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집과 넓은 도시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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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한강을 덮은 물안개가 근사하다.
컨시어지 서비스로 배달된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50층을 내려가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를 타고 회사로 직행한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차를 세워두고 아파트 2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아내를 불러 건물 지하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생각나는 데로 갈겨썼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대도시 고층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어떤 이의 일상이다.
럭셔리한 인테리어의 넓은 아파트, 멋진 전망, 호텔식 서비스, 엘리베이터만 타면 도달할 수 있는 갖가지 편의시설, 많은 현대인이 꿈꾸는 (이른바 0.1%에 해당한다는) 성공한 인생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삶이 더 흔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옆집 할아버지는 벌써 일어나 집 앞을 빗질하고 있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는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냐 한마디 건넨다.
지하철 구내 빵집의 갓 구운 빵 냄새가 덜 깬 새벽잠을 위로한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 내일 아침거리를 사고, 동네 책방에 들려 책방 주인의 신간 추천도 받고, 비슷한 시간 퇴근한 아내와 새로 생긴 동네 일식집에서 식사 겸 가벼운 한잔 후, 집 앞 꽃집에서 화분 하나를 싼값에 흥정해서 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역시 생각나는 대로 썼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도시 서민 동네에 사는 어떤 이의 평범한 일상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의 실제 생활일 것이다.
평범하고 좁은 연립주택, 골목골목 다양한 모습으로 성심껏 가꿔놓은 가게들, 걷기만 하면 만나고 말 건넬 수 있는 낯익은 이웃들, 보통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특별할 것 없는 도시 모습이다.

성공할수록 넓고 큰 집을 꿈꾼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돈을 벌면 그래야 할 것 같다.
다들 그러기 때문이다.
건설회사의 광고대행사는 부자들의 사회적 욕망을 점화하는데 성공했고, 대안으로 등장한 고급주상복합은 멋진 전망, 차별화된 서비스, 편의성을 무기로 지난 20년, 성공이라는 인정을 갈구하는 현대 한국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높고 화려하고 편리한 큰 집에 살수록 자신이 사는 도시는 점점 더 작아진다는, 보이지 않는 사실을 말하는 광고는 없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 주거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고급주상복합 거주민의 만성 우울증 지수가 서민 동네 거주민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 우울증 지수가 거주민이 접촉하는 우연하고 즉흥적인 ‘도시적’ 만남의 횟수와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멋진 전망과 고급 서비스를 처음 접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사실 얼마 안 돼 무뎌진다.
그 비싼 한강뷰를 보면서 매일 감탄하는 거주민은 없다.
경비원의 90도 인사에 매일 성공의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주상복합이라는 큰집에 살게 되는 순간부터 실제로는 그 작은 세계에 자신의 일상은 갇히게 되고 그가 마주칠 수 있는 도시적 기회는 축소된다.
이 아이러니는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고도제한과 용적률 제한을 유지하면서 자동차로 움직이는 초고층 큰 집보다 보도로 연결된 작은 집이 모인 도시를 선호하는 숨은 뜻을 설명해준다.
이 집을 구매해 성공한 극소수 상류층(VVIP), 0.01%로 인정받으라는 상업광고에 현혹되지 않을 만큼만 집과 도시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길과 이웃으로 연결된 우리의 평범한 도시가 사실은 가장 넓은 집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평생 출세 다 한” 한동훈은 왜 정치를 하나?

[권태호 칼럼]

그는 ‘검사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것 같다.
“평생 할 출세”라는 말에서 잘 느껴진다.
남은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고, 그래서 ‘공공선’을 위한다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총선 뒤에 그에게 ‘정치적 미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를 계속한다면, 더 이상 ‘자애로운 귀족’으로 다가오지 말기 바란다.
‘불쌍한 평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기자권태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3일 충북 제천시 제천중앙시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BR>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3일 충북 제천시 제천중앙시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저는 검사 처음 시작한 날 평생 할 출세 다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져가야 할 잇속도 없다.
다만, 나라가 잘되길 바란다”(3일 충북 충주 유세), “이수정은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여러분을 위해서 나왔다”(지난달 27일 경기 수원 유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을 보면, 하나의 세계관이 일정한 궤를 유지하는 것이 보인다.
‘귀족’이 ‘평민’을 위해 수고로이 손수 몸을 일으켜 시혜를 내리는 것이다.
요즘 공개적인 자리에서 ‘출세’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노인 외에는 잘 없다.

지난 2월 대기업-전통시장 상생 모델인 서울 경동시장 스타벅스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스타벅스는 사실 업계의 강자이지 않나, 굉장히. 여기가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은 아니다.
그렇지만 경동시장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옛 경동극장을 매장으로 꾸며 품목당 300원씩 적립해 경동시장 상생기금으로 조성한다.
한 위원장은 같은 달 관훈토론회에선 “국민의힘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어서 갑자기 당대표로 불러올린 것”이라며 “제가 죽을 길인 걸 알면서도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4월10일 이후 제 인생이 꼬이지 않겠나. 이기든 지든. 저는 그걸 알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무부 장관이던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거액의 재산신고 누락을 이유로 국회 임명안이 부결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인사 검증을 제대로 못 한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쓸 때는 대개 비슷한 문제가 나오게 돼 있다”고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처남이 운영하는 가족회사의 비상장 주식 9억9천만원 상당을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가 보유하고, 3억원가량을 배당금으로 수령한 사실을 수년 동안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게 문제가 됐다.
지난달 이수정 후보 관련 발언도 수원에 출마했는데 서울 서초구에 38억원 상당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공격받았을 때다.

한 위원장의 또 다른 세계관은 ‘억울함’이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 직후 여론이 악화된 날, 부산·경남 유세에서 “정부가 부족하지만 100일도 안 된 제게 그 책임이 있지는 않지 않으냐. 개인적으로 억울하다.
제게 기회를 한번도 안 주셨는데 이렇게 사라지게 두실 겁니까”라고 했다.
친구나 동생의 하소연이라면 이해가 되나, 지금까지 공개석상에서 이런 유아적인 말을 한 여당 대표가 있었던가. 다음날 주워 담긴 했지만, 무엇이 진심인지는 다 안다.
사람은 성공했을 때, 위기에 처할 때, 그리고 피곤할 때, 진심과 인격이 드러난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었다.
민정수석실 인사검증 업무를 가져오면서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진일보”라 했다.
그러면서 “제 입장에선 짐과 책무에 가깝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제가 비난받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늘 한결같다.
‘개인적으론 손해지만 기꺼이 희생’ 세계관의 연장이다.
그런데 지난해 2월 정순신 전 검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결정이 ‘아들 학교폭력 송사’ 문제로 하루 만에 취소된 것을 비롯해 매번 부실 검증 논란이 일자, “자료를 수집만 하고,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넘기는 역할만 한다”고 말하는 등 책임을 회피했다.
인사 실패 책임은 전적으로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세계관은 ‘생색’이다.
지난달 20일 이종섭 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귀국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건 대통령실도, 외교부도 아닌 유세 현장의 한 위원장이었다.
“이종섭 대사 문제. 저희가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는 말씀 드립니다”라고 했다.
29일 이 전 대사가 사퇴했을 때도 곧바로 “‘저희가’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는 말씀 드립니다.
내가 (대통령실에) 귀국해야 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공’은 취하고 ‘과’는 넘긴다.
이런 사람을 업무적으로 위에나 아래에 두면 내가 다친다.

한 위원장의 또 다른 특징은 ‘내로남불’인데, ‘내로남불’은 인간의 속성이다.
그래서 탓하기 힘들다.
그러나 일일이 사례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남에겐 추상같고, 내겐 봄바람’ 같은 간극이 너무 커 그의 ‘내로남불’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서울법대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검사’가 인생의 목표였던 것 같다.
“평생 할 출세”라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남은 삶은 덤이고, 그래서 ‘공공선’을 위한다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총선 뒤 그에게 ‘정치적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를 계속한다면, 더 이상 ‘자애로운 귀족’으로 다가오지 말기 바란다.
‘불쌍한 평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한 위원장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1995년 이후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해, 요즘은 다들 똑똑하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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