 마그마가 올라오면서 물속에서 터지며 생겨났다.
벤토나이트는 이때 발생한 화산재퇴적층의 하나로몬모릴나이트라는 광물로 구성된 점토덩어리다.
포항 장기면에 벤토나이트 광산이 자리한다.
포항 지역에서 채굴되는 벤토나이트는 불순물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95% 이상 고순도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포항의 '선상지 삼각주'는 한반도 퇴적 지형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다.
황 연구원은 1990년대에 세계 지질학계에 선상지 삼각주 개념이 생길 때 처음 포항에서 선상지 삼각주를 처음 찾아내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선상지 삼각주는 급사면을 따라 이동한 퇴적물이 바로 호수 또는 해양환경과 바로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부채꼴 모양의 퇴적체다.
이 공로로 그는 2003년 세계적 권위의 인명사전인 `세계 과학 공학 인명사전'2003-2004년 제7판에 등재됐다.

황인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명예연구원. 연합뉴스 제공

황인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명예연구원. 연합뉴스 제공

또 포항은 동해 형성 과정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황 연구원은 "동해가 벌어지며 확장이 됐다가 현재 지금 닫히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포항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동해 광구를 탐사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석유 탐사의 관점으로만 아닌 연구의 관점에서 포항이 앞으로 더욱 조사되길 바란다고 했다.

벼 유전체 연구로 작물화 비밀 밝힌 中 과학의 '힘'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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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500년 이전 1000년 동안의 중국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현재로서는 중국의 식량 생산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동시대에 시작되었는지 조금 빠르거나 늦었는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에서

지난주 약간 놀라운 과학 뉴스가 나왔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발간하는 스프링거 네이처가 지난 18일 발표한 각국의 과학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2024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이 처음으로 종합 순위에서 미국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각 분야 상위 학술지 145종에 실린 논문 7만 5707편을 분석한 결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1위를 지켜온 미국이 2위로 밀려난 것이다.
연구기관 순위는 더 놀라운데 상위 10개 기관 가운데 7개가 중국 소속으로 1위가 중국과학원이다.
참고로 한국은 작년과 같은 8위이고 기관 가운데는 서울대가 59위로 가장 높다.

첫 문장에 '약간'이란 표현을 쓴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뉴스는 아니어서다.
지난 2022년 출간한 책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약진에 이미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2년 작물로는 처음 벼의 게놈이 해독된 이래 10년 동안 해독된 작물은 10여 종에 그쳤고 대부분 주산지인 나라가 주도했다.
포도 게놈 해독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공동연구팀의 프로젝트인 식이다.

게놈 해독 효율이 올라가고 비용이 떨어지면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두 번째 10년 동안 이전 10년의 10배인 100여 종의 작물 게놈이 해독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 연구진의 성과였다.
그뿐만 아니라 벼 같은 주요 작물은 여러 지역에서 채집한 재래종 등의 게놈을 추가로 해독해 품종개량에 활용하는 등 응용연구도 활발한데 역시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18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은 다양한 품종의 벼 3000여 개체(유전자원)의 게놈을 해독해 참조 게놈에는 없는 유전자 1만 2000여 개를 발굴했다는 내용이다.
다국적 공동연구팀의 성과이지만 중국의 엄청난 연구 인력과 인프라, 예산이 없었다면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 만 1000년 전부터 작물 벼 재배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도 중국 과학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4 네이처 인덱스에서 최고 연구기관으로 뽑힌 중국과학원 산하 지질학·지구물리학연구소가 주도한 중국 공동연구팀의 결과로 동아시아에서 벼농사 전개 과정을 재구성한 고고학 분야의 논문이다.

이에 따르면 벼농사를 시작한 건 1만 3000년 전이고 작물 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1만 1000년 전부터다.
동아시아에서 벼가 작물화된 시기가 서아시아에서 보리와 밀이 작물화된 시기와 비슷하다.
서아시아의 보리나 밀보다 짧게는 1000년에서 길게는 3000년 늦은 1만~8000년 전 벼가 작물화됐다는 기존 시나리오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작물 벼와 그 조상인 야생 벼를 구분하는 여러 특징 가운데 고고학 유적지에 남아있는 기동세포의 식물석에 주목했다.
식물석(phytolith)이란 지하수의 실리카 성분(규산)이 침투해 화석화된 식물조직이다.

기동세포(bulliform cell)란 볏과 식물 잎의 위쪽 면 잎맥 주변에 있는 큰 세포로 액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건조해지면 물이 빠져나가 액포가 쪼그라들어 부피가 줄면서 잎이 위로 말린다.
그 결과 수분 손실을 막고 직립성을 도와 식물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작물 벼는 야생 벼보다 건조할 때 잎이 더 잘 말리는데 여기에는 기동세포 생김새의 차이도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동세포 한쪽 표면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생긴 구조가 있는데 평균 개수는 작물 벼가 더 많지만 일정하지는 않다.

기동세포의 비늘 개수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야생 벼는 4~33%이고 작물 벼는 40~67%이다.
따라서 유적지에서 나온 기동세포 식물석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을 분석하면 야생 벼인지 재배 벼인지 알 수 있다.

북위 29도인 양쯔강 하류 지역 상산 유적지 8개 구역(C, D)과 허화산 유적지 5개 구역(E)에서 채취한 시료 359개를 분석한 결과 약 2만4000년부터 야생 벼 씨앗(쌀) 채집이 시작됐고 작물 벼는 약 1만1000년 전부터 재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BR> 사이언스 제공

북위 29도인 양쯔강 하류 지역 상산 유적지 8개 구역(C, D)과 허화산 유적지 5개 구역(E)에서 채취한 시료 359개를 분석한 결과 약 2만4000년부터 야생 벼 씨앗(쌀) 채집이 시작됐고 작물 벼는 약 1만1000년 전부터 재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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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늦어도 10만 년 전부터 야생 벼가 자생한 것으로 알려진 양쯔강 하류 지역인 상산(上山) 유적지와 허화산(荷花山) 유적지의 퇴적층을 주목했다.
상산의 퇴적층은 3.5m 두께로 약 10만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데 8개 구역으로 나뉜다.
허화산의 퇴적층은 2m 두께에 약 9만 년이 걸쳐있고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연구자들은 상산 8개 구역에서 240개, 허화산 5개 구역에서 119개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볏과 식물의 잎에 있는 기동세포는 가물 때 잎이 말리게 해 수분 손실을 막는 역할을 하고 직립성에도 영향을 준다.<BR> 벼의 기동세포에는 비늘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는데, 야생 벼가 작물화되면서 평균 개수가 늘어났다.<BR> 즉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야생 벼(wild rice)는 4~33%이고 작물 벼(domesticated rice)는 40~67%다.<BR> 따라서 유적지에서 나온 기동세포 식물석은 야생 벼인지 작물 벼인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BR> 플러스원 제공 

볏과 식물의 잎에 있는 기동세포는 가물 때 잎이 말리게 해 수분 손실을 막는 역할을 하고 직립성에도 영향을 준다.
벼의 기동세포에는 비늘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는데, 야생 벼가 작물화되면서 평균 개수가 늘어났다.
즉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야생 벼(wild rice)는 4~33%이고 작물 벼(domesticated rice)는 40~67%다.
따라서 유적지에서 나온 기동세포 식물석은 야생 벼인지 작물 벼인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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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예상대로 모든 구역에서 벼의 식물석이 존재했고 1만 1000년 전이 돼서야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이 무렵부터 작물화된 벼를 경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까지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나온다.
약 2만 4000년 전부터 쌀의 겉껍질, 왕겨의 식물석이 크게 는 것이다.
반면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은 20% 내외로 여전히 야생 벼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야생 벼에서 씨앗(쌀)을 채집해 먹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여태 지나쳤던 야생 벼에 새삼스럽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 기후변화로 야생 벼 씨앗 채집

이 시기는 마지막 빙하기(11만 5000~1만 1700년 전)에서도 가장 추웠던 마지막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2만 6000~1만 9000년 전)로 육지 면적의 30%가 빙하에 덮여있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추위를 피해 저위도 지역으로 이동했고 양쯔강 하류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아졌다.

결국 먹을 게 궁해진 수렵채집인들은 야생 벼의 씨앗, 쌀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 서아시아에서도 야생의 보리와 밀을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최대 빙하기라는 기후변화가 아시아 일대에서 볏과 식물의 씨앗을 채집해 먹기 시작하게 한 계기였던 셈이다.

마지막 최대 빙하기가 끝나고 이전 빙하기 기후로 돌아가 수천 년이 지난 뒤 이번에는 마지막 아빙기로 불리는 지구온난화 시기(1만 4700~1만 2900년 전)가 찾아왔다.
이때 북반구 평균 기온이 2℃나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다시 북쪽으로 퍼져나갔다.

그 뒤 다시 영거 드라이아스라고 부르는 일시적 빙하기(1만 2900~1만 1700년 전)가 찾아왔고 이 시기를 끝으로 마지막 빙하기도 막을 내리고 간빙기(또는 후빙기)가 시작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아빙기를 거치면서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20에서 34%로 높아졌다.
여전히 야생 벼의 범위이지만 뭔가 변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이전까지 채집만 하다가 야생 벼의 씨앗을 직접 심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이 기간 유적지의 왕겨 식물석도 많아져 식량에서 쌀의 비중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는 동아시아인이 쌀을 식량으로 이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BR> 마지막 최대 빙하기(노란색)로 양쯔강 하류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약 2만4000년 전부터 야생 벼의 씨앗, 즉 쌀을 채집해 먹기 시작했다(아래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림으로 색 표시는 오류다(자생이므로 파란색으로 나타내야)). 그 뒤 마지막 아빙기(BA. 분홍색)를 겪으며 약 1만3000년 전부터 야생 벼를 재배했고(아래 왼쪽에서 두 번째) 홀로세가 시작한 직후인 약 1만1000년 전부터 작물 벼를 재배했다(아래
맨 왼쪽). 이 기간 기동세포 비늘 개수가 9개 이상인 비율을 보면 마지막 아빙기부터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해 약 1만1000년 전 40%를 넘어섰다(위). 사이언스 제공

기후변화는 동아시아인이 쌀을 식량으로 이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 최대 빙하기(노란색)로 양쯔강 하류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약 2만4000년 전부터 야생 벼의 씨앗, 즉 쌀을 채집해 먹기 시작했다(아래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림으로 색 표시는 오류다(자생이므로 파란색으로 나타내야)). 그 뒤 마지막 아빙기(BA. 분홍색)를 겪으며 약 1만3000년 전부터 야생 벼를 재배했고(아래 왼쪽에서 두 번째) 홀로세가 시작한 직후인 약 1만1000년 전부터 작물 벼를 재배했다(아래 맨 왼쪽). 이 기간 기동세포 비늘 개수가 9개 이상인 비율을 보면 마지막 아빙기부터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해 약 1만1000년 전 40%를 넘어섰다(위). 사이언스 제공

고기후 분석 결과 마지막 아빙기 동안 동아시아 몬순이 강해져 강수량이 늘었다.
그럼에도 유적지의 나무와 수생식물 흔적은 오히려 줄었다.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물을 끌어오다 보니 주변은 오히려 물이 부족해졌다는 말이다.
한편 재배 환경 역시 물이 부족한 때가 많아 결국 잎이 잘 말려 가뭄을 견디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그 결과 기동세포에서 비늘이 9개 이상인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한편 이어지는 영거 드라이아스 동안 기온이 내려가며 양쯔강 하류 지역의 야생 벼 재배가 크게 줄었고 기후변화가 선택압으로 작용해 벼의 유전적 다양성도 줄어들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변화가 훗날 간빙기가 시작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부들이 재배하는 야생 벼에서 작물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개체를 선별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신석기 문화가 벼 작물화 촉진

이 과정에서 신석기 문화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1만 17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하면서 양쯔강 하류 일대에서 토기와 절구 등 농업 관련 도구들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며 오늘날 '상산 문화'라고 부르는 신석기 시대가 시작됐다.

이때 날카로운 돌낫도 만들어졌고 그 결과 벼 밑동을 잘라 수확하기 시작하면서 탈립성, 씨앗이 여물면 흩어지는 성질이 작은 변이체가 선택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1만1000년 전부터 작물 특성을 지닌 벼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고 고고학 유적지에 그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볏과 식물(벼, 밀, 보리, 기장)을 식량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약 2만 4000년 전으로 거의 같고 작물화도 약 1만 1000년 전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게 공교로운 우연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신석기 문화 교류의 결과임을 고고학 증거를 분석해 보여줬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논문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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