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정치 9단도 어려운 난제…한동훈호 '특검 딜레마'

  시작부터 정치 9단도 어려운 난제…한동훈호 '특검 딜레마'

‘정치인
한동훈’의 시간이 ‘김건희 특검법’ 정국과 맞물려 시작된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26일 국민의힘 전국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식 임명된 바로 이틀 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을 강행 처리할 계획이다.
여권에선
한동훈 비대위가 시작부터 정치 9단도 풀기 어려운 난제에 맞닥뜨리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사진은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는 모습. 뉴스1

일단 폭풍우가 닥치기 전 ‘
한동훈 효과’는 여권에 긍정 작용했다.
25일 공개된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 정당 지지율 조사(21~22일)에서 국민의힘은 전주 대비 2.3%포인트 오른 39.0%, 민주당은 3.1%포인트 내린 41.6%를 기록해 격차(2.6%포인트)가 오차범위(±3.1%p) 내로 좁혀졌다.
9개 월만의 가장 작은 격차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하지만 출범과 동시에 김건희 특검법을 직면할 한 전 장관의 행보는 가시밭길에 가깝다.
수직적 당정관계 쇄신, 개혁 공천 등 한 전 장관의 정치력을 시험할 무대가 특검 정국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①찬성 여론 어떻게 잠재우나=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특검법을 밀어붙이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다는 게 여권 입장이다.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4일 KBS에 출연해 (특검법은) 총선을 겨냥해 흠집 내기를 위한 의도로 만든 법안”이라고 했다.
이처럼 여권은 특검은 악법이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2009년~2012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죄에 김 여사가 가담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특검법 내용에 대해선, 이미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2년 가까이 수사했지만 김 여사 관련 혐의를 전혀 밝히지 못했다는 점을 주요한 반대 논거로 든다.
민주당이 특검법을 지난 4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240일(8개월)간의 숙려기간을 거쳐 본회의 자동 상정이 가능하게끔 스케줄을 짠 것 역시 총선에 악용하기 위한 의회 폭거”(이철규 의원)라는 시각이다.
2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비공개 고위 당·정·대 회의에서도 조건부 수용 불가론을 비롯한 특검법 수용 불가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김건희 여사. 사진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서 귀국하기 전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특검법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특검법 찬성’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 반대’는 60%를 웃돌고 있다.
명품백 수수 의혹 등으로 김 여사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시선이 더 많아진 탓이다.
이 때문에 한 전 장관이 대통령 거부권은 요청하되, 이와 동시에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설치 등을 건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특검과 명품백 의혹을 분리해, 명품백 의혹은 국민권익위나 검찰에 조사 의뢰한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여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법’은 내용·방식·시기 등에서 철저히 기획된 정쟁용 특검이기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지만, 김 여사와 관련된 다른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해야 국민도 어느정도 수긍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정의당 장혜영 원내수석부대표가 국회 의안과에 김건희 특검법·50억 클럽 특검법 신속 처리 안건 지정 발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당정 불협화음 터지나=특검 해법을 둘러싸고 대통령실과의 미묘한 의견 차이를 조율해야 한다는 점도 한 전 장관의 과제다.
한 전 장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인 동시에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총선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희숙 전 의원은 지난 19일 SBS라디오에서 한 전 장관의 딜레마는 ‘어떤 식으로 아름다운 뒤통수’를 칠까’다.
지금 머리가 터질 것”이라고 했다.
이미 한 전 장관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을 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 만들어진 악법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일각에선 ‘총선 후 김건희 특검 수용’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여권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법 자체가 반헌법적 선거공작인데, 한 전 장관이 이를 명확히 지적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시기의 부적절함을 꺼내 대통령실이 상당히 당혹해 했다”고 말했다.
자칫 특검의 실시 시기만이 쟁점으로 부각되면 특검의 부당성을 설파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도 한 전 장관 발언에 대한 당내 해석이 분분했다”며 수직적 당정관계는 극복해야 하지만 반대로 ‘당정 파열’은 더 최악의 경우”라고 전했다.
③공천쇄신 가로막나=거부권 행사 이후도 변수다.
재의결은 의결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허들이 높아 통상 폐기 수순이었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등은 국회 재표결 과정에서 부결됐다.
오는 28일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돼 정부로 송부되면 윤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법령상 재의결 시한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즉 국민의힘 상황에 따라 민주당이 재의결 시점을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동훈 비대위’는 내년 초 공천관리위를 구성하고 실질적인 공천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미 한 전 장관은 보수 정당 최연소(50) 비대위원장으로 개혁 공천을 주문받고 있다.
이에 따라 개혁 공천이라는 명분 하에 영남권이나 일부 중진 의원이 컷오프(공천 탈락)될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이런 '공천 학살' 시기에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공천에서 탈락한 국민의힘 의원은 실제 본회의에 불참하거나 아예 찬성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게다가 재의결 표결은 무기명 투표다.
수치상으론 국민의힘에서 15~20명가량 이탈하면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이탈표를 단속하려 공천 작업에서 눈치를 보게 되면 ‘
한동훈 비대위’의 개혁성은 금이 가게 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한 전 장관이 첫 정치 행보부터 난제를 맞이하게 됐다”며 데뷔전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정치인
한동훈’의 앞날도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29일 출범을 목표로 진행 중인 비대위원 인선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합류가 유력하다.
이 교수는 지난주에 한 전 장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거절할 군번도 아니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싸가지 없는' 한동훈

강준만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 강조 태도가 중요정치는 '구경꾼' 20%가 결정하는 싸움이기 때문'
한동훈 달변' 미화에도 '싸가지 없다' 인식 확산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거취 묻는 당연한 질문에도 끝까지 '비아냥 화법'국힘 20‧30대 여성층서 굉장히 인기 집단최면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호경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편집인

김호경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편집인

사실 오늘 장관님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좋은데요, 많은 국민이 궁금해하잖아요. 올라와 있는 법들도 있고 할 일도 많이 계신데 거취와 관련해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여기서 말씀하실 내용은 아닌 거 같고요.

오늘이 마지막 상임위이신가, 아니면 다음주가 마지막 상임위이신가 궁금해하는데….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

왜 좀 물어보면 안 됩니까? 여기(국회 법사위) 나와 있는 법들뿐만 아니라 현안들이 무거운 게 굉장히 많거든요. 실제로 산업부 장관도 3개월 만에 교체되고, 국정이라는 게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야 경제도 잘 굴러가는 것 아닙니까. 법도 결국에는 법적 안정성이란 게 매우 중요한 건데, 장관님께서 아까 답변하시고 약속하시고 한 것들이 많은데 좀 잘 챙겨야 하지 않나, 이런 차원에서 국민적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BR>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거취를 묻자 한 장관이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라고 답하고 있다.<BR> JTBC 현장 화면 갈무리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거취를 묻자 한 장관이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라고 답하고 있다.
 JTBC 현장 화면 갈무리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돼…거취 묻는 당연한 질문에도 비아냥

지난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사이에 오간 질의와 응답이다.
한 장관이 집권여당의 총선 업무 전반을 지휘하고 당 대표 권한을 행사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옮긴다는 보도가 무수히 쏟아지던 시점이라 야당 의원이 거취를 물은 건 하등 이상할 게 없고 자연스러웠다.
많은 국민의 궁금증을 선출직 의원이 대신 물은 것이기도 하거니와 법무부를 담당하는 소관 상임위 위원으로서도 장관이 바뀌는 문제는 당연히 질문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시비조로 공격하거나 뭔가 거친 언사를 쓴 것도 아니고 위에 소개한 발언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 의원은 오히려 과하다 싶을 만큼 공손한 경어체로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며 완곡하게 거취를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관은 특유의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와 표정으로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라고 쏘듯이 대꾸했다.
김 의원이 모멸감을 이기지 못하고 즉각 왜 말을 그따위로 하느냐고 화를 내며 따졌다면 또 한 번 한 장관과 야당 의원 간의 짜증스러운 설전이 이어졌겠으나 김 의원은 차분하게 자신이 왜 질문을 했는지 취지를 설명한 뒤 곧바로 '행정기본법'에 관한 정책질의로 넘어갔다.

한 장관의 이날 답변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불과 이틀 뒤인 21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고 법무부를 떠나게 되면서도 한 장관은 국회 상임위 출석 마지막 날까지 기어이 '비아냥 화법'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1년 7개월간 지내면서 원내 1당인 민주당에 대해 '전투 모드'로 일관하던 한 장관은 이제 잔망스러운 어조로 상대를 쏘아붙이고 야멸차게 깔아뭉개는 태도가 완전히 습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BR>한동훈 법무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BR> 2023.12.19. 연합뉴스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한동훈 법무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12.19. 연합뉴스

언론들 '
한동훈 달변' 미화에도 시민들 사이엔 '싸가지 없다' 인식 확산

김건희 특검 악법 몰카 공작 점입가경…민주당이 시켜 기자 모욕도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 발언은 주요 매체가 대부분 기사화하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숱한 댓글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싸가지'다.
그간 어용 언론들이 '
한동훈의 달변'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사이 일반 시민들에겐 '싸가지 없다'는 인식이 갈수록 확산되고 고착돼 왔던 것이다.

정의당이 (김건희) 특검을 추천하고 결정하게 돼 있고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게 돼 있는 독소조항까지 있다.
무엇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을 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다.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 의혹은) 민주당이 나한테 꼭 그런 거 물어보라고 여러 군데 (언론에) 공개적으로 시키고 다닌다 그러던데, 이걸 물어보면 왜 내가 곤란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이야말로 자기들이 이재명 대표 옹호하는 데 바쁘니까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 내용을 보면 일단 몰카 공작이라는 건 맞지 않나. 몰카 공작의 당사자인 '서울의소리'가 고발했던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진행돼 처리될 것이다.

역시 한 장관이 19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향해 쏟아냈던 이 발언들도 한 장관의 뻔뻔한 태도와 맞물려 비판 여론을 고조시켰다.
우선, 김건희 특검법엔 '대통령이 소속된 교섭단체를 제외한 교섭단체와 원내정당이 대통령에게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이 특검 후보자를 2명 추천할 수 있고 이 중 1명을 윤석열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니 한 장관 주장은 여러 가지로 사실관계가 틀렸다.
여당의 추천권을 배제한 것은 특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과거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특검' '드루킹 특검' '최순실 특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건희 특검법 12조엔 '특별검사 또는 특별검사의 명을 받는 특별검사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하여 피의사실 외의 수사 과정에 관한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은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12조)'과 '드루킹 특검법(12조)' '최순실 특검법(12조)' 등에도 똑같이 담겨 있었다.
특히 2016년 '최순실 특검' 때 이규철 특검보가 진행했던 언론 브리핑은 연일 국민들에게 각광 받았고 한 장관도 그 특검팀 일원이었기 때문에 독소조항 운운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자가당착이다.

김건희 특검법은 올해 초부터 추진돼 지난 3월 발의됐으나 국민의힘이 거세게 반대하는 바람에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 국회법에 따라 240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를 민주당이 선전·선동을 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견강부회다.
여당이 법안을 일찍 수용했다면 특검 수사는 진작에 끝났을 것이다.

취재 윤리를 둘러싼 논란과는 별개로 김건희 씨가 사전에 최재영 목사가 보낸 명품백 선물 사진을 확인한 뒤 방문을 허락했으며 면담 때 실제 이 디올 제품을 받아 챙긴 게 사실인데도 '몰카 공작'으로 물타기를 하면서 악착같이 이재명 대표를 들먹이고, 윤 대통령 부부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아니라 거꾸로 '서울의소리'를 수사해 처벌할 것처럼 구는 건 본말이 전도된 적반하장이다.
특히 민주당이 나한테 꼭 그런 거 물어보라고 시키고 다닌다 그러던데라고 한 대목에선 상당수 기자들까지 불쾌감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궤변과 억지 주장들이 한 장관의 거들먹거리는 말투 및 표정 등과 어우러져 '싸가지'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19일 오후 국회를 찾은 <BR>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재진 앞에서 질의응답을 하기 전 이어폰을 빼고 있다.<BR> 2023.12.19. 연합뉴스

19일 오후 국회를 찾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재진 앞에서 질의응답을 하기 전 이어폰을 빼고 있다.
2023.12.19. 연합뉴스

강준만 <싸가지 없는 진보>가 강조하는 '태도'의 중요성

정치와 선거는 '구경꾼' 20%가 결정하는 싸움이기 때문

한 장관은 이쯤에서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싸가지론'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강 교수는 한 장관 못지않은 투철한 반민주당 성향에 조선일보도 반색할 정도로 보수화하고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도 비교적 우호적인 인물이니 한 장관도 그에게 충분히 호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

강 교수는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싸가지'라는 말이 '예절' 이나 '버릇'이라는 단어만으론 포착할 수 없는 독특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고 했다.
싸가지는 주로 인간관계나 집단에서 잘났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 쓰이는 말로, 일반적인 공중도덕과 관련된 예절이나 버릇이라기보다는 인간관계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거나 그 밖의 무례, 독선, 오만, 도덕적 우월감 등을 지적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이라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교수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

정치권에서는 반대편 세력의 어떤 행위에 의분을 느낄 때 싸가지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 나아가 싸가지 없이 내지르는 게 지지층에게 후련함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와 선거가 '20%가 결정하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치에선 대체로 보수-진보의 고정 지지층이 각자 30%씩 존재하는데, 이들 고정 지지층은 웬만해서는 표심을 바꾸지 않는다.
나머지 40% 중 20%는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할 생각이 없다.

나머지 20% 유권자가 관건인데, 이들은 정치세력 그 어느 쪽에 분노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보수의 분노'나 '진보의 분노' 내용에 공감하기보다는 분노의 표출 방식, 즉 태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다.
바로 여기서 싸가지가 문제가 된다는 게 강 교수 글의 핵심이다.
강 교수는 미국 정치학자 엘머 E. 샤츠슈나이더의 다음과 같은 고전적 진술을 인용한다.

모든 싸움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싸움의 중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소수의 개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광경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구경꾼들이다.
구경꾼은 일반적으로 소수의 싸움꾼들보다 몇백 배나 많기 때문에 놀랄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떤 갈등이든 그것을 이해하려면 싸움꾼과 구경꾼의 관계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일은 대개 구경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여야 간에 격한 공방이 벌어질 때 어차피 논쟁을 통해 상대 진영을 설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중요한 건 '논쟁의 구경꾼들'에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구경꾼들은 논쟁의 콘텐츠에 관심을 갖겠지만, 일반 유권자 수준의 구경꾼들은 태도나 싸가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즉, 싸가지라고 하는 형식이 내용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강 교수가 이 책을 냈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최대 약점이 바로 싸가지 문제였고, 고질적인 '싸가지 결핍증'이 결국 대선, 총선,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강 교수는 집요하게 논증했다.
이를 두고 진보 죽이기를 위한 교묘한 음모론 등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 인사들에게 쓴 약으로 작용해 이후 대중적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중앙일보 사설 '<BR>한동훈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 비대위원장 잘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중앙일보 사설 '
한동훈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 비대위원장 잘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한동훈 화법에 보수 매체도 부적절 우려 표하기 시작

그렇다면 '총선 필승 카드'로 등판한 한 장관의 평소 언동은 여당에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총선 전초전'으로 불리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정권 심판론'과 '김건희 특검' 지지세가 민심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데도 '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지금까지와 같은 '깐족 화법'을 계속 구사하면 중도층과 부동층 인식에 어떻게 각인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민주당 측에 무려 180석을 헌납하고 역대급 완패를 기록하기까지의 궤적을 살펴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오죽하면 최근엔 친윤‧보수 매체들조차 한 장관의 화법에 슬슬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데, 중앙일보의 <'여의도 사투리 안 쓴다' 못박은
한동훈…속시원 vs 거칠다> 기사와 <
한동훈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 비대위원장 잘할 수 있을까> 사설, 문화일보의 <팬도 많고 적도 많은…
한동훈의 '논리+직설' 脫여의도 화법> 기사 등에서 이미 상당한 불안감이 읽힌다.

이 '싸가지'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요소로 로고스, 파토스보다 중시했던 '에토스'라는 측면과도 연결된다.
쉽게 말해 화자(話者)가 비호감이고 밉상이면 그가 어떤 논리를 펼쳐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신뢰를 못 준다는 얘기다.
한 장관은 '구경꾼'에 속하는 중도층‧무당층에게 이 에토스 면에서 지속적으로 점수를 잃어왔다.

여론조사꽃의 <BR>한동훈 장관 호감도 조사 자료
여론조사꽃의 
한동훈 장관 호감도 조사 자료

20‧30대 여성층에서 굉장히 인기가 높다는 허황한 뇌피셜

조각 같은 외모? 아이돌급 인기? 어용 언론들이 잔뜩 늘어놓은 '한비어천가'에 취해 한 장관 스스로는 자신의 인기가 높다고 믿고 있을 수 있다.
급기야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한동훈 장관이 단순하게 보수 지지층에만 인기가 있는 게 아니라 20‧30대부터 상당히 여성층, 우리 국민의힘에 비판적인 여성층에도 굉장히 인기가 높다고 공개적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여권의 집단최면 증세가 투영된 유 의원 발언을 두고 각종 여성 커뮤니티에서 어떤 반응이 분출했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이 칼럼에는 그 혐오 표현들을 차마 옮길 수 없다).

실증적인 수치 또한 '
한동훈 젊은 여성 인기론'의 허구성을 입증한다.
여론조사꽃이 지난 7월 12일부터 이틀간 총선 현안과 관련해 서울 마포을 선거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19명을 대상으로
한동훈 장관 호감도 조사(응답률 19.6%, 오차범위 ±4.3%p)를 했을 때 '호감이 간다'는 35.4%,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54.4%로 집계됐다.
무당층(지지 정당 없음)에서는 '호감' 25.0%, '비호감' 50.7%로 나타났으며 중도층에서도 '호감' 31.4%, '비호감' 61.5%로 '비호감'이 '호감'에 비해 2배가량 높았다.

특히 연령대+성별 조사에서 18~29세 여성 중 '호감'은 12.9%에 불과해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30대 여성과 40대 여성도 '호감' 비율이 각각 20.0%, 14.9%에 그쳐 젊은 여성들에게 오히려 유독 인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50대 여성 32.1%, 60대 여성 61.0%, 70세 이상 여성 70.5%로 고령층으로 갈수록 '호감' 비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여론조사 꽃이 10월 27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만약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귀하의 지역구에 출마한다면 지지하겠느냐'는 조사(응답률 11.2%, 오차범위 ±3.1%p)를 했을 때는 '지지할 것이다' 33.5%,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59.5%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응답이 '지지할 것'보다 더 많았다.

연령대+성별 조사에서 역시 18~29세 여성 중 '지지'는 16.8%에 불과했고, 30대 여성과 40대 여성도 '지지' 비율이 각각 21.5%, 22.2%에 그쳤다.
그러니 한 장관이 20‧30대 여성층에게도 굉장히 인기가 높다는 유상범 의원 발언이 얼마나 허황한 '뇌피셜'인지 알 수 있다.

여권에서는 여론조사꽃의 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싶겠지만 지난 10월 11일 실시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한국갤럽 등이 생뚱맞은 정당 지지율 추이를 발표할 때 선거 결과를 단 1%p 차이로 족집게처럼 맞춘 유일한 여론조사 업체가 바로 '꽃'이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국갤럽과 마찬가지로 자동응답(ARS)이 아닌 전화면접 조사였고 응답률도 10% 기준을 만족시켰으니 그 정확성은 객관적으로 검증이 된 상태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론조사꽃의 <BR>한동훈 장관 지역구 출마 지지도 조사 자료

여론조사꽃의 
한동훈 장관 지역구 출마 지지도 조사 자료

'아무 말 대잔치' 끝없는 어록과 기만적인 '서초동 사투리'

한 장관은 지난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를 원했다면 저를 쓰지 말았어야죠라고 짐짓 호기롭게 말한 바 있으나 윤석열 정권에서는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에는 '사실이면 잘못'이라는 전제하에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사실이라 해도 뭐가 문제냐'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말도 했는데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에 대한 한 장관의 태도가 딱 그렇다.

참여연대를 겨냥해 왜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정치단체가 중립적인 시민단체인 척하는지 모르겠다 주전 선수가 심판인 척해서 국민을 현혹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 발언은 그대로 '
한동훈 검찰‧법무부'에 적용되는 조롱이었다.
검찰이 방만하게 사용한 특활비에 대해 영수증을 오래 보관하다 보니 잉크가 휘발된 것 2개월마다 자료를 폐기하는 게 오히려 원칙 지침이라기보다 그 당시 상황에서 월별로 폐기하는 관행이 있었다 등 한 장관의 '아무 말 대잔치'식 어록은 끝이 없다.

'여의도 사투리'보다 더 기만적이거나 난폭한 '서초동 사투리'를 철저히 내면화한 채 정치판에 뛰어든 그의 화법이 과연 국민 다수에게 어떻게 비칠까. 국민의힘에서는 한 장관을 '이순신 장군'에까지 비유하는데(해당 발언을 한 유흥수 상임고문은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첫 치안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기왕 그렇게 위기의 여당을 구할 성웅으로 간주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마디 보탠다.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之理).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다.

<BR>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에게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BR> 2023.12.21.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에게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2.21. 연합뉴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문화 모꼬지]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는
한동훈

권창호 만화가

권창호 만화가

시나리오 작법 첫 수업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캐릭터를 규정하는 것은 대사가 아니라 행동’이란 가르침이다.
일테면, 사랑에 빠진 남자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녀 앞에만 서면 얼굴을 붉힌다거나 되도 않은 핑계를 만들어 그녀 앞에서 얼쩡댄다거나 하는 식으로 소소하게 드러나는 그의 행동에 시청자(혹은 독자)는 더욱 감정이입하게 되고 드라마가 풍성해진다는 뜻이다.

이 경구(警句)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도 비슷하게 인용된다.
It’s not who I am underneath, but what I do that defines me.” (자신을 나타내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 영화에선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내적 갈등으로 힘들어하던 배트맨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장치로 쓰인다.

흔히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말’이란, 그냥 입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 혹은 국민을 향한 ‘설득’을 의미한다.
대화와 타협 또한 ‘말’이다.
어느 정치인이 나는 청렴하다”라고 백날천날 떠들어봤자 명품백 받아 챙기는 행동 하나에 앞선 말들은 허무하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또 우린 일상생활에서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인간 유형을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대로 ‘언행일치’란, 믿음직한 사람을 나타내는 여러 표상 중 하나이다.

근래 SNS에서 재밌는 얘기를 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행사로 순직 군경 자녀들을 초청해 오찬을 한 걸 보니 이제 곧 순직 군경 관련 예산이 깎이겠군.”

<BR>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BR> 2023.12.21.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2023.12.2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껍게 지원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리고 열흘 후 기재부는 노인·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278개 사업 중 176개(63.3%)를 폐지·통폐합 또는 감축하는 등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지방, 보육, 여성, 국방, 과학기술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이런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니다.
그리고 이 무참한 예산 삭감 소식에 이어 들려오는 건 ‘결혼·출산 시 3억 원까지 증여세 공제’ 등 온갖 부자감세 소식뿐이다.

재벌-부자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고 그것 때문에 세수가 줄어드니 서민-약자 관련 예산을 줄이는 패턴은 윤석열 1년 7개월 임기 기간 내내 초지일관한 재정정책이다.
허나 지난 10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행한 예산안 시정연설 전문을 읽어보라. 총 23조에 이르는 지출구조조정 등 재정 낭비 요인을 차단하면서 약자복지 강화·일자리 창출 등 민생 관련 부분에 집중 지원”한단다.
행동과 철저히 유리된 이 ‘언어도단’은, 그저 대통령님의 치밀하고 속 깊은 국정철학을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무식한 탓이라고 믿고 싶을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의 아바타라는 세간의 평을 받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난 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법무부를 떠나며 가진 이임식에서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한동훈 법 전문가님. 제가 법에 대해선 일체 까막눈이라 여쭙고 싶은데요.”

전세금 16억 8천의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며 소유 부동산 40억이 넘고 임대보증금만 18억인 동시에 배우자가 외제차 구입비에 부과되는 세금 몇 푼 아끼려고 위장전입을 했지만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서 미래를 대비하고 싶지 말란 법은 없나요? 없겠죠? 그러니 그렇게 서민과 약자를 무시로 입에 올리시는 거겠죠?

한동훈이 보수언론으로부터 대한민국 보수의 맹아이자 희망으로 대접받는 저변엔 ‘화려하고 논리적인 언변’이 한몫 한다.
한꺼풀 벗겨보면 화려함은 깐족거림에, 논리는 오류와 논리가 적당히 섞인 궤변에 가깝지만 하여튼 이 땅의 보수언론이 보기엔 그렇단다.
하지만 그런 건 하등 중요치 않다.
이제 집권여당 비대위원장으로서 보여 줄 ‘행동’이 남았을 뿐이니까.

거듭 말한다.
캐릭터를 규정하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다.

다시, '침팬지 폴리틱스'

윤 대통령을 침팬지 수준 비하하려는 것 아니라사회생물학 이론으로 그의 정치적 말로 예측한 것끝까지 무리 보살핌 받은 관대하고 공평한 침팬지고환 물어 뜯긴 채 권력 잃은 ‘무뢰한’ 수컷 침팬지윤석열·
한동훈이 어떤 유형인가는 자명하지 않나압도적 총선 승리는 대통령 정치적 탄핵 의미내년 총선 결과보다 더 확실한 윤 대통령의 미래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

유시민 작가

몇 달 전 <매불쇼>에서 나는 프란스 드 발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에 기대면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그럴듯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노무현재단 후원회원의 날 행사에서는 드 발의 후속작 ‘차이에 관한 생각’ 제9장을 원용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말로가 비참하리라 예측했다.
일부 ‘친윤’ 정치인과 ‘친윤’ 언론인들은 사회생물학 이론을 활용해 정치를 분석한 것을 윤석열 대통령과 국힘당에 대한 비하행위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대통령을 침팬지 수준으로 깎아내려 조롱했다는 것이다.

오해를 거두시라. 그런 뜻이 아니었다.
프란스 드 발은 호모 사피엔스를 침팬지 수준으로 비하하려고 권력투쟁은 진화의 산물이며 정치는 인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주장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정치행위와 침팬지의 권력투쟁을 공통의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설명했을 뿐이다.
나도 그와 같다.
드 발의 연구를 포함한 사회생물학의 여러 이론에 비추어 윤석열 대통령의 언행을 설명하고 그의 정치적 미래를 예측했을 따름이다.
최근 상황을 반영해 다시 요약 정리할 테니 더는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사회생물학과 다윈주의

널리 쓰는 정의(定義)에 따르면 사회생물학은 ‘동물의 사회성 행동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벌과 개미 같은 ‘막시류’ 곤충이나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 동물처럼 군집을 이루어 산다.
먹이 획득과 자녀 양육을 위해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하면서 분업하고 협업한다.
사회생물학의 기본 전제인 다윈주의(Darwinism) 이론에 따르면 인간 군집에서 사회성 행동이 진화한 것은 생존과 번식의 확률을 높여주는 ‘적응의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윈주의는 인간을 예외로 취급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이므로 진화의 도정에서 나타난 종으로 여긴다.
인간의 사회성 행동에도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생물학적 기초가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사회성 행동은 매우 다양하지만 특정한 기준을 세우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예컨대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다윈주의 좌파’라는 책에서 사회성 행동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었다.
생산방식과 경제체제와 정부형태 같은 것은 문화마다 크게 다르다.
이런 것은 짧은 역사의 시간에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진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성도덕과 인종주의는 문화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생물학적 기초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한다.
사회적 위계와 서열을 형성하는 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적이니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특성으로 본다.
유전적 생물학적 기초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싱어는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좌파’들에게,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문화에 따라 많이 다른 것에 집중하라고 권했다.
인류에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을 없애려고 하는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일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었다.

알파 메일의 보안관 행동

위계와 서열을 형성하는 종이 호모 사피엔스뿐인 것은 아니다.
침팬지 군집에도 거의 비슷한 행동이 진화했다.
‘침팬지 폴리틱스’는 네덜란드 아른험 동물원의 침팬지 무리 관찰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침팬지를 연구해 인간 이해를 증진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의 핵심은 알파 메일(alpha male, 수컷 우두머리) 침팬지의 ‘보안관 행동’에 대한 서술이다.

드 발은 동물원의 모든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이고 수컷 네 마리가 벌인 권력투쟁의 과정과 결말을 특히 세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했다.
그가 연구자로서 본 첫 번째 알파 메일 이에룬을 밀어내고 권좌를 차지한 두 번째 알파 메일 라윗의 행동이 흥미로웠다.
알파 메일이 되기 전 라윗은 다른 침팬지들의 다툼에 개입할 때 35퍼센트의 확률로 약자 편을 들었다.
그런데 왕좌를 차지한 뒤 이 수치는 69퍼센트로 늘었고 1년이 지나자 86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젊은 수컷 니키는 늙은 수컷 이에룬과 연합해 세 번째 알파 메일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잔인한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라윗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어 죽인 것이다.
그런데 니키는 라윗과 달리 권좌를 차지하고 나서도 보안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약자를 편들어 개입하는 비율이 22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분쟁 당사자 가운데 더 센 침팬지를 편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룬과 더 젊은 수컷 단디가 니키를 공격했다.
니키는 급하게 도망치다가 사육장을 둘러싼 수로에 빠져 죽었다.
이에룬과 니키가 셋만 있었을 때 라윗을 공격했던 것과 달리, 단디와 이에룬은 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니키를 공격했다.

이런 상황의 차이에 주목한 드 발은 알파 메일의 보안관 역할이 호의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암놈과 새끼 침팬지를 비롯한 약자를 지켜주지 않은 알파 메일은 도전자와 권력투쟁을 할 때 무리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대함과 공평함

드 발은 최신작 ‘차이에 관한 생각’ 제9장에서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여키스 영장류 연구소에서 관찰한 알파 메일 침팬지 아모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모스는 간과 여러 장기에 악성 종양이 생겼는데도 더 버틸 수 없게 된 시점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알파 자리를 지켰다.
아모스가 쓰러지자 다른 침팬지가 권좌에 올랐다.
그런데 다른 침팬지들이 앓아누운 아모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살펴 주었다.
아모스가 죽자 무리의 침팬지들은 며칠 동안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아모스는 평생 침팬지를 관찰한 드 발이 본 알파 메일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수컷이었다.
그는 관대하고 공평했다.
무리를 지배했고 경쟁자의 도전을 단호하게 물리쳤지만 다른 침팬지를 괴롭히지 않았다.
약자를 보호했고 싸움을 말렸으며 아픈 동료를 돕고 곤경에 빠진 친구를 안심시켰다.
드 발은 그를 ‘진정한 지도자’ 유형으로 규정했다.

반대 유형의 지도자는 둘 다가 될 수 없다면 사랑받기보다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마키아벨리의 신조를 따르는 ‘무뢰한’이다.
이런 알파 메일은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고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데 집착한다.
제인 구달 박사가 야생 영장류를 연구했던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고블린이라는 침팬지 알파 메일은 다른 개체를 신체적으로 위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어느 날 젊은 도전자가 그에게 도전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세해 고블린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었다.
수의사가 항생제를 투여한 덕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권력을 잃은 고블린은 비참한 삶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 '혹성탈출(The Planet of the Apes)'에서 침팬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 핀터레스트 사진.

영화 '혹성탈출(The Planet of the Apes)'에서 침팬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 핀터레스트 사진.

한동훈 비대위

평생 검사였고 1년 반 동안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씨가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알파 메일이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알파 메일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석열이 어떤 유형의 알파 메일인지 우리는 잘 안다.
그는 아모스가 아니라 고블린에 가깝다.
보안관 행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법률적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부자 감세, 복지예산과 서민지원 예산 동결 또는 축소, 국가연구개발예산 삭감, 대통령 해외순방 예산 증액, 간호사법‧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 재벌 총수를 동원한 선거운동 성격의 떡볶이 먹방, 해외순방 중의 폭탄주 술자리, 명품백 수수와 인사 개입 등 배우자의 국정개입 의혹, 다수야당 대표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무한 수사, 감사원‧권익위‧검찰을 동원한 공영방송 사유화와 언론 탄압, 국힘당 당 대표 선거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 여당 중진 정치인들의 총선 불출마 압박 등 거의 언제나 자기 자신과 가족과 친한 사람과 사회적 강자의 편에서 개입했다.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기현 대표를 내쫓고
한동훈을 비대위원장으로 세웠다고 본다.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알파 메일 자리를 두고 경쟁했고 또 경쟁하는 이재명 대표에 대해 무한 수사와 기소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방식으로 복종과 충성을 요구한 고블린처럼 권력을 휘둘렀지만 자리와 공천을 탐하는 무능한 인물들 말고는 복종하지도 충성하지도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들을 여당 강세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낙점하려고 대통령과 비슷한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한 총선 전망

집단적 의사결정 이론에 ‘유권자 이동성(mo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느 시점에서 어느 사회의 유권자 이동성은 집권세력에 실망하는 경우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로 나타낼 수 있다.
나는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유권자 이동성이 적당한 상태라고 본다.
유권자 이동성이 너무 높으면 정당이 불안정해지고, 이동성이 너무 낮으면 정당과 정치인들이 민심을 무시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힘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30퍼센트 정도 된다.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유권자도 그 비슷하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기자들이 무당층‧중도층‧스윙보터라고 하는 유권자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엉망이라고 평가하면서 총선에서 야당에 표를 던질 뜻을 내비치고 있다.
대통령은 그런 판국에
한동훈 씨를 비대위원장으로 세웠다.
‘여의도 사투리’로
한동훈은 윤석열의 ‘가신(家臣)’이다.
(보스의 배우자와 자연스럽게 카톡을 주고받는 부하를 여의도에서는 ‘가신’이라고 한다) 절반 넘는 유권자가 무능하다고 평가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오른팔 같은 ‘가신’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총선을 지휘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굳이 답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에 따르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사회혁명이 일어난다.
첫째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대중이 알고, 둘째 집권세력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셋째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하지 않는 한 세 번째 조건은 충족되지 않으므로 사회혁명은 일어날 수 없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인데, 나는 그렇다고 본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제 지표와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 여론을 보면 달리 판단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총선에서는 정권을 교체할 수 없다.
입법권은 지금도 야당이 장악하고 있다.
야당이 총선에서 또 이긴다고 해서 대통령과 집권당이 태도를 바꿀 리는 없다.
총선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을 뽑는 행사일 뿐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강력한 권력 교체 요구를 표출하는 기회가 될 수는 있다.
국힘당에 4년 전보다 더 큰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정치적으로 탄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정치학과 역사학 이론에 비추어 본 전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BR>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에게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BR>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에게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의 확실한 미래

인문학의 이론은 중력법칙이나 상대성이론처럼 확실한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물리법칙만큼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문학보다는 신뢰할 만한 생물학 이론에 의지해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를 얻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래는 내년 총선 결과보다 확실하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모두 잃고 남은 인생을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언제 어떤 계기 어떤 양상으로 그 시간이 찾아들지 분명하지 않을 뿐이다.

침팬지 아모스와 고블린의 권력 상실 과정과 상실 이후의 삶을 결정한 것은 윤리 도덕이 아니라 알파 메일에게 보안관 행동을 요구하는 침팬지의 본능이었다.
호모사피엔스와 침팬지가 공유한 그 본능의 유전자는 두 종이 출현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드 발은 그래서 정치의 기원이 인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지 않았다.
자연이 그런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문명을 만들고 윤리 도덕을 세울 수 있었다.
본능은 문명보다 끈질기고 힘이 세다.
역사의 시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알파 메일 윤석열이 계속해서 지금까지처럼 행동한다면 결국 고블린과 같은 결말을 맞을 것이다.

이런, 명색이 인문학도인 내가 인문학이 아니라 생물학으로 권력의 향배와 권력자의 앞날을 점치고 있다니.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어떤 인문학자도 내 생에 이런 알파 메일을 또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지 않았다.
사회생물학자들의 말을 진작 경청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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