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생 선수들의 도쿄 올림픽 이야기

 


도쿄 올림픽을 한국의 MZ세대 선수들이 ‘쿨림픽’으로 만들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를 즐길 줄 알고, 패한 상대 선수에게 포옹을 건네며, 팬들을 위해 귀국길 브이로그를 찍는다. 그 주역은 2000년대생  장준, 박지현, 조성재, 안세영, 신유빈! 그야말로 스포츠의 New Beginnings!

재킷과 블라우스는 에트로(Etro), 데님은 마쥬(Maje), 레이어드한 진주 네크리스는 타사키(Tasaki), 골드 체인 네크리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이어링은 구찌(Gucci).

드레스와 네크리스, 이어커프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이어링은 구찌(Gucci).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와 톱, 레깅스, 부츠, 네크리스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삐약! 신유빈의 인생 기합

도쿄 올림픽 이후 신유빈은 ‘국민 여동생’으로 불린다. 14세 11개월에 한국 탁구 역대 최연소로 국가 대표에 발탁돼 17세에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다. 개인 단식 32강부터 화제였다. 자신보다 마흔한 살 연상인 룩셈부르크의 노장 니샤렌을 이겼다. 니샤렌은 중국 국가 대표 팀 출신으로 세계 대회 메달리스트다. “초반엔 조급했지만 천천히 하자, 줄 것 주고 할 것 하자고 생각하니 경기에 여유가 생겼어요.” 니샤렌은 경기 후 “신유빈은 새로운 스타이며 기술도 훌륭하다”고 말했다. 신유빈이 꼽은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경기는 단체전 8강. 전지희, 최효주 선수와 함께 출전했지만 독일에 2 대 3으로 역전패했다. 경기 후 신유빈은 눈물을 보였다. “언니들이 잡아준 경기를 제가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탁구 선수로서 이런 응원은 처음이라 보답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울었나 봐요.”

톱은 오프화이트(Off-White), 진주 펜던트 골드 네크리스는 타사키(Tasaki), 레이어드한 다이아몬드 세팅 네크리스는 프레드(Fred).

드레스와 네크리스, 이어커프, 링, 슈즈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다이아몬드 세팅 사쿠라 골드 링은 타사키(Tasaki), 이어링은 구찌(Gucci).

신유빈의 진심을 아는 팬들은 그의 인스타그램을 찾아가 응원 댓글을 달았다. 인스타그램은 훈련 모습과 함께 17세 소녀의 평범한 일상과 패션 스타일로 팔로워가 늘어 현재 15여만 명이다. “팔로워가 벌써요? 올림픽 후에 가족과 떠난 제주 여행에서도 알아봐주는 분이 있어서 얼떨떨했어요. 저를 좋아해주시다니!” 팬의 요청으로 귀국길 브이로그를 찍은 것이 계기가 되어 유튜브 채널 ‘삐약 유빈’이 개설됐다. 삐약은 신유빈이 경기 중에 넣는 기합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제가 노란 유니폼을 입어서 더 ‘삐약’으로 들렸나 봐요. 다음엔 검은색을 입으려고 했는데 결국 노란색을 입었어요. 지금은 삐약이란 별명이 친근해요.” <보그> 촬영 때는 MBC <놀면 뭐하니?> 녹화도 있었다. 신유빈은 2014년 열한 살에 국가 대표 상비군 탁구 선수로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 있어 유재석과의 재회로 화제다. 다섯 살 때는 탁구 신동으로 SBS <스타킹>에 출연했다. “부끄러워서 그 영상은 못 보겠어요. 강호동 아저씨께 뚱뚱하다고 말해서 지금도 죄송해요.”

톱은 오프화이트(Off-White), 스커트와 벨트는 알라이아(Alaïa), 진주 펜던트 골드 네크리스와 다이아몬드 세팅 골드 링은  타사키(Tasaki), 레이어드한 골드 브레이슬릿과 다이아몬드 세팅 네크리스는 프레드(Fred).

올림픽이 끝나면 휴식 겸 영광을 즐겨야 마땅하지만, 신유빈은 훈련과 함께 이 일정을 감당하고 있다. 8월 17~19일 무주에서 열리는 2021 세계 선수권 파이널스에 출전할 대표 선수 선발전을 준비 중이고, 방역 상황에 달렸지만 일본 프로 탁구 T리그의 2021-2022 시즌을 뛰기 위해 훈련 중이다. 여행도 좋아하고, 기분 전환을 위해 쇼핑도 가고 싶지만 어느 정도는 참아야 한다. “좋아하는 떡볶이, 간장게장은 잘 먹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신유빈은 자신의 장점으로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될 때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꼽았다. 힘든 훈련도 웃으며 해왔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즐겨야죠. 가끔 못 견딜 만큼 쌓이면 크게 울고 다시 훈련해요. 탁구가 그만큼 좋거든요.” 하지만 인생 목표는 더 크다.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지만, 탁구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픈 친구들에게 기부도 하고 주위에 베풀며 어우러지는 삶을 살고 싶어요.”

조성재가 유영하는 법

“아쉽죠. 결과에 대해서는 아쉬운 것밖에 없어요. ‘왜 저것밖에 못 나왔지? 평소만큼만 했어도 결승에 가는 건데.’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따라줬어요. 자신감도 없었고,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나 봐요.” 올림픽 남자 100m 평영에서 조성재가 터치 패드를 누른 시간은 59초 99. 1분의 벽을 깨고 예선 4조 1위로 들어왔지만 다른 조에서 16명의 더 빠른 선수들이 나왔다. “저에겐 아직 시간이 많아요. 서른 살 넘어 2032년 올림픽까지 나가는 게 목표예요. 세계 신기록 세우고 금메달 따야죠.” 다행이다. 조성재가 지나간 버스에 미련을 두는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다.

레더 바이커 재킷은 로에베(Loewe), 모자는 2 몽클레르 1952(2 Moncler 1952), 레깅스는 몽클레르 컬렉션(Moncler Collection), 네크리스는 펜디(Fendi).

화이트 레더 트렌치 코트, 지퍼 디테일 레더 팬츠, 슈즈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조성재는 수영을 하던 누나를 따라 처음으로 물에 들어갔다. 물이 좋아 시작한 취미가 인생을 바꿨다. 날 때부터 아쿠아맨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중상위권의 평범한 선수였다. 서울체고 2학년 때 하영일 코치를 만나며 선수 인생에 변곡점이 생겼다. “코치님 덕분에 영법이 많이 바뀌었어요. 기록 단축에 큰 도움을 주셨죠. ‘수영이 재미있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이 인터뷰는 꼭 나갔으면 좋겠어요.”

조성재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태극 마크를 달았다. “터치 패드를 찍고 들어왔는데, 제 이름이 전광판에 있었어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죠. 어릴 때부터 국가 대표가 되는 게 목표였으니까.” 처음 참가한 올림픽도 낯선 경험이다.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실감이 나더라고요. 도쿄에 도착해 수영장에 오륜기가 걸린 걸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드디어 올림픽에 왔네!’ 어릴 때 꿈꾸던 모습이 눈에 펼쳐진 순간이었죠.”

승부욕 역시 지금의 조성재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연습할 때 기록이 안 나오면 극도로 예민해져요. 올림픽 때 숙소를 같이 쓰던 친구도 말하더라고요. 엄청 예민하고 날카로웠다고.” 마음을 다잡는 방법은 아직도 찾는 중이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는 유튜브로 ‘마음이 안정되는 음악’, ‘불교 경전’ 등을 들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요즘 관심사에 대해 묻자 “롤(리그 오브 레전드)이에요. 저 얼마 전에 다이아 찍었어요”라고 답했다. 스무 살다운 대답이다. 조성재가 수영만큼 좋아하는 건 역시 게임이다. “또래 운동선수 중에 톱 10에 들걸요?” 그의 눈에 생기가 돈다. 신발 끈을 느슨하게 풀어 헤친 아디다스 이지부스트를 신고 있어서 패션에 대해 물었다. “작년에 이지에 꽂혀 세 켤레나 샀어요. 한 켤레는 안 신어서 중고나라에 팔았어요(웃음). 패션, 좋아하죠. 깔끔하게 입는 걸 좋아해요.” 어쩐지, 그의 영법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최근 조성재는 카메라에도 ‘빠졌다’. 올림픽이 끝나고 우연히 들른 전자 기기 매장에서 카메라의 ‘찰칵’ 소리에 매료돼 그 자리에서 덜컥 구매한 것이다. 지금은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누르며 사진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작년에는 기타를 쳤어요. 잘 치진 못해요.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칠 수 있을 정도 수준? 이런저런 취미를 갖는 게 제 ‘멘탈’ 관리에 도움이 돼요. 너무 수영에만 빠져 있는 것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올림픽이 끝났건만 조성재는 쉴 틈이 없다. 일주일 휴식 후 바로 제주로 내려간다. 전국체전 준비에 돌입해야 하니까. 체전이 끝나면 아시안게임이 기다린다. 한창 놀고 싶은 나이인데, 물속에서 너무 빨리 철이 든 걸까. 도리어 운동하는 게 쉬는 거라며 찡긋 웃는다. “물이 제일 편해요. 오롯이 저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안세영의 후회 없는 스무 살

“정말 후회 없을 만큼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지난여름의 안세영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둔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한 덕분에 컨디션이 좋다는 걸 스스로 느낄 만큼 자신 있었다. “스무 살에 겪는 올림픽은 살면서 한 번뿐이잖아요. 긴장만 하지 않으면 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국가 대표 선발전 전승 기록, 한국 선수 최초 2019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신인상, 올해 BWF 월드 투어 우승 등 수많은 기록을 세우며 성장한 2002년생 ‘셔틀콕 천재’의 올림픽 첫 무대. 여자 단식 세계 랭킹 8위인 그녀에게 한국이 거는 기대는 당연했다. 조별 리그 1차전부터 이어진 16강전까지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끝낸 안세영의 플레이는 침착하면서도 끈질긴 그녀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 있었다. 무릎이 까지든, 발목을 접질리든 툭 털고 일어나 끝까지 셔틀콕을 쫓아가는 투지에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8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 중국 천위페이를 만나 도쿄에 더 이상 머물지 못했을 때조차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다음 올림픽을 기대할 만큼 ‘안세영다움’은 멋졌으니까.

블루종과 데님은 디올(Dior).

“그래도 아쉬워요. 올림픽이 아직 안 끝난 것 같기도 해요.” 올림픽이 끝난 지금, 끝나지 않은 건 안세영의 훈련 루틴뿐이다. 귀국 후 코로나 검사를 위해 딱 하루 격리하고 스스로 소속 팀(삼성생명) 훈련에 돌입했다. “운동은 하루 쉬면 다시 시작하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하루 쉬면 이틀 쉬고 싶고, 이틀 쉬면 사흘 쉬고 싶고… 그게 싫어서 가능하면 매일 하려고 해요.” 여섯 살 때 처음 라켓을 쥐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해 만 15세에 최연소 국가 대표가 된 이후 더 깊이 있게 이어온 훈련의 시간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운동을 하고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광주로 향하는 스케줄이다. 집에 가서도 홀로 45층 아파트 계단을 뛰어오르거나 전남대학교 운동장을 뛰며 하루를 채운다. 올림픽이 끝나면, 딱 한 잔 해보고 싶다던 맥주도 아직 못 마셨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정말 느낀 게 많았어요. 아직 국가 대표 주전을 하기에는 부족하구나 싶었죠.” 태극 마크를 달고 임한 첫 경기 상대도 천위페이였다. 2 대 0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정말 많은 분이 응원하고 계시다는 걸 느꼈는데도 15 대 8, 20 대 13… 점점 점수 차가 벌어지니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날지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어렸으니까, 그게 정말 창피했어요.” 경기 직후 인터뷰할 때마다 울먹이는 이유는 함께 고생한 코칭스태프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지 손에 쥐지 못한 메달 탓이 아니다. “장영수 코치님이 새벽이고 밤이고 제가 훈련하고 싶다면 시간 맞춰 매번 나와주셨거든요. 훈련밖에는 답이 없어서 그랬는데. 경기 결과가 나쁘면 그 생각부터 나서 힘들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안세영은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써오던 훈련 일지는 이제 경기 분석으로 내용이 바뀌었고 주위의 기대도 즐긴다. “‘천재 소녀’, ‘기대주’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처음에는 잘해야겠다는 마음에 칭찬을 부담으로만 느꼈어요. 그런데 스무 살이 된 뒤 달라졌어요. 은근히 관심받는 거 좋아하거든요(웃음).”

레드 컬러 니트 터틀넥은 에트로(Etro), 진주 네크리스와 옐로 골드 진주 이어커프, 옐로 골드 진주 링은 타사키(Tasaki).

경기 중 뉴스나 SNS 댓글, 팬들이 만들어준 영상도 찾아본다. 자신이 몰랐던 단점도 깨닫고 장점으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때로 결과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이 복잡할 땐 별을 본다. 원래는 베이킹이 취미인데 진천선수촌에선 빵을 만들 수 없으니 카메라로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며 머리를 식히고 다시 뛰었다. 그런 식으로, 안세영 스스로 프로다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중이다. “제 경기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환호할 때 제일 행복해요. 그때 쾌감이 정말 커요.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인드거든요. 앞으로 뭔가 대단한 목표보다 아직 다 해보지 않은 세계 대회 우승부터 차곡차곡 해보려고요.” 그래도 하나 더 갖고 싶은 꿈은 없는지 물었다. “나중에 제 이름을 단 경기장은 하나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요? 운동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수 있게요.” 경기장 밖, 그녀의 목소리는 작지만 솔직하고 거침없다. 바로 지금, 스무 살 안세영이므로.

태권도 정신처럼 단단한 장준

장준의 SNS 팔로워는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네 배 이상 늘었다. 동메달을 손에 든 사진이 피드에 올라오자 순식간에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그중 장준의 ‘대댓글’이 눈에 띈다. “DM으로 축하한다고 정말 많이 연락을 주셨는데 꼭 답장 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이라는 수식어를 두 번 사용했고, 힘주어 ‘꼭’이라는 말로 기다리는 팬을 안심시켰다. 지금도 장준은 쉬지 않고 답장을 하는 중이다.

스터드 페이스 마스크와 니트 톱은 셀린느 옴므 바이 에디 슬리먼(Celine Homme by Hedi Slimane).

블루종, 셔츠, 쇼츠, 삭스, 슈즈는 구찌(Gucci).

효와 예를 중시하는 태권도지만 세상 모든 태권도인이 다 장준 같을지 궁금해졌다. 조금 느리지만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표정이 다양하진 않지만 눈빛은 언제나 진심이다. 아는 체를 해오는 모든 이에게 깊이 고개 숙여 하는 인사도 몸에 익어 보였다.

일곱 살의 장준은 형이 하는 건 뭐든 좋아 보였다. 형의 태권도장을 무작정 따라간 날이 태권도와의 첫 인연이다. 열한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태권도 지도자였던 지인에게 아들의 실력을 알린 것이 선수 장준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이 오늘의 장준을 만든 셈이다. 2018년 열아홉 살 장준은 본격적인 ‘장준 시대’를 만들어간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1위, 금메달, 챔피언을 석권했다. 이듬해에는 세계태권도연맹 갈라 어워즈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 선수상을 탔다. 단 한 명에게만 출전 기회(-58kg급)가 주어지는 도쿄행 티켓 역시 그의 차지였다. 1등이라고 자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첫 올림픽 출전이라고 흥분하거나 중압감을 느끼지 않은 이유 역시 고요한 호수 같은 성격 덕분이다. 하지만 도쿄 올림픽이 다가오자 ‘어금준(어차피 금메달은 장준)’의 무게가 전신을 짓눌렀다. 태권도를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슬리브리스 실크 톱과 팬츠는 디올 맨(Dior Men), 다이아몬드 펜던트 골드 네크리스와 볼드한 골드 링은 프레드(Fred), 스틸 워치는 티쏘(Tissot).

경기 당일, 컨디션 난조로 결국 준결승전에서 튀니지의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 선수에게 패하고 만다. “상대 선수는 각 상황에 따른 대처 방안을 철저히 준비해왔어요. 그가 더 잘했기 때문에 이긴 거예요. 당연히 축하해줘야죠.” 준결승전이 끝나자 장준은 칼릴 선수와 포옹했다. 이어 승리의 기쁨에 흐느껴 우는 튀니지 감독도 찾아가 축하의 포옹을 건넸다.

다이아몬드 펜던트 골드 네크리스와 다이아몬드 세팅 골드 링은 프레드(Fred).

태권도를 시작한 이후로 이기는 데 익숙한 그에게 패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신기한 건 올림픽 기간 내내 그를 괴롭힌 중압감이 패배 이후 치유됐다는 사실이다. 그 후 이어진 동메달 결정전에서 장준은 헝가리의 오마르 살림 선수를 30점 차로 이겼다. 장준 스스로는 평소 기량의 절반밖에 발휘 못했다며 아쉬워했지만, 해설위원들은 태권도에서 가능한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보여줬다며 극찬했다.

블루종과 셔츠는 구찌(Gucci).

장준은 동메달 수상자로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경기장을 돌 때 그간의 훈련 과정과 부모님, 은사를 떠올렸다. 과격한 경기 중에도 흥분한 적 없는 그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퇴장한 후 한참 울었다. 그 자리엔 고등학교 은사인 송명섭 코치도 함께였다.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기도 한 송명섭 코치는 고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장준의 멘토였다. 장준은 그의 인품을 좋아하고 닮고 싶어 했다. 이미 물들어 있음에도 본인은 더 자신을 가다듬어갔다.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얻은 교훈도 마음과 관계 있다. “긴장과 부담을 덜어내는 마인드 컨트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여유롭고 편안한 경기 운영이 장점인 그이지만 더 견고해지기 위해 전진할 것이다.

여자 농구의 내일이 된 박지현 

13년 만에 한국 여자 농구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스페인(3위), 캐나다(4위), 세르비아(8위)와 함께 예선 A조에 편성된 한국 팀은 안타깝게도 3패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세계 랭킹 19위인 한국 팀은 강호들과 근소한 점수 차로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특히 4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패한 세르비아전에서 박지현은 다시 한국 여자 농구의 미래로 주목받았다. 도쿄 올림픽 이전에 이미 FIBA(국제농구연맹)가 선정한 ‘지켜볼 젊은 선수 10인’에 이름을 올린 그녀는 세르비아전에 선발로 출전해 팀 내 최다 득점과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이다.

코트는 발렌티노(Valentino), 티셔츠와 레깅스, 농구공은 나이키(Nike), 네크리스는 로에베(Loewe), 이어링은 펜디(Fendi).

코듀로이 와이드 팬츠는 로에베(Loewe), 스니커즈는 발렌티노(Valentino), 버킷 햇은 펜디(Fendi), 스틸 워치는 티쏘(Tissot).

“대진표를 보고 걱정이 앞섰지만 금세 마음이 바뀌었죠. 상위권 선수들과 언제 겨뤄보겠어요?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을 안고 경기를 기다렸어요.” 주변에서 “30점 차만 아니면 돼, 20점 차로만 져도 잘한 거야”라고 할 때마다 박지현은 오기가 생겼다. “아직 상대하지 않았는데 왜 다들 우리가 진다는 건지… 부정적인 생각은 옳지 않아요. 경기를 위해 내 몫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여겼죠.”

박지현은 도쿄 올림픽에서 얻은 성과를 팀원들과 전주원 감독에게 돌렸다. 전 감독은 엄한 편이지만 선수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보듬으며 팀을 이끌어왔다. 박지현은 팀 내 정신적 지주인 김정은 선수에게도 각별히 고마워했다. 김정은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한국 여자 농구가 올림픽 티켓을 쥐게 한 공신이다. “국가 대표 팀 전원 모두 좋은 분들이에요. 그들 옆에 있으면 덩달아 저도 좋은 선수가 돼가는 것 같아요. 팀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도 설 수 있었고. 팀 코리아죠!”

레더 바이커 재킷은 로에베(Loewe), 니트 베스트는 에트로(Etro), 레이어드한 브레이슬릿은 펜디(Fendi).

박지현은 열 살에 동네 친구 따라 유소년 농구 클럽에 등록했다. 중학생 유망주를 거쳐 숭의여고의 전승 행진을 이끌었고, 2018-2019 여자 프로 농구 신인 선수 선발에서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입단 후 정규 리그 15게임에 출전해 두각을 보인 뒤, 2019 정규 리그 시상식에서는 기자단 투표 101표 중 96표를 얻으며 스타 신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박지현의 농구 인생에 굴곡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감만으로 프로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훈련량도 어마어마했으며 입단하자마자 곧장 프로 경기에 투입된 점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단단한 성격으로 모두 이겨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고 있다. 드물었을 사진 촬영에도 박지현은 호리촌트에서 머뭇거림 없이 당당했고, <보그> 스태프와 스스럼없이 농담하는 여유도 보였다.

만약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농구 안 했으면, 농구 했을 텐데요.” 박지현은 우문에 현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농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10대 때부터 큰 주목을 받고,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스물두 살인 지금 여자 프로 농구의 희망으로 여겨지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더 노력해서 언젠가 미국 여자 프로 농구(WNBA) 진출이란 꿈도 이루고 싶어요. 물론 어디서든 최선을 다할 거예요.” (VK)

여자는 야구의 미래다_2024 유행 통신

재난과 위기가 계속 발생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고 나눈다. 건축, 출판, 영화, 연극, 여행, 미술, 사회운동, 스포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업계의 흐름 혹은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삶을 즐기고 더 낫게 바꾸려는 의지가 구현한 판에서 함께 놀고 싶어진다. 이 기사는 유행을 따르자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가볍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취향 혹은 재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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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이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기록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7월 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2024 KBO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장맛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음에도 입장권 2만2,500장이 모두 매진됐다. 올스타전은 3년째 매진을 이어가는 상황이라 새삼스럽지만 그 전날 열린 2군 선수들의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 역대 최다 유료 관중인 1만1,869명이 모였다는 건 분명 별일이다. 올해 프로야구 인기가 심상치 않다.

올해 프로야구 누적 관중은 전반기에만 600만 명을 돌파했다. 정확히 418경기의 기록으로 역대 시즌 중 가장 빠른 추세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동일 경기 수 대비 관중은 32%가량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지금까지 최다 관중 기록은 2017년 기록한 840만688명이었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천만 관중 돌파를 예견하고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반기 상황만 보면 한 경기 평균 관중은 1만4,000명이 넘기 때문에 후반기에 남은 302경기에서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400만 관중은 너끈히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끝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해 열린 WBC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대회에서 한국 야구 대표 팀은 선수들의 이름값에 걸린 기대에 걸맞지 않은 졸전을 펼치며 비판을 받았고 관계자들은 야구를 ‘손절’할 팬들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올해의 야구장은 지난 어느 해보다 뜨겁다.

올해 프로야구 대흥행의 이유로 꼽히는 건 치열한 순위 다툼과 전통 구단의 선전이다. 1위부터 10위까지 압도적인 강자가 없다. 1위와 10위의 게임 차가 13게임에 불과하다. 많은 팬을 거느린 기아 타이거즈나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같은 전통적인 명문 구단이 선전하는 것도, 류현진의 복귀나 김도영, 윤동희, 김영웅 등 젊은 신인 스타들의 등장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예년보다 폭발적인 흥행을 이끄는 건 새로운 팬덤의 출현이다.

요즘 야구 중계를 보면 관중석을 비추는 카메라에 젊은 여성 관객이 적잖이 보인다. 앵글을 넓게 잡아도 여성 관객으로 가득하다. 대체로 스케치북이나 화이트보드 같은 도구를 활용해 응원 문구를 적고 관람에 집중한다. 남녀가 함께하는 커플 관객도 있지만 둘셋 이상의 여성끼리 모여 앉은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도 상당하다. 방송 카메라가 그런 자리만 선택해서 비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예매 사이트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프로야구 흥행을 견인한 주요 세대는 20대로 꼽힌다. 티켓링크와 인터파크의 통계에 따르면 20대 구매 비율은 각각 38.1%와 42.1%로 20%대 이하인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높다. 프로야구 입장권 구매자 중 20대 점유율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성비로 보면 여성이 54.4%로 남성보다 많다. 그중 가장 높은 건 23.4%를 차지하는 20대 여성의 비율이다. 14.8%를 차지하는 20대 남성과도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최초 천만 관중 돌파의 동력이 20대 여성이라는 것이 수치로 확연히 드러난다.

20대 여성 관중의 유입은 프로야구 팬덤 문화에서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단순히 경기장을 찾는 20대 여성이 많아진 것을 넘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와 관련한 굿즈 소비에도 적극적이고, SNS를 통한 팬심 전파에도 열성이다.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 굿즈 소비에도 적극적인 팬을 의미하는 고관여 팬 조사에서 구단을 막론하고 2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고, 역시 모든 구단의 고관여 팬은 남성보다 여성 비율이 높았다. 응원 팀 유니폼에 좋아하는 선수 이름과 백넘버를 마킹해서 입거나 관중석 앞에 걸어놓고 응원하는 여성이 카메라에도 적지 않게 걸린다.

요즘 인스타그램 프로필로 확인할 수 있는 Z세대의 특징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를 정체성처럼 내건다는 것이다. 자신이 즐기거나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이나 응원하는 팀과 선수에 관한 게시물을 하이라이트로 정리해 프로필에 전시한다는 것. 이처럼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지대한 젊은 여성들이 프로야구에도 새로운 활기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아이돌처럼 응원하는 여성 팬들은 유니폼은 물론 포토카드 구매에도 적극적이다. 한 편의점에서 출시된 KBO 프로야구 컬렉션 카드는 10개 구단의 140명 선수로 구성됐는데, 첫 출시 물량이 사흘 만에 소진됐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교환이나 거래 문의가 적지 않다.

구단에서도 20대 여성 관중을 위한 팬 서비스 기획에 열중하고 있다. 프로야구 구단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는 올해 ‘저녁 식사’ 콘텐츠가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선수들끼리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들의 지난 경기를 복기하거나 사적인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대화를 나눈다. 일종의 비하인드 신 기획인 셈이다. 구단 역시 선수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팬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이색적인 변화다. 한국과 함께 야구의 인기가 높은 나라로 꼽히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야구장을 찾는 관중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경기 시간이 길어서 지루하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는 야구를 볼 생각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입장권 구매 중위 연령이 29세로 미국보다 16세나 어린 상황이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덕분에 프로야구 경기가 펼쳐지는 야구장의 응원 문화도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팬 입장에서 응원 팀의 승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팀 순위가 낮아도 응원 팀이라면 기꺼이 야구장을 찾아가 당일 경기의 선전을 기원한다. 승패와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날의 응원을 즐기고 승리를 염원한다. 연고지에 따라 응원 팀을 고르는 관성에서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지역 갈등 요소도 사라지고 상대 팀을 비방하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는다. 상대와의 갈등보단 모두의 선전을 바라며 경쟁하는 모습을 응원한다. 덕분에 야구도, 응원도 한결 건강해졌다. 그렇게 천만 관중 돌파의 기운이 모이고 있다. 그러니까 여자는 야구의 미래다. 확실하다.(VK)

스트레이키즈와 아이브의 ‘롤라팔루자’ 룩! 8월 첫째 주의 패션 인스타그램

그들이 무대 위아래에서 선보인 룩은?

지난주 스트레이키즈와 아이브는 시카고 일리노이주 그랜트 파크에서 열린 미국 대형 뮤직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시카고(Lollapalooza Chicago)’에 나란히 참석했습니다. 작년 7월 ‘롤라팔루자 파리(Lollapalooz Paris)’ 헤드라이너로 처음 발탁된 스트레이키즈는 이번 시카고 공연에서 2년 연속 헤드라이너로 활약하며 약 90분간의 공연을 펼쳤습니다. K-팝 걸 그룹 중 유일하게 초대받은 아이브 역시 롤라팔루자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죠. 롤라팔루자를 접수한 이들의 뜨거운 공연만큼이나 무대 위아래에서 포착된 룩도 화제를 모았는데요. 공연 전 시카고 여행을 즐긴 스트레이키즈의 자유분방한 스트리트 룩부터 블루와 화이트 컬러를 매치해 완성한 아이브의 무대 룩까지, 스트레이키즈와 아이브가 시카고에서 선보인 다양한 룩을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스트레이키즈

아이브

가장 완벽한 평안이 숨 쉬는 곳, 퀴논

생소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퀴논.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모습.

아름다운 해변으로 ‘베트남의 몰디브’라고도 불리는 곳. 모험심 넘치는 현지 여행객들의 트레킹 지역이자, 다낭이나 푸꾸옥에 질린 외국 여행객 사이에서 뜨겁게 떠오르는 곳, 퀴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출발하는 직항 노선이 없어 호찌민을 경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발자취가 드문 것이 장점일까? 고백하자면, 약간의 리서치 후 ‘귀찮음을 무릅쓰고 갈 만한 곳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난타라 퀴논 빌라에 도착하고 채 하룻밤이 지나기도 전, 그런 의구심은 말끔히 사라졌지만 말이다.

아난타라 비엣티지 열차 내부의 모습.
아난타라 비엣티지의 싯업 바.

최근 퀴논으로 향하는 가장 편리한 교통편이 새로이 도입됐다. 한국에서 직항편을 운항하는 나트랑이나 다낭에서 먼저 시간을 보낸 뒤, 퀴논으로 향할 수 있는 기찻길이 열린 것. 아난타라 그룹이 선보이는 럭셔리 기차, ‘비엣티지(Vietage)’ 이야기다. 다낭에서 캐논은 약 6시간, 그리고 나트랑에서 퀴논까지는 약 5시간이 소요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베트남 소도시 풍경.

비엣티지에는 낭만과 럭셔리가 공존한다. 나트랑 기차역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벨보이가 ‘Vietage’라고 쓴 팻말을 든 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골든 티켓’을 연상시키는 탑승권을 받아 든 탑승객들이 내부로 들어서자 감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직 12명의 탑승객만을 위한 좌식 바는 물론, 아담한 크기의 스파 룸까지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좌석 밑 공간에는 개인용 안대와 슬리퍼, 목 베개, 담요 등이 준비돼 편안한 이동을 도왔다. 여기에 차창 밖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베트남 소도시 풍경은 오로지 기차만이 줄 수 있는 ‘낭만’을 선사한다. 당연히 비행기를 탔더라면 절대 볼 수 없었을 현지 풍경을 눈으로 감상하고, 끝없이 제공되는 핑거 푸드와 칵테일을 즐기다 보니 이동 시간이 되레 짧게 느껴졌다.

퀴논의 기차역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아난타라 퀴논 빌라에 도착하면, 맑은 징 소리가 가장 먼저 투숙객을 반긴다. 징의 울림은 일상과는 동떨어진, 오직 평온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도달했다는 신호로 느껴졌다. 이후,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흐르는 기분 좋은 정적은 퀴논에 오길 잘했다는 기쁨으로 채워졌다.

비치 프런트 풀 빌라의 항공 뷰.
힐 사이드 풀 빌라 내부.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위치한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방은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산 중턱에 위치한 힐 사이드 풀 빌라와 해변과 연결되어 있는 비치 프런트 풀 빌라다. 비치 프런트 객실은 물론, 힐 사이드 객실에서도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객실 수는 26개에 불과해 약 66,110㎡(2만 평)에 달하는 거대 리조트를 전세 낸 듯한 느낌을 주며, 모든 방에 딸린 개인 풀에서는 언제든 고요 속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매일 아침 5시 30분경, 리조트 앞 해변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투숙객들에게는 특별한 요구 사항이 전달된다. 커튼을 열어둔 채 잠드는 것. 매일 아침,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미는 주황빛 태양을 목도하는 것이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뜨는 경험은 자연과 나누는 인사이자 아난타라 퀴논만이 주는 호사다. 일찍 일어나는 것을 싫어해 주말에는 늘 오후에 눈을 뜨곤 하는 나로서도, 커튼을 열어두고 잔 것에 대한 후회는 일절 없었을 정도니까.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스파 로비. 베트남식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자리 잡은 스파 역시 완벽한 평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퀴논 빌라 스파의 시그니처인 차크라 크리스털 밸런싱, 코코넛 목욕 후 마사지를 제공하는 저니 오브 베트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절경과 고요 속에서 즐기는 수영과 스파만이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전부는 아니다. 허기가 지면 공용 풀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 씨.파이어.솔트(Sea.Fire.Salt)가 향으로 투숙객을 유혹한다. 각종 육류와 해산물을 바비큐로 내놓는 아난타라의 시그니처 레스토랑이자, 베트남 전역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셰프, 빈 트란(Vinh Tran)이 총괄하는 곳이다. 마지막 밤 디너를 그의 음식으로 채우니 아쉬움은 곧 충만함으로 바뀌었다.

지역색이 멋스럽게 녹아 있는 씨.파이어.솔트 레스토랑.

퀴논은 과거 참파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으며, 지금은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빈 딘(Binh Dinh) 성의 성도이기도 하다. 먼 길을 달려 퀴논을 방문한 만큼 지역색을 느끼고 싶다면, 참파 왕국의 유적인 탑 도이(Thap Doi) 방문을 권한다. 기존 베트남의 관광도시에서 봐왔던 것과는 또 다른, 과거 보르네오 일대에서 거주하던 참족의 건축양식을 직접 감상할 기회다.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20m의 탑을 쌓는 참족의 건축양식은 9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해변가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면? 거대한 리조트 부지에서 산책을 즐기며, 리조트 구석구석에 숨겨진 베트남식 인테리어를 찾는 것도 재미다. 로비의 의자와 소파는 베트남의 전통 바구니에서 영감받아 디자인했으며, 씨.파이어.솔트의 모든 음식과 음료는 빈딘 성에서 제작한 도자기 그릇에 제공된다. 보다 이색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보안을 총괄하는 트란 반 푹(Tran Van Phuc)에게 직접 베트남 전통 무술 ‘비엣 보다오(Viet Vo Dao)’를 배울 수도 있다. 빈 딘 성에서도 손꼽히는 비엣 보다오 전문가, ‘마스터 푹’이 전통 무술을 쉽고 친근하게 알려준다. 특히 선제공격하는 법 없이 모든 동작이 방어와 제압에 초점이 맞춰진 비엣 보다오를 배우며, 평화로운 아난타라 퀴논 빌라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무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난타라 퀴논 빌라에서 보낸 이틀의 일정은 꽤 빠듯했다. 다소 늦은 시간까지 디너를 즐긴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일출 시간에 맞춰 눈을 떠야 했던 것. 평소 같았다면 머릿속이 ‘그 시간에 눈을 뜰 수 있을까’ 같은 걱정부터 시작해 ‘일찍 일어나는 건 질색인데’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겠지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온전한 휴식을 취해서다. 방에 도착해 밴드 R.E.M의 ‘Nightswimming’을 들으며 잠시 밤 수영을 즐긴 뒤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커튼은 활짝 열어둔 채로. 퀴논을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그곳에서 충전한 내 배터리는 아직까지도 쌩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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