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새울·킹스, 한국 原電의 미래를 보다


대학원대학교 ‘킹스’, K-原電 이끈다

⊙ 100% 영어로 수업 진행… 국내 유일하게 IAEA 인증 받아⊙ 킹스, 2024년 현재 원자력산업학과와 에너지정책학과 등 2개 과에 국내 학생 61명, 해외 학생 48명 ‘열공’⊙ 킹스 졸업생 266명 중 가장 많은 졸업생 배출한 해외 국가는 케냐(49명)… 베트남, 나이지리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順⊙ 원자력은 ‘브레인 에너지’… 100년 대계의 국가 간 파트너십이 원자력 산업⊙ 고리 원전, 한국 원전의 대들보이자 산 역사… 부산·울산·경남 전력 소비량의 34.8% 생산⊙ 새울 원전, 한국 원전의 미래 APR1400으로 건립… 새울 3·4호기는 조만간 완공

울산 울주군 서생면 해맞이로에 위치한 킹스,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기자는 지난 6월 25일과 26일 동안 한수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집적된 부산과 울산 등지를 발 빠르게 둘러보았다.
흥미롭게도 고리 원전과 새울 원전, 한국수력원자력 인재개발원, 그리고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EPCO International Nuclear Graduate School)가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에 있었다.
비록 보안상의 이유로 속 시원히 둘러볼 순 없었지만 어쨌든 일부만이라도 한국 원자력 산업단지를 호령(號令)하는 백마와 적토마, 얼룩빼기 말들의 용약(勇躍)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킹스(KINGS)’

주변에 대형 원전 10기가 있다.
또 한수원 본사(경북 경주)와 고작 1시간 거리고 원전의 기기를 제작하는 두산에너빌리티(경남 창원)와 2시간 거리다.

그곳 원전(原電) 기술자들은 이 대학원대학교를 영문 첫 글자를 따서 ‘킹스(KINGS)’라고 부른다.
기자도 덩달아 그렇게 불렀는데 뭔지 몰라도 심박(深博)하게 느껴졌다.
‘킹스’라는 발음에서 역사 속 현명한 왕들이 집결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회담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당장 체코 원전 수주가 확정되면 그 일대 원전 클러스터는 조바심과 관심으로 으쓱해지고 그중에서도 킹스에 세계적인 실무형 전문기술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몰려드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엄경식 한수원 국민소통담당관이 기자에게 킹스를 보여주길 원했다.
킹스에 다녀와야 한수원의 실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엄 담당관의 말이다.
김 기자! 킹스 주변에 대형 원전 10기가 있어요.
물론 1기는 해체(고리 1호기)를 준비 중이지만 나머지 7기는 운영 중이고 2기는 건설 중이죠.
심지어 한수원 인재의 보고(寶庫)인 인재개발원 내에 위치한 킹스는 한수원 본사(경북 경주)와 고작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원전의 주요 기기를 제작하는 두산에너빌리티(경남 창원)와는 2시간 거리,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원자력환경공단(경북 경주) 또한 1시간 거리에 있다.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미래가 이곳에 있음을 한번에 느낄 수 있었다.
엄 담당관의 말이다.
이해되지요? 바로 한수원 인재개발원 부지에 킹스가 자리 잡고 있어요.
킹스에서 원전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해외 유학생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됩니다.
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되고요.
기자는 그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원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유학생 비율이 국내 재학생 비율에 거의 육박하다니…. 나중에 관련 자료를 통해 알게 됐는데 2024년 현재 원자력산업학과와 에너지정책학과 등 2개 과에서 국내 학생 61명, 해외 학생 48명이 ‘열공’ 중이다.
학년별로 보면 1학년은 10개국에서 온 26명의 해외 학생과 22명의 국내 학생, 2학년은 14개국에서 온 25명의 해외 학생과 34명의 국내 학생이 재학 중이다.
또 올해 처음으로 박사 과정을 교육부로부터 인가(認可)받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정원 10명 중 4명을 선발해 K-원전의 미래를 심도 있게 본격적으로 개척 중에 있다.
전 과목 영어로 가르쳐엄 담당관의 승용차를 타고 킹스에 도착했다.
캠퍼스와 맞닿은 동해 바다의 파도가 평화롭게 철썩이고 있었다.
바다와 마주한 해군사관학교가 바다의 전사(戰士)를 양성하는 곳이라면 킹스는 빛의 마법사를 키우는 곳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킹스 법인사무국 이재수 차장의 안내로 김민철 사무국장을 가장 먼저 만났다.
김 국장은 국내 원자력 공학과를 보유한 대학이 16곳이나 되지만 그럼에도 킹스가 설립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킹스는 국내 원자력 산업의 기술과 건설 경험·운영 노하우의 결정체이자 제3세대 원전인 APR1400을 아예 교과목으로 선정해 현장 실무 중심의 교육을 합니다.
국내 일반대학의 원자력 공학과에서 학문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과는 다르죠.
또한 우린 전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칩니다.
게다가 원자력 분야의 신뢰도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 증표(證票)로 국내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인증을 받았다고 김 국장이 설명했다.
IAEA 이름으로 인증서를 부여하는 대학은 킹스가 국내 처음이고 아시아에서는 도쿄대에 이어 두 번째, 세계에서는 9번째 대학이란다.
김 국장은 지난 2년간 심사 과정을 거쳐 작년 최종 인증을 받았다.
‘원자력 산업공학 프로젝트 관리 및 건설’ 트랙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석사 학위는 물론 IAEA와 킹스의 공동 인증서를 함께 취득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김 국장이 널따란 회의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킹스의 베테랑 야전(野戰) 지휘관들이 열의에 찬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킹스의 총장은 공석이다.
제4대 유기풍 총장이 지난 4월 퇴임해 현재 새로운 총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이다.
체코와 폴란드 원전 수주를 앞두고 이 대학의 위상이 커진 만큼 총장의 위상과 역할도 동시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APR1400 노형(爐形)은…100만kWe급 한국 표준형 원전(OPR1000, 신고리 1·2호기 / 신월성 1·2호기)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표준설계 인가를 받은 차세대 원전을 APR1400이라고 부른다.
140만kWe급 신형 경수로(새울 1·2호기)다.
기존 대비 발전용량이 약 40%나 증가됐다는 점에서 한국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체코와 폴란드에 원전을 짓게 되면 바로 이 APR1400을 건립하게 된다.
현재 가동 중인 새울 1호기가 APR1400이다.
2016년 12월 세계 최초로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새울 2호기는 국내 원전 최초로 단 한 번의 고장이나 정지 없이 시운전 시험을 완벽하게 마치고 2019년 8월부터 가동 중이다.
미국과 프랑스가 건설 중인 제3세대 신형원전(AP1000, EPR)보다 가장 먼저 상업 운전을 시작, 원전 건설 능력을 대외로 널리 알리게 되었다.

UAE에 원전 수출하면서 설립킹스 대외처 조철성 실장이 대학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이력을 자세히 브리핑해주었다.
킹스는 지난 2009년 UAE에 처음으로 원전 수출을 하면서 대학 설립 타당성 검토가 시작됐고 2011년 교육부로부터 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어요.
― 전문 교육기관 설립은 UAE 원전 수주와 관련이 있었나요?그럼요.
UAE 정부 쪽이 내민 사이드 계약서에 교육훈련 요청이 있었고 양국 정부가 상호 합의하에 전문 교육기관이자 대학원대학교로 킹스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2024년 현재 킹스 졸업생 수는 모두 552명에 이른다.
2014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해 지난 10년 동안 국내 졸업생이 286명, 유학생 졸업생이 266명에 이른다.
국내·해외 비율이 반반(半半)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66명 중에서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국가는 케냐(49명)다.
10명 이상 석사 졸업생을 배출한 국가는 베트남, 나이지리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아공, 가나를 들 수 있다.
폴란드 국적의 졸업생은 9명에 이른다.
체코 졸업생도 2명이다.
이에 대해 조철성 실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 학생은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유관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직원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해외 학생은 에너지 분야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재직자 및 대학생들로 구성돼 있어요.

킹스 교학처 임학규 처장은 사실 폴란드나 체코에서 한국으로 원자력을 공부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며 그 배경에 어떤 것이 뒷받침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동구권 국가들은 공학이나 항공산업 기반이 한국보다 튼튼하고 오래됐어요.
폴란드 국립 바르샤바대의 경우 노벨물리학상을 두 차례나 받은 퀴리(Marie Curie) 부인을 배출한 곳입니다.
체코의 몇몇 대학은 기본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씩 있을 정도죠.
처음엔 이들 나라에 한국 원전을 이야기하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크게 발달했고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며 거기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니까 학생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럽 순방기간 중에 폴란드에 들러 일부러 바르샤바대를 찾아간 일도 있다.
임 처장은 지난 3~4년 동안 폴란드와 지속적인 신뢰를 쌓아오는 과정이 있었고, 올해 폴란드에서 7명의 신입생이 킹스에 입학했다면서 신뢰를 쌓은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실에 기뻐했다.
― 학생들은 어떻게 뽑나요? 경쟁률은?보통 경쟁률이 2.5대 1에서 3대 1에 이릅니다.
폴란드에서 학생들을 추천하면 선발은 우리 대학이 직접 합니다.
듣고 있던 김민철 국장이 개인이 아닌 국가에서 학생을 모집해 추천하면 면접과 학업계획서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한다.
그러니 그들 나라의 자체 경쟁률까지 감안하면 무시 못 할 수준이다고 귀띔했다.
소형모듈원전 SMR의 미래는…

킹스의 비전과 관련해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대학 교수 관계자들이다.
왼쪽부터 이인규 기획총무처장, 김긍구 석좌교수, 김주열 대외처장, 임학규 교학처장, 김민철 법인 사무국장, 조철성 대외처 실장.

기자는 김긍구 킹스 석좌교수와 만났다.
그의 주 전공은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소형모듈원전(SMR)이다.
한수원은 2012년 세계 최초로 SMR ‘스마트’의 표준설계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우수 인력들이 유출되고 원전 생태계가 파괴되고 말았다.
어쨌든 그럼에도 SMR 분야에서 한국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LNG와 석탄의 자리를 이 SMR이 차지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5월 제주도에서 과학기술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원자력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해외 국가의 정부 대표단 중 2명이 우리 킹스 출신이더군요.
남아공과 우즈벡 출신인데 그중 한 명은 저에게 수업을 들었던 제자여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김긍구 석좌교수는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에서 38년 7개월 동안 근무했다.
미국 유학 생활 3년 3개월을 더하면 40년 넘게 오로지 원자력 연구에 매진한 셈인데 이 가운데 25년을 SMR 연구에 온 영혼을 바친 것이다.
요즘 원자력 산업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 SMR입니다.
제가 개발하면서 느낀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그 나라에 우리가 개발한 SMR을 수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킹스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 해외 학생들이 뛰어나던가요.
재미있게 많이 따라옵니다.
다음 문장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형광펜을 그어야 되는 듯, 강한 다짐이 묻어났다.

원자력 공학 쪽의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이들도 꽤 있어요.
이런 친구들도 쉽게 이론과 실무를 체험하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25년 동안 연구하고 개발한 한국 SMART의 우수성을 교육하고 수출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킹스의 해외 유학생 교육은 투자라고 볼 수 있지요.
대학 기획총무처 이인규 처장은 킹스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강점이 뭡니까.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아닙니까. 주어진 예산 내에서 공기(工期)를 맞출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아시겠지만 과거 프랑스가 UAE에 원전을 수출하며 UAE에다 제2의 루브르 박물관을 지어주겠다, 미라주 전투기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원전 수주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대학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원자력 실무 특성화 학교입니다.
한국 원전을 도입하는 국가들에 최고의 전문 기술을 가르쳐 자립할 수 있게끔 돕고 있습니다.
대외협력처 김주열 처장은 바야흐로 때가 왔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게 원전산업이라고 했다.
원전, 단순히 물건 판다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지난 2023년 킹스 졸업식 모습이다.
해외 졸업생들의 대사들이 참석해 졸업식을 빛냈다.
지난 2014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해 10년 동안 국내 졸업생 286명, 유학생 졸업생 266명을 배출했다.

2022년 2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취임 이후 내건 원전 비중 축소 공약을 뒤집은 것이다.
영국도 2050년까지 최대 9기의 원전을 짓기로 했다.
김 처장의 계속된 말이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EU가 우리나라 원전 수출의 최대 시장이 됐습니다.
스웨덴은 탈원전을 선언했다가 이제 대형 원전과 SMR 몇 기를 짓겠다고 방침을 바꿨고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이탈리아도 원전을 짓겠다는 논의가 그 나라 국회에서 나오고 있죠.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진영(陣營)을 떠나 원자력 촉진법을 제정할 움직임입니다.
김 처장은 원자력 르네상스가 다시 한 번 도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원자력은 ‘브레인 에너지’입니다.
단순히 원전 한 기를 지어준다는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100년 대계의 국가 간 파트너십이 원자력 산업입니다.
― 말씀하신 100년 대계(大計)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요.
보통 원전 건설에 대략 10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운영하는 데 평균 60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안전성 여부를 확인한 뒤 정상 가동을 마치고 원전을 해체하는 데 또 몇십 년이 걸립니다.
이렇게 따지면 거의 1세기가 필요하죠.
― 말씀을 듣고 보니 엄청난 장치 산업이네요.
맞습니다.
원전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개념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또 기술 수출로도 시원한 답을 줄 수 없어요.
원자력 교육을 통한 상호 이해를 통해 관련 사람과 기술의 교류를 넘어 외교, 경제, 과학기술, 문화까지 100년 동안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원자력을 매개로 한 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한국 원전의 강점은 ‘경험’

고리 원전 전경이다.
현재 고리 2~4호기, 신고리 1~2호기를 운영 중이다.

킹스는 현재 2개의 학과와 한 곳의 산학협력단으로 조직돼 있다.
원자력산업학과(Nuclear Power Plant Engineering)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을 교과목으로 가르친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의 전 생애주기를 모두 다룬다.
한마디로 설계와 건설, 운영, 해체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는 현장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원자력정책학과(Energy Policy & Engineering)는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전력 계통 이론과 세계 전력 계통 시장체제에서의 전력 경제 이론과 자금 조달, 기업 투자 등을 배운다.
원자력산업학과 학생들은 2년간 킹스에서 석사 과정 프로그램이 진행되지만 에너지정책학과의 경우, 국내 학생은 1학년 전체 과정을 해외 학생들과 함께 수학한 뒤 2학년 1학기는 독일 안홀트대(Anhalt University)로 옮겨 한 학기 동안 MBA 과정을 배운다.
졸업할 때 석사 학위와 함께 MBA 학위까지 받는다.
기자는 킹스에서 한국 원자력 산업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폴란드에서 온 스토가 파랄(Stoga Faral·24) 씨는 한국에 온 지 4개월이 되었다.
폴란드는 아직 원전이 없다.
물론 원자력 공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있지만 발전소가 없기에 한국 유학길에 오를 결심을 했다.
킹스에 와서 원자력 산업의 경험 많은 교수와 만나 대화하는 게 즐겁습니다.
폴란드는 탄소 중립 정책 때문에 원자력으로 전력산업을 전환하려는 국가적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공부가 조국 폴란드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 원전이 EU에서 어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경험’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구체적으론 지난 30년간 계속 원전을 건설한 ‘경험’이 있고 UAE에 수출한 ‘경험’이 있으며 꾸준히 원전산업을 키워온 ‘경험’이 있잖아요.
그런 경험을 강점이자 신뢰라고 봅니다.
한국과 체코, 상호 보완 가능

새울 원전은 제3세대 원전인 APR1400을 운영, 건설하고 있다.
새울 원전 본부의 모습이다.

한수원에 재직 중인 김정호(45)씨는 원자력산업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부 때 전공은 토목공학이다.
2006년 한수원에 입사한 후 치열한 부서에서도 일해봤고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는데 킹스에 와서 원자력이란 새로운 분야를 다시 접하게 되어 가슴이 뛰고 있어요.
2년간 배우며 다져놓은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국제적 사업에 참여하고 싶고 개인은 물론 국가나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체코에서 온 마렉 코페체크(Marek Kopecek·27) 씨는 킹스 원자력산업과에 재학 중이다.
작년 2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킹스에 오기 전 브르노 공대(Brno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에너지 및 열수력 공학을 전공했다.
체코에는 원전이 두 곳 있는데 그중 한 곳인 두코바니(Dukovany)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린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저의 우선 관심사는 원자력 안전, 그리고 한국과 체코 양국 간의 협력 강화, 특히 원전산업과의 협력입니다.
한국의 원전, 전자, 자동차 및 IT산업에서의 고급 전문지식은 체코의 강한 산업 기반, 제조 및 공학 분야의 숙련된 인력과 상호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졸업 후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브르노 공대로 돌아가 체코에서의 마지막 석사 과정의 학기를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향후 체코에서 원자력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이반 팬시악(Ivan Panciak·25) 씨 역시 작년 2월 한국에 왔다.
원자력산업학과에 재학 중이다.
한국에 오기 전 슬로바키아기술대(STU)에서 원자력 공학 및 물리학을 공부했다.
제가 원자력 공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수학, 물리학, 화학에 대한 관심이 원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요.
모국 슬로바키아는 국가 전력의 67%를 원전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내년에 6번째 원자로가 가동됩니다.
그 비율은 더 증가할 겁니다.
슬로바키아는 9개의 원자로가 있는데 3개는 폐기 단계에 있고 5개는 가동 중이다.
1개는 건설 중이라고 한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550만 명에 불과하지만 원전 강국이죠.
원자력 공학 졸업생 수요가 대학에서 배출하는 학생 수보다 많고 비전이 큽니다.
한국은 SMR 기술과 APR1400을 포함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슬로바키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기술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인터뷰한 유학생들은 모두 눈빛이 빛났고, 설명하는 말에서 개인적인 희망을 넘어 자신의 국가에 대한 애정 어린 사명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고리 원전은 축적된 한국 원전 기술의 상징

고리 원전 정재락 대외협력처장.

기자는 고리 원전으로 이동했다.
킹스에서 고리 원전(본부동)까지 거리는 차로 7분 정도다.
또 킹스에서 신고리 1·2호기까지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과장을 보태면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한국 원자력 산업의 비전이 밝은 이유다.
고리 원전을 앞에 둔 푸른 바다를 보았다.
넘실대는 모습이 그림 같았다.
둥근 돔에서 ‘빛의 전사’가 나와 한국 경제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끌어올렸다.
고리 원전이 없었다면, 원전의 기술이 없었다면 한국 경제의 실력은 현재 성취의 절반으로 줄어들지 모른다.
고리 원전 대외협력처 정재락 처장과 류봉호 부장을 만났다.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로서 1978년 4월에 상업 운전을 처음 시작했다.
한국 원전의 대들보이자 산 역사다.
한 시절을 풍미한 뒤 2017년 영구 정지되었다.
1983년 고리 2호기, 85년 고리 3호기, 86년 고리 4호기가 각각 가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신고리 1호기가 가동에 들어갔고 이듬해 신고리 2호기도 운행을 개시했다.
현재 한수원 직원 1499명과 협력회사 1398명 등 2897명이 일하고 있다.
정재락 처장은 고리 원전은 부산·울산·경남 전력 소비량의 34.8%인 3만508GWh를 생산하고 있다며 한국 원전의 오래 축적된 기술의 상징이 고리 원전에 있다.
킹스에서 배출된 인력이 고리로 이어져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자긍심을 표명했다.
새울 원전은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위치해 있다.
킹스에서 차로 2~3분 거리에서 새울 1·2호기와 3·4호기를 모두 만날 수 있다.
APR1400 노형의 최초 발전소인 새울 1·2호기는 모두 정상 운전 중이다.
새울 3·4호기는 한창 건설 중에 있다.
흥미롭게도 새울 원전 입구에 APR1400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 원전의 신상 수출 모델이자 미래를 담은 역작이다.
한국 표준형(OPR1000) 원전에 비해 최신 설비를 도입해 안전성을 대폭 강화시켰다.
이들 직원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새울은 원전 10기 수출을 위한 전초기지

왼쪽부터 새울 원전 이승락 홍보부장, 백승우 파트장.

새울 원전 홍보부 이승락 부장은 새울 본부는 국내 원전산업의 기술과 건설 경험, 운영 노하우의 결정체다.
신규 원전 도입을 희망하는 국가의 정부와 원자력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새울 3·4호기는 2024년 5월 말 기준 사업 종합 공정률 93.3%에 이른다.
백승우 차장은 새울 본부의 경우 수출 노형인 APR1400 발전소 노형만을 운영 관리하고 있다.
한국 원전의 미래가 새울이다.
새울은 세계 최고의 원전 운영과 건설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한국형 원전 홍보의 전략적 요충지다.
원전 10기 수출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언급했다.
고리 원전과 새울 원전, 그리고 한수원 인재개발원 부지에 우뚝 솟은 킹스가 원자력 협력 네트워킹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가웠다.
체코와 폴란드 원전을 우리가 수주하게 되면 이들 국가의 학생, 엔지니어들이 한국 킹스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킹스의 위상 또한 올라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원자력 학교로 등극할 것이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한국이 글로벌 원자력 산업의 허브가 되어 새롭게 비상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여러 현장을 돌아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바다에는 여전히 평화로운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노화도 질병, 치료해 110세까지"…수퍼센티네리언 시대 온다

[WEEKLY BIZ] [Cover Story] 이론적 최대 수명 115~150세, 인공장기, 인공혈액으로 수명 120세까지

그래픽=김의균

그래픽=김의균

기네스북이 공인한 역대 세계 최고령자는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다.
조선이 개항하기도 전인 1875년에 태어났는데, 1997년 122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 여성은 85세부터 펜싱을 배웠고, 100세에도 자전거를 탈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시력과 청력을 잃은 상태였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칼망처럼 110세 이상 생존하는 사람을 가리켜 ‘수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수퍼센티네리언은 건강한 몸을 타고난 극소수의 얘기였지만, 현대 과학은 이제 범인들의 ‘수퍼센티네리언 시대’에 도전한다.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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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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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생명공학 연구는 노화를 늦추는 것을 넘어 회춘을 의미하는 ‘역(逆)노화’를 꿈꾸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현대판 불로초(不老草)를 찾기 위해 인간보다 긴 수명을 자랑하는 동물 연구에 나서는가 하면,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만든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organoid)로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고, 동물에서 키워낸 장기를 이식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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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춘만 한다면 금(千金)이 아까울까. 회춘 산업은 그야말로 노다지 산업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장수 관련 산업은 2020년 251억달러 규모에서 2030년 442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WEEKLY BIZ는 회춘 산업의 가능성을 엿보고자 인간 수명 연장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과학자와 관련 연구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자를 포함한 전문가 열 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수명 연장 기술 관련 대표적인 벤처 투자자인 세르게이 영 장수 비전 펀드 창립자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현재 구현 가능한 기술과 10년 내 개발될 기술만 잘 활용해도 인간 수명을 120세까지 늘릴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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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어머니’ 노화를 극복하라

늙음은 모든 생명이 부여받은 숙명 같은 것이란 인식에도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인간이 천수(天壽)를 누리는 최장 한계 수명은 짧게는 115년에서 최장 150년 수준으로 추정된다.
유엔 인구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사람들의 평균 기대 수명은 73.2세로 1950년(46.4세)보다 20년 이상 늘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이 격차를 벌리는 근본 원인이 바로 늙어감, 노화다.
영 창립자는 개인적으로 노화는 질병의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고 본다며 적어도 암이나 심장 질환 같은 질환을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위험 요인이라고 했다.
니르 바르질라이 앨버트 아인슈타인대 노화연구소장은 노화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심혈관 질환, 암, 치매 등을 일으키는 ‘질환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했다.
거꾸로 말해 노화라는 병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 찾아오는 치명적 질환도 함께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진시황이 애타게 찾던 불로초는 오늘날에도 발굴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게 체내 성장 호르몬을 조절해 노화를 억제하는 연구다.
바르질라이 교수는 ‘IGF-1(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1)’이라는 성장 호르몬은 50세 이전까지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그 이후로는 이 호르몬의 농도가 낮은 사람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며 제약사들이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노화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오브리 드 그레이 노화탈출속도 재단 이사장은 지난 7월에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염증을 일으키는 단백질인 인터루킨-11(IL-11)을 억제하면 쥐의 수명이 20%가량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며 노화 억제 연구에 큰 성과라고 했다.

만성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약품들이 노화 방지 효과란 ‘깜짝 부작용’을 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바르질라이 교수는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 SGLT-2(나트륨-포도당 공동 수송체-2) 억제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유사체와 골다공증 치료제인 비스포스포네이트, 면역 억제제인 라파마이신 등이 ‘노화 치료제’로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늙어감을 부여잡는 것을 넘어서 되레 젊어지는 ‘역노화 혁명’도 진행 중이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교수가 진행하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생명체의 모든 세포에는 젊음에 대한 정보를 백업해둔 ‘옵서버(Observer)’라는 물질이 존재하며, 이를 이용하면 마치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것처럼 젊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관련 연구진들은 이미 쥐나 원숭이에서 일정 수준의 역노화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고 했다.
싱클레어 교수 연구팀은 빠르면 내년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시작, 역노화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는 유전자나 화학물질을 찾을 계획이다.

그래픽=김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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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연장의 비밀 열쇠, 장수 동물

긴 수명을 자랑하는 동물에 대한 연구도 장수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바다 물고기인 볼락류(rockfish) 가운데엔 수명이 200년이 넘는 어종도 있다.
이를 연구하면 인간의 수명 연장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볼락을 연구하는 스테판 트리스터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박사는 볼락류가 가지고 있는 인슐린 신호와 플라보노이드 대사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볼락의 긴 수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러한 표적(유전자)들은 인간의 건강 개선과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불사(不死) 해파리라고도 불리는 ‘투리톱시스 도르니’도 역노화, 즉 회춘에 대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해파리는 성체 단계에서 고온이나 먹이 부족, 치명적인 상처로 죽을 위기에 처하면 어린 개체인 ‘폴립’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세포 역분화가 이뤄진다.
천적에게 잡혀 먹지 않는다면 매우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불사 해파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리아 미글리에타 텍사스 A&M대 교수는 세포 역분화는 몸에서 특정 기능을 담당하던 세포가 미분화 세포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 이러한 세포는 나중에 다시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며 우리 연구팀은 무척추동물인 해파리가 척추동물 등에서도 수명 연장과 DNA 손상 복구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조작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쉽게 말해 나이 들고 말고를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얘기다.

암에 걸리지 않는 벌거숭이두더지쥐 역시 중요한 실험 대상이다.
드 그레이 이사장은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보유한 독특한 형태의 히알루론산이 암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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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장기·인공 혈액으로 수명 연장

뇌나 심장처럼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장기가 손상됐을 때 이를 회복시키거나 새로운 장기로 대체하는 기술 역시 수퍼센티네리언 시대를 여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들은 ‘미니 장기’로도 불리는 오가노이드에 주목하고 있다.
오가노이드란 인체 유래 줄기 세포를 배양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3차원 장기를 뜻한다.

현재는 손상된 장기의 일부분을 오가노이드로 대체해 기능을 회복하는 수준의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마틴 수네만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서 세포군의 일부를 오가노이드로 대체해 뇌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연구 등이 진행 중이라며 뇌졸중이나 척수의 물리적 손상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려는 연구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 뇌는 물론 심장 오가노이드 이식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잉 메이 미국 클렘슨대 교수는 면역 반응을 적게 유발하는 ‘기성품’ 심장 오가노이드를 개발 중이라며 손상된 심장 부위를 대체해 심장 기능을 회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심혈관계 질환이 전 세계적으로 주요 사망 요인인 만큼 심장 오가노이드 이식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면 평균 수명 연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뇌나 심장 외에도 폐, 간, 신장, 췌장의 베타세포(인슐린 분비) 등도 ‘오가노이드’ 이식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오가노이드로 ‘풀 사이즈’ 장기를 만들어 이식하기까지는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이식한 오가노이드가 암과 같은 구조로 발달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당분간은 동물의 몸에서 키워낸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 간 장기 이식’이 망가진 장기를 대체하는 핵심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3월 미국에서 60대 환자가 생명공학 기업 ‘e제네시스’가 개발한 유전자 조작 돼지 신장을 이식받았고, 4월 두 번째 돼지 신장 이식이 이뤄졌다.
데이비드 쿠퍼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교수는 분자생물학 기술을 활용해 돼지 세포 내에서 일부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인간 유전자를 삽입하면 이식 시 거부 반응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기술이 발전하면 간, 췌장, 각막 등 더 많은 장기를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 혈액은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사카이 히로미 일본 나라의대 교수는 일본 적십자사에서 폐기한 혈액을 기증받아 이를 바탕으로 인공 혈액을 만들었다.
이번에 개발된 인공 혈액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의 기능만 대체할 수 있다.
혈액에서 정제한 헤모글로빈(산소 운반 물질)을 세포막으로 포장해 인공 적혈구를 만든 것이다.
인공 혈액은 여러 장점이 있다.
헌혈로 확보한 적혈구는 5~6주까지만 보관할 수 있지만 인공 혈액은 수년간 보관이 가능하다.
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동아줄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카이 교수는 인공 적혈구는 실제 적혈구보다 작기 때문에 좁아진 혈관을 잘 통과할 수 있다며 뇌졸중 등으로 조직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산소를 더 잘 배달해 줄 수 있다고 했다.

◇367조달러 장수 배당, 수명 연장의 축복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수명 연장이 사회경제적으로도 마이너스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마틴 엘리슨 옥스퍼드대 교수와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서 기대 수명을 10년 연장할 수 있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367조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소위 ‘장수 배당(longevity dividend)’ 효과다.
일찍 사망하거나 병상에 누워 있는 대신 경제 활동을 한다면 엄청난 수준의 경제적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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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늘어나면 해당 국가 경제는 인구 배당(demographic dividend)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
노동력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고령층 부양 부담이 적으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율이 늘어나는 고령화에 대해서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노화 방지 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100세 이상 생존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단명하는 사람들보다 사망 직전까지도 건강을 잘 유지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르질라이 소장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100세 이상 생존하는 사람이 사망 직전 2년간 지출하는 의료비는 70대 때 사망하는 사람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노화 방지 기 을 통해 시민들이 건강해지면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지만, 의료비 지출이 감소하면서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장수 기술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는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영 창립자는 장수 관련 기술 투자를 통해 내 자신이 얻고 싶은 목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게 아니라 더 오래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론 25세의 건강 상태로 200세까지 사는 시대가 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장수 배당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얻어지는 경제적 효과.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의료비를 덜 쓰고, 더 오래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이익을 일컫는다.

☞오가노이드

사람의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만든 인공 장기. 원래는 개발 중인 신약 효과를 검증하는 도구로 활용되지만, 최근에는 오가노이드를 이식해 손상된 장기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오래 살고 싶으시다고요? 오늘부터 당장 이것부터...

[WEEKLY BIZ] [Weekly Note] 장수는 삶의 방식부터 바꿔야...걷기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지난 6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손목닥터 9988' 100만 참여 기념행사에 참석해 트레드밀 릴레이 걷기 챌린지를 하고 있다.<BR> /뉴스1

지난 6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손목닥터 9988' 100만 참여 기념행사에 참석해 트레드밀 릴레이 걷기 챌린지를 하고 있다.
/뉴스1

올 들어 걷기가 취미가 됐습니다.
스마트폰에 서울시가 운영하는 ‘손목닥터9988′ 앱을 설치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하루에 8000걸음을 걸으면 서울시가 200원을 줍니다.
마치 게임에서 임무를 수행하듯 하루도 빠짐 없이 적어도 8000보는 채우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노화 연구의 대가 니르 바르질라이 앨버트 아인슈타인대 노화연구소장은 약물의 도움 없이도 노화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첫째는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운동, 영양 섭취, 수면, 사회적 유대를 무병 장수를 위한 네 가지 조건으로 꼽았는데, 그중 첫째가 운동이었습니다.

최근 품귀 현상 때문에 ‘가짜 약’까지 등장한 비만 치료제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기반 약물은 체중 감량 효과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약품입니다.
기적의 비만 치료제가 등장했으니 운동을 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당시 WEEKLY BIZ 취재에 응한 전문가와 국제기구 관계자들 대부분은 ‘기적의 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삶의 방식부터 바꾸라고 조언했습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스스로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는 등 삶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했죠.
건강 걱정이시라고요? 오늘 당장 ‘걷기’부터 해볼까요.

/홍준기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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