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June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두고 시작된 정부와 의사들 사이 갈등이 길어지고 있어요.정부는 ‘꼭 필요한 분야나 지역에 의사가 부족하다’며 정원을 늘리고 싶어 하고, 의사들은 ‘의사만 늘려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죠.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요.전공의 1만 2225명이 수련하는 주요 병원 100개를 기준으로, 지난 6일 오전 11시까지 병원을 떠난 전공의는 1만 1219명(91.8%)에 달해요.사실상 대부분이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계약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뒤 출근하지 않은 거예요.
당연히 병원에선 혼란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의사 부족으로 수술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응급실 운영도 어려움을 겪고 있죠.정부는 보건의료 분야의 재난 위기 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높이고, 장기화하는 갈등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들을 내놓고 있어요.
지난 2월 2일 레터에서는 정부와 의사 간 견해차를 다뤄 봤는데요. 오늘은 양측의 주장보다는 정부의 대응을 정리해 보려고 해요.특히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한 조치들이 있어서, 알아두셔도 좋을 것 같아요.
장기전에 대비하는 정부
정부는 우선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가도록 압박하는 법적 조치에 착수했어요.¹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복귀하지 않은 의사들에겐 법에 따라 3개월 이상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고 경고했죠.
¹특정 직군 종사자들의 휴업·파업 등이 국가 경제나 국민 생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업무에 복귀하도록 내리는 명령
하지만 실제로 복귀하는 의사들은 많지 않은 분위기예요.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뒤 장기전에 대비한 여러 조치들을 총동원하기 시작했어요. 전공의 이탈로 의사가 부족해진 병원에 당장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²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을 파견하고, 전보다 더 일하는 기존 인력에게 지급할 인건비도 지원하기로 했어요.
²의사 자격을 가진 입영 대상자가 지역 보건소·병원 등 공중 보건 업무에 종사하며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제도
의료 위기에 총동원되는 수단
이번 의료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카드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약 10개월 전 의료계에서 논란이 됐던 것들이에요. 바로 ‘PA 간호사’와 ‘비대면 진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엔 정부가 의사들의 반대 의견을 받아들여 활용하지 않았던 수단들이에요.
PA 간호사가 뭐야?
정부는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지난달 27일부터 ‘PA 간호사’들이 일부 진료 행위를 보조하도록 허용하는 시범사업에 착수했어요.PA 간호사(Physician Assistant)는 보통 우리나라에선 ‘수술실 간호사’나 ‘임상 전담간호사’, ‘진료 보조 간호사’ 등으로 불려요.의료 기관에서 의사가 할 업무의 일부를 대신하는 간호사들을 뜻하죠.
PA 간호사는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선 정식으로 제도화됐지만, 우리나라 법에는 제대로 규정돼 있지 않아요. 다만 2000년대 초부터 여러 병원에서 관행처럼 활용해 왔다고 해요.숙련된 간호사에게 일부 업무를 맡긴 건데, 전국에 이런 PA 간호사는 1만 명 이상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된대요.
PA 간호사의 업무는 사실 법을 해석하기에 따라 불법이 될 수도 있어요.의사가 해야 하는 진료 행위를 의사 면허 없이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사실 약10개월 전 논란이 됐던 ‘간호법’은 PA 간호사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어요.당시 간호사들은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거든요. 관행에 따라 불법과 편법을 오가며 일하는 간호사들을 보호해 달라는 주장도 담겨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의사들은 간호법을 제정해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를 넓히면, 장기적으로 의사의 의료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반발했어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해 2월 말 국회를 통과했던 간호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제정이 무산됐어요.
양지로 나오는 PA 간호사
정부는 의사들이 병원에서 이탈하는 비상상황을 고려해 ‘PA 간호사’ 카드를 꺼내 들었어요. 아직 법적으로 규정된 제도가 아니다 보니,오늘(8일)부터는 PA 간호사 관련 시범사업의 보완지침을 시행하겠다고 추가로 발표했고요.
정부 지침에 따르면, 병원들은 숙련도를 고려해 간호사들을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PA)’, ‘일반간호사’ 등으로 나누고 전문·전담간호사에게 일부 PA 업무를 맡길 수 있게 돼요.기존에는 이렇게 간호사를 숙련도에 따라 나누는 제도가 없었어요. PA 간호사 활용을 새로 도입하기로 한 거예요.
PA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 사례
▲ 입원 환자의 상태 파악
▲ 심전도·초음파·코로나19 검사
▲ 응급 상황의 심폐 소생술과 약물 투여
▲ 기관 삽관·조직 채취 (전문 간호사만 가능)
▲ 프로토콜(약속된 원칙)에 따른 약물 처방
(최종 승인은 의사가 해야 함)
▲ 진단서·전원의뢰서·수술기록 초안 작성
(최종 승인은 의사가 해야 함)
PA 간호사가 할 수 없는 업무 사례
▲ 사망진단
▲ 대리수술
▲ 전신마취
▲ 전문의약품 처방
▲ 사전의사결정서 작성
▲ 의사가 지시하지 않은 의료행위
정부는 총 98가지 의료 행위 중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업무와 할 수 없는 업무를 구분했어요.또한 간호사들이 추가 업무를 맡을 경우 의료기관이 보상을 하고, 관리·감독 부족으로 발생한 사고의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지도록 정했어요.정부는 과거와 상황이 달라진 만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간호법 제정 또한 다시 검토할 방침이라고 해요.
완전히 열리는 비대면 진료
비대면 진료도 지난달 23일부터 전면 허용됐어요. ‘오진 위험이 크다’는 의사들의 우려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던 태도를 확 바꾼 거예요.약 9개월 전부터 시작된 국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큰 병원이 아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재진 환자’와 ‘의료 소외 지역 주민’ 등을 진료하는 경우에만 허용해 왔어요. 처음 병원에 가는 초진 환자나 도시 지역 국민은 이용할 수 없었죠.
정부는 의사가 부족해진 상황을 고려해 모든 병원에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게 했어요. 이 조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종료될 때까지 적용돼요. (물론 실제로 모든 병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기는 힘든 상황이에요. 병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는 건 자유이고, 아직 이 서비스에 익숙한 국민도 적으니까요)
의대 정원을 두고 벌어진 이번 갈등은 어쩌면 우리나라 의료 체계를 크게 바꾸는 사건이 될 수도 있어요.정부의 의지대로라면 PA 간호사·비대면 진료 제도가 도입될 테니까요.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의료 체계의 혼란을 몸소 경험하는 국민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과연 이번 의료 위기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요.
┃3줄 요약
·정부가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발생한 의료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비대면 진료도 전면 허용하기로 했음.
·PA 간호사는 정부가 정한 일부 의료 행위를 의사 대신 할 수 있게 됨. 숙련도에 따라 PA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인력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방식.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벌어진 이번 갈등은 국내 의료 체계를 크게 바꾸는 사건이 될 수 있음. 정부가 각종 대책을 총동원하고 있기 때문.
비상대책을 향한
비판적 시선들
안녕하세요. 디그 에디터 JUNE입니다. 오늘은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대응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을 살펴봤어요.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하고, 정부가 쉽게 도입하지 못했던 제도들이 한꺼번에 시행되는 걸 보니 정말 심각한 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PA 간호사 도입과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은 위기 상황에 급하게 꺼내든 카드인 만큼 비판도 많이 받고 있어요.우선 PA 간호사의 경우 의료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요. 정부가 ‘법적으로 보호하겠다’고 밝혔을 뿐,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법 개정을 통해 확실한 합법이 된 건 아니라는 거죠.의사의 의료행위를 원하는 환자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해요.
비대면 진료의 경우는 충분히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요.이번 의료 공백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중증 환자들에겐 비대면 진료가 큰 의미를 갖기 힘들기도 하고요.
의사 단체들은 PA 간호사와 비대면 진료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어요.대한의사협회는 PA 간호사에 대해 “의료인의 면허 범위가 무너지면서 의료 현장은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비대면 진료에 대해선 “무분별한 비대면 진료 허용은 의료 과소비를 조장하고, 중대한 질병의 진단은 늦출 것”이라고 했어요.
PA 간호사와 비대면 진료 등 대책들은 의사들이 도입에 반대하던 대표적 제도라는 점에서 “의사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 또한 존재하는데요.전례 없는 의료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총동원한 카드들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지켜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