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유를 무서워한다 - 에리히 프롬


간은 자유를 원한다.

자유로운 존재다.
한편에서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당연히 자유롭기만을 원할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자신있게 고함칠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의 글이다.
1941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니까, 34년 미국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긴 지 7년 후의 작업이다.
그래서 아마 영어로 쓰인 것 같다.
이 글의 핵심은 머리말에 있는 다음 문장들에 담겨 있다.

자유는, 비록 우리에게 독립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우리를 고립시킴으로써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고립은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는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피하여 새로운 의존과 복종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인간의 유일무이함과 개성에 기초한 적극적인 자유의 충분한 실현을 위해 전진하느냐, 이 양자택일에 직면하게 되었다.

Fromm, Erich (2013-03-25T22:58:59.000). Escape from Freedom . Open Road Media. Kindle Edition.

에리히 프롬

이 책의 내용은 하나의 예측이기보다는 진단-즉 해결보다는 오히려 분석-에 가깝지만, 독서의 결과 우리들의 행동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왜냐하면 자유를 버리고 전체주의에로 도주하려는(예컨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들)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고자 노력하는 행동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생각(창공을 사뿐히 날아가는 새라고 상상)만큼 가볍지 않다.
외려 무거운 짐이다.
프롬도 하이데거도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회피하고픈 무게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자유를 원한다.
동시에 저주한다.
원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워한다.
자유가 고대 그리스 비극 영웅들(자유로 인해 파멸했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의 전유물인데 반해,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영웅이 아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그런 자유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어려움은 거기에 있다.

동양 사상도 마찬가지다.
지배-피지배 구조를 가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지배층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되어야 덕치주의가 성취될 수 있다.
자유든 덕이든 그것은 개인적인 편안함, 통속적으로 이해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는 장벽이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자유는 인간의 이상이고 목적이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독과 불안이라는 황무지를 건너가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자발적으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고독과 불안 없이 자유의 왕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낱 '도둑놈의 심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관건이다.

대부분의 현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고정된 본성을 말하기 어려워한다.
프롬은 예외적인 인물이다.
그는 두 가지 변치 않는 인간 본성을 말한다.
하나는 생리적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고립과 정신적 고독(곧 자유를 말한다)을 회피하려는 요구이다.

우리는 인간 본성에 거슬러서 어느 정도까지 헤엄칠 수 있는가?

우리는

자유라는 망망대해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떼 지어

누군가를 추종하지 않고,

홀로 헤엄쳐 나아갈 수 있는가?

'한국문학 거장' 황석영이 말하는 챗GPT…"챗GPT 써보니 박사급 인재 10명 두고 일하는 것 같다"

 

지난 24일 방영된 문화방송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황석영 작가. (사진=MBClife Youtube)

황석영 작가는 "챗GPT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질문 능력'이 중요하다"라며 "질문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황 작가는 24일 문화방송(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AI나 챗GPT를 사용하는 유행을 따라가야 할까'라는 방청객의 질문에 "그럴 필요 없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청소년기까지 AI, 디지털을 일단 끊어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황 작가는 "학교에서도 그렇게 지도하고, 자기의 콘텐츠부터 채우고 나서 AI나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기를 권한다"라며 "그게 맞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황 작가는 오픈AI의 챗GPT-4 사용기를 들려줬다.

황 작가는 "(챗GPT를 써보니까) 박사 학위 10명 정도를 두고 일하는 것 같다"라며 "장길산을 쓸 때 저런 놈(?)이 있었으면 날고 기었겠다"라고 했다.
황 작가는 챗GPT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질문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4일 방영된 문화방송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황석영 작가. (사진=MBClife Youtube)

황석영 작가는 "자기가 읽은 독서 범위,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에 의해서 질문이 나온다.
질문이 애매모호하거나 질이 떨어질 경우 챗GPT가 거짓말로 답변한다"라며 "'너 지금 하고 있는 게 거짓말이야'라고 야단을 치면 금방 사과를 한다.
이 말은 자기 콘텐츠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황 작가는 "자기 콘텐츠가 있으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문장을 보거나 사물이 보이지 않는 데서 들리면, 우리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만든다.
장면을 떠올려서 소화한다"라며 "독서는 상상력을 훈련하고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황석영 작가는 지난 1962년 ‘입석부근(立石附近)’으로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에 입선해 등단했다.
황 작가는 지금까지 대하소설 '장길산'을 비롯해 장편소설, 중단편을 꾸준히 써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포 가는 길, 손님, 오래된 정원, 심청, 철도원 삼대 등 다수가 있다.

오늘의 AI&IT 뉴스

"백악관 일하기에 너무 바쁘다"…트럼프, '머스크 내각 기용' 선 그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트럼프 Youtube, 일론 머스크 X)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 재입성 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내각 구성에 포함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를 발탁할 수 있다는 자신의 과거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25일(현지시간) CNBC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전 네이비실 요원 숀 라이언의 인터뷰 발췌본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머스크 CEO가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바쁜 일정으로 백악관 내각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그를 내각에 넣고 싶지만, 솔직히 그가 맡은 모든 일을 두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국가와 상의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머스크 CEO를 내각 인사보다 자문 역할로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 (사진=Vice President Kamala Harris X)

CNBC는 이번 발언을 놓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꺾을 경우 머스크 CEO와 새로 구성한 동맹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머스크 CEO는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사이였다.

머스크 CEO가 정치적으로 우파 성형으로 돌아서며 두 사람 간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머스크 CEO는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를 선언했고, 이에 앞서 트럼프 지지 '슈퍼팩(SuperPAC·정치후원단체)'을 구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 머스크 CEO를 내각에 앉히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와 Q복음서

기사승인 2020.12.06  15: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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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히 프롬과 Q ⑴


▲ 에리히 프롬 ⓒGetty Image

비록 오늘날 과거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졌다고 해도 ‘에리히 프롬(E. Fromm)’은 20세기의 저명한 지성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사회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함에 있어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난해하지 않은 명료한 글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여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그는 생애 후반기의 대작이자 자신의 사상여정을 총결산하면서 요약하는 저서인 『소유냐 존재냐』(1)에서 Q를 짧게 다루었다.

이 글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Q 이해를 고찰하고 Q 연구자의 입장에서 그의 Q 해석을 검토하고자 한다. 에리히 프롬과 같은 석학이 자신의 관심사에 기초하여 Q를 어떻게 읽고 이해했는가를 검토해 보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그의 독특한 사회적, 심리적, 종교적 입장과 Q의 만남은 Q 해석을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에리히 프롬과 Q의 만남과 대화

에리히 프롬은 고대와 현대의 다양한 사상적 흐름들을 두루 거쳤고, 그것을 나름대로 융합하면서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상 프롬과 Q의 대화에는 프롬의 배경이 되는 사상들도 그 대화에 함께 참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사상적 배경의 광범위하지만 초점을 모으면 세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그것은 ⑴ 유대교를 비롯한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종교적인 전통에 대한 공부, ⑵ 프로이트(S. Frued)에 대한 연구와 정신분석가로서의 임상적인 경험, ⑶ 마르크스(K. Marx)에 기초한 사회에 대한 연구 등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대교 신자로서 토라를 공부했었다. 특히 그는 청년 시절에 6년에 걸쳐 ‘살만 바룩 라빈코프(Salman Baruch Rabinkow)’라고 하는 인문주의적 랍비에게서 성서를 인문적으로 읽는 훈련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여느 유대인들과는 다른 종교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2) 그는 신약성서와 기독교에 대해서도 잘 알았고, 청년 시기에는 불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멕시코에 건너가서는 선불교를 접하게 되고 선불교 공부와 좌선에 몰입하게 되기도 했다. 서양에 선불교를 전파하는데 가장 탁월했던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와의 만남은 선공부에 큰 전환점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3)

또한 프롬은 기독교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d)를 접하고 그를 열심히 공부했다. 최근 국내에도 에르하르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프롬은 그를 일찍부터 알아보았고 열심히 알린 사람 중 하나였다. 이러한 종교에 대한 공부 때문에 프롬은 보수주의자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 자신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이었던 ‘허버트 마르쿠제(H. Marcuse)’는 프롬의 종교적 입장을 비판하면서 그의 종교관이 보수적이라고 공격했다.

아울러, 프롬은 일찍부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 저술가, 강사, 교수도 그의 직업이었지만, 프롬이 평생 꾸준하게 행한 일은 정신분석가로서의 활동이었다. 프로이트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카렌 호나이(K. Horney)’, ‘해리 설리반(H. S. Sullivan)’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정통 프로이트파를 벗어나게 된다. 프롬은 한 이론 체계가 6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프롬은 프로이트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독자적인 심리학 이론을 제시하게 된다.(4)

프롬은 또한 마르크스를 열심히 연구했다. 프롬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연구소에 가입하여 그들에게 정신분석을 소개하는 한편, 그들로부터 마르크스의 사상을 배웠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결별한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마르크스를 읽었다. 그는 마르크스의 전기와 자신의 마르크스 해석을 담은 작은 책도 출판했다.(5) 프롬은 사회 심리학적 작업을 많이 수행했는데, 그의 이름을 미국과 세계에 알린 첫 번째 단행본인 『자유로부터의 도피』(6)는 사회학과 심리학이 잘 결합된 책이었다. 그의 실질적인 마지막 책인 『소유냐 존재냐』에도 역시 사회적 차원과 심리적 차원이 잘 결합되어 있다.(7)


에리히 프롬의 Q 이해

프롬의 긴 사상적 여정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으로 집약된다. 그는 이 책에서 삶의 태도를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이전에 있었던 구분, 즉 수용, 착취, 저장, 시장으로 대표되는 비생산적 유형과 사랑으로 대표되는 생산적 유형의 구분, 삶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사랑이라는 성격유형의 구분을 종합하면서 형성된, 프롬이 도달하게 된 최종적인 구분법이다. 그는 “소유와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체험의 두 가지 형태로서, 그 각 양식의 강도가 개인의 성격 및 여러 유형의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결정한다.”(8)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구분에 기초하여 성서도 이해한다.

에리히 프롬은 이미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에서 급진적 인문주의적 방식으로 구약성서를 독해했었다. 그는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존재”라는 키워드로 구약성서를 읽어나간다. 이 책에서 구약성서의 주요 모토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떠나라, 모든 속박으로부터 너 자신을 풀어라, 존재하라!”(9)로 해석된다. 아브라함은 소유양식이 아닌 존재양식을 대표하는 인물로 부각된다. 모세에 의한 광야의 유랑생활도 마찬가지다. 무교병도 안식일도 존재양식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예언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결국에는 랍비 전통에까지 이르렀다고 보았다.

에리히 프롬은 신약성서 이해에 있어서 소유/존재의 구분으로 신약성서도 바라본다. 그는 존재지향에 있어서는 신약성서가 구약성서보다 더 투철하다고 본다.(10) 왜냐하면 그는 유목민이나 자유소작농에서 유래한 구약성서나 중산계급으로부터 유래한 탈무드와 달리 초기 기독교 운동은 가난한 자들로부터 유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산상수훈이 “노예반란 성명서”였다는 ‘막스 베버(M. Weber)’의 말도 인용한다.

에리히 프롬은 Q를 “유대교로부터 분리되기 이전의 기독교 공동체에 전파되었던 복음서의 가장 오래된 대목”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그는 Q 이해에 있어서 슐츠(S. Schulz)의 이론에 의지하고 있다.(11) 에리히 프롬은 슐츠의 전승사적 구분, 즉 팔레스타인-시리아에 있었던 오래된 Q 공동체(ältesten Q Gemeinde)와 시리아에 있었던 새로운 Q 공동체(jüngeren  Q Gemeinde)로 구분하는 슐츠의 구분을 받아들이고 있다.(12)

그는 Q복음서 역시 소유/존재의 이원적 지향과 형태 가운데서 이해한다. 그는 Q의 중심 전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중심 전제는 모름지기 인간은 모든 탐욕과 소유욕을 떨쳐 버리고 자신을 소유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야 한다는 요청이다.”(13) 즉 에리히 프롬은 Q를 탈소유의 복음으로 이해한 것이며, Q의 핵심을 소유로부터의 해방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Q의 에토스를 “존재의 윤리, 공유와 결속의 윤리”로 이해한다.

그는 “오래된 Q”에 있는 메시지가 자신의 권리의 포기와 사물의 소유권에 대한 포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는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는 Q12:33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축복”(Q6:20)을 언급한다. 그는 이러한 말씀들이 기독교 초기 공동체가 사유재산을 단념하는 것을 지향하고 부의 축적을 경계하는 메시지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래된 Q가 묵시록적 표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집단인 Q 공동체가 “거의 믿을 수 없는 극단주의”를 견지했다고 판단했다.

프롬은 새로운 Q의 위치를 기독교 후기 단계로 잡는다. ‘새로운 Q’의 대표적인 본문은 시험이야기이다. 그는 시험 이야기에서 마귀가 소유욕과 권력욕의 소유지 향성을 공공연하게 표출하고 있다고 서술한다.(14) 그는 시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15)

“이 이야기에서 예수와 마귀는 대립적인 두 원칙을 대표한다. 마귀는 물질적 소비와 자연 및 인간을 지배하는 힘의 대표자이다. 반면, 예수는 존재의 구현이며, 소유하지 않는 것이 존재양식의 전제라는 이념의 구현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복음시대 이래 마귀의 기본 원칙을 추종해 왔다. 그러나 아무리 이 원칙들이 개가를 올린다고 해도, 예수를 비롯해서 그를 전후한 위인들이 말했던 참존재의 실현에 대한 염원을 꺼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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