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시장과 함께 성장하는 비과학적 신화 이야기



커피에서 시작하는 팩트체크

(글: 서울대학교 이승훈 책임연구원)

 

1828년,
미국의 작가인 워싱턴 어빙이 쓴 책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삶과 항해(A History of the Life and Voyages of Christopher Columbus)>은 발간 이후 19세기말까지 총 175개의 판본이 출판되었다.
 사실,
이 책은 콜럼버스의 전기물(Biography) 보다는 전기소설(biographical novel)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이기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들어갔고,
주인공인 콜럼버스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받아들인 근대 지식인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당대 관료와 종교인들을 지구가 원판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콜럼버스가 항해를 하던 시절에는 천동설과 지동설이 대립하는 초기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었다.
당시 지식인들이 콜럼버스의 항해를 반대했던 이유는 콜럼버스가 자신에게 유리한 관측치만을 사용하여 항해거리를 계산해 당시의 일반적인 계산에 따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항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높은 책의 인기에 힘입어 아직도 중세 지식인들이 지구가 원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플랫 에러(Flat Error)가 존재할 정도이다.
1930년대에 밝혀진 시금치 속의 철분,
1970년대에 밝혀진 혀의 맛지도와 함께 잘못된 것이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운 신화의 예시가 되고 있다.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들 중에는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인 것처럼 확산되고 있는 신화들이 있다.
ⓒgettyimagebank


커피와 관련해서도 이렇듯 진실인 것처럼 확산되고 있는 신화들이 있다.
오늘 칼럼에서는 오래된
커피 신화인 
커피는 석유 다음인 두 번째로 교역량이 높은 물품이다’
 라는 내용,

커피 찌꺼기에 대한 환경적인 우려에 따라
커피 찌꺼기 재활용과 관련된 
커피는 99.8%가 버려지고 우리는 0.2%만 추출한다’
 라는 내용,
그리고 2022년부터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일인당
커피 소비량은 367잔으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이다’
 라는 내용까지 세가지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화 1.
커피의 교역량

처음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이제는 조금씩 수정되고 있는 신화로,
 
커피는 석유 다음인 두 번째로 교역량이 높은 물품이다’ 
라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커피 업계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Uncommon Grounds: The History of Coffee and How It Transformed Our World>(Mark Pendergrast)라는 확실한 참고자료가 있다.
1999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그 인기에 힘입어 2001년에 추가 인쇄를 하고,
2010년에 일부 내용이 수정된 2판이,
2019년에 다시 일부 내용이 수정된 3판이 나오기도 했다.

커피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힘입어 이 책을 본
커피 애호가들은 정확한 교역량에 대한 수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에 대한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2010년 2판이 나올 때,
저자 서문에서
커피가 석유 다음으로 2위라고 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 라는 고백을 한다.
하지만 2판이 나오기 전,

커피와 관련된 대형 행사들에서 그 시작을 알리는 멘트로 너무도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말이었기에 수정 이후 10년 이상이 지난 아직까지도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가장 사실확인에 민감해야 할 SCI급 과학논문에서도
커피를 다룰 때 여전히 해당 책을 인용하면서 첫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커피의 교역량을 정확히 나타내기에 석유가 포함된 전 산업분야를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에 2023년 10월 기준 공개된 FAOSTAT의 2021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식품 분야에 한정하여 수출 양으로
커피는 20위 이내 순위목록에 없으며,
수출 가치로 17위에 올라있다.
밀,
옥수수,
콩 쌀,
팜오일과 같은 식품들은 양으로나 가치로나 모두
커피보다 수출량이 높다.

 

신화 2.
커피의 추출 수율

다음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커피 업계에서도 새롭게 등장한 신화로,
 ‘
커피 1잔에 사용되는
커피 콩은 고작 0.2%,
나머지 99.8%는 버려진다’ 
라는 내용이다.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내릴 때
커피를 추출한 이후에 처음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양의
커피찌꺼기가 남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커피찌꺼기를 재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그 의도는 충분히 장려되어야 하는 점이지만,
이 과정에서 99.8%라는 수치가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이 우선이지,
수치가 정확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다양한 언론들과 케이블,
지상파 방송들까지 구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썼던 수치라는 이유로 검증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최근
커피찌꺼기를 이용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들이 별 생각 없이 잘못된 수치를 그들의 특허에까지 사용하고 있어,
중요한 발명에 대한 수치적 오류로 인한 권리보호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커피찌꺼기를 재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그 의도는 충분히 장려되어야 하는 점이지만,
이 과정에서 99.8%라는 수치가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gettyimagebank

이미,
1950년대부터 Coffee Brewing Control Chart(BCC)라는 이름으로
커피 산업 종사자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그래프를 보면,
가로축은 추출 수율(Yield),
세로축은 총 용존 고형물(Total Dissolved Solids,
TDS)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에 최적의
커피 추출 조건에 해당하는 추출 수율은 20%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로 우리가
커피를 내릴 때 일반적으로 추출하는 원두의 성분은 약 20%로,
0.2%의 100배에 해당한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0.2%라는 수치가 시작되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필자가 추측해 봤을 때 100% 중 20%를 1 중 0.2로 표기한 데이터에 다시 %를 붙여 0.2%가 되고,
이를 다시 100%에서 빼 보니 99.8%가 버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언론들 뿐 아니라 지자체나 정부 관련 재단,
대기업 등에서도
커피 재활용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99.8%가 버려진다는 이야기를 검색해 보니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로 검증된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화 3. 국가별 1인당
커피 소비량

마지막으로,
2022년부터 시작되어 최근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는 신화가 있는데,
 ‘한국의 일인당
커피 소비량은 367잔으로,
프랑스의 551잔에 이어 세계 2위이다’ 
라는 이야기이다.
도심에는 한 집 걸러 카페가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한 건물에 두 개 이상의 카페가 입점해 있기도 한 만큼,
카페문화의 성장과 함께 우리나라의
커피시장은 급속도로 증가해왔다.
급격히 증가한 사실을 기반으로,
세계 2위라고 하니 성장한 줄은 알았는데,
그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23년 10월 기준 공개된 FAOSTAT의 2021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국은 양으로 12위,
가치로 11위의
커피 수입국이다.

FAOSTAT의 2021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국은 양으로 12위,
가치로 11위의
커피 수입국이다.
ⓒgettyimagebank


커피를 조금이라도 배웠던 사람들에게는 일인당
커피 소비량이 가장 높은 국가에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자리하고 있음은 너무도 잘 알려진 상식이다.
2020년 Statista의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순서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으로 나오고 있으며,
프랑스는 15위에 머물러있다.
자료 조사의 방식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까의 문장에서 프랑스가 1위,
한국이 2위라는 내용과는 너무도 차이가 난다.
어떤 자료가 맞는 것일까?

운이 좋게도,
마지막 신화에 대해서는 필자가 정확히 해당 자료가 어디에서 생성되었는지를 정확히 찾을 수 있었다.
2022년 2월 20일,
머니투데이에서
커피와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중국
커피 시장의 성장과 관련된 뉴스였다.
이 뉴스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중간에 중국의 현재
커피 시장이 아직 성장 초기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2020년 유로모니터의 국가별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 데이터를 이용해 그래프를 그렸는데,
내용상 하고자 하는 말이 중국의 시장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
한국,
미국,
일본,
전세계 평균,
그리고 중국의 데이터만 가져와서 그래프를 그렸다.
그랬더니 이 그래프만을 보고 평균 551.4잔의 프랑스 다음으로 367잔의 한국이 일인당
커피 소비량 세계 2위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한국 프랑스 367 551’이라는 키워드로 포털에서 검색을 해 보면 2022년 상반기까지
커피와 관련된 기사는 위에 인용한 머니투데이의 기사 하나밖에 없으나,
2022년 하반기부터 한국이 세계 2위라는 내용이 담긴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며 다양한 언론과 지상파 뉴스에까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맞춰 애초에 사실확인 보다는 흥미위주의 블로그 등에서는 이러한 기사들을 인용하며 훨씬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3년은 ChatGPT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대중의 플랫폼이 구글 등의 포털에서 대중 친화적 언어모델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해이다.
이 과정에서 전문적인 영역으로 갈수록 ChatGPT의 답변에 오류가 많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형언어모델은 사실확인을 하는 방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언젠가 이러한 약점도 극복하는 인공지능이 소개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나은 점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단순한 검색결과의 나열이 아닌 사실확인을 통한 제시를 들 수 있도록,

커피 업계에서 신화들을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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