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BR>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진욱 ㅣ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정치인으로서 행보를 본격화했고,
이에 보수 정치권과 많은 언론은 일제히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오는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보수 정치의 혁신과 승리를 이룰 차세대 지도자로 기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권력,
세대,
이념 지형에 새 장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한동훈 현상’이라고 할 만한 특별함이나 새로움이 있다는 인상은 흔히 그가 장관 또는 정치인으로서 보여온 언행에 근거한다.
‘1992 티셔츠’를 입고,
처칠 연설을 인용하며,
넥타이를 풀고,
이승만과 조봉암을 함께 호평하면서,
대구에선 ‘정치적 고향’,
광주에선 ‘5·18 존경’,
제주에선 ‘4·3 추도’를 키워드로 뽑는 등의 행보가 그러하다.

이런 행동들은 잘 계산되고 연출된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것이 그의 메시지라면 이는 기성 정치에 이는 신선한 바람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보수 정치권에선 ‘한동훈 바람 타고 총선 승리하자’는 슬로건도 나오고,
사회적인 관심도 컸다.
지난 몇 주간 전국 일간지와 경제지에 매주 1천건 이상의 기사가 쏟아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들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향은 의외로 미미하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공동 수행하는 전국지표조사의 12월 1주와 1월 2주의 결과를 비교해보면,
총선에서 정부·여당 지원 의견은 42%에서 39%로 줄었고 견제 의견은 47%에서 50%로 늘었다.
오차범위를 고려한다면,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정당 지지율도 조사기관마다 다소 다르지만 지난 1년간의 소폭 변동 추이와 다른 특이점은 없다.

더 주목할 점은 지지기반이다.
한 위원장은 ‘엠제트(MZ)세대’,
‘엑스(X)세대’를 대변하는 세대교체로 보수 정치의 확장성을 높였는가? 한국갤럽 정기조사에서 ‘장래 대통령감’으로 한동훈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1월 2주에 22%까지 올라 23%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맞상대로 올라선 듯 보인다.
하지만 12월 1주와 견주면 한 위원장의 지지율을 높인 주역은 노인층이다.
60대는 28%에서 38%로,
70대 이상은 26%에서 36%로 급등했다.
그에 반해,
30대와 40대에서는 각각 10%와 16%에 머물러 이재명 대표의 20%,
32%의 절반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기반과 유사한 구조다.

이처럼 실제 ‘한동훈 효과’는 그가 연출한 이미지나 언론이 생산한 담론과 괴리가 크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권력이 보여준 것만 보지 않고 권력이 실제 무엇을 하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에게 보이는 모습들은 여야 막론하고 한국 정치 전반의 문제를 반복한다.

첫째는 이중성이다.
야당 수사는 정치와 무관한 법집행이고,
김건희 여사와 여당에 대한 수사 요구는 “정치적 악용”이라고 비난한다.
‘91년생 청년의 전세사기 일지’를 들고 브리핑하면서,
청년들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국론 분열”을 이유로 거부한다.
야당엔 불체포 특권 포기를 압박하면서,
검사 활동비 내역 공개는 거부한다.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자기모순들이다.

둘째는 편협성이다.
민주정치는 당파 간의 경쟁으로 작동하지만,
또한 상대 당파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전제한다.
증오정치 극복과 탈진영을 외치는 이가 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에 대한 적개심과 경멸을 숨기지 못한다면,
그러면서도 집권 2년간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를 한번도 넘지 못한 데 대한 자성과 변화가 없다면,
개혁의 수사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을 수 없다.

셋째는 피상성이다.
정치혐오 검사와 포퓰리스트 정치인을 합쳐놓은 듯한 그에게선,
민주적 철학과 사회현실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보이지 않는다.
‘동료 시민’을 부르지만 공화국 시민의 평등과 연대를 향한 신념은 없고,
‘법치’를 외치지만 법을 무기로 한 인치에 대한 분노는 없으며,
‘세대교체’를 호소하면서도 자기 세대의 결정적 생애경험이 서태지가 아니라 아이엠에프(IMF)라는 걸 모른다.
이처럼 언변의 영리함에 대조되는 정신적 얕음은 민주사회의 정치지도자로서 위험한 것이다.

이는 비단 한 위원장뿐 아니라,
불행히도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정치의 일상이다.
변화는 아직 어디서도 시작되지 않았다.
정치 현실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도처에 있으되 이를 결집할 지도자가 없다.
한동훈의 국민의힘,
이재명의 민주당,
‘제3지대’의 여러 집단 중 과연 누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민주공화국은 지금 안팎으로 중대한 위기에 놓여 있다.
정치가 실패한다면 국가도 실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