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졌다…의사도 정부도 싸움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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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졌다…의사도 정부도 싸움을 멈춰라

8일 서울 시내 한 응급의료센터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게시돼있다. 뉴시스

의사들의 왕따 만들기가 도를 넘었다. ‘응급실 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응급실 근무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했다. ‘부역’(附逆)은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의사들의 직역 이익이 국가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인가. 생명을 다루는 의사 윤리의 추락에 참담함을 느낀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와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 초기 ‘건폭’과의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대체 인력이 들어가지 못하게 건설 현장을 막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노조원만 고용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타워크레인 등을 이용하지 못하게 해 건설 현장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교육과 인력 대체가 쉬운 건설 부문과 달리 의료계는 파업 효과가 ‘치명적’이다. 말 그대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 이제 개인적인 태업을 넘어 다른 의사의 진료 행위까지 방해한다. 의사는 10년 이상 교육이 필요한 특수 직종이라 인력을 쉽게 대체할 수 없다. 소수의 폐쇄집단이라 집단 따돌림에 대한 공포가 크다. “복귀하고 싶어도 동료 집단에서 ‘왕따’를 당할까 두려워 그럴 수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고 한다.

이제 응급실마저 폐쇄하려 한다. 응급의료법 상 응급환자는 ‘즉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다. 전쟁 중 적국의 병사도 치료하는 게 의사 윤리다. 그런데 무고한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를 ‘왕따’시켜 조롱하고, 환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것은 사실상 부작위에 의한 살인 행위와 다름없다. 문화일보는 “의사 윤리를 저버린 반(反)생명 행태”라고 규정했다. 한겨레도 “최소한의 의료 윤리를 저버린 행위를 즉각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블랙리스트는 명단 공개에 그치지 않았다. “불륜이 의심된다”, “모자란 행동”, “래디컬 패미니스트”, “싸이코 성향”등 모욕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피해를 본 일부 군의관은 심각한 대인기피증까지 겪고 있다고 한다.

처벌 반대, 정부에 책임돌린 의사협회

의사들의 ‘왕따’ 만들기는 처음이 아니다. 3월에는 병원에 남은 전공의를 담은 ‘참의사 리스트’, 7월에는 의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을 담은 ‘감사한 의사 명단’을 공개됐다. 이제 ‘간신히 지탱해 온 응급 현장을 완전히 마비시키려는 의도’로 응급실 의사 명단까지 공개한 것이다. “긴박한 생명 보호를 방해하는 것은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을 저버린 행위”다.

신문들은 대부분 엄격한 처벌을 요구했다. 경향신문은 “사익을 위해 생명권 같은 기본권을 부정하고 공동체 안녕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행태에는 관용 없는 대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절대 용납이 안 된다”, 세계일보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문화일보는 “면허 박탈을 포함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민께 우려를 끼친 데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극히 일부 의사들의 일탈행동을 이용해 현 의료대란 책임을 의료계에 전가하려는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라며 원인을 정부 탓으로 돌렸다.또 블랙리스트에 대한 경찰 수사가 부당하다며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경향신문은 “의협의 후안무치함에 말문이 막힌다”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의정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의사 파업이 시작될 무렵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페이스북에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고, 문제는 그 재앙적 결과가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라고 썼다.

의사들은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믿는 것 같다. 짧은 시간 비난을 받아도 결국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노 전 회장의 예언처럼 국민이 재앙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입시에 의대를 대폭 증원했지만 수시에 10배가 넘는 인원이 응시했다. 고생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이상의 반대급부가 있는 직업이라는 말이다. 의학 교육의 질을 이야기하면서 교육을 방치하고, 의료의 질을 이야기하면서 응급환자의 생명을 위협해서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

의사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존재임을 거듭 확인했다. 개혁의 초점이 사회적 분배를 다시 하는 것일 필요가 없다. 지금보다 더 많은 보수를 보장해도 좋다. 애초의 목표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등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 아니었나. 밀턴 프리드먼의 빈정거림이 아니다. 국민만 패자인 승패의 싸움만은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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