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키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새해가 되면 술을 자제하거나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하기 마련이다.
요즘에는 쇼핑과 스마트폰 이용을 줄이겠다고 마음먹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게임,
언박싱(택배 포장 뜯기),
퇴근 후 동영상 몰아보기 같은 사소해 보이는 ‘행동 중독’도 술 담배 마약 중독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중독 치료 전문가인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중독성을 갖도록 설계돼
있어 누구나 중독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사람의 뇌는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하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이 분비돼 쾌락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 몸은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쾌락을 느끼는 만큼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우울감이나 불안감 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
음주나 쇼핑을 자제하지 못하고,
계속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일상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받는다면 위험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의지가 약한 사람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다.
25년 넘게 중독 환자를 치료해 온 렘키 교수도 재미로 읽던 ‘로맨스 소설’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요즘은 소셜미디어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
전 세계 인구의 60%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데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이 2시간 반으로 깨어 있는 시간의 15%를 차지한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정보로 이용자를 붙들어 두도록 설계돼 있어 잠자리에 들면서 잠깐 본다고 들어갔다가 새벽녘까지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렘키 교수는 “짧은 동영상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다”며 “어린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건 몸에 나쁜 음식을 먹게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양한 중독을 염려하는 건 역설적으로 풍요의 시대를 사는 덕분이다.
쉽게 쾌락을 주는 자극이 사방에 널려 있다 보니 소소한 보상에도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고소득 국가일수록 우울증 환자가 많은 이유다.
렘키 교수는 “재미와 행복이 최고의 선이고 고통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쾌락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며 “인생의 고통을 마주하고,
경험하고,
고통과의 싸움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건 결핍이 아니라 우리가 빠져들고 갈망하는 것들이란
뜻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