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화가 돌직구뿐이라면, 누군가는 멍투성이가 될 겁니다


‘한국 현대시 100년’ 맞는 박준 시인… 삭이고 되뇌며 작게 말하는 한국 詩문학 넘어 한국인에 공통 정서 남겨… 느려도 에둘러 말하는 시 話法 필요각별하던 아버지 올봄 별세… 눈앞 생명과 존재에 다정할 수밖에시는 낯선 질문 던지는 일… 오래되고 아픈 질문 곁에서 빛나

15일 서울 청계천 앞에 앉은 박준 시인. 박 시인은 “말을 당장 내 기분에 따라 쏟아내면 결국 누군가에게 가 박힐 것이라며 “에둘러 말하거나 끝내 말하지 않고 오래 간직하는 방식이 한국 시의 특징이고 한국인의 정서라고 말했다.<BR>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5일 서울 청계천 앞에 앉은 박준 시인. 박 시인은 “말을 당장 내 기분에 따라 쏟아내면 결국 누군가에게 가 박힐 것이라며 “에둘러 말하거나 끝내 말하지 않고 오래 간직하는 방식이 한국 시의 특징이고 한국인의 정서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혼자 삭이고 읊조리고 되뇌면서 말에서 타인으로 향한 폭력을 제거하는 것요. 한국 시(詩)의 미덕을 묻는 물음에 답하는 박준 시인(41)의 말투는 자신의 시처럼 조곤조곤했다.
누구의 목소리가 큰지 경쟁하고, 귀를 어디로 향하든 아우성으로 가득하지만 오히려 소통은 어려운 시대다.
나직한 시의 목소리가 그리운 요즘, “한국어로 시를 쓰고 읽어 온 백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놓은 심미적 유전형질 같은 것이 그의 시에는 있다(신형철 평론가)고 평가받는 ‘문단계의 아이돌’ 박 시인을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마침 한국 현대 시의 태두로 꼽히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1925년 출간된 지 내년이면 100주년이 된다.
신춘문예의 역사를 연 동아일보 신춘문예 공모도 마찬가지다.
박 시인은 “좀 느리더라도 에둘러 말하는 시의 화법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우리 시의 특질을 꼽는다면….
“말을 작게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강렬하고 짙을수록 혼잣말로 하고 자신을 직설적으로 모두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한국 시의 형질이면서 문학을 넘어 우리에게 남긴 공통적 정서였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반성도 하고, ‘이 말은 필요치 않구나’ 하고 삼키게 된다.
갈등을 덜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바짓가랑이 붙잡아도 어차피 갈 사람은 가고, 서로에게 상처가 남는다.
내가 싫어서 가는 사람에게 꽃잎을 놓아주는 것이 궁극적으론 나를 돌보는 일 아니겠나.

―정반대로 직설 화법의 시대다.
“시의 화법이 외면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가 돌직구, 사이다로만 이뤄진다면 누군가는 멍투성이가 될 것이다.
삼키고 삼켜도 삼켜지지 않는 것들을 마치 결정(結晶)처럼 꺼내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용건만 간단히 하는 게 미덕인데….
“편지를 쓰던 시절엔 계절 인사로 시작해 안부를 묻고, 하고자 하는 말은 한 3분의 2쯤 지나 슬며시 끼워 넣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긴 길을 돌아와야 했는지, 읽는 사람은 헤아렸다.
그럴 때 언어가 두터워진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낮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을 손가락질할 문제가 아니다.
아랫세대는 많은 한자어가 낯설고, 윗세대는 범람하는 영어와 ‘펀펀(fun fun)한 축제’식의 표현이 낯설다.
20년만 지나면 중의적 낱말에 한자가 아니라 영어를 병기할 것이다.
공통으로 읽는 텍스트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시가 꿋꿋하게 견디곤 있지만 우리 공동체가 함께 농담이나 비유에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적어지고, 언어가 앙상해지고 있다.
박 시인은 “올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없이 첫 번째 추석을 맞는다고 했다.
시인의 시 속에서 “비 온다니 꽃 지겠다(‘생활과 예보’에서)던 아버지, “나이 들어 말이 어눌해진(‘쑥국’) 아버지,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 아버지, 하고 울었다(‘종암동’)던 아버지다.
이 밖에도 여러 시에 ‘당신’ 등으로 등장하는 대상 상당수가 아버지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각별했던 아버지다.

―부고를 거의 알리지 않았다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돌아가신 줄 잘 모른다.
생전 아버지가 당신 주변에도 부음을 전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누구누구는 절대 부르지 말라’고도 했다.
이유를 여쭈니 ‘오면 슬퍼할 거다…’ 하시더라. 막상 돌아가시고 집안 어른께 여쭈니 ‘네가 아버지 말을 항상 그렇게 잘 들었냐’고 하셔서 아버지의 친지분들껜 알리는 것으로 타협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대화에서 정보를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내가 처음 중고차를 살 땐 경차는 어떻고 중형차는 어떻고가 아니라 ‘무슨 색을 사고 싶냐’고 물었다.
사랑과 걱정의 산물이라도 타인의 정보를 무차별 수용할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정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너는 배추김치의 이파리를 좋아하는구나, 난 대를 좋아하는데…’ 이런 대화를 보여주셔서 관계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 컸겠다.
“한 10년 전이다.
어느 날 부르셔서 가보니 동네에 똬리를 틀고 죽은 뱀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 뱀을 이틀 전에 봤을 때는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다음 날은 고개를 숙였고, 오늘은 길의 정중앙 가장 양지바른 곳에서 갔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음을 준비한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죽겠다’고 했다.
결국 연하곤란(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가셨다.
지금도 망연자실한 상태다.
하지만 올해 돌아가셨다고 올해만 슬퍼할 거 아니니까, 두고두고 슬퍼할 것이니까….‘시집은 2쇄를 찍으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인 이 시대에 박 시인의 인기는 경이롭다.
최근까지 63쇄를 찍은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년·문학동네)는 2022년 말 기준 ‘1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시집’(시선집 제외)으로 꼽혔다.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년·문학과지성사)는 21쇄를 찍었고,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2017년·난다)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등에 이어 최근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박 시인은 “시의 숲 입구에서 ‘이쪽입니다’ 하고 이끄는, ‘안으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고목과 새로 자라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다’고 안내하는 이정표 같은 나무가 될 수 있다면 족하다고 말했다.

―시가 참 다정하다.
“늘 끝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든 누나의 죽음이든 털거나 씻어버리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을 써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니 내 앞에 있는 생명과 얼굴에 다정해질 수밖에 없다.
염세적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러니 일단 식기 전에 이 국을 먹자’라고 얘기하는 존재 같다.

―음식 등 일상의 감각을 소재로 하는 시가 적지 않다.
“낯설고 미학적인 것 또는 감각을 극한으로 늘리거나 응축하는 일은 내 재능이 아니고, 최대한 익숙하고 보편적인 것을 여러 결로 나눠 얘기해 보자는 정도가 지향인 것 같다.
우주와 내가 알지 못하는 힘, 사상보다 눈앞에 놓인 무짠지와 어슷하게 놓인 젓가락과 이 자리에 오지 않는 사람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더 자신이 있다.

―시인도 불혹을 넘겼는데, 세상일에 무뎌지나.
“마흔 살이 되는 걸 동경하고 기다렸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얼마 전 누가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왔다(웃음). 관리할 만한 자산은 딱히 없고… 글 쓰는 사람이니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을 최대한 강렬하게 만들어 놓는 게 자산 관리다.
쓰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이 작가다.
쓰지 못한 것들까지 껴안는 것이 시작(詩作)이다.

―‘아이돌’ 별명까지 붙을 정돈데, 출판사 창비 편집·기획자 일을 11년째 병행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선 스타가 되면 삶이 변하겠지만 시인은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생계도 중요하고, 또 생활이 감각과 태도를 만들지 않나. 출근길에 차를 놓치고 점심시간 인기 많은 식당에 입장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감각을 책상에 앉아 만들 순 없다.
작가는 성공만 한다.
실패한 글은 완성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는가? 근원, 원천이 되는 생활에 뿌리를 딛고 있어야 한다.

―시인의 직장생활은 다른가.
“시인으로 출근하진 않는다.
언어에 예민하고 행간의 의미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직장 생활이 싫어진다.
집에 와서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던 시인의 탈을 꺼내 쓴다.
그래도 직장에서 한 소리 듣고 왔는데, ‘난 서정시인이니까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최대한 다정하게 살아야 한다.
화는 내는 대로 더 오래가니 덜 내면서 살아야 한다.
박 시인은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뒤 첫 언론 인터뷰를 동아일보와 했다.
당시 그는 “한국 시가 서정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벗어나려고 실험 일변도로 가는 것도 불편하다며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25세 시인의 패기가 느껴진다.
잘 지켜온 것 같은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르고 건방지게 뱉었구나 싶다.
촌스럽다는 얘기는 자주 듣는데, 소외된 것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예사조를 보면 리얼리즘이든 모더니즘이든 말과 행동 중 어떤 게 먼저 나가느냐는 다르지만 둘이 반대로 가진 않는다.

―등단 전 시절은….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전에 해마다 스무 군데 정도 투고했는데, 백 번 정도 떨어졌다.
모아놓은 등기우편 영수증이 그 정도 되더라. 그땐 하루에 10시간씩 시를 썼다.
‘한 번 사는데 시랑 결혼하는 거지’ ‘시인이 뭐 굳이 삼시세끼를 챙겨 먹어, 막걸리만 마셔도 되는 거지’ 싶었던 때다.
다르게 감각하고 다르게 먹고 다르게 자고 다르게 걸어야 작품에 개성이 녹아난다고 생각했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기도 했던 것 같다.

―과작(寡作)이다.
경력을 보면 시집이 서너 권은 있는 게 보통 아닌가.
“산문 쓸 때는 ‘진실하게 써야지’라는 생각만 하는데, 시는 ‘기대보다 훨씬 더 잘 써야지’라는 강박이 있다.
또 동료들이 마음이 약해서 독촉을 잘 못한다(웃음). 내년 하반기 창비에서 새 시집이 나온다.
올겨울엔 시를 소재로 산문집을 낼 예정이다.

―세상에 시는 왜 존재하나.
“시는 삶에 대해 현명한 답을 내놓는 것보단 낯선 질문을 던지는 일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때에도, 혹은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을 아프게 되뇌어야 하는 순간에도 시는 존재 곁에서 빛을 낸다.

‘쾌락’에 빠져도 삶의 공허함은 결코 채울수 없어

[한시를 영화로 읊다] 〈90〉 잔치가 끝난 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마르첼로(오른쪽)는 난잡한 파티가 끝날 무렵 베개 속의 깃털을 꺼내 참석자들에게 뿌린다.<BR>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마르첼로(오른쪽)는 난잡한 파티가 끝날 무렵 베개 속의 깃털을 꺼내 참석자들에게 뿌린다.


한시에선 일찍부터 잔치 뒤의 공허감을 노래해 왔다.
신하들과의 연회가 끝난 뒤 한나라 무제는 “환락이 다하면 슬픈 감정이 많아지니, 젊음의 시간 얼마 안 되니 늙는 걸 어찌할까(歡樂極兮哀情多, 少壯幾時兮奈老何).(‘秋風辭’)라고 읊은 바 있다.
한나라 말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에서도 다음과 같이 잔치 뒤의 소회를 노래했다.

‘고시십구수’ 중 네 번째 수 금일양연회(今日良宴會)오늘 잔치 왁자지껄하니,즐거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네.쟁을 연주하니 빼어난 소리 퍼져 나가고,새 노래는 오묘하기가 입신의 경지네.(중략)인생이란 이 세상에 기숙하는 것 같아,갑작스럽기가 거센 바람에 날리는 티끌 같구나.어찌하여 준마에 채찍질하여,출세할 중요 자리를 선점하지 않는가?가난과 천함을 고수하지는 말게나,실의한 채로 오래도록 고생만 하리니.

今日良宴會(금일양연회),
歡樂難具陳(환락난구진).
彈箏奮逸響(탄쟁분일향),
新聲妙入神(신성묘입신).
(중략)人生寄一世(인생기일세),
奄忽若飇塵(엄홀약표진).
何不策高足(하불책고족),
先據要路津(선거요로진).
無爲守窮賤(무위수궁천),
轗軻長苦辛(감가장고신).

유행하는 음악이 연주되고 신나는 새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 즐거운 날, 시인은 날리는 티끌처럼 허망한 인생의 무상감에 사로잡힌다.
시인은 짐짓 현세에서의 쾌락과 출세를 통해 그 덧없음을 잊자고 하지만, 욕망과 쾌락만 좇는 속물주의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 실의한 처지에 대한 반어로서 삶의 비애를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파티가 끝난 뒤의 짙은 공허함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1960년)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가십을 위해 유명인들의 신상이나 캐고 다니는 주인공 마르첼로는 파티를 좋아하는 바람둥이 기자다.
친구 스타이너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해서 지식인,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마르첼로는 예술적 소양은 물론이고 부와 행복한 가정까지 갖춘 스타이너를 선망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스타이너는 파티 중에도 즐거워 보이지 않고 염세적 생각마저 드러낸다.
스타이너가 갑작스러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충격을 받은 마르첼로는 삶의 방향성을 잃고 파티의 쾌락에 더욱 탐닉한다.
돈과 성에 대한 노골적 대화가 난무하는 파티의 끝자락, 술에 취한 마르첼로는 베개 속의 깃털을 끄집어내 참석자들에게 뿌린다.
그들이 바라는 달콤한 인생도 이처럼 가볍고 헛된 것임을 나타내는 것처럼.위 시는 후대 시인들에 의해 여러 차례 모방작이 나왔다.
잔치를 읊은 한시에서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서글픔이 생긴다는 모티프가 반복된 것은 쾌락이 결코 삶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다는 깨달음을 반영한다.

진실과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정치인들

사회와 국가는 진실·자유 기반 위에 존립지난 정부, 통계 조작으로 진실 가치 훼손개인 사당화된 민주당, 양심의 자유 위협공존 사회 건설 가로막는 병폐 치유해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어느 나라에서나 정권이 바뀌면 민심의 변화도 뒤따른다.
정당과 정권이 함께 교체될 때는 국민 의식과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긴다.
윤석열 정권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전 정부 공직에서 쫓겨났고 국민의힘도 그를 반기는 편이 아니었다.
근소한 득표 차이였다고 하나, 윤 대통령 당 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이 큰 원인이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선언하고 나섰다.
헌법 수호와 발전이 주어진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의 가치’를 호소했다.
그런데 이상한 아이러니가 생겼다.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에서는 자유국가의 방향과 가치를 인정하는데 국내에서는 항상 듣던 정치 구호의 하나로 느낀다.
무엇이 그 원인이었는가. 우리가 모두 좁은 연못 속에 살면서 넓은 세계를 보지 못했다.
역사의 강물 속에서 주어진 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역사의식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갖추어야 할 역사의식과 가치관이 부족했다.
인간은 개인, 사회와 더불어 두 거대한 정신사적 흐름과 함께 역사의 강을 계승해 왔다.
그 하나는 이성(理性)적 판단에 따르는 진실(眞實)의 가치고, 또 하나는 양심(良心)의 선택과 가치를 주관하는 자유와 그 창조성이다.
이성과 양심을 갖추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없고, 그 사회역사적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면 사회와 국가는 존속하지 못한다.
인간의 본질과 사회적 질서가 그 기반 위에 존립(存立)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했는가. 큰 희망과 기대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 동안 정부는 진실과 정직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식견 부족, 이중성은 국민을 치유할 수 없는 분열과 정의의 가치 혼란에 빠트렸다.
문 정부는 정부 업적을 포장하기 위해 국가 통계까지 조작했는가 하면 외교와 국방 정책은 주어진 목표와 의무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동포를 외면하고 북한 정권과 동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생과 경제의 성장까지 침체시켰다.
진실과 정의의 정신과 질서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이재명의 민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보다는 정권에 신경 쓰는 민주당은, 정치의 선결 목적을 개인의 복권(復權)과 집권에 전념하고 있다.
민주당은 분열되고 국민을 배신하고 있다.
지금은 문 정권의 비리와 잘못까지 불식시키기 위해 양식 있는 야당 지도부까지 성토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폭력이다.
폭력은 자유의 적이다.
윤 정권 출범 시부터 탄핵을 거론하면서 심지어는 문 정권 때부터 들먹이던 계엄령 여부까지 여론화시키고 있다.
당 내부는 물론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은 이재명과 개딸들이 주도하는 민주당을 걱정한다.
국회 여야 의원들은 민생(民生)을 위해서라고 떠든다.
경제적 민생보다 소중한 삶의 가치로서의 정신적 민생은 누가 책임지는가. 정치는 현재를 위한 과업이 아니다.
민족과 국가의 장래, 이상을 위한 인간다운 삶의 가치와 질서 창출에 그 과업이 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필요하듯이 현재는 정신적 미래를 정립해야 민생이 궤도에 오른다.
더 이상 정신적 가치와 질서를 역행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국회 상황을 30년 후에 국민에게 공개해 보라. 어떤 역사적 평가를 하겠는가.현재와 같은 폭력정치는 자신들과 국민 양심의 자유를 거부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와 판단을 상실하게 되면 사회적 선악 관념이 사라진다.
북한이 그 역사적 과오를 범했다.
자유는 모든 국민의 양심적 판단과 선택에 따르는 선한 가치의 창출 구현이다.
자유 민주국가들이 3000년 동안 추구해 온 역사적 유산이다.
그 세계사적 방향은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열린 사회 건설이다.
21세기에 주어진 정신사의 과업이 되었다.
선진 국가들은 좌파 세력과 극우 정치가 ‘미래지향적 진보’와 ‘열린 보수’를 지향하는 인류 공존의 가치와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세계사적 과업을 주도할 정신 사회적 가치가 진실과 자유다.
진실의 상실은 후대(後代)가 바로잡을 수 있으나 폭력의 상흔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 잘못을 시정하지 않으면 당의 병폐를 치유하지 못하며 국민의 불신은 가중될 뿐이다.
국민의 애국적인 희망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인고의 세월 품은 우리 목가구가 마음 어루만져줄 것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둥치가 거적을 덮어쓴 채 마당에 있었다.
이 목재는 장차 어떤 가구가 될까. 어떤 무늬를 품고 있을까. 경기 용인시 공방에서 만난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小木匠) 전승교육사(62)는 말했다.
“켜보지 않으면 나무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축적되는 안목으로 나뭇결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이 나무가 쓰일 적합한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창고에는 대패로 켠 목재 판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무들이 품은 나이를 합치면 억겁의 세월일 것이다.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 걸렸다
공방에 들어서자 그가 만든 의걸이장의 위용이 대단했다.
참죽나무 틀에 끼워 맞춘 느티나무 문에서 나뭇결이 춤추고 있었다.
한국의 산과 계곡이 등고선 형태로 꿈틀대는 듯한 강렬한 춤사위였다.
내부 상단에 횟대를 가로질러 옷을 구김 없이 걸게 한 조선 시대 의걸이장을 그는 현대에 맞게 풀어냈다.
서양 가구들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세련된 감각이었다.

나뭇결이 강렬한 의걸이장

나뭇결이 강렬한 의걸이장


“한 폭의 그림이 나무에 앉은 것 같죠? 나무가 수십 년 돼도 이렇게 나이테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경남 합천 해인사 부근에서 사들인 800년 넘은 고사목으로, 사람으로 치면 수양 끝에 진리를 터득하고 죽을 둥 살 둥 하던 노인이었어요. 전체의 10%밖에 남지 않은 나무의 성한 부분을 살려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 주름과 상처가 생기듯 나무도 무늬가 드라마틱해집니다.
이런 나무는 가구의 얼굴 격인 전면부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얼굴 감’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이 걸렸네요.

창고에서 목재의 특성을 설명하는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창고에서 목재의 특성을 설명하는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그는 1979년 17세 나이에 고 강대규 국가무형유산 소목장의 공방에 들어가 10년 동안 도제식으로 사사했다.
1989년 독립해 자신의 공방을 세운 뒤 1996년 국가무형유산 제55호 소목장 전승교육사로 지정됐다.
전수생, 이수자, 전승교육사를 거쳐 소목장이 된다.
국내에 소목장은 3명, 전승교육사는 그를 포함해 단 2명이다.
공방의 벽면에는 대패가 가득 걸려있었다.
1998년 강 소목장이 타계한 뒤로 스승의 맥을 잇도록 물려받은 대패들이다.
“진정한 목수는 대패를 내 손처럼 쓸 수 있어야 하지요.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해낼 수 없는 영역이 대패에 있습니다.
목공을 하는 날은 명상하듯 몸풀기 대패질을 하면 좋겠습니다.

벽에 걸린 대패들.

벽에 걸린 대패들.


그는 2010년부터는 국가유산진흥원 평생교육원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 과정 등을 통해 1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2021년부터는 이수자 교육도 시작했다.
제자들과 함께 지금까지 6차례 전시를 열었던 그가 28일부터 10월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장인의 외길을 걸어오며 만든 30여 점을 선보이는 제1회 조화신 소목전 ‘소목장, 나무를 닮다’이다.
“손바닥으로 수백 번 쓸고 깎고 문지르다 보면 어느새 함께 숨 쉬면서 나무와 하나가 돼요. 그렇게 미치지 않으면 나무를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지금에서야 개인전을 여는 걸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목재들이 가구가 됐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실용성과 심미성이 만난 우리 목가구
그가 만드는 책갑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쓰인다.
무겁고 단단하며 결이 아름다워 목재 중 으뜸으로 꼽히는 느티나무, 가볍고 잘 틀어지지 않는 오동나무, 휘거나 뒤틀리지 않아 가구의 뼈대로 쓰이는 참죽나무, 감나무가 부분적으로 검게 돼 그윽한 멋을 풍기는 먹감나무, 단단하고 탄력 있는 소나무….

여러 종류의 우리 나무가 재료로 쓰인 책갑.

여러 종류의 우리 나무가 재료로 쓰인 책갑.


“우리 조상들이 책갑을 사용한 이유는 귀한 책을 소중하게 다루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나무의 자연색이 주는 다채로운 매력에 반해 책갑 만드는 작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런 가구에는 잡동사니를 아무렇게나 넣을 리 없다.
꼭 필요한 물건만 담고 살도록 삶의 태도가 단정해질 것이다.
목가구는 어떤 장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화려해지기도 간결해지기도 한다.
금속 장석을 붙인 예쁘장한 함(函)에 귀한 것을 보관하고, 화장기 없는 듯 맑은 느낌의 서안에서 책을 읽는 삶. 그것이 ‘퍼펙트 데이’를 이루는 행복 아닐까.

세월을 품은 나뭇결.

세월을 품은 나뭇결.


그는 말한다.
“처음에 쌈박하고 예쁜 나무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멋스러워지는 나무도 있습니다.
사람과 똑같아요. 세월의 묵은 색이 입혀지면 품위가 생겨나죠. 나무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고 기다리는 게 장인의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나무의 나이테가 뚜렷하고 단단한 물성인데도 매끄럽다고 한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넘어 제게 온 후 눈과 비를 맞으며 강한 성질을 죽여 좋은 목재로 숙성해 갑니다.
그런 목재로 만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우아합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지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우리 목가구가 언젠가 한 번쯤은 상처받았을 당신의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줄 것입니다.

기자에게 먹감나무 장을 설명하고 있는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기자에게 먹감나무 장을 설명하고 있는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21세기 장인의 역할을 생각하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현해 만든 삼층장도 선보인다.
“앞선 세대가 잘 만들어 놓은 ‘우리다운 것’을 따라 해보는 것이죠. 요즘은 뭘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다들 ‘빨리빨리’ 사느라 애국(愛國)이나 가문을 일으키는 일 같이 큰일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서울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현해 만든 삼층장.

서울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현해 만든 삼층장.


고 강대규 소목장은 그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많이 만들어 보라. 내일 당장 그만두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해 만들어라.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연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스승에게 배운 대로 그는 제자들에게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숨만 쉬어도 대패가 깎일 정도로 대패 날을 갈아서 많은 연습을 해라. 대패, 끌, 톱질은 목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제자들은 ‘스승 조화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현대에서 전통 가구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십니다.
대물림되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목재부터 깊게 이해하라고 하시죠. 본질과 깊이, 두 단어가 제자들의 작업에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장인의 존재 가치를 깨우쳐주십니다.
스마트와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우리 전통 문화는 계속 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정성 들여 만든 우리 목가구를 향유하는 문화가 삶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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