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고받는 것들


겁 많던 내가 스케이트 타도록잘 넘어지는 법 가르쳐준 아빠이젠 내가 은행앱 사용 알려줘위험 막아주고 서로 북돋우며주고받는 것들은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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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을 나선 길이었다.
종일 비구름이 서성인 탓에 바닥이 제법 젖어 있었다.
나는 보도블록과 화단 옆에 생긴 자그마한 웅덩이들을 피하려고 바닥을 살피며 걸었다.
여름내 번갈아 피어나느라 바빴을 배롱나무꽃들을 보고 있는데 목소리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엄마,
나 좀 봐봐요!" 호들갑스러운 어조와 달리 굵고 걸걸한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웬 중년 남자가 노인용 스쿠터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남자는 자그마한 노인을 향해 오른손을 펴 보였다.
"엄마 이쪽! 밥 먹는 손!" 스쿠터 손잡이를 잡고 얼마간 전진하던 남자가 손을 떼더니 말했다.
"이렇게 손을 놓잖아? 레버를 딱 놓지? 그럼 멈추는 거야." 곧이어 왼손을 펴든 남자가 "왼손은 후진!"하고 외쳤다.
남자가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움직이는 동안 스쿠터가 앞으로 뒤로 이동했다.
강마른 체구의 노인 근처를 한 바퀴 길게 돌면서 남자가 말했다.
"엄청 쉽지? 이거 타면 엄마 병원도 시장도 다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스쿠터가 멈추자 노인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몹시 느린 걸음이었고,
벋정다리 때문에 상체가 심하게 출렁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아들이 스쿠터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엄마가 해 봐. 남자가 스쿠터에서 내리려고 하자 노인이 팔을 휘저었다.
"이거 하나도 안 어려워. 한 번만 해보자,
응?" 남자의 목소리가 달래듯 은근해지려는데 노인이 좀 더 크게 팔을 휘젓더니 말했다.
"아유,
거기 진흙 있다.
거기 발 아래 물 있어." 남자가 잘 보이지도 않는 웅덩이를 피해 내려서자 노인은 그제야 어깨를 펴며 말했다.

"그 까짓것. 내가 다 하지. 뭐든 금방 배운다,
나는."나는 괜히 근처를 서성이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스쿠터에 오른 노인은 한두 번 손잡이를 쥐었다 놓더니 앞뒤로 곧잘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핸들을 움직여 커브도 돌았다.
남자는 그런 노인의 곁에 바짝 붙어 노인보다 먼저 멈추고 전진하고 서둘러 휘어졌다.
그 모습이 아이에게 자전거를 처음 가르치며 전전긍긍하는 부모와 똑 닮아 있었다.
남자도 저런 식으로 네발자전거를,
보조바퀴를 뗀 두발자전거를 노인에게서 배웠을까. 그때도 노인은 남자를 주시하다 아유,
거기 돌 있다.
거기 바퀴 앞에 뭐 있어,
하면서 팔을 휘휘 내저었을까.아빠는 겁이 많은 내게 어린 시절 자전거 대신 롤러스케이트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허우적대다 뒤로 빠진 다리 때문에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때 우리는 어땠더라. 아빠는 나를 조금도 한심해하지 않았다.
넘어질 때 잘 넘어지기만 하면 다 괜찮다며 낙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나의 아빠였으니까. 이후로 나는 힘차게 내달리지는 못하지만 제법 잘 넘어지는,
그래서 더욱 잘 일어서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노인이 된 부모 옆에서 은행 애플리케이션 사용법과 의료기기 사용법을,
보이스피싱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엄마,
이것 좀 봐봐요. 이렇게 해외에서 오는 문자는 읽지도 말고 삭제해버려." "아빠,
허리가 결리고 아플 때는 이거 5번을 눌러서 써야 되는 거야. 어디 한번 해봐요."하나도 어렵지 않아,
일단 한번 해봐,
발밑 조심해야지. 우린 그런 말들로 서로를 북돋아주고 아주 사소한 위험까지 경고해주며 그동안 살아왔을 것이다.
언제든 손 뻗기 좋은 위치에 서서 서로를 지켜보며,
세상 사는 방식과 편리를 위한 용법을 일러주면서 말이다.
우리가 주고받은 것들은 돌봄 이상의 무엇이겠지. 전부 다 돌고 도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롤러스케이트가 타고 싶어졌다.
[안보윤 소설가]

 나 혼삶, 그리고 불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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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변의 법칙'(모건 하우절 저)이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저자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변할' 그 무엇보다,
오히려 과거에 이어 지금도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을 던지는데,
"미래에 너무나 당연해질 현상이나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포함되어 있다.
통계청장으로 업무를 하다 보니 새롭게 생산되는 통계를 가장 처음으로 만난다.
이틀 전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추계(2022~2052)'도 그중 하나다.
이 통계에 기반하여 저자의 질문에 답을 해보면 '누구나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가구 수는 2022년 2166만가구에서 2041년 정점을 찍고 줄어들어 2052년에는 2328만가구가 될 전망이다.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세분화해 보면,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비중이 2022년 34.1%에서 30년 뒤에는 41.3%로 늘어나 열 집 중 네 집이 혼자 살 전망이다.
2인 가구도 35.5%까지 증가해 1~2인 가구를 합치면 2052년에는 76.8%,
즉 우리나라 가구 중 4분의 3가량이 1인 가구이거나 1인 가구가 될 가능성이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평균 가구원 수도 1.8명으로 줄어든다.
이제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면 점차 효용성을 잃어갈 것으로 보인다.
주택 규모를 생각해보더라도 대형 아파트 수요가 과연 30년 뒤에도 현재와 같을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1인 가구의 연령을 살펴보면 좀 더 극적인 변화가 보인다.
30대 이하,
40~50대,
60대 이상으로 나누어 보면,
2022년에는 1인 가구 중 30대 이하가 36.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2052년이 되면 60대 이상 비중이 60.2%로 급증하는 반면,
30대 이하는 오히려 18.1%로 줄어든다.
1인 가구의 연령대가 이처럼 달라진다면 국내 산업의 생태계도 크게 변할 것이다.
1인 가구에서 주로 먹고 소비하는 제품이 달라지면 기업들도 성공을 위해서는 발 빠르게 제품군을 조정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1인 가구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경우도 있겠으나 사별 등 비자발적인 경우도 있다.
청년부터 노년층에 이르는 다양한 1인 가구의 삶을 분석해 생애주기별로 다층적 정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통계청은 관련 정책이 세심하게 수립될 수 있도록 1인 가구의 주거 상황,
소득·자산,
사회적 관계망 등을 포함한 통계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이 중 혼자 사는 사람의 우울감 경험률(12.1%)이 2인 이상 가구에서 생활하는 사람(7.1%)보다 높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곧 한가위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고향을 찾아 떠나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홀로 지내야 하는 분들의 외로움이 가중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과 나눔이 필요한 때다.
따스한 마음과 배려가 함께하는 사회라면 혼자여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이번 한가위에 생각나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형일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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