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버린 응급실…환자는 느는데 병상이 사라진다


응급환자 월 50만명대 늘었는데
병상 줄인 곳 다섯달 만에 4배로

지난 6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6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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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응급의학과 의사가 워낙 부족한데다, 남은 의사들도 오랜 격무로 지쳐 있다.
적은 수의 의사를 두고 병원들끼리 ‘스카우트 경쟁’까지 하는 상황이다.
(세종충남대병원 관계자)

세종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세종충남대병원은 오는 22일 오후 6시부터 23일 오전 8시까지 14시간 동안 응급실 진료를 멈춘다.
최근 응급실 전문의 14명 가운데 3명이 퇴직한 여파다.
퇴직한 전문의 1명은 인근 사립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충남대병원 사례는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이후 6개월째인 비상진료체계가 응급의료에서부터 흔들릴 거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월 이후 응급실 병상을 줄인 곳은 5개월 새 4배 늘었다.
응급실 환자는 코로나19 재유행 등으로 오히려 증가 추세다.

18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가운데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응급실 병상을 축소한 곳은 지난 2월21일 6곳에서 7월31일 24곳으로 증가했다.
응급실 병상은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거나 병동·중환자실에 입원하기까지 대기하는 공간인데, 이 병상이 줄면 중증 환자의 병원 입원도 어려워진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지난달 55만784명으로 전공의 집단 사직이 발생한 2월(58만2324명) 이후 가장 많았다.
3~4월에는 각각 46만2030명, 49만4758명으로 2월보다 줄었다.
그러나 5월 52만9130명, 6월 52만8135명에 이어 7월에도 50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코로나19 등 호흡기 감염병의 재유행은 물론 의료 공백 장기화로 ‘경증 환자는 큰 병원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응급실 기능이 축소된 가장 큰 이유는 전문의들의 피로 누적이다.
전공의 이탈 뒤 남은 전문의들의 야간 당직 등 업무 부담이 커져, 병가·휴직 등으로 진료를 볼 수 없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의료 공백의 장기화로 최상위 응급실인 권역응급의료센터(44곳)를 비롯해 상급종합병원마저도 전문의 부재, 병상 부족 등으로 환자를 되돌려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5월 상급종합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회송된 사례는 총 28만995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만7465건)에 비해 17.2%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응급 환자가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기 북부 한 응급의료기관 전문의는 “서울 시내 대학병원마저 심야 환자를 받지 못하면서 119 구급대가 서울 환자를 경기도까지 옮기고 있다며 “최근엔 하룻밤에만 심폐소생술 대상 환자가 3명, 심근경색 환자만 4명이 오는 등 중증 환자가 (진료 가능한) 몇몇 병원으로 쏠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출신인 김윤 의원은 “단기적으론 응급의학과 이외 진료과목 전문의를 응급실 전담 의사로 채용하거나, 수술 일정 등이 줄어든 전문의의 응급실 근무를 늘리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론 응급의료기관의 유형별 진료 기능을 명확히 해 권역응급센터는 중증 환자 진료에만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전문의 중심 병원이란 무엇인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BR>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임재희 | 인구복지팀 기자

 이달 초 가족이 병원에 입원했다.
처음 이 병원을 찾았던 지난해 겨울과는 풍경이 사뭇 달랐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발표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한 2월, 이 병원 전공의들도 떠났다.
처음 가족의 몸 상태를 묻고, 여기저기 살펴봤던 전공의도 보이지 않았다.
입원하는 동안 주말이면 의사 대신 간호사가 상태를 확인했다.
간단한 처치는 주말에도 가능했지만, 검사 결과는 교수가 출근하는 평일이 돼야 들을 수 있었다.
정부가 2월부터 줄기차게 내세웠던 ‘전문의 중심 병원’이란 이런 모습일까.

“거기는 좀 달라요. 입원 전담 전문의 제도를 광범위하게 운용하거든요. 실험적인 성격이 있죠.

전문의 중심 병원이 어떤 병원인지 잘 모르겠다고 관련 연구자들에게 하소연했더니, 이런 설명과 함께 용인세브란스병원을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병원과 가장 큰 차이는 입원 환자 1명을 교수 주치의 2명이 담당하는 ‘이중(dual) 주치의’ 제도다.
환자를 처음 진료하거나 수술한 교수와 입원 환자를 전담하는 교수가 함께 퇴원까지 책임진다.
보통 대학병원에선 환자가 몸이 불편해 교수로부터 답을 들으려면 간호사와 전공의를 거쳐야 하지만, 이 병원에선 입원 전담 전문의인 교수가 바로 답을 준다.

용인세브란스병원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정부가 말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이 어떤 병원인지 가늠이 안 된다.
보건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근로 의존도를 평균 40%에서 20% 이하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전공의 업무를 전문의와 진료지원 간호사에게 맡기고, 대신 전공의는 수련 교육에 집중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여기서 정부가 말하는 전공의 근로 의존도란 무엇일까. 전공의 업무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전공의 업무를 대체할 전문의와 진료지원 간호사를 지금보다 20% 늘린다는 이야기일까?

글을 읽을 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분명하게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동사를 명사로 바꾼 단어가 나올 때다.
‘나는 어떤 생각에 동의한다’고 분명하게 밝히면 될 이야기를 ‘동의 의견이 있을 것’이란 식으로 흐린다.
글쓰기 연구자 헬렌 소드는 이런 명사를 ‘좀비 명사’라고 불렀다.
명사가 살아 있는 동사를 잡아먹어 버렸다는 뜻이다.
그는 2012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좀비 명사가 가득한 문단은 독자를 잠자게 만들 테니, 구체적이고 명확한 문장을 쓰라고 조언했다.

정부의 전문의 중심 병원도 좀비 명사와 비슷하다.
전문의 중심 병원이 되기 위해 전공의 1명당 전문의는 몇 명이나 더 필요한지, 진료지원 간호사가 전공의 업무를 어디까지 대신할지 아직 미지수다.
전문의 중심 병원은 중증·응급 진료에 집중한다고 하는데, 정부 발표대로 일반병상을 지금보다 5~15% 줄인다고 대형 병원을 찾는 중증이 아닌 환자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쓸지,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충당할지 밝히지 않았다.

정부가 전문의 중심 병원을 외치는 지금 이 순간 환자들이 마주한 병원은 ‘전공의 없는 병원’이다.
전공의 공백 장기화로 피로도가 쌓인 전문의들이 고강도 교대 근무를 더는 버티지 못해 응급실 운영을 일부 멈추는 병원이다.
전공의들에게 각종 행정명령을 내렸던 때처럼 정부의 발 빠른 재정 투입 계획 발표를 의사와 환자 모두 기다리고 있다.

limj@hani.co.kr

‘슬기로운 의사’들은 다 어디에 있나 [시민편집인의 눈]

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앤서니 파우치는 38년 동안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으로 일한 전설적인 의사이자 과학자, 보건 행정가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 불리할까 봐 코로나19 방역을 흔드는 허위 주장을 마구 던질 때, 단호하게 각을 세운 소신파로도 유명하다.
2022년 말 은퇴한 그가 최근 ‘당직: 한 의사의 공공 복무 여정’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에이즈, 사스,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 등 초대형 공중보건 위기에 맞서 대통령 7명과 머리를 맞대고 백신·치료제 개발 등을 이끌어온 그의 여정이 경이롭다.
아직 치료제가 없는 감염병 환자를 밤새 돌보며, 절망과 환희를 오간 의사 파우치의 모습도 감동적이다.
그는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의 ‘가족 몰살’ 등 협박에 시달려 경호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미국인 다수는 식당과 거리에서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로 존경을 표했다.
그와 동료 의사들의 헌신 덕에 생명을 지켰다는 인사와 함께.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우리에게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등 존경하는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의-정 갈등이 심각한 지금, 의사 집단을 보는 시민의 눈길은 매우 차갑다.
국내 의사들은 높은 수입 등 기득권을 지키려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파업·휴진 등으로 환자를 팽개치는 이기주의자로 비치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성적 지상주의와 우월감에 사로잡혀, 돈 많이 버는 진료로 보상받겠다고 벼르는 타산적 집단으로 의심받고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등에 나오는, 사명감과 인간미 넘치는 의사는 현실에 없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파우치 박사 등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등의 영향으로 ‘더 센 감염병’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은 불안을 넘어 공포감을 준다.
이미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의료 소외가 심각한 한국에서, 이 사태가 제대로 수습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은 국공립병원 등 공공병상 비중이 전체의 10% 안팎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약 70%)의 7분의 1에 불과한 나라다.
정부와 갈등 중인 민간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다음 팬데믹 때 원활하게 동원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한국 의사들 다수가 ‘돈벌이’에 집착하는 것도 빈약한 공공의료와 무관하지 않다.
전체 병상의 90%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 민간병원이다 보니, 돈벌이가 병원과 의사의 지상과제가 된 측면이 있다.
공공병원에서 월급 받는 의사가 다수인 독일에서는 의대 증원을 의사들이 환영했다.
격무를 줄일 수 있어서다.

내년 의대 증원은 확정됐고, ‘집 나간’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
증원 규모와 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무리수를 둔 탓에 의사단체와 정부의 대화는 끊겼다.
돌파구를 열기 위한 언론의 역할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과격한 단체가 과잉 대표되지 않고, ‘슬기로운 의사들’이 대안을 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줄 필요가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의대 교수들의 진료 중단은 벼랑 끝에 놓인 환자들의 등을 떠미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의료 공공성을 높이는 개혁을 촉구했다.
거점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등도 환자를 위기에 빠뜨리는 의사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의사·간호사·의료기사 등으로 구성된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등은 지역거점병원 중심으로 공공병상 비중을 높이고,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병상은 억제해 공공·필수·지역의료를 강화하는 등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주치의 제도 등 의료전달체계를 합리화하는 방안,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에 전념할 의과학자 양성도 제안됐다.

한겨레는 ‘의료개혁, 공공성 개혁부터’ 시리즈를 통해 공공의료 강화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고, 전문가 연속 기고를 통해 독자의 관점 확장을 도왔다.
앞으로는 의료계 안팎의 대안과 국외 사례 등을 더 넓고 깊게 취재해, 정치권·정부·의료계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메뉴’를 선명하게 제시해주면 좋겠다.
집 나간 전공의를 고려한 대안도 넣어서. 정부, 의사와 함께 언론도 ‘지금 중병을 치료해야 하는 가족이 있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의료개혁의 해법을 찾아주길 기대한다.

불평등의 피케티 ‘인류는 평등해지고 있다’ 두둔한 까닭 [책&생각]

2021년 토마 피케티 신간 국내 소개
‘불평등 개선된 장기적 흐름’ 분명
단 1980년 이래 소유불평등 재확산
차별철폐·검증 위한 지표·절차 절실

2018년 10월30일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식(서울)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의 현재와 해법’을 주제로 기조 강연했다.<BR> 피케티는 “왜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는가 먼저 묻고, “불평등 극복을 위해서는 소득세 누진세율을 올리고, 교육에서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하는 평등주의 지향의 강력한 정당 강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BR>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10월30일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식(서울)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의 현재와 해법’을 주제로 기조 강연했다.
피케티는 “왜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는가 먼저 묻고, “불평등 극복을 위해서는 소득세 누진세율을 올리고, 교육에서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하는 평등주의 지향의 강력한 정당 강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l 그러나 l 2만2000원

2013년 ‘21세기 자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은 한결같다.
불평등은 단지 경제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산물’이며, 하여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평등의 짧은 역사’(2021)에서 토마 피케티는 이 주장을 확장시킨다.
그는 각국의 경제·기술적 발전 단계가 같더라도 “소유 체계와 경제의 체계,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 조세 제도와 교육 제도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정치적 선택들’에 따라서 인간 사회의 부와 권력 분배 양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일관된 주장은 18세기 말 이후로 비록 규모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평등을 향한 장기적인 흐름만큼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목이 ‘불평등의 역사’ 아닌 ‘평등의 짧은 역사’인 이유다.
다만 피케티는 자신이 평등을 향한 흐름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우쭐대자는 의도가 아닌 “단단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 평등을 향한 투쟁을 계속하자고 말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피케티에게 인류의 진보는 기정사실이다.
의료와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19세기 초 영아 사망률은 20% 내외였지만, 오늘날은 1% 이하다.
지금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교육과 문화적 혜택 역시 늘어났다.
19세기 초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10% 미만이 초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오늘날 “부유한 나라에서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오랫동안 “계급적 특권이었던 일이 점차 다수에게 개방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커다란 간극, 즉 “다른 차원에서의 불평등을 보다 심화시키기도 했다.
피케티에 따르면 “평등을 향한 여정은 계단식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일련의 기본적 권리와 재화에 대한 접근이 인구 전체로 서서히 확대되는 것은 순리다.
다만 그 과정에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불평등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런 불평등은 새로운 접근과 해법을 요구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한 정치적 평등의 여정이 그렇듯이, 사회·경제·교육·문화적 평등의 여정 또한 결코 끝나지 않고 항상 계속되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불공정에 맞선 투쟁과 반란의 결과다.
그렇다면 투쟁과 반란의 대명사 격인 혁명은 평등을 온전하게 가져왔을까? 반반이다.
프랑스 혁명과 뒤이은 1789년 8월 귀족계급의 특권 폐지는 평등을 향한 커다란 진보가 틀림없다.
하지만 귀족들은 “조세·정치·법률상의 특권을 완전히 상실했는데도 이후로도 오랫동안 “소유자 계급으로서의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프랑스 혁명기 부의 재분배 역시 제한적이었다.
아니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
왕국의 토지와 교회의 부동산 등이 배상 없이 국유화되었지만, 소작농들에게 땅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경매를 통해 다시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국가의 보호 하에 자신의 재산으로 최대 수익을 내기 위해 애쓰는, 사회적 반대급부 없이 오로지 개인의 축재에만 몰두하는 소유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20세기, 그중 1914년부터 1980년 사이를 ‘대규모 재분배’ 시기로 규정한다.
이 시기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스웨덴 등 서구 국가들은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 등에서도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현저히 감소되었다.
사회적 국가(Social State)의 강력한 부상, 소득과 상속에 부과된 강력한 누진세 도입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만 해도 모든 종류의 세금과 분담금, 징수금을 합한 총 세수가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서 국민 소득의 10% 이하였다.
하지만 1914~1980년 사이 이 비중은 미국에서 3배, 유럽에서는 4배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서구 대부분의 나라가 ‘조세 재정 국가’와 ‘사회적 국가’로 도약했다.
이 국가들은 누진세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피케티에 따르면, 누진세 덕에 불평등이 감소하고 소득과 자산의 사회 상층부 집중 현상이 완화되었다.
“세금 부담 증가와 부의 사회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집단적 수용성도 높였다.

2018년 10월30일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BR>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10월30일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1980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소유 불평등이 다시 증가했다.
미국은 반(反)노조 정책과 연방 최저 임금 붕괴가 하위 소득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업 고위 간부들의 보수가 급등하는 현상은 누진 세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피케티는 ‘공익을 위해서만 불평등을 허용하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소유의 재분배만으로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어렵다.
단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피케티가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산물인 탓이다.
피케티는 평등을 향한 흐름이 도저했음에도 ‘형식적 평등’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고 강조한다.
“출신에 상관없이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이론적 원칙만 설파할 뿐, 현실에 맞는지 확인·검증할 방법은 강구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 곳곳에 만연한 “젠더 차별, 사회적 차별, 종족-인종 차별을 철폐할 수 있는 지표와 절차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명토 박는다.
이 길은 저절로 오지 않는, “적극적인 시민들을 요구하는 길이다.
‘21세기 자본’의 자취가 짙게 배어 있지만, 경제학의 틀에 갇히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평등을 쟁취하는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출판평론가

논다는 건 정말이지 중요해…부모와 함께는 더! [ESC]

송호균의 목업일기│아이와 함께하는 목공

아이와 공방에서 보내는 한나절
냄비받침, 스툴, 책장 뚝딱뚝딱
‘함께 물건 만들기’ 추억 한뼘 더

송호균 필자의 큰아들이 목공방에서 톱질에 열중하고 있다.<BR>

송호균 필자의 큰아들이 목공방에서 톱질에 열중하고 있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선친은 늘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 세대의 많은 다른 어른들처럼, 그 방법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늘 바빴다.
아버지는 언제나 집 밖에 계셨고, 어머니 입장에서의 결혼생활은 자식의 눈으로 보기에도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던 것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두 분의 결혼생활은 내겐 늘 반면교사였다.
아버지는 부재했으며, 어머니는 불행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늘 서먹했던 건, 함께 가족이 보낸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말이든, 평일이든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프로 목수와 육아 아빠 사이

다른 삶을 꿈꾸게 했으므로, 반면교사 역시 교사임이 분명하다.
두 아들을 낳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온 가족이 제주로 내려온 것도 그래서다.
자랑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곳 제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내에게도, 꽤 오랜 시간을 살림만 해온 내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우선 아빠를 찾는다.
‘함께 논다’는 게 중요하다.
아, 노는 것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인간은 놀아야 한다.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제주에 살면서 오름도 오르고, 바다에도 뛰어들고, 관광지도 다니고, 시장통에서 할 일 없이 배회도 하면서 하여튼 매일매일 아이들과 놀면서 지냈다.

목공을 배우고 창업까지 하게 되자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놀이터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아빠 목공방’이라는 장소는,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아버지의 일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거기엔 마음대로 잘라볼 수 있는 나무도 있고 각종 공구도 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당장 일할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아빠가 여차하면 스마트폰도 쥐여주는 곳이다.
둘째가 틈만 나면 “아빠 목공방에 가자고 조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스승의 공방에서 일하던 시절, 유치원생인 아들을 처음 데려갔다.
쓱싹쓱싹 손사포질도 해보고, 작은 소품에 레이저각인도 해보며 소나무 냄비받침을 만들었다.
벌써 5년쯤 전의 일인데 두 아들의 이름이 각각 새겨진 두 개의 냄비받침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그 뒤로 틈날 때마다 아들을 데리고 하나둘씩 뭔가를 함께 만들었다.
접이식 스툴도, 작은 벤치, 수납장과 책장도 만들었다.

창업을 하면서 ‘프로 목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본업은 ‘살림하는 육아 아빠’라고 생각한다.
본업이 육아인 공방장의 일과가 궁금한가? 아침에 일어나 두 아이의 아침식사를 차린다.
씻기고, 입히고, 가방 챙기는 것도 봐주고 함께 길을 나선다.
두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게 주어진 근무 시간이다.
일이 없을 때는 한없이 한가하지만, 마감에 쫓길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일상적 정리정돈과 작업 후 청소는 기본 중의 기본일 터. 청소는커녕 손에 쥔 공구를 그대로 내던지고 퇴근하는 일이 잦다.
작업도 해야 하고, 아이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으니 다른 도리가 없다.
하교와 학원 라이딩 등을 책임지고 집에 가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함께 숙제도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놀다가 잔다.

방학이 되면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방학에 비하면 학기 중의 동선은 누워서 떡 먹기다.
우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라는 소중한 근무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저학년 때는 돌봄교실 등이 운영되지만, 이미 4학년인 큰아이는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는 학교에 내려주고, 큰아이와 공방으로 간다.
공방 바로 앞이 공립도서관이라 오전에 책 한권씩을 꼭 읽기로 했지만, 한 시간도 안 돼 쫄래쫄래 공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일이 다반사다.
“톱질할래요, 이거 잘라주세요, 저거 조립할래요. 말도 많고 요구도 많다.
아무리 ‘목공인의 아들’로 상대적인 경험이 풍부하다 해도 아이는 아이다.
계속 신경써주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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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자투리 톱질하는 아들

함께 제작한 수납장에 바니시를 칠하고 있는 둘째 아들.

함께 제작한 수납장에 바니시를 칠하고 있는 둘째 아들.

아이를 데리고 오전 중에 어찌어찌 작업을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고 나면, 둘째를 데리고 와야 한다.
여름방학 중에는 아예 물놀이 세트를 늘 차에 두고 곧바로 바다로 간다.
물질을 마친 해녀가 몸을 씻는다는 용천수탕이 있는 포구가 있다.
거기서 대충 씻고, 갈아입고 학원도 보낸다.
그러고 나면 다시 저녁일과의 시작이다.
평상시에는 오후 3시, 방학에는 점심때 퇴근해야 하는 목공방이 아직 망하지 않고 있으니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모든 건 공방의 실질적 주인이시자 제주에 와서도 직장생활을 이어가사,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 덕분이 아니겠는가.

짧은 여름방학은 그래도 양반이다.
두 달 동안 이어지는 겨울방학 동안 공방은 사실상의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하는 목표를 하나씩 정하는 게 낫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함께 침대를 짰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내가 바빠서 아직 목표를 정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 혼자 뭘 열심히 하고 있길래 봤더니 호두나무(월넛) 자투리 나무를 갖고 톱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들아, 그거 아빠가 나중에 쓰려고 모아둔 거 같은데. 음, 그래 괜찮아. 뭘 만들어 볼까?

비뚤비뚤 불규칙한 모양으로 잘린 호두나무 조각이 작업대에 뒹굴었다.
하나둘씩 조각을 맞춰보던 아들이 “예쁘지 않냐고 물어본다.
제법 그럴듯했다.
꼭 실용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도 그냥 ‘예쁜 물건’이라는 것도 있단다.
좀 더 유식해 보이는 말로는 ‘오브제’라고 하지. 그런 식으로, 좀 더 규모있게 제작하면 이름하여 ‘월넛 패턴 디자인 벽체’가 되는 거란다.

그래도 여기에 뭔가 ‘실용성’을 더할 순 없을까? 결국 아이가 구상한 ‘월넛 오브제’에 자석을 부착해 마그넷으로 완성하기로 했다.
적당히 샌딩하고 오일마감까지 마친 마그넷은 집 냉장고에 부착해 잘 쓰고 있다.
이렇게 아이와 공방에서의 한나절을 보내는 것이다.
아들과의 추억도 조금 늘었다.

이참에 ‘아이와 함께하는 목공체험’ 프로그램도 출시해볼까.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의미있는 물건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예 설계부터 함께하는 과정도 가능하겠다.
작은 소품뿐 아니라 본격적인 가구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뭔가 ‘물건을 만드는 일’은 아이도, 어른도 즐겁다.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오랫동안 생활공간에 두고 쓰는 물건이라면 더욱 그 의미가 클 것이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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