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원료로 값싸고 성능 좋은 리튬이온전지 만든다

청바지 염색 염료 제조 게티이미지뱅크

청바지를 염료로 염색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청바지 염료로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하는 기술이 나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이현욱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팀이 청바지 염료인 '프러시안 블루'를 양극재로 활용해 배터리 성능을 크게 높이면서도 값싼 리튬 이차전지를 만드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으로 구성된다.
리튬이온전지는 양극을 구성하는 재료인 양극재에서 나온 리튬이온이 전지 내부에서 이동해 음극재에 저장되거나 방출되면서 전기를 충전하고 생산한다.
리튬이온전지는 양극재에 쓰이는 니켈, 망간, 코발트의 매장량에 한계가 있어 언젠가는이들을 대체해야 한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최근 양극재로 주목받는 물질 중 하나가 프러시안블루다.
프러시안블루는 짙은 푸른색 염료로 사이안화철과 사이안화망간을 포함한 화합물이다.
생산 비용이 낮고 이온전도도가 높아 다양한 이온을 수용할 수 있다.

문제는 프러시안블루를 활용해 리튬이온전지를 만들면 유기용매 전해질에서 반응 속도가 느리거나 구조적 불안정성으로 에너지 밀도와 수명 성능에 한계를 가지는 점이었다.
유기용매 전해질이란 고체, 기체, 액체를 녹일 수 있는 액체 유기 화합물을 용매로 사용하는 전해질이다.

수계 전해질환경에서는 리튬이 전지에 삽입되는 과정에서 전해질의 물분자가 함께 이동해 프러시안블루 구조의 뒤틀림을 일으켰다.
수계 전해질은 물을 용매로 사용하는 전해질을 말한다.

연구팀은 유기용매 전해질과 수계 전해질을 섞어 새로운 '하이브리드 전해질'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 전해질을 이용하면 전지가 작동될 때 전해질이 프러시안 블루 표면에 안정적인 보호층을 형성했다.

이를 통해 500사이클 이상에서도 안정된 용량인 125밀리암페어시(mAh/g)를 유지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전해질이 배터리의 내구성을 크게 향상해 고출력에서 안정적으로 구동하게 만든 것이다.

이 교수는 “프러시안 블루를 매력적인 저가 양극 소재로 탈바꿈해 싼 양극 소재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논문 1저자인 위태웅 미국 라이스대 박사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기존 프러시안블루의 한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향후에 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1저자인 박창현 UNIST 박사과정생은 “전해질에 물 분자가 포함된 수계 전해질에서 프러시안블루를 안정적으로 구동한 최초의 연구”라며 그 의의를 밝혔다.

“내시 중에 대머리 없었다”...남성호르몬 역설을 아시나요?

[강석기의 과학카페 251] 대머리의 과학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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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얼굴의 윤곽을 결정한다.
- 니콜 로저스 & 마크 아브람

생로병사라고 나이가 들면서 질병(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점점 잦아지는 것 같다.
보통 병에 걸리면 몸이 아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질병이 꼭 고통을 수반하는 건 아니다.
즉 고통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신체기능에 지장을 주는 병도 많은데, 특히 감각기관의 질병이 그렇다.

수년 전 급성축농증에 걸려 수일 동안 냄새를 못 맡은 적이 있었는데, 커피향을 음미하지 못한 것 말고는 별 불편함이 없었지만 내심 만일 회복되지 못하면 큰일이다 싶었다.
커피향을 다시는 맡을 수 없다는 상실감은 물론 상한 음식도 모르고 먹을 테니까.

그런데 신체기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꼭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신부나 승려가 발기부전이 될 경우 이중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물론 다른 질병으로 인한 증상의 하나일 수 있다). 반면 성생활을 관계유지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배우자(또는 애인)를 둔 남성에게는 발기부전이 심각한 질병이 된다.

한편 통증도 기능장애도 동반하지 않지만 종종 질병으로 취급되는 증상이 있다.
바로 대머리(남성형탈모)다.
물론 엄격히 말하자면 탈모는 기능장애일 수 있다.
즉 머리카락은 충격이나 햇빛, 추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위험성이 미미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좀 없다고 해서 별 문제는 안 될 것이다.
즉 대머리는 심리 측면의 질병이 아닐까.

● 탈모는 마음의 병?

한 십년 전부터 탈모와 탈색(흰머리)이 시작된 필자는 ‘언제 와도 오는 거 아닌가’라는 심정으로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단골 미용실의 사장님은 머리를 깎으러갈 때마다 “퍼머를 하면 머리숱이 풍성해 보인다”, “왜 염색을 안 하느냐?”며 잔소리를 했지만 필자는 웃어넘겼다.
그런데 한 5년 전 탈모로 심리적 타격을 입은 사건이 일어났다.

“아니, 머리가... 어쩌다가...”

몇 년 만에 만난 옛 직장동료가 필자를 보더니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나도 이제 사십대야...”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을 하면서도 그 친구의 망연자실한 눈빛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동안 필자가 탈모에 대해 대범했던 건 어쩌면 그때까지 누구도 이처럼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미용실 사장님 얘기야 퍼머나 염색을 해야 매출을 더 올리는 측면이 있으므로.

갑자기 머리에 신경을 쓰게 된 필자는 머리를 감고 나서 거울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다 합쳐도 한 줌이 안 돼 보였다.
‘어떡하지...’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도올 김용옥 선생처럼 머리를 빡빡 깎는 거였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야 곧 적응하겠지만 취재할 때마다 상대방들이 좀 당황스러워할 것 같았다.
게다가 겨울에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도 좀 번거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리를 더 기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동안은 귀가 다 드러나게 머리를 깎았지만 이때부터 귀를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길렀다.
그랬더니 정말 머리숱이 좀 많아진 것처럼 보였다(필자의 착각일수 있다). 게다가 수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지내면서부터는 탈모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역시 착각일지 모른다). 생활이 느슨해지면서 스트레스가 줄어서일까.

아무튼 대머리, 즉 남성형탈모는 많은 남성들의 주요 관심사다.
‘제대로 된 발모제만 만들면 돈방석에 앉는 건 물론 노벨상도 탈 것’이라는 농담반진담반 얘기도 있다.
가끔 어떤 물질이 발모효과가 있더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관절염치료제와 혈액질환치료제의 발모효과가 뛰어났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탈모와 발모의 과학을 들여다보자.

● 수염과 머리카락에 반대로 작용

머리카락을 포함해 우리 몸의 털이 나는 걸 보면 신비롭다.
아기가 태어나서 사춘기를 맞을 때까지 우리 몸의 털로는 머리카락과 눈썹, 속눈썹, 코털, 솜털이 있다.
그런데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생식기 주변과 겨드랑이에 상당한 규모의 털이 나고 팔, 다리에도 털이 꽤 난다.
어떤 사람은 가슴에도 털이 난다.
그리고 주로 남성에서 수염이 난다.
이런 털을 남성형털(androgenic hair)이라고 부른다.
즉 발모에 남성호르몬이 관여한다는 말이다.

사춘기가 되면 남녀 모두에서 남성호르몬 분비가 늘어나면서 몸 이곳저곳에서 털이 난다.<BR> 털이 무성한 곳은 짙게 표시했다.<BR> 백인을 기준으로 한 그림으로 동아시아 남성들 대부분은 가슴에 거의 털이 나지 않는다.<BR> - 위키피디아 제공

사춘기가 되면 남녀 모두에서 남성호르몬 분비가 늘어나면서 몸 이곳저곳에서 털이 난다.
털이 무성한 곳은 짙게 표시했다.
백인을 기준으로 한 그림으로 동아시아 남성들 대부분은 가슴에 거의 털이 나지 않는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사춘기 소녀에서 나는 털도 남성호르몬 때문이라는 게 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 여성호르몬이 왕창 나와서 그렇지 남성호르몬도 꽤 나온다.
사춘기 때 남성호르몬이 잘 안 나오는 ‘너무 여성적인’ 소녀의 경우 음모가 나지 않거나(무모증) 거의 없는 상태(빈모증)가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느 부위의 털이냐에 따라 관여하는 남성호르몬도 다르다는 것.

예를 들어 환관(내시)의 경우 수염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음모나 겨드랑이 털은 그대로다.
수염이 나려면 남성호르몬 가운데 테스토스테론(고환에서 대부분을 만듦)이 있어야 한다.
반면 겨드랑이 털은 부신에서 분비되는 약한 남성호르몬인 DHEA가 주로 작용한다.
그런데 테스토스테론(정확히는 DHT)은 머리카락에는 정 반대로 작용한다.
즉 발모가 아니라 탈모를 촉진하는 것. 이런 현상은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도 알고 있었다.
그는 환관 가운데 대머리가 없다는 관찰을 남겼다.
이처럼 남성호르몬이 신체 부위에 따라 털에 정반대 작용을 하는 현상을 ‘남성호르몬 역설(androgen paradox)’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남성호르몬은 머리카락과 수염에 대해서 정반대로 작용할까. 수염을 만드는 모유두세포에서는 발모를 촉진하는 IGF-1의 생성을 자극하는 반면,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유두세포에서는 탈모를 촉진하는 TGF-β1, TGF-β2, dikkopf1, IL-6의 생성을 자극한다.
이처럼 발모와 탈모에 관여하는 신호메커니즘은 꽤 복잡해서 아직까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획기적인 발모제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발모제(또는 탈모억제제)가 이미 여럿 나와 있고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까지 받았다.
다만 작용이 발모제라기보다는 탈모억제제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이미 선을 넘어선 사람들로서는 별 소용이 없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이 가운데 FDA 승인을 받은 두 약물에 대해 알아보자.

● 복용군은 7% 증가 대조군은 13% 감소

먼저 미녹시딜(minoxidil)로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이 있어 1970년대 고혈압치료제로 시장에 나왔다.
그런데 많은 환자들에서 다모증, 즉 털이 많이 나는 부작용이 나왔고 연구자들은 이로부터 발모제 가능성을 검토했다.
처음에는 먹는 약으로 임상을 했지만 부작용으로 저혈압(고혈압치료제이므로)이 보고되자 바르는 약으로 제형을 바꾸었다.
1984년 첫 임상이 실시됐고 남성형탈모환자의 60%(5명에서 3명)에서 발모효과가 나왔다.

두피마사지를 하면 혈액순환이 잘 돼 탈모가 예방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미녹시딜의 효과를 혈관확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추가 연구를 통해 미녹시딜이 혈관생성과 세포분열촉진, 항남성호르몬작용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미녹시딜의 효과는 개인차가 큰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약물 자체가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즉 세포로 들어온 미녹시딜은 황산전달효소(sulfotransferase)에 의해 황산미녹시딜로 바뀌어야 작용을 하는데, 사람에 따라 두피의 효소 수치에 편차가 크다.
즉 황산전달효소 수치가 낮은 사람은 미녹시딜을 발라야 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두피탈모를 촉진하는 남성호르몬인 DHT의 생합성을 억제하는 약물인 피나스테라이드는 지금까지 개발된 발모제(탈모억제제) 가운데 가장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BR> 1년 기간의 임상에 참여한 일란성쌍둥이의 모습으로, 왼쪽은 위약을 먹은 대조군에 속한 남성이고 오른쪽은 진짜약을 먹은 복용군에 속한 남성이다.<BR> - 유럽피부학저널 제공

두피탈모를 촉진하는 남성호르몬인 DHT의 생합성을 억제하는 약물인 피나스테라이드는 지금까지 개발된 발모제(탈모억제제) 가운데 가장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년 기간의 임상에 참여한 일란성쌍둥이의 모습으로, 왼쪽은 위약을 먹은 대조군에 속한 남성이고 오른쪽은 진짜약을 먹은 복용군에 속한 남성이다.
- 유럽피부학저널 제공

다음으로 피나스테라이드(finasteride, 상품명 프로페시아(Propecia))는 탈모 메커니즘에 입각한 치료제다.
탈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남성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이 아니라 DHT이다.
DHT는 5-α환원효소2가 테스토스테론을 변화시켜 만든다.
이 효소는 두피모낭과 전립선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피나스테라이드는 5-α환원효소2의 억제제다.
즉 테스토스테론이 DHT로 바뀌지 못하게 해 탈모를 억제하는 것이다.

피나스테라이드는 1997년 FDA의 승인을 받았는데, 임상데이터를 보면 꽤 흥미롭다.
즉 약을 복용하고 1년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발모도 일어나고 그 뒤로는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위약을 먹은 대조군은 안타깝게도 머리카락 밀도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한 임상결과를 보면 192주(약 4년)가 지났을 때 복용군은 모발개수가 7.2% 늘어난 반면 대조군은 13%나 줄어들었다.
한편 약을 먹으면 모발이 어느 정도 굵어지기 때문에(반면 대조군을 갈수록 가늘어진다) 실제 효과는 복용군이 21.6% 더 풍성해 보이고 대조군은 24.5% 더 빈약해 보인다.
한 논문에 실린 일란성쌍둥이 사진을 보면 대조군이었던 사람의 정수리가 훨씬 훤하다.

그럼에도 피나스테라이드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꽤 있는데 바로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기능에 악영향을 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약을 먹으면 남성호르몬이 안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남성호르몬 가운데 하나(테스토스테론)가 다른 유형(DHT)으로 바뀌는 효율만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임상결과를 보면 복용군에서 2%만이 성기능장애를 호소했다(대조군은 1%). 그나마 이 결과도 노세보(nocebo), 즉 부작용을 예상한 결과 그렇게 느끼는 심리적인 부작용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다만 피나스테라이드 역시 초기에만 발모효과가 반짝 있을 뿐 그 뒤로는 탈모억제제로 작용하므로 때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별 매력이 없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된 발모촉진물질은 위의 두 가지 약물에 비해 발모제로서 잠재력이 더 커 보인다.
즉 모낭의 줄기세포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 연구는 원형탈모에서 출발했다.
원형탈모는 남성형탈모(대머리)와는 발병메커니즘이 좀 다른데,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게 밝혀졌다.
즉 면역계가 착오를 일으켜 모근을 공격해 털이 빠지는 것.

지난해 미국 컬럼비아대 피부과 안젤라 크리스티아노 교수팀은 역시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관절염의 치료제인 토파시티닙(tofacitinib)과 골수섬유증의 치료제인 룩솔리티닙(ruxolitinib)이 원형탈모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발표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이들 약물이 면역계인 T세포와 인터류킨-15가 관여하는 JAK신호전달체계를 방해해 자가면역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서 원형탈모를 치료한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추가 연구를 통해 JAK신호전달체계가 면역계와는 별개로 모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JAK와 STAT경로가 활성화되면 모낭에 있는 줄기세포가 잠복기에 들어가는데, 이들 약물이 JAK-STAT경로를 억제해 줄기세포가 깨어나면서 발모가 촉진된다는 것.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극적인 효과를 보인만큼 실제 임상에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 200개 뽑으니 1200개 나

필자처럼 털이 빠져서 고민인 사람도 있지만 털이 많아(또는 있어서) 성가신 사람들도 있다.
요즘 젊은 여성 대다수는 겨드랑이 털을 깎고 팔 다리에 털이 많을 경우 면도를 하거나 뽑기도 한다.
그러나 면도를 하면 털이 굵어지고 뽑으면 나중에 더 무성하게 난다는 속설이 있다.
필자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늘 일종의 착시라고(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것이므로) 설명하면서 기껏해야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곤 했다.

동물실험 결과 어느 빈도 이상으로 털을 뽑을 경우 그 영역에 복구신호가 작동하면서 그 이전에 털이 빠진 모낭에서도 털이 생기면서 주변보다 오히려 털이 더 빽빽해진다.<BR> - 셀 제공

동물실험 결과 어느 빈도 이상으로 털을 뽑을 경우 그 영역에 복구신호가 작동하면서 그 이전에 털이 빠진 모낭에서도 털이 생기면서 주변보다 오히려 털이 더 빽빽해진다.
- 셀 제공

생명과학분야의 학술지 ‘셀’ 4월 9일자에는 이들 속설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멀쩡한 털을 뽑을 경우 더 무성하게 털이 난다는 게 동물실험으로 입증된 것.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쳉밍 추옹 교수팀은 생쥐의 털을 뽑았을 때 재생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먼저 털을 드문드문, 즉 지름이 2.4밀리미터인 영역에서 50개 미만을 뽑았다.
그 결과 생쥐의 피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즉 털이 뽑힌 모낭은 손상된 상태 그대로였다.
털이 뽑힌 빈도가 낮아 전체적으로는 피부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털을 뽑는 빈도를 높였다.
즉 지름이 2.4밀리미터인 영역에서 200개나 뽑은 것.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털이 뽑힌 자리(모낭)에서 다시 털이 자라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쉬고 있는(털이 빠진 상태) 모낭에서도 새로 털이 자란 것. 그 결과 털 200개를 뽑은 곳에서 최대 1200개가 새로 나왔다.
사진을 보면 털을 뽑았던 자리(빨간 점선 안)가 주변보다 털이 더 무성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털이 뽑혔을 때 모낭은 손상을 알리는 신호물질 CCL2를 내놓는다.
뽑힌 털이 많지 않을 경우 이 신호가 미약해 생리반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런데 털이 뽑힌 모낭의 빈도가 어느 선을 넘게 되면 이 신호가 합쳐져 우리 몸은 피부가 손상을 입었다고 판단해 이를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는 것.

즉 M1대식세포라는 면역세포가 발모가 일어난 피부로 몰려오면서 모낭의 줄기세포를 자극하는 물질을 내놓고 그 결과 줄기세포가 왕성하게 분열하면서 새로운 털이 자라기 시작한다.
이때 자연과정(모낭에서는 털이 성장기, 퇴행기, 휴지기를 거치며 자라고 빠지는 순환을 한다)으로 모발이 빠져 쉬고 있던 모낭도 덩달아 자극을 받아 한꺼번에 발모가 일어나는 것. 지난 회(250) 과학카페의 주제인 ‘호메시스’가 작용한 셈이다.

이 연구결과는 털을 뽑아 제모를 하는 여성들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반면 탈모로 걱정이 많은 남성에게는 탈모를 역전시킬 ‘과격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의사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실행해서는 안 된다!

담뱃잎으로 몸에 좋은 모유 성분 만들었다

유전자 조작과 단백질 정제가 쉬워 생물학 연구에 활용되는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 위키미디어 제공

유전자 조작과 단백질 정제가 쉬워 생물학 연구에 활용되는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 위키미디어 제공

담뱃잎으로 몸에 좋은 모유의 영양분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됐다.

미국 패트릭 시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식물미생물학과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모유에 있는 올리고당 성분을 담배속 식물인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에서 생산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13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 푸드'에 발표했다.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는 연초를 만드는 니코티아나 타바쿰과 같은 담배속 식물이다.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는 유전자 조작과 단백질 정제가 쉬워 생물학 연구에 활용된다.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돼지열병, 에볼라 등 질병 백신을 만드는 데 쓰였다.
니코티아나 벤타미아에 질병 유전자를 넣어 재조합시킨 뒤 이를 재배해 잎에서 항체를 추출해 백신을 만드는 원리다.

이 방법은 달걀이나 동물세포 등에서 바이러스를 키워 백신으로 만든 기존 방법에 비해 생산 기간이 짧고 안전하다.
기존 방법으로 만들면 6개월이 걸리지만담뱃잎 백신은 6주면 된다.
병원성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과정도필요없다.
식물에는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가 있지 않아서다.
유전물질도 없어 인체에 들어가도 복제되지 않아 안전성이 높다.

연구팀이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에서 생산한 성분은 모유에 있는 올리고당 성분이다.
아기는 올리고당을 소화하지 못하지만 올리고당은 장내 세균의 먹이가 된다.
장내 건강한 세균을 자라게 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병원체 감염을 막도록 면역력을 높인다.
이같은 장점으로 기업에서 대장균을 이용해 모유 올리고당을 생산해 분유 등 식품을 만드는 시도가 이뤄졌지만 올리고당을 대량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효소를 이용해 식물 내부에서 단당류인 '염기성 당'이 뭉쳐 모유 올리고당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이용했다.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는 총 11개 종류의 모유 올리고당을 만들 수 있었다.
시 교수는 "3가지 종류의 주요 모유 올리고당을 모두 만들었다"면서 "단일 유기체에서 3가지 모유 올리고당을 만드는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특히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로 만든 모유 올리고당엔 'LNFP1'란 이름의 올리고당이 있다.
이 올리고당은 기존 미생물 기반 생산 시스템에서는 만들 수 없던 물질이다.
시 교수는 "이 기술은 모유 올리고당이 강화된 분유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한 성인 식단을 만드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해녀의 긴 잠수 이유 '심박수 감소' 원리 밝혔다

일본 도쿄대

해녀들이 물속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건 잠수하는 동안 심박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BR> 게티이미지 번호=a12223385

해녀들이 물속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건 잠수하는 동안 심박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번호=a12223385

제주도 해녀들은 1분 이상 호흡을 멈춘 상태로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산소통 없이 수중 활동을 하는 취미를 가진 프리다이버들도 숨 참기 능력이 남다르다.
이들이 일반인보다 오랫동안 무호흡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반복된 훈련 덕분이다.

해녀나 프리다이버는 수중에 머무는 동안 낮은 심장박동수를 유지할 수 있다.
성인의 1분간 심박수는 평균 70회 수준이고 운동할 땐 100회를 훌쩍 뛰어넘는다.
수중 활동은 운동에 해당하므로 심박수가 증가해야 하지만 프리다이버들은 오히려 분당 심박수가 10회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이 같은 심박수를 보이면 뇌의 산소 부족으로 정신을 잃게 된다.

이케가야 유지 일본 도쿄대 제약학과 교수 연구팀은반복적인 훈련이 심박수를 떨어뜨리고 생리적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바이오피드백 훈련을 시킨 쥐를 대상으로 반복적인 훈련이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 심박수를 떨어뜨리는지 확인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21일 발표했다.

바이오피드백은 호흡 훈련을 하는 동안 피부에 센서를 부착해 심박수, 체온, 근육 긴장도 등을 수치로 파악하면서 신체기능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는 자기조절 치료법이다.
만성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큰 환자들에게 약물치료와 바이오피드백 훈련을 시행하면 심박수와 근육 긴장 등을 개선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심박수는 주로 자율신경계에 의해 조절된다.
자율신경계는 심박수, 혈압, 체온 등 여러 생리적 변수를 제어해 신체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해녀나 프리다이버, 명상가처럼 호흡 훈련을 반복하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심박수와 같은 생리적 현상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바이오피드백 훈련이 효과가 있다는 점은 증명됐지만 어떻게 효과를 일으키는지 신경학적 메커니즘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연구팀은 바이오피드백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 회로 메커니즘을 알아내기 위해 바이오피드백 훈련을 시킨 실험용 쥐모델을 개발하고 동물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실험쥐의 대뇌 신피질과 중앙 전뇌를 자극할 수 있는 훈련·보상 활동을 반복했다.
5일 간의 반복적인 바이오피드백 훈련을 진행한 뒤 실험쥐는 30분 이내로 심박수를 줄이는 방법을 학습했다.
훈련 후 최소 10일 동안 심박수가 50% 감소되는 조절을 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전기생리학, 칼슘 이미징, 시냅스 추적 기술을 통해 바이오피드백이 어떻게 정상 심박수보다 느린 맥박인 '서맥'을 유도하는지 살폈다.
그 결과심박수는 뇌의 전대상피질, 복내측 시상하핵 시상핵, 배내측 뇌하수체, 의문핵, 심장의 신경절후 부교감 신경원과 관련된 신경 연결통로에 의해 조정이 된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바이오피드백 훈련을 통한 심박수 감소가 뇌의 어떤 영역과 연관이 있는지 확인했다”며 “뇌와 심장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할 때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부정맥, 우울증 등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불규칙하게 뛰는 질환에서 약물 없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하엔 '강'·도시 전역은 '스펀지'...극한호우 막는 극한전략

일본 르포 이미지]도쿄 시라코강 지하터널 입구부, 저수조(이중 방수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 동아사이언스 DB

도쿄 시라코강 지하터널 입구부, 저수조(이중 방수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 과학동아 제공

지난달 18일 방문한 일본 도쿄 네리마구에 설치된 시라코강 지하터널. 지하 45m 깊이로 뻥 뚫린 수직통로가 보이는가 싶더니길이3.2km, 직경10m나 되는 거대한 지하터널이 뱀 아가리 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제방이나 방수로 같은 대규모 콘크리트 시설을 의미하는 '그레이 인프라'를 구축해 극한 호우에 대비하는 일본의 전략이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찾은 독일 베를린 남부의 복합문화공간 '우파 파브릭'에선 화장실 변기를 사용하고 물을 내리자 옅은 갈색 빗물이 쏟아졌다.
이곳은 옥상 정원, 투수성 도로 포장 등 도심 녹지요소를 활용해 홍수를 조절하는 '그린 인프라' 전략의 핵심 공간이다.
빗물을 하수로 배출하지 않고 그자리에서 처리하는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가 도시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그동안 맞닥뜨리지 못한 극한 호우 현상이 나타나자 선진국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이미실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극한 호우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 계획을 발표한 만큼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 빈번해지는 극한 호우…지하에 강 만드는 일본

한꺼번에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비를 뜻하는 극한 호우는 해마다 증가세다.
극한 호우는 시간당 강수량이 50mm를 넘고 3시간 동안 90mm를 넘는 경우를 의미한다.
2022년 8월 서울 강남 일대가 침수될 당시 시간당 강수량 141.5mm로 관측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은 기후변화로 극한호우가 내려도 총 264만 세제곱미터(m3)의 빗물을 임시로 저장할 수 있는 지하터널 등 조절지를 도쿄도 내 총 27곳에 건설했다.
합치면 도쿄돔 약 2.2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지하 45m에 건설된 시라코강 지하터널은 6~10월 집중호우 기간에 시라코강과 반대편 샤쿠지강에서 범람한 물을 저장했다가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다시 흘려보낼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지하터널이 가동된 건 2017년 완공 이후 벌써 16번. 테루이 야스노리 도쿄 제4건설사무소 공사 제2과장은 "앞으로 더 많은 비에 대응하기 위해 시라코강 지하터널을 인근 '간다강 환상 7호선 지하터널'과 연결하는 공사를 최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결된 지하터널은 향후 도쿄만까지 이을 계획이다.
현재지하터널은 빗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조절지 역할만 하고 있지만 도쿄만까지 연결한다면 터널이 아니라 일종의 하천이 된다.
지하에 새로운 강을 만드는 것이다.
도쿄는 향후 평균 기온이 2℃ 상승할 것을 고려해 2100년에도 각종 수해 방지 인프라가 지금처럼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2023년 12월 제시했다.
테루이 과장은 "최근 더 많이 더 자주 오는 비에 대응하기 위해 수해 방지 인프라를 계속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포츠담 광장의 빗물 저류공간. 과학동아 제공

독일 포츠담 광장의 빗물 저류공간. 과학동아 제공

● 도시 전체를 '녹색 스펀지'로 만드는 독일

독일은 일본과 다른 전략으로 극한 호우에 대비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는 도시 전체를 '녹색 스펀지'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파 파브릭의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를 설계한 마르코 슈미트 베를린 공대 건축연구소 교수는 "지붕에 떨어진 비를 지하 저류조에 모았다가 비오톱(인공 생물 서식지)에서 정화해 화장실용수로 재활용한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들어'베를린의 여의도'라고 할 수 있는 포츠담 광장에도 우파 파브릭의 설계를 적용했다.
전체 지붕 면적 4만4000제곱미터(m2)인 포츠담 광장에 내리는 비는 모두 포츠담 광장 내에서 재사용된다.
포츠담 광장에 저장할 수 있는 비의 양은 총 5700세제곱미터(m3)에 달한다.
베를린에서 살펴본 그린 인프라는 최대 시간당 50mm의 강수량(독일 기준 100년 빈도 강우)까지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극한 호우에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베를린의 그린 인프라 전략은 인구가 도시에 집중된 한국 등 아시아에서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게 독일 전문가들의 견해다.
슈미트 교수와 함께 포츠담 광장을 설계한 허버트 드라이자이틀 싱가포르 국립대 디자인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그린 인프라는 홍수와 같은 기후재난의 완충재 역할을 한다"며 "인구가 도시에 집중된 아시아에서 필요성이 특히 클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함께 적용했을 때 누릴 수 있는 '1+1=3'의 효과를 강조했다.
김이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환경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극한호우 발생 시 그린 인프라가 빗물을 분담해서 처리해 그레이 인프라의 부하를 덜어주는 등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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