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흙탕물


한 유튜브에서 개그우먼 정선희가 남긴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그녀는 한동안 TV에서 자취를 감췄는데 웃음을 주는 직업을 가진 그녀에게 그 일은 치명적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포털 사이트에 눈물 흘리는 자신의 사진이 너무 많이 도배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포털 측과 상담 전화 끝에 사진을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울컥한 마음에 “내 사진인데 못 지우면 어떡하냐!”고 항변했더니 포털 직원의 조언은 새로운 사진으로 업로드하라는 말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리기 힘들다.
일기예보에는 맑은 날이 많지만 삶에는 비 오는 날도 많다.
우산을 써도 비 오는 날 길을 걷다가 흙탕물을 뒤집어쓸 때도 있다.
기대와 다르게 삶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내 컵 속의 물이 흙탕물이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시간에 기대어 불순물인 흙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다려도 그 컵의 물은 마실 수 없다.
컵을 들어 움직이는 순간 가라앉은 흙이 다시 떠올라 흙탕물이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흙탕물 실험 영상을 본적이 있다.
투명한 컵 속에 흙이 들어가 뿌옇게 보였다.
실험 속 인물은 어떻게든 흙을 꺼내 덜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흙을 덜어내려 할수록 다른 흙도 함께 떠올라 컵 속의 물은 더 혼탁해졌다.
실험자가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은 깨끗한 새로운 물을 컵에 붓는 것이었다.
새로운 물이 컵 속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가라앉은 흙이 떠올라 컵 밖으로 흘러넘쳐 사라졌고, 마침내 컵 속에는 깨끗한 물만 남았다.
눈앞이 다 깜깜해질 만큼 삶이 막막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견디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눈물의 시간을 버틴 후 끝내 우리가 알아야 할 건 결국 눈물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내 힘으로 일어날 수 없다면 타인의 손을 잡고라도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지금 절망의 시기를 보내는 사람은 기억해야 한다.
지금 내 컵의 흙탕물은 오직 새로운 물로만 깨끗해질 수 있다는 걸.

아주 보통의 작별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죽음은 꼭 절망이며 어둠일까.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에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한적한 곳에 문을 잠그고 홀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게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불안한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감각이 생기는데, 그 느낌이 자기 삶의 단단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죽음이 이토록 명징한 것이라면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사는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회복 불가능한 불치의 병에 걸려 긴 고통을 그만 멈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조력 사망이 가능한 스위스의 한 단체로 향하는 여정을 지켜봤다.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 속, 다양한 의견과 가슴 아픈 사연을 읽으며 나는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인 ‘조력존엄사법’이 초고령화 시대에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중대 이슈라는 걸 깨달았다.
오래전, 항암 치료로 피골이 상접해 움직이는 엑스레이 사진처럼 보이던 한 선배가 오른쪽 손에 마비가 올 수 있는 위험에도 발작을 멈추기 위해 수술을 시도하는 걸 지켜봤었다.
가족의 만류에도 발작을 멈춰야 왼손으로라도 다시 글을 써 볼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정체성의 핵심은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와 깊이 연관돼 있다.
단 한 달의 시간을 얻는다 해도 수술을 감행하는 사람이 있고, 항암으로 일 년을 더 살 수 있다 해도 종일 토하고 혼미해진 정신으로 누워있어야 하는 부작용을 단호히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삶은 결국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이때의 선택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걸 오롯이 감당해내는 것이다.
스위스에 도착해 활기차진 한 환자가 다시 생각할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가족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마침내 고통을 멈추고 죽을 수 있다는 희망에 살맛이 나는 역설을 상상할 수 있겠냐고. 극심한 통증을 연장시키는 선택과 소중한 생명을 단축시키는 선택 중 어느 쪽이 더 두려운가.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어느 순간에도 핵심은 좋은 죽음이 아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기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오래전 노트를 보며, 서른 몇 살의 나는 가지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구나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정작 의아한 건 리스트 대부분을 이뤘는데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나 자신이었다.
가지고 싶던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사도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뭘까. 효율성을 강조할수록 청결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른 살에 산 쏘나타가 쉰 살의 벤츠보다 더 만족스러웠던 것 역시 마음엔 벤틀리에 대한 갈망이 싹텄던 탓이다.
버킷 리스트의 문제는 현재를 미래의 목표 달성을 위한 단계로 축소해 현재를 고행으로 만드는 데 있다.
초등학생조차 탈진한 의대 예비반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건 과도한 자기 착취다.
자기 착취가 내면화되면 자기 파멸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건 자기 돌봄이다.
문득 지나간 버킷 리스트에 추가되고 수정된 내 열망의 목록을 보며 내가 길이 아닌 러닝머신 위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라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의 말처럼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는 기계 위 말이다.
그곳에서 넘어지지 않는 유일한 법이 쉼 없이 달리는 것뿐일까. 머신에서 내려온다면, 전원을 끈다면 어떨까.명상은 전원을 끄고 내려오게 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명상의 핵심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현재에 머무는 것이다.
이미 걸어온 길을 후회하거나 정상을 보며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내가 걷는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저 한 순간, 한 정점이 있을 뿐이다.
이런 순간이 살면서 우리가 가장 현명해지는 때다.
명상을 하면 오히려 잡념이 더 밀려온다고 생각하는 건 햇살이 비칠 때 먼지가 훨씬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보다 못 가질까, 못 먹을까 두려워하는 잡념이 진짜 나를 가리는 먼지다.
그 먼지를 지워야 비로소 타인과 비교하는 데 젖은 내가 아닌, 진짜 나,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보인다.

싫어하는 마음의 힘

2024년 금연하겠다는 결심을 친구들 앞에게 공개적으로 선포한 후,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약속을 어긴 친구에게 내가 아는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독일 68세대의 일원으로 반나치 운동가였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이야기인데, 그는 처칠처럼 온 종일 담배를 피우는 헤비 스모커였다.
평생 남들의 금연 충고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고집스러운 그는 어떻게 ‘단박에’ 담배를 끊을 수 있었을까? 내가 부정적 감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도 그의 사례를 본 후였다.
금연, 금주, 단약, 다이어트는 누구나 지키기 힘든 결심이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믿는 대신 ‘벌금’을 선택한다.
결심을 지키지 못할 때 자신이 약속한 돈을 누군가에게 지불한다고 공개 선언하는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금연하고 야식의 유혹을 이기려는 전략이다.
그런데 약속 불이행 시 내는 이런 벌금과 관련된 한층 더 진화된 사고 실험이 있다.
만약 내가 금연하지 못해서 낸 벌금이 평소 자신이 혐오하는 반인권 단체나 정치 단체에 간다면 어떨까. 흥미로운 건 자신이 낸 벌금이 독거 노인이나 결식 아동, 미혼모 등 자신이 후원하고 싶어하는 단체에 간다고 고지한 사람보다, 자신이 싫어하는 총기협회나 특정 종교, 정치 단체에 지불된다고 고지한 참여자의 미션 성공률이 훨씬 높았다.
이 경우, 혐오가 사랑을 이긴 셈이다.
빌리 브란트는 자신이 피운 담배의 세금이 곧 전쟁세에 지원될 거라는 뉴스를 듣고 한 번에 담배를 끊었다.
전쟁에 대한 극도의 혐오가 평생 이어진 흡연 습관마저 이긴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는 때로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더 선명해진다.
총선의 계절,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전화와 문자를 보여주며 친구에게 말했다.
만약 이번에도 금연에 실패하면 스스로 가장 혐오하는 후보에게 정치 후원금이 가도록 즉각 조치하라고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당장 친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싫어하는 마음은 힘이 세다.

혼자서도 행복한 '자족감'이 중요한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주변 사람들과 대체로 사랑을 잘 주고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인간관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곤 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관계를 통해 맺는 애착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안정애착(secure attachment), 불안애착(anxious attachment), 회피애착(avoidant attachment)이 그들이다 (Fiske, 2009).


● 안정 VS 불안정 VS 회피애착

일반적으로 과거 양육자나 연인 등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을 풍부하게 해 온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후에도 사랑을 주고 받음에 있어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애착 형태를 안정 애착이라고 한다.
반면 과거의 상처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사랑을 주는 것이나 받는 것 모두에 있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불안 애착(anxious attachment), 다른 하나가 회피 애착(avoidant attachment)이다.
불안 애착은 흔히 사람들의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낮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을 혹 싫어할까 항상 두려워하고 자신을 좋아해줄 것 같은 사람에게 집착하고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반면 회피 애착을 강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다.
불안 애착인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며 때론 지나치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회피애착인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려 하고 혼자 강해지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Shaver et al., 2016).


● 애착 유형에 따라 달라요

각 애착유형을 보이는 사람들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Feeney & Collins, 2001; Mikulincer et al., 2005). 연인들을 대상으로 각각 어려운 과제를 시킨 후 지금 연인이 많이 긴장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정보를 준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애착형태를 크게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어떻게 보살피는지를 살펴보았다.
우선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안정애착을 형성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연인에게 따듯한 말을 해주는 정서적 지지와 함께 고민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실제적 도움 또 힘들어하는 상대방을 대신해서 자기가 그 과제를 하겠다는 등의 희생 모두를 적절하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을 아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냈다.
반면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상대의 어려움에는 공감을 잘 하지만 도움을 줄 때 상대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다소 자기중심적인 목적이 우세한 경향을 보였다.
돕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적절한 말이나 조언을 하는데 실패하기도 한다.
또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도움을 주려고 하고 결과적으로 끼어들거나 오지랖을 부린 셈이 되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상대를 케어하는 데 있어 ‘강박적’이고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회피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불안정 애착과는 또 다르게 상대방의 어려움에 비교적 신경쓰지 않고 공감도 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 회피 애착인 사람들이 가장 봉사나 희생 의향이 낮았다.

안정 애착이나 불안정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현재 연인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으면 연인을 걱정하느라 자신의 과제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회피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은 딱히 상대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좋은 집중력을 보이기도 했다 (Feeney & Collins, 2001; Mikulincer et al., 2005).안정애착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한 쪽은 관심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너무 과하고 그걸 온전히 타인을 위해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불안정 애착), 다른 쪽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소속 욕구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를 관계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만 채우려고(회피 애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도 볼 수 있겠다.
결국 균형의 문제인 것일까.필립 세이버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UC Davis)의 심리학자는 안정애착인 사람의 중요한 특징이면서 불안 애착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을 ‘자족감(sense of self-sufficiency)’이라고 본다.
이들은 혼자라고 해서 지나치게 외로워지거나 불안해지지 않고 혼자서도 행복하게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관계 역시 타인을 통해 외로움을 지우거나 안정감을 얻고 싶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괜찮지만 함께 더 행복해지기 위해 타인과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같이 보다 자발적이고 건강한 목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런 애착유형은 한 번 정해지면 평생 가는 종류의 것이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려움 없이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 자기 자신과도 사이 좋게 지내는 경험을 쌓아보도록 하자.함께 하는 성취가 더 뜻깊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뜻 깊었던 순간에는 무엇이 있는가. 삶에서 가장 뜻 깊었던 시간들을 정의할 때 사람들은 보통 즐거움과 행복 같은 긍정적 정서뿐 아니라 어떤 경험이 얼마나 큰 '의미감'을 주었는지를 함께 고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도박이나 마약 같이 큰 쾌락을 가져다 주지만 딱히 의미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경험들을 삶에서 잊지 못할 뜻 깊은 경험으로 꼽는 일은 많지 않다.
되려 즐거움만 있지는 않았지만 큰 의미가 있었던 사건들, 힘겨운 시간 끝에 새 삶을 살게 된 경험 같이 어느 정도의 기쁨과 의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경험들을 뜻 깊었다고 이야기한다.
참고로 긍정적 정서만 있지는 않지만 의미감이 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경험에는 '육아'가 있다.
아이가 나를 향해 처음 웃어주었던 순간, 처음 엄마 아빠라고 불렀던 순간 등 육아라는 전쟁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들은 사실 비교적 짧지만 이런 순간들이 주는 의미가 크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을 가장 소중하고 뜻 깊었던 경험 중 하나로 꼽는다.
베일러대의 연구자 마이클 프린징 등의 연구에 의하면 타인과 긍정적 정서를 나누는 경험, 서로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고 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의미감 또한 높이는 경향을 보인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일상생활에서 같은 농담에 웃는 등 타인과 즐거움을 함께 나눈 경험 또한 타인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푼 경험들이 혼자 즐거움을 느꼈던 경험들에 비해 더 '삶의 의미감'을 크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은 즐거움도 타인과 함께 나눈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타인에 대한 신뢰, 도움을 요청하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사회적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삶이 의미있다는 느낌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성취한 경험 역시 이를 통해 팀원들과 관계가 돈독해졌다던가, 혹은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거나 존경할만한 멘토를 발견하거나 나의 성취가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는 등의 사회적 경험이 더해지면 더더욱 뜻 깊은 경험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큰 성취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외톨이가 되거나 가족, 친구들과 멀어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쳤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것이 뜻 깊은 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벌써 새 해의 3월이 지나가고 있다니 시간의 빠름을 믿을 수 없지만 타인과 즐거움을 나누는 경험을 통해 별 다른 의미 없이 지나갈 나의 하루를 좀 더 뜻 깊은 하루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