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중앙일보


최은미 소설가

최은미 소설가

운동을 하다 손가락에 골절상을 입은 적이 있다. 헬스장에서 잠깐 집중력을 잃은 틈에 25킬로 무게의 덤벨에 한손을 찧은 것이었다. 다행히 새끼손가락에만 금이 가 키보드 작업을 아예  못하진 않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사는 손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어쩔 수 없이 반 휴업 상태가 된 채 한 달 넘게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생활하게 되었다.

손에 흰 붕대를 두툼하게 감고 다니는 건 생각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팥죽을 포장하러 들른 식당에서 카운터의 사장님은 마치 이전에도 나를 알던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내 손에 대해 묻고 걱정을 했다. 어쩌다 그랬는지. 얼마나 불편하겠는지.

재난 상황서 느끼는 주변 배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안도
그런 믿음이 더 두터워졌으면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카페나 마트에서, 공원이나 상점에서, 이런저런 접수실과 대기실에서, 평소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쳤을 사람들이 내 붕대 감은 손을 보면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들이 이전에 겪었던 크고 작은 사고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신체 여러 부위의 골절과 그에 따른 통증, 치료법과 후유증에 대한 경험담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고, 얼른 나으라는 덕담에 연신 감사를 표했다.

돌아보면 손에 붕대를 감고 있던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나는 특별한 활기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도 같다. 예상치 못한 작은 사고가 불러온 예외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세상의 다른 결을 문득 실감하게 된 느낌이었고, 내 주위를 감싼 호의와 친절을 그 마음 그대로 흡수해갔다. 한손에 붕대를 감은 채로라면 누구와도 어렵지 않게 말을 틀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구의 도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껍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맨몸으로 떨어져 내려도 치명상을 입지는 않을 정도의 쿠션감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느낌. 그 느낌을 믿고 싶은 마음. 코로나 시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쓰고 있던 내게 그것은 꽤 매달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리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끔찍한 안개에 갇혔던 자신의 친구의 경험을 들려준다. 위험한 안개 때문에 고속도로 순찰대가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의 교통을 전면 차단했을 때,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이틀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은 식당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머물게 된다. 식당 벽에 붙은 긴 의자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잠을 자고 먹을 것과 물이 서서히 바닥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뜻밖에도 경이로운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공통점이 별로 없었는데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삶을 터놓고 얘기하게 된 것이다.

도로가 안전해지고 갇혀 있던 식당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가족들한테 말한다. 작은 식당에 발이 묶여 있던 재난의 시간 동안 얼마나 넘치는 기쁨을 느꼈었는지. 그 식당에서 보낸 시간은 미국 토박이인 친구의 남편이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사회에 속해 있음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재난은 때로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만 때로는 놀라운 해방을 불러와 우리의 다른 자아를 위한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해준다고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평소의 구분과 양식이 파괴된 재난 상황이 되면 인간이 야만적으로 돌변한다는 관점과 달리 실은 대다수 사람들은 이웃을 보살피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리베카 솔닛이 강조했듯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인간이 그러할 것이라는 걸 알고 믿는다면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믿음이 행동을 결정한다.’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기간 동안 느꼈던 세상에 대한 쿠션감이 옅어질 때가 있다. 실은 자주 옅어진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내가 이대로 맨바닥에 부딪혀 깨지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처방을 한다. 하나는 믿음과 가능성에 대한 리베카 솔닛을 글을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 밖은 광장일 때가 가장 좋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광장이라면 더더욱 좋다.

등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며 웃고 인사하는 곳. 당신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손을 흔들게 되는 곳. 내가 쓰러지면 저들이 달려오리라는 것과 저 아이가 쓰러지면 내가 달려갈 것이라는 걸 믿게 되는 곳. 말라가는 식물에 물을 주듯 그 실감 속에 주기적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너무도 중요해서 올여름의 폭염과 태풍이 오기 전에 세상에 대한 쿠션감이 조금이라도 더 두터워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덜 두려울 수 있도록.

최은미 소설가

행복이란 파랑새

중앙일보
윤석만
윤석만 기자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행복경제학의 창시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지적행복론』에서 행복의 3요소로 ①물질적 부 ②건강 ③가족을 포함한 사회관계를 꼽았다. 부는 다른 요소와 달리 일정 수준에 이르면 행복도를 높이지 않는다. 물질 소유로 인한 행복의 한계효용은 계속 낮아지고 결국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1953년 67달러에서 2023년 3만2142달러로 480배 늘었지만 행복은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 유엔 ‘세계행복지수’ 순위는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2년 56위에서 2022년 59위로 떨어졌다.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여년째 1위다. 특히 30세 이상에선 감소 추세지만 10~20대에선 되레 늘고 있다. 20대 우울·불안장애 환자도 2017~2021년 13만 명에서 28만 명으로 급증했다.

외형적으론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의 나라지만 국민 개개인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며, 누적된 좌절 속에 열패감이 쌓이기 쉽다. 타인과의 비교는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어쩌다 한번 잘되면 과시와 갑질을 한다. 압박과 스트레스가 일상인 ‘하이 텐션(high tension·고도불안) 사회’의 전형적 모습이다.

최근 ‘묻지마 범죄’의 급증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던 조선(33)이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정유정(24)은 ‘소용돌이 사회’가 낳은 괴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온 국민이 명문대와 전문직, 좋은 아파트를 향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가지만 현실의 대다수는 경쟁에서 낙오한다. 도피처로 찾는 SNS에서 물신화한 명품과 사치스러운 소비행태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만 커진다.

가장 시급한 건 사회 양극화 해소다. 하지만 개인의 의식변화도 필요하다. “산 너머 행복을 찾아 친구 따라갔다 눈물만 머금고 왔다”(Uber den Bergen, 산 너머)는 독일 시인 칼 붓세의 말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타인과 비교하는 대신 자존감을 키우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이 정한 획일적 목표에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 결단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게 행복의 본질이다(존 스튜어트 밀).

'3김여사 특검' 띄우고 "秋정신병" 직격…與 홀로 튄 '초선 투사'

중앙일보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달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민전 수석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달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민전 수석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비례대표 초선의원이자 당 수석대변인직을 맡고 있는 김민전 의원이 국회 등원 초반부터 야권을 직격하며 여당 내 신인 공격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5일 채널 A 유튜브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탄핵만답이다’ 6행시 챌린지에 나선 것을 두고 “‘추미애가정신병’(秋美哀歌靜晨竝)이라고 한때 유행했던 한시가 떠오른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추 의원이 어떤 분이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장관 할 때 그 모습을 다 봤지 않는가”라고도 했다. 김 의원이 언급한 한시는 추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마찰을 빚은 2020년 중반 인터넷상에서 퍼진 것으로 추 의원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저격수 역할도 자처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웅동학원(조 대표 일가가 운영 중인 학교법인) 사회 환원 미이행 ▶문재인 정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 관련 의혹 ▶문 전 대통령 사위였던 서모(44·이혼)씨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나열하며 “혹시 문 전 대통령이 조 대표에게 ‘마음에 빚이 있다’고 한 것이 해당 의문들과 관련된 것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옹호전에도 김 의원은 빠지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에서 축하주를 마신 것을 두고 비판이 일자, 김 의원은 “지나치게 대통령을 ‘술’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전략”이라고 맞받았다. 김 의원은 지난 3일 TV조선 유튜브 ‘강펀치’에 출연해 “사실 요즘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 한잔 안 하는 곳은 없지 않은가. 캔맥주를 종이컵에 따라서 건배한 것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지난달 21일에는 채 상병 특검법 관련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22대 국회 개원 이전부터 ‘3김(金) 여사 특검’을 주장하며 주목을 받았다. 야권이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김건희 여사 특검을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하겠다고 공언하자 김 의원은 지난달 7일 페이스북에 “김건희 여사 특검을 받아들이는 대신 김혜경 여사의 국고손실죄 의혹, 김정숙 여사의 옷과 장신구 의혹 등 ‘3김 여사’ 특검을 하자”고 썼다. 이후 여권은 김정숙 여사의 2018년 인도 방문 당시 의혹을 집중 공략했고 지난 3일 윤상현 의원은 ‘김정숙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눈에 띄는 초선 투사가 없다”는 아쉬움 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김 의원에 대해 당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초선 중 비교적 정치적 경험이 많은 김 의원이 전면에 나서 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의원이 진영 내 인기몰이에 지나치게 치중할 경우 향후 정치적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공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김 의원을 높이 평가한다”라면서도 “본인 이미지가 한 방향으로 굳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