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인공 심장의 꿈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세계는 지금] 인공 심장 연구 어디까지 왔을까?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기관,심장

심장은 4개의 ‘방’으로 구성된 ‘펌프’와 몇 개의 ‘밸브·튜브·정교한 배선’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능적으로만 보면 사실 매우 단순한 기관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중심 펌프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신체 내 모든 기관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중증 심부전’은 펌프가 너무 약해져 더 이상 효과적으로 혈액을 체내로 이동시키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한 환자는 휴식 중에도 극심한 숨 가쁨을 느끼며 장기에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산소와 영양분이 부족해진다.

심장의 일부만 손상되었거나 완전히 손상되지는 않은 환자의 경우 체내에는 심장의 일부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심장 전체가 완전히 손상된 환자는 새로운 심장이 필요하다.

부족한 심장의 공급,
인공 심장만이 유일한 해결책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증자를 통한 심장 공급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나라별로 처한 상황도 매우 다르다.
단적인 예로 독일에서는 공급 상황도 좋지 않지만,
장기기증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
이에 각국 의료진들은 긴급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10년 전 최초의 카마트 심장 이식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Carmat/dpa/picture alliance

심장 전문의들과 심장외과의사들은 60년 이상 인공 심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82년,
마침내 미국에서 최초로 완전하고 영구적인 심장이 환자에게 이식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인공 심장은 기본적인 기능만 갖추고 있었으며,
환자의 특정 상황에 맞춰져 있지 않았던 심장이었다.
이 때문에 환자의 필요에 맞게 조정된 인공 심장의 필요성은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카르마트 심장의 탄생

심장 판막 전문가인 프랑스 심장 전문의 알랭 카르펜티에(Alain Carpentier)는 인공 심장을 개발했다.
그는 돼지 연골과 같은 생물학적 재료를 도입하였고 최근 몇 년간 이식된 50개의 인공 심장에서 생물학적 물질을 심장 전체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인공 심장 내 정교한 센서와 같은 다른 부위들도 조정했다.
이 결과 이식받는 사람의 신체 활동에 적응할 수 있는 인공심장 ‘카르마트 심장(Carmat heart)’이 탄생했다.
환자들이 단순히 누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앉고,
걷고,
뛰고,
춤추는 등 기본적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심장이다.

카르마트 심장의 첫 번째 수혜자는 심각한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76세 남성이었다.
그는 인공심장을 통해서 74일을 더 살았다.

카르마트 심장의 구조 © Giulia Luraghi

인공 심장을 개발한 회사 Carmat의 대표인 스테판 피아트(Stephane Piat)는 최근 몇 년 동안 인공 심장의 표면 재질,
소프트웨어 및 펌프 등에 많은 다른 조정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현재 약 50개의 인공 심장이 환자에게 이식되었으며,
그중 약 15명의 환자들은 여전히 카르마트 심장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환자들은 사망했다.
회사에 따르면 이식 환자의 약 절반이 수술 후 6개월 이내에 사망했는데,
중요한 점은 이 사람들이 이식받은 카르마트 심장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망의 원인은 인공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들이 이미 중증이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또한 14명의 환자는 기증자의 심장을 이식받기 전 임시 해결책으로 카르마트 심장을 이식받았다.
이처럼 증상이 덜 심각한 심장 질환 환자의 경우 기증 장기를 찾기 전까지 간단한 대체 지원 시스템으로 인공심장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매우 복잡한 카르마트 심장

카르마트 심장은 복잡한 기 의 복합체이다.
예를 들면 위 심장은 약 250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첨단 기술도 때로는 사소한 문제를 포함하여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베를린 샤리테 병원 독일 심장 센터 에브게니 포타포프는 인공 심장의 “모든 부품은 고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카마트 직원이 자동 조절 바이오 인공 심장을 선보이고 있다.
© Bertrand Guay/AFP/Getty Images

또한 카르마트 심장은 매우 크다.
따라서 흉곽이 작은 사람이나 여성은 위 심장을 이식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인공 심장에 비해 카르마트 심장은 훨씬 더 민감하고 취약한 부분이 존재한다.
심장 한 개당 비용이 약 3억 정도로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인공 심장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인공 심장 개발 회사의 대표 피아트 조차도 환자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카르마트 심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인공 심장의 발전을 통해서 환자들의 치료 방향을 장기적으로 계획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지금까지 카르마트 심장은 유럽 시장에서 임시 해결책으로만 승인되어 사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2021년 말,
이 회사는 품질 문제로 인해 1년 동안 제품을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포타포프는 위 인공심장의 크기가 절반 정도이면서 이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만 없었다면 자신의 환자들에게 즉시 사용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위 심장의 개발과 성능 향상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유전자 변형 돼지 심장 관련 조직을 위 인공 심장 실험에 적용시키고 있다.
과연 카르마트 심장은 인류의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을까?

심장 그 이상의 의미

프리다 칼로 ‘두 개의 프리다’

피를 우리 몸에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심장은 다른 기관과 달리 대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움직이는 신체기관이다.
따라서 의학계에서는 뇌가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심장이 뛴다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삶과 죽음의 중심에 있는 심장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우리는 단순하게 의학적 의미만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심장은 감정을 대변하는 유일한 신체기관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거나 무서울 때 유난히 심장이 크게 뛰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단순한 심장의 수축 운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도 그러한 연유다.

▲ <두 명의 프리다>-1939년,
캔버스에 유채,
173*173,
멕시코 근대 미술관


프리다 칼로의 ‘두 개의 프리다’는 심장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에서 심장은 해부학적인 면보다는 감정을 중심으로 그려졌다.
흰색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가 벤치에 앉아 화려한 멕시코 전통 옷 테우아나를 입은 프리다의 손을 잡고 있다.
두 명의 프리다 모두 심장이 그대로 노출됐지만 형태는 다르다.
화면 왼쪽 찢겨진 흰색의 레이스 장식 사이로 보이는 심장은 내부를 드러내고 있지만 전통의상을 입은 프리다의 심장은 붉은색이다.
왼쪽 심장은 병들었으며 오른쪽 심장은 건강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른쪽 심장에서 나온 가느다란 동맥이 왼쪽 심장과 연결돼 있다.
서로 연결돼 있는 동맥은 건강한 심장이 병든 심장에 피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식 흰색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가 수술용 집게로 심장을 타고 내려온 혈관을 막고 있지만 혈관 밖으로 새어 나온 피가 스커트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떨어진 피는 흰색 드레스 위에 꽃무늬를 만들고 있다.
오른쪽 테우아나를 입은 프리다는 심장에서 나온 혈관이 넝쿨처럼 팔을 휘감고 있다.
손에 조그마한 타원형 액자를 들고 있는데 액자 속 사진에는 어린 남자 아이가 서 있다.
어린 남자 아이는 그녀의 남편이었던 리베라로 프리다는 이 사진을 부적처럼 가지고 있었다.
액자는 후에 프리다의 유품으로 발견됐으며 현재는 프리다 칼로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프리다 칼로(1907~1954)는 이 작품에서 흰색 드레스와 전통 의상을 입은 두 명의 프리다를 그려 서로 다른 인격체임을 나타냈으며 유럽식 흰색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를 자신의 분신으로 표현했다.
프리다는 리베라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녀가 먼저 리베라에게 이혼을 제의한 것은 아니었다.
리베라가 이혼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며 설득해 이혼했다.
프리다는 리베라와의 결혼과 이혼의 위기를 둘러싼 감정 상태를 전통 의상과 유럽식 의상으로 나타냈다.
전통 의상 테우아나를 입은 프리다는 남편 리베라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았던 시절을 나타내며 유럽식 의상을 입은 리베라는 이혼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재를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유럽식 의상을 입은 프리다가 지혈을 하고는 있지만 꽃무늬를 이룰 정도로 피가 떨어지는 것은 죽음의 위기를 의미한다.
프리다는 리베라가 없는 세상은 죽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가슴 부분 구멍 뚫린 흰색의 드레스는 상실감을 의미한다.
프리다는 이혼으로 자신의 일부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이혼 후 몇 년간 프리다는 이 작품처럼 자화상 연작을 제작하는데 대부분 비슷해 보일 정도로 유사하다.
단지 자화상을 둘러싼 배경만 다르다.
이는 판매를 위해서였다.
프리다는 이혼을 겪은 뒤 오히려 작품에 매진한다.
리베라의 경제적 도움 없이 작품을 팔아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심장은 다르다”

국제연구팀이 처음 제작한 심장세포 지도에서 새 사실들 확인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은 인체에서 가장 신비한 기관 가운데 하나다.
심장의 꾸준한 박동은 단순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놀랍도록 복잡한 ‘세포들의 공연’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오케스트라처럼 수천 개의 세포들이 개별 역할을 마스터한 뒤,
모두가 모여 우아한 교향곡을 연주해낸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이 ‘심장의 교향곡’에 참여하는 거의 50만 개에 달하는 인간 심장 세포들을 나타내는 한편,
각 세포들의 역할을 식별할 수 있는 지도 모음인 ‘심장 세포 아틀라스(atlas)’를 만들어냈다.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한 국제연구팀은 기증받은 14개의 건강한 심장에서 6개 구역을 조사해 세밀한 데이터베이스를 생성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세계인의 주요 사망 원인인 심장병 연구의 새로운 비교 기준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 24일 자에 발표됐다.
<관련동영상>

국제연구팀이 제작한 심장 세포 아틀라스에 표시된 심장 그림. 이번 아틀라스 제작으로 심장병 연구에 새로운 비교 기준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 www.heartcellatlas.org

심장 분야의 ‘기념비적 연구’

미국 하버드대 심장 유전학자 겸 브리검 앤드 여성병원 심혈관 유전학센터장이자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연구원인 크리스틴 사이드먼(Christine Seidman) 교수는 “여러 유형의 심장병에서 심장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상태가 정상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이번 연구 의의를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미국 워싱턴대 의대(세인트루이스) 심장학자인 더글라스 만(Douglas Mann) 박사는 “이번 연구 성과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기념비적(monumental)’”이라며,
“심장 연구분야에서 엄청나게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심장 세포는 연구하기가 특히 어려운 것으로 입증돼 있다.
일부 암세포나 다른 기관의 조직과 달리 심장 세포는 실험실에서 무한정 성장시켜 연구할 수가 없다.
때문에 많은 심장 연구가 인간의 심장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 실험용 쥐의 심장을 사용해 이루어진다.

또 건강한 인간 심장은 대부분이 심장 이식에 사용되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렵다.
사이드먼 교수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이식에서 거부되고 연구를 위해 냉동된 심장을 활용했다.

박동하는 인간 심장의 세부 모습을 캡처한 그림. 근육 수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초록색으로 표시했다.
새로운 심장 세포 지도는 이 단백질과 함께 심장 내 다른 위치에 있는 것들도 보여준다.

연구팀은 먼저 모든 심장 세포의 개별 특성을 정의하기 위해 고효율 시퀀싱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 다음 14개(남성 7개,
여성 7개) 심장의 6개 구역에 있는 세포들을 지도화했다.

사이드먼 교수는 “이번에 처음으로 각각의 심장 세포들이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를 알기 위해 세포마다 ‘우편번호’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세포의 다양성 발견

연구팀은 또 각 세포들의 기능에 대한 분자적 세부사항을 수집하기 위해 형광 마커를 사용해 심장세포들의 RNA 수준을 분석했다.
만 교수는,
이 방법으로 세포가 어디에 있는지뿐만 아니라 어떤 단백질을 생산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 연구에 특별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아틀라스로 병든 심장과 건강한 심장을 비교해 차이점을 찾아내면 새로운 치료법 개발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것.

심장 세포 아틀라스에서 6개의 심장 구역,
즉 좌우 심방 및 심실과,
심장 끝(apex) 및 심실 중격에 있는 세포 유형을 색깔별로 나타낸 그림. © www.heartcellatlas.org

이번 연구에서는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심장을 연구했으나,
새 지도는 생물학적으로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연구팀은 심장의 여러 부분에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세포의 다양성을 발견했다.
이와 함께 남성과 여성의 건강한 심장에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여성은 심근세포(cardiomyocyte)라고 불리는 심장 근육 세포의 비율이 남성보다 더 높았다.

사이드먼 교수는,
이 점을 감안하면 심장 세포들이 성별 사이의 심장병에 차이를 나타내는 단서를 지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휴 왓킨스(Hugh Watkins) 영국 옥스퍼드대 심장학자는 “이번 심장 지도에서,
다양한 종류의 세포들이 인간의 심장 조직을 구성하는 한편,
심장 안의 구역별로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심장의 놀라운 이질성(heterogeneity)을 보게 된다”며,
“심장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기관”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새로 제작한 인간 심장세포 지도 자료에 접속할 수 있는 ‘심장 세포 아틀라스’ 홈페이지(http://www.heartcellatlas.org). © www.heartcellatlas.org

“다양한 인구군으로 아틀라스 확장할 예정”

‘인간 세포 아틀라스 계획(Human Cell Atlas)’의 하나로 진행된 이번 심장 세포 아틀라스 제작 연구는 인체의 모든 세포 유형을 지도화하기 위한 ‘찬 저커버그 계획(Chan Zuckerberg Initiative)’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사이드먼 교수는 “이번 연구 작업을 위해 큰 마을 하나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연구자들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아틀라스 데이터베이스를 창출하기 위해 심장 수술 전문가로부터 전산 생물학자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제연구팀으로 동참했다.

이번 연구에서 생성된 모든 자료는 심장 세포 아틀라스 홈페이지에 접속해 찾아볼 수 있다.
<관련 사이트>

사이드먼 교수팀은 다음 연구작업에서 이 아틀라스를 더욱 다양한 인구군으로 확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활용된 심장은 모두 백인 기증자들의 것이었다.

연구팀은 또 건강한 심장 세포에서 만들어진 단백질과 심장 질환에 걸린 세포에서 생성된 단백질과의 비교 연구를 시작했다.

웟킨스 교수는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들이 어떻게 미세하면서 기능성이 요구되는 수준에서 서로 잘 조화를 맞춰가는가 하는 점”이라며,
“이것은 또 다른 야심찬 연구 목표지만,
이번 아틀라스가 놀라운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다빈치가 스케치한 심장근육의 신비가 밝혀지다

2만 5000개 심장 MRI 영상과 5만 명 유전 데이터 분석

심장은 수태 후 4주 만에 스스로 뛰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다.

심장의 강력한 힘은 예부터 종교적,
문학적 테마가 돼 왔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찍이 심장 근육을 자세히 스케치하며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장 안쪽의 특이한 근섬유 구조는 지금까지 그 역할과 기능이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었다.

최근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심장 안쪽 표면을 지지하고 있는 복잡한 근섬유 망(mesh of muscle fibers)의 기능을 조사해,
다빈치가 제기한 의문에 답하는 한편,
심장 근육 모양이 심장의 기능 수행과 심부전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9일 자에 발표됐다.

심장 안 근섬유의 역할과 기능,
심실 표면이 거친 이유 등 지금까지 몰랐던 심장 안쪽의 수수께끼가 국제 협동연구팀의 연구로 밝혀졌다.
인간의 심장 모습을 나타낸 도해. © WikiCommons

심장 2만 5000개 MRI 영상과 유전 데이터 분석

발달 초기에 심장은 내부 표면에 기하학적 패턴을 형성하는 섬유주(trabeculae) 혹은 섬유 다발로 불리는 복잡한 근육 섬유 네트워크를 성장시킨다.
이 섬유주는 조직 구성요소의 하나로,
장기를 별도의 방으로 분할하거나,
조직을 지지 및 고정하는 다양한 막대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섬유주는 발달하는 심장에서 산소 공급을 돕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나,
성인이 된 뒤의 기능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심근 섬유주와 이 섬유주의 눈송이 같은 프랙털 패턴을 16세기에 처음으로 스케치한 바 있다.
다빈치는 이런 모양의 섬유주가 심장을 통해 흐르는 피를 따뜻하게 한다고 추측했으나,
섬유주가 갖는 실제의 중요성은 최근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섬유주의 역할과 발달을 이해하기 위해 인공 지능을 사용해 심장 2만 5000개의 자기공명영상(MRI) 사진과 심장의 형태 및 유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리고 이 분석을 통해 섬유주가 어떻게 작동하고 발달하는지 그리고 섬유주의 모양이 심장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냈다.
영국 바이오뱅크가 이 연구를 위해 자료를 제공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여러 스케치 작품을 기반으로 인간의 심장 내부를 다빈치 스타일로 그린 그림. © Leonardo da Vinci / Public domain / Illustration,
Ben Wigler

심근 섬유의 프택털 패턴이 심부전에 영향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섬유주의 모양이 심장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 심장 질환과도 연계될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환자 5만 명의 유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심근 섬유의 다양한 프랙털 패턴이 심부전 발병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에서는 약 500만 명이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섬유주에 대한 추가 연구는 일반적인 심장 질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심장 근섬유의 프랙털 패턴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인체 DNA의 여섯 개 영역을 찾아내는 성과도 올렸다.
연구팀은 흥미롭게도 이 가운데 두 영역이 신경세포의 분기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유사한 메커니즘이 발달 중인 뇌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

연구팀은 또 골프공 표면의 작은 홈들이 공기 저항을 줄이고 공이 더 멀리 날아가도록 돕는 것처럼,
심장 심실의 거친 표면은 심장이 박동하는 중에 피가 더 효율적으로 흐르도록 한다는 점도 제시했다.

인체 고관절의 모양에 따른 섬유주 패턴. © WikiCommons / Addingrefs

“심부전 연구의 새 방향 제시”

논문 저자인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한나 메이어(Hannah Meyer)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심근 섬유주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크게 향상시켰다”고 말하고,
“특히 다학제간 연구팀이 협동해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유전학과 임상 연구 및 생명공학자 팀이 잘 협조해 성인 심장의 기능에서 심근 섬유주(myocardial trabeculae)의 예상치 못한 역할을 발견했다는 것.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부소장인 이완 버니(Ewan Birney)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기본적인 인간 생물학의 매우 오래된 질문에 답을 했다”며,
“대규모 유전자 분석과 인공지능 수행을 통해 생리학에 대한 이해를 전례 없는 규모로 재시동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MRC 런던 의과학 연구소 임상 과학자 겸 컨설턴트 방사선학자인 데클런 오리건(Declan O’Regan) 박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년 전에 스케치한 복잡한 심장 근육이 인간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이번 연구는 심부전 연구에서 매우 흥미로운 새 방향을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프로젝트에는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와 EMBL 산하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EMBL-EBI),
MRC 런던 의과학 연구소,
하이델베르크대 및 이태리 밀라노 과학기술대 연구팀이 참여했다.


평생 1초도 쉬지않는 심장의 비밀

분자 차원 박동현장 처음 확인

사람들이 지금까지 심장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미스터리로 생각하는 것 가운데 가장 으뜸은 심장 근육이다.
심장은 이 근육의 힘에 의해 거의 1초에 한번 평생을 쉬지 않고 박동한다.
심장이 생명 유지에서 차지하는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세포 이하의 단계에서 심장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페렐만 의대와 공학 및 응용과학대 연구진은 최근 새로운 고해상도 현미경을 이용해 미세 소관[microtubules (MT)]이라 불리는 세포의 분자 막대가 심장의 수축 기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계적 저항을 일으킴으로써 심장 박동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발견은 미세 소관들이 심장 박동 역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이 기제가 잘못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최근호에 게재됐다.

고해상도현미경으로움직이는미세소관직접관찰

세포 안의 지지 구조인 미세소관은 심장 근육세포 안에서 다양한 구조적 역할과 신호 관련 기능을 맡고 있다.
이 미세소관 네트워크에 변화가 일어나면 심장병이 생길 것으로 보여지나 심장 박동에서 미세소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미세소관이 심장 기능에서 맡고 있는 일을 알기 위해서는 심장 수축기에 미세소관의 모습을 직접 살펴보는 것이 지름길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심장 수축기에 시공간적으로 변화하는 미세소관의 모습을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덧붙여 미세소관에서 화학물질인 타이로신을 제거하는 화학적 변화(detyrosination)가 기계적 자극의 전기화학적 변환(mechanotransduction)을 조절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그동안 불분명했었다.

심장이 쉬고 있을 때(위)와 수축했을 때(아래) 심근세포에 있는 미세소관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포착했다.<BR> The lab of Ben Prosser,<BR> PhD,<BR> Perelman School of Medicine,<BR> University of Pennsylvania ⓒ ScienceTimes

심장이 쉬고 있을 때(위)와 수축했을 때(아래) 심근세포에 있는 미세소관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포착했다.
The lab of Ben Prosser,
PhD,
Perelman School of Medicine,
University of Pennsylvania

심근세포에서에너지원인수많은미토콘드리아확인

논문의 시니어 저자인 생리학과 벤 프로서(Ben Prosser) 교수는 “타이로신 제거가 심장의 수축기와 이완기 때마다 바뀌는 물리적 압력에 대한 미세소관의 반응 방식을 변화시키는지 궁금했다”며,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향상된 이미지 기술을 활용해 실험동물의 박동하는 심장 근육세포에서 미세소관의 움직임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근세포(myocytes)라 불리는 심장근육은 현미경 하에서 상호 연결된 실꾸러미처럼 보였다.
심근세포는 골격근세포에 비해 좁고 매우 짧았으나,
평생 동안 쉬임 없는 박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었다.
프로서 교수는 “심장 근육 조직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고도로 조직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수축기 동안에 좀 뻣뻣한 미세소관들은 근세포의 모양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데,
연구진은 전형적인 근세포에서 이 같은 모양 변화는 미세소관이 죔쇠가 있는 스프링으로 변형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미세소관들은 근섬유분절(sarcomeres)이라 불리는 수축 기구와 직접 연결돼 격자구조 모양으로 고정돼 있다.

수학적미세구조모델로수축력측정

연구팀은 타이로신이 덜 제거된 근섬유에서 미세소관들이 가끔 근섬유분절을 짧게 구부리기보다는 서로를 지나쳐 비껴감으로써 수축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타이로신이 덜 제거돼 미세소관-근섬유분절 간 상호작용을 방해하면 근섬유분절과 심장세포가 세포 전체의 경직성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더 강하고 빨리 짦아지게 했다.

프로서 교수는 “심장 박동 시스템에는 어떤 최적점이 있고 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밀어붙이면 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심장은 좁은 영역 안에서 작동하고 이 영역을 벗어나도록 압력을 가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작용이 생기는 조심스럽게 연마된 기계”라고 말했다.

연구를 수행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 벤 프로서 교수(왼쪽)와 수학적 미세구조 모델을 개발해 연구에 활용한 공대 비벡 쉬노이 교수(오른쪽). 사진 University of Pennsylvania ⓒ ScienceTimes

연구를 수행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 벤 프로서 교수(왼쪽)와 수학적 미세구조 모델을 개발해 연구에 활용한 공대 비벡 쉬노이 교수(오른쪽). 사진 University of Pennsylvania

연구팀은 반대로 타이로신이 많이 제거되면 근섬유의 경직도가 높아지고 수축이 방해를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프로서 교수는 “이는 직접 보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제 얼마나 많은 뻣뻣한 미세소관 막대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장에 해를 주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미세소관이 세포 역학에 미치는 공헌도와 심장 세포 활동에서의 영향력을 생물공학 공동연구자들이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계산했다”고 밝혔다.

비벡 쉬노이(Vivek Shenoy) 교수는 “수학적 미세구조 모델을 개발해 활성화된 수축력이 어떻게 미세소관을 구부리는지를 분석하고 프로서 교수 연구실에서 얻은 측정치를 정량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가설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심장약,
실험마치고인체실험계획

연구팀의 발견은 임상자료와 일치했다.
심장근육이 두꺼워진 환자들에게서 타이로신이 과도하게 제거되었고 이는 심장 기능 저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뇌사 환자나 심장이식 환자들로부터 공여된 심장을 분석한 결과 병이 있는 심장의 세포에는 더 많은 미세소관이 있고,
타이로신이 더 많이 제거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프로서 교수는 “과도한 타이로신 제거는 미세소관과 근섬유분절 사이의 상호작용을 항진시키고 심장 수축 저항성을 높여 심장기능을 떨어뜨림으로써 질병상태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고,
“미세소관과 근섬유분절 사이의 교차결합을 깨서 미세소관이 더욱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하고 심장근육이 잘 수축되게 하면 피 순환이 한층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현재 타이로신 제거작용을 억제하는 특정한 약이 병든 심장을 강하게 뛰게 하는지를 조사 중이며,
쥐에 대한 실험을 마치고 사람의 심장에 대한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돼지 심장 이식,
기술적 문제는 해결됐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면역거부,
심장비대 등 부작용 극복… 사회적 합의 남아

띠는 음력으로 치는 거라지만 2019년 1월 1일부터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가 밝았다”며 여기저기서 복(福)을 상징하는 돼지 이야기가 들린다.

올해는 결혼도 많이 하고 아이도 많이 나을 거라는 예측이 나오는 걸 보면,
지난해 결혼과 출산 건수가 뚝 떨어진 데 이런 이유도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육류소비에 있어서도 돼지고기(특히 삼겹살과 족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1년에 먹는 고기 52.5kg 가운데 돼지고기가 28.4kg으로 54%를 차지한다.

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많이 먹는 육류인 가금류(닭,
오리 등)는 14.2kg로 돼지고기의 절반에 불과하다(2016년 기준).

그런데 어쩌면 기해년은 돼지가 인류에게 식재료 이상의 기여를 하는 원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돼지 장기를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장기 가운데 가장 수급이 절실하다는 ‘심장’이다.
몸에 하나밖에 없는 데다 간처럼 일부를 잘라 줄 수도 없는 심장은 사실상 뇌사상태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장기다.

최근까지 실험에서 돼지 심장을 받은 원숭이가 얼마 못 가 죽는 이유가 수술 전후 심장을 보관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BR> 떼어낸 돼지 심장을 혈액을 모방한 액체에 넣고 액체를 순환시키자 이 문제가 해결됐다.<BR>  ⓒ 네이처

최근까지 실험에서 돼지 심장을 받은 원숭이가 얼마 못 가 죽는 이유가 수술 전후 심장을 보관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떼어낸 돼지 심장을 혈액을 모방한 액체에 넣고 액체를 순환시키자 이 문제가 해결됐다.
ⓒ 네이처

돼지 심장 이식받은 원숭이,
6개월 생존 증명

학술지 ‘네이처’ 지난해 마지막호(12월 20/27일자)에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6개월 이상 생존함을 보인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는 기존의 57일을 훌쩍 뛰어넘은 결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의 전제인 3개월의 두 배가 넘는 기간이다.

분류학상으로 원숭이가 훨씬 더 가까운 종임에도 돼지가 이종간 장기 이식 동물로 일찌감치 선정된 건 장기의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인원이 더 비슷할 수 있지만 워낙 고등동물이라 윤리적으로 허용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같은 종에서도 장기이식의 큰 장애는 면역거부반응이므로 이종간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연구의 초점은 면역거부반응을 줄이는 데 집중돼 있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이런 방향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구체적으로는 인체 면역계의 강력한 면역거부반응을 유발하는 돼지 세포막 표면의 당구조를 못 만들게 했고,
사람의 세포막 단백질을 만들도록 조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일반적인 면역억제제를 써서 면역거부반응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돼지 심장을 (사람을 대신한) 원숭에게 이식했을 때 가장 오래 산 기록은 57일에 불과했고,
그나마 단 한 번뿐이었다.

뮌헨대 등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은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왜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가’를 면밀히 조사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이들은 먼저 원숭이 다섯 마리를 대상으로 기존 방법대로 이식했다.
그러자 세 마리는 다음날,
한 마리는 3일 뒤 죽었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는 30일을 버텼다.

연구자들이 사인을 조사한 결과,
일찌감치 죽은 네 마리에서는 소위 ‘수술전후 이종간이식 심부전’으로 불리는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났다.

한 달을 산 경우는 좌심실의 심근이 비대해져 굳으며 심정지가 온 것으로 나타났다.
즉 ‘면역거부반응’이 아니라 ‘심장의 기능 정지’나 ‘심장비대’가 문제였다.

연구자들은 돼지에서 떼어낸 심장을 원숭이에 이식할 때까지 보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보관 과정에서 떼어낸 심장을 약 두 시간 동안 4도에서 용액에 담그는데,
이때 심장조직이 약해지는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도에서 혈액을 모방한 용액을 순환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원숭이 네 마리를 대상으로 새로운 방법을 적용한 결과,
다른 기술적인 문제로 죽은 한 마리를 뺀 세 마리가 각각 18일,
27일,
40일 동안 생존했다.
즉 ‘수술전후 이종간이식 심부전’은 해결된 셈이다.

심장비대 막는 데 성공

그럼에도 심장이 급격히 비대해져 기능을 잃는 현상은 계속됐다.
연구자들은 돼지와 원숭이의 최적 혈압의 차이가 그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돼지 심장의 적정 수축기 혈압은 80mmHg인데 비해 원숭이 심장은 120mmHg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식을 받은 원숭이의 혈압을 낮춰주는 약물을 투입하는 동시에 심장의 비대를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기로 했다.

원숭이 다섯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한 마리는 51일 만에 죽었지만 나머지 네 마리는 임상 기준이 되는 90일까지 심장에 별 이상 없이 잘 지냈다.

연구자들은 이 가운데 두 마리는 90일째 되는 날 분석을 위해 안락사시켰다.

나머지 두 마리에게는 6개월 가까이 잘 사는 걸 확인한 뒤 심장 비대를 억제하는 약물을 끊었다.
그러자 심장이 급속히 커졌고,
결국 각각 195일,
182일째 되는 같은 날 안락사 됐다.

이번 연구로 돼지 사람 간 심장이식 임상의 방법은 정립된 셈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바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종간 장기이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2019년 기해년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종간 장기이식의 원년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관상동맥이 막힌 의사의 고백

몇 년 전 심장내과의사인 샌디프 자우하르(Sandeep Jauhar)박사는 맨해튼 다운타운에 있는 911 추모공원을 찾아갔다.
10여 년 만이다.
자녀들과 함께 추모공원으로 가는 동안 속은 메스껍고 심장은 쿵쿵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겨드랑이는 축축해졌다.

추모벽에 다다랐을 때 그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으로 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 들어가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심장의 죽음을 뜻하는 그 파동을 보는 듯 했다.
머리가 빙빙 돌았다고 저자는 썼다.

심장에 대한 소설같이 아름다운 책을 여러 권 써서 베스트셀러로 올려놓은 저자의 묘사력은 매우 뛰어나다.
의과대학을 공부할 때,
환자를 치료할 때,
혹은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심장이 정지돼서 사망할 때의 모든 개인적인 체험도 심장을 설명하는 아주 훌륭한 소재로 책 속에 버무려진다.

그중에는 40대 중반에 심장 혈관에 플라크가 생겨 관상동맥이 막히는 자신이 진단을 받으면서 느끼는 당혹감과 공포심도 들어있다.

자우하르의 ‘심장’ (HEART : A HISTORY)은 의학 서적이라기 보다 논픽션에 가깝다.
의사이면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올리버 색스를 생각나게 한다.
과학자가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BR>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인턴,
어느 초짜 의사이야기’ (Intern : A Doctor’s Initiation)은 전미 베스트셀러로 오르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의를 받았다.
‘의사 노릇하기 : 어느 미국의사의 환멸’(Doctored : Disillusionment of an American Physician)은 2014년 최고의 책으로 뉴욕포스트가 선정했다.

911 테러에 우연히 끼어들어

저자가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했을 때 메스껍고 머리가 빙빙 돈 것은 911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우연히 사건 현장을 지나다가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던 경험 때문이다.

온몸이 불타거나 창자가 튀어나오고,
머리와 사지가 분리된 시신을 즉석에서 처리해야 했던 초짜 의사 시절의 극한의 경험이 10년이 휠씬 지난 다음에도 온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시절 체험은 의사가 겪어야 할 책임감과 무게를 돌아보게 한다.
27살 때 저자는 이름 모를 한 남자를 알게 된다.
그 남자의 온몸을 절개한 다음 다시 원래 모습으로 조립했다.

저자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를 기점으로 앞으로 저지를 모든 실수는 그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고,
내가 이룰 수 있는 성공은 그에게 바치는 헌사가 될 것이다.

그 남자는 그가 첫 번째로 해부한 시신의 주인공이었다.
다행히도 그 시신은 저자와 비슷한 인도계 사람이었기에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의과대학 1학기가 끝날 즈음이면 전통대로 학생들은 그동안 해부한 시신들에 대한 추모제를 연다.

저자도 자신이 해부한 그 남자의 일생을 나름대로 상상한 이야기를 발표했다.
2차 대전이 끝난 다음 유행한 남아시아인의 이민 물결에 참가한 용기 있는 그 남자는 펀자브의 회색 집과 흰 울타리와 매캐한 배기가스를 뒤로하고 미국 대학에 합격해서 아버지의 격려를 받았을 것 같았다.

생명과 사랑과 진심의 상징인 심장,
그 심장의 여러 모습을 마치 문학작품처럼 다룬 책 ‘심장’은 삶과 인생의 향기가 가득하다.

개인적인 체험과 가족 이야기는 과학도서가 갖기 쉬운 딱딱함을 누그러뜨리는데 대단히 유용하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심장이 멎어 사망하는 사건은 직접 목격자가 되어서 참여했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서로 연결된 심장과 마음

심장은 정신적인 충격을 주고받기도 한다.
정서적 스트레스는 심장의 부정맥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심장의 부정맥은 정서적 충격도 가져온다.
심장과 마음은 양방향으로 연결된 것이다.

심장에 관한 한 1000년 넘게 서구사회에 군림한 갈레노스는 워낙 성경같이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다.
현대 해부학의 권위자인 윌리엄 하비는 갈레노스의 이론에 반대하는 내용을 확인하고도 발표하기를 무려 13년을 기다렸다.
갈레노스 지지자들의 비판에 직면에서 화형이라도 당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실험의 도구로 사용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시신을 해부하고,
인공심장을 개발해서 사용하는 과정에서 미국 여론이 들끓는 심장 과학 역사도 설명한다.

의사의 눈과 시인의 심장으로 쓴 글이라는 비평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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