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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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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좀 달라졌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순둥이 같던 눈빛이 어딘가 부산해졌고, 다급히 무언가에 몰두하다가 이내 멍해지기도 했다. 이제 군 복무도 마쳤으니 곧 취업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겠거니 생각했으나 아들은 취업은커녕 인근에 얻은 원룸에 틀어박혔다. 그런 아들로부터 어느 날, 식당을 한번 해보려 한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우선 기뻤다. 뜬금없는 아들의 계획을 그다지 믿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말문을 연 아들과 만나 식당 집기라도 보러 가자고 약속을 잡았다.

살기 어린 눈빛을 뒤로하고

집 밖에서 아들을 마주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점심을 먹기로 하고 도착한 식당에서 아들은 큰 덩치를 잔뜩 웅크리고 불안한 눈빛을 굴렸다. 그러나 엄마 눈에는 어린 시절부터 불고기에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던 든든한 아들로만 보였다. 잘 익은 불고기를 밥 위에 놓아 주며 엄마는 모처럼 긴장을 풀었다. 너무 풀어버린 탓이었을까. 엄마는 내내 그 순간을 후회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쯤 엄마는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이 근처 카페에 모여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 친구들이 근처에 모처럼 모여 있대. 엄만 거기 좀 가봐야겠다. 우리 시장에 집기 보러 가는 건 다음에 가자. 알았지?”

그 순간 아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엄마는 나와의 약속은 중요하지 않지? 엄마는 항상 그러더라. 꼭 나를 배신하더라.”

그 순간 아들의 눈빛이 확 도는 것을 엄마는 보았다. 살기 어린 눈빛에 두려움이 왈칵 일었다. 엄마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른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거리에 거대한 아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엄마는 아들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발견한다.

‘배신자는 소중한 것을 잃어야 해. 집으로 간다.’

뒤이어 전송된 사진에는 마대자루 안에 손도끼와 해머 등 흉기가 들어 있었다. 집에는 몇년째 거동을 못 하는 남편이 혼자 누워 있을 것이었다. 엄마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112를 눌렀다.

“우리 아들이 제 아버지를 죽이려나 봐요. 집 주소가요.”

엄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아들은 집 앞 골목에서 체포되었다. 흉기가 든 마대자루를 소지한 채였다. 이걸로 뭘 하려고 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아들은 흥분한 채 “죽여버릴 거야”라고 답했다. 사건은 존속살해예비죄로 송치되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그때 너무 놀라서 신고를 하는 바람에, 세상에 자식을 신고하는 미친 에미가 어딨습니까.”

검사실에 들어올 때부터 눈물 바람이었던 피의자의 어머니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막무가내의 모성 앞에 짜증이 일었다.

“아니 이게 왜 어머니 잘못이에요? 신고하신 덕분에 빨리 검거가 되었기에 다행이지 진짜 위험한 일이었어요.”

어머니에게 설명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걔가 제 아빠를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죽이려고 했다니 말도 안 됩니다…. 존속살해… 그건 아니에요.”

피의자가 아버지를 죽이려 한다고 신고한 이는 다름 아닌 어머니가 아니었냐고 말하려다 꿀꺽 삼켰다. 대신 동석한 피의자의 누나에게 피의자의 정신과 진료 내역이 있으면 제출하는 것이 좋겠다고 안내했다.

제출된 의료 자료에 의하면 피의자는 일종의 강박증과 심한 우울증이 있었다. 피의자는 엄마가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떠났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있는 이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의 범위는 한계 짓기 힘들다. 과거의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와 같은 접근으로는 그 위험성을 다 소거할 수 없다. 피의자의 어머니는 면담 이후에도 매일 전화를 걸어와 “다 제 잘못입니다”로 시작되는 호소를 이어갔으나 나는 구성요건이 똑떨어지는 존속살해예비죄의 공소장을 이미 마음속으로 정리해두고 있었다.

집 앞에서 1시간 기다린 아들

단단했던 마음속 공소장에 균열이 생긴 것은 구속 만기를 앞두고 피의자의 어머니와 마지막 통화를 하면서였다. 존속살해예비죄로 기소되겠지만 그간의 사정은 모두 반영이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어머니가 더 이상은 울지 않고 힘없이 덧붙였다.

“그런데요 검사님…. 우리는 계속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잖아요. 남편이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아들이 죽이려고 했던 아버지로,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아들로…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법이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지만 무슨 방법이 없겠는지 다시 한번만 살펴봐주세요.”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나는 처음처럼 기록을 열고 다시 한번 살피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이미 틀을 갖춘 공소장을 허물고. 피의자와 엄마가 헤어진 시각은 오후 3시, 피의자가 흉기를 마대자루에 담아 들고 있다가 집 앞에서 검거된 것은 오후 6시다. 피의자의 동선을 다시 재구성해보니 그는 흉기를 휴대하고 집 앞에 도착하고도 한참 동안 집 앞 골목에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당시 집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집 안에는 혼자서는 거동을 못 하는 아버지만 누워 있는 상황.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마음먹었다면 범행은 이미 완성되었을 시간이다.

그제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어떤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흉기를 가방에 담아 들고 집 앞 골목에 서 있었던 1시간, 피의자의 눈길은 집 쪽이 아닌, 골목 입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 피의자는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겁지겁 달려와 다시 자신의 손을 잡아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피의자의 죄명을 존속살해예비가 아닌 특수협박죄로 바꾸어 기소했다. 나의 선택은 옳았을까.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면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가 끝내 끔찍한 결말로 치닫지는 않았을까. 이 사건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그의 위험성이 나중에라도 다른 사건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예비나 미수죄처럼 결과가 실현되지 않은 범죄에서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범의를 판단하는 일은 어렵다. 어떤 경우든 이것이 옳다는 완전한 확신에 이르지 못한다.

그 판단의 기로에서 내 마음의 축을 조금 기울인 것은 앞으로도 가족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그들의 남은 삶이었다. 어쩌면 무모하고 비논리적이고 모순 가득한 가족애라는 이름의 희망. 어떤 행위가 어떤 범죄를 구성하는지 판단하는 일에 그런 비정형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을 섞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의 일을 다룸에 있어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온당한가 하는 생각으로 오래 창밖을 응시하게 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두어달쯤 지났을 때 피의자의 누나가 검사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방금 법원에서 선고가 있었는데, 집행유예가 선고되어 동생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고 들뜬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검사님이 죄명을 바꿔주신 덕분이라며, 엄마는 너무 우느라 말을 못 해서 자신이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이제 무엇보다 동생이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가족들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누나는 그러겠다고 하며 고마운 마음에 홍삼세트를 하나 샀는데 3만원도 안 되는 작은 것이니 받아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홍삼은 어머니 드리세요. 어머니가 마음고생 많으셨어요.”

끊기는 수화기 너머로 여태 멈추지 못한 어머니의 긴 울음이 잦아들고 있었다.

부산지검 부장검사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9년차 검사 정명원이 일하면서 만난 세상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