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
공공장소에서 소란 피우는
아이들 동영상에 분개하지만
술 취해 폐끼치는 성인엔 관대
여성 노인 장애인 외국인 등
약자 배려하는 문화 정착돼야
언제부턴가 ‘노키즈존’이라는 무시무시한 팻말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천방지축 주변에 폐를 끼치는 아이와 제지하지 않는 부모의 만행이 SNS를 통해 전파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노키즈존은 당연한 거지! 사장님 불쌍해!”라고 외친다.
이런저런 이유로 찬반이 갈리기도 하지만 결국 자극적인 30초 영상 하나에, 대세는 노키즈존 찬성으로 넘어간다.
“우리 아이 기죽이지 말아요!”라고 소리 지르는 부모나 예의범절을 배우지 못해 민폐 끼치는 아이나 눈총받아 마땅하고 적절히 제지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식당이 떠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전통의 강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술 마시는 어른들이다.
우리 키즈들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고, 폐를 끼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사고 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음주자들이지 어린이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늦은 밤 경찰서 손님들 역시 대부분 음주자들이다.
그렇다면 왜 ‘노음주자존’은 없을까. 술 취한 사람들이 치는 사고 소식이, 영상이 우리를 분노하게 해도 누구 하나 노음주자존을 언급하지 않는다.
결국 술 마시는, 경제력 있는, 가게 매출 대부분을 담당하는, 우리 사회 다수인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에 대해서는 감히 ‘NO’를 외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떻게 보면 조금 비겁하다.
더 많은 폐를 끼칠 위험이 있지만 다수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결국 만만한 소수의 약자들만 제물로 삼는 것 같아서 그렇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 룰이 적용되면 언제나 배제되는 것은 그 유형에 하나라도 미달되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다.
때로는 성인이 아니어서, 때로는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어서, 또 신체 건강하지 못해서 그룹에서 배제되고 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더 나아가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임에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어서 타깃이 될 때도 많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노인은 공공수영장에서 실례할 가능성이 높다는 모욕적인 지적과 함께 ‘노시니어존’을 설치하라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분이 버스 한번 타려면 기사님과 줄서있는 다른 손님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들이 이곳저곳에서 거부당하고 쫓겨나는 일은 이제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 입히는 노키 즈존이 아니라도 폐 끼치는 아이들을 제지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없는지, 우리 사회에 이런 혐오문화가 퍼져나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야 하지만 사실 일상에 찌든 대다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들은 그런 고민이 귀찮다.
30초 영상에 등장하는 고래고래 소리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쉽게 분노하지만 30초 뒤에는 챌린지 영상을 보며 엉덩이를 들썩인다.
다행히도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이라는 무적의 다수 그룹에 속해 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은 나를 편안하게, 또 무뎌지게 한다.
한때 ‘신체 건강한 자국의 귀족 백인 남성’이 ‘신체 건강한 자국의 백인 남성’으로, ‘신체 건강한 자국 남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도 무수히 많은 약자의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다.
신체 건강하지 못한, 우리 국적이 아닌, 성인이 아닌, 남성이 아닌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친절하고 무섭고 차갑다.
30초 동영상에 흥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한 번쯤 찬찬히 이면을 되돌아보며 ‘사람’이니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곱씹어 보면 좋겠다.
쓰고 보니 이 경우에도 인간의 편견이 작동하는 것 같다.
이참에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도 따뜻한 시선 한번 보내보면 어떨까. 식물도 사랑하라는 거냐는 식의 비아냥이 아니라 동물을 바라보는 그 따뜻한 마음을 예쁘게 여기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차호동 검찰연구관(대검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