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봤어? 최종화까지 다 봤어. 대부분 잘 아는 사람들이 나왔더라고. 최종화가 발표된 뒤 참여했던 셰프 여섯 분과 통화하며 얘기를 들어보기도 했고.
️아, 셰프를 거의 다 알아? 응. 흙수저로 나온 셰프들도 이미 다 유명한 사람들이거든. 전부터 장안에 되게 유명한, 예약이 잘 안 되는 식당들. 을지로 보석은 원래 예약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고. 남영탉이나 에다마메 남영 등은 나도 기사를 썼었어.
️통화한 셰프들은 뭐래? 다들 하는 소리가 요즘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외식업이 안 좋았는데 이 프로그램이 도움이 됐단 거야. 침체한 외식업에 붐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다만, 여기 나온 식당들에만 사람이 몰릴까 봐 걱정도 하더라고. 관심이 다른 식당들에까지 다 번져갔으면 좋겠다고.
️아는 셰프들이 나왔으니, 흑백요리사를 더 재밌게 봤겠네? 사실 처음엔 계급이라는 단어가 거슬렸어. 그런데 막상 보니까 계급은 예능적 장치일 뿐이고 장점이 많은 프로그램이더라고. 요리란 무엇인가. 요리사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 어떤 노력을 들이는가. 세상에 없는 요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 요리사는 아티스트처럼 예술적 감성까지 가진 이들이라는 걸 잘 보여줬잖아. 덕분에 사람들이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잘 된 거 같아.
️음식을 입에 넣으면 정말 백종원, 안성재처럼 딱! 느낌이 와?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어? 백종원, 안성재처럼 그게(요리와 평가) 업인 사람, 그리고 나처럼 음식 기사를 쓰려고 맛에 대한 경험치를 엄청나게 늘린 사람은 먹으면 판단할 수 있어. 나도 지난 20년 넘게 굉장히 많은 음식을 먹었어. 국내는 물론 미식 국가는 다 다녀봤고. 가 본 미슐랭 식당도 셀 수 없지.
️그래서 한 입 먹어보면 안다고? 응. 딱 먹으면, 셰프가 탄탄하게 기초 실력을 닦은 사람인지 아닌지, 허세로 그럴싸하게 유명 요리사 흉내만 낸 건 아닌지 구별이 돼.
️구별이 돼? 어떻게? 공부랑 똑같아. 많이 먹다 보면 그런 게 느껴져. 이 사람이 조리 기술을 잘 연마해 기초가 단단한 사람인가, 독학으로 노력해 실력을 쌓은 사람인가, 천재과로 타고난 요리사인가, 중구난방으로 하거나 유명한 사람을 흉내 낸 건 아닌가.
️맛으로만 그걸 알 수 있다니, 신기하네. 이번에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70~80% 정도는 떨어질 셰프를 맞췄거든? 저 사람은 보고 들은 게 저 정도만이겠구나, 그래서 저 정도 음식을 만드는구나, 양념을 저 정도로 올리면 맛의 조화가 깨질 텐데, 맛이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떨어질 셰프들이 보였어.
️눈으로만 봐도 다른 셰프가 있었어? 응. ‘트리플 스타’라는 별명으로 나온 셰프 있잖아. 재료 손질하는 모습만 봐도 알겠더라고. 채소를 자르는 게 달랐어. 기초를 탄탄히 배웠구나. 트리플 스타는 젊기도 하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더 크겠더라고.
️흑백요리사 보니까 미슐랭 1스타도 대단한 거더라고. 진짜로 익명 평가야? 응. 평가원이 누군지 정말 몰라. 우리나라에서 처음 미슐랭 가이드가 나올 시절에 셰프들 사이에서 소문은 있었어. 프랑스 사람 한 명과 한국인 한 명이 다니는데, 저 사람들 아니냐? 이런 짐작. 하지만 누군지는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모르고? 몰라. 다만 업계 사람들끼리 그 사람이지 않을까? 추측할 뿐. 미쉐린 쪽에서 확인해주진 않으니까.
️평가는 믿을 만한 거 같아? 옛날에는 미슐랭에 아주 확실한 권위가 있었어. 별 수가 떨어진 셰프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을 정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지금은 참고할 만한 정보라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아. 미슐랭 식당에 굉장히 많이 가봤지만, 어떤 곳은 내가 느끼기에 왜 별을 받았지? 여긴 아닌데? 싶은 곳도 있었거든. 다만 여행자 관점에서 여행 기간 중에 한끼 정도는 고급식을 먹고 싶어지잖아. 그럴 때 참고가 되지.
️세월이 흘러서 달라진 게 있어? 미식이라는 게 바뀌고 있어. 옛날과 다르게 지금은 동네 밥집, 내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이 더 소중하다는 관점이 더 커지고 있거든. 또 미슐랭 가이드에 많이 등장하는 게 파인다이닝인데, 이게 원래부터 우리나라랑은 좀 안 맞기도 해.
️안 맞다니? 대부분의 파인다이닝은 7~14 코스로 나와. 와인과 함께해야 하고. 보통 식사 시간이 4~5시간 넘게 걸려. 기본적으로 서양에서 온 문화잖아. 비즈니스할 때 긴 시간 밥을 먹으면서 대화도 하는 식의.
️우리나라는 한번에 빨리 먹고 끝나는 식이잖아. 응. 우리나라는 한 상 차림이 중심이지. 한 번에 차려 먹고 치우는 식. 우리 식문화와 안 맞는 측면도 있어서, 미슐랭은 참고용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어. 물론 별을 따면 명예로운 것이고, 셰프들은 대부분 따고 싶어 하지.
️다 따고 싶어 해? 음식을 가지고 점수를 주는 것에 부정적인 셰프들도 있지만, 다수는 그렇지. 대부분은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거든. 거대 기업이나 세계적 브랜드들과 협업 비즈니스도 많고. 미슐랭은 확실한 보증 수표가 되지. 그래서 과거에는 브로커 같은 사람도 등장했어. 요리사를 대상으로 ‘이래야 별을 받을 수 있다’고 접근해서 인테리어를 바꾸게 하면서 수익을 챙기는 식. 그렇게 사기 치는 사람도 더러 있을 정도.
️별 사기꾼이 다 있구나. 근데 인테리어? 미슐랭은 평가할 때 맛만 보는 게 아니야? 단지 맛 평가만으로 별을 주진 않아. 맛, 서비스, 공간, 접시 등 기물을 다 종합적으로 봐. 그게 예술적으로 전체적인 조화가 있어야 해. 그냥 나무 판떼기 놓고 아주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다고 별을 주진 않는 거지. 공간에도 예술적 터치가 올라가야 하고. 아, 와인도 중요해.
️와인? 와인이 음식과 잘 페어링되는지. 음식과 술이 잘 맞아야 별을 받을 수 있어. 그래서 심사할 때 와인 리스트도 함께 보거든. 얼마나 잘 짰는지 보는 거야. 소믈리에(레스토랑에서 손님이 주문한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는 전문가)가 실력이 좋은지 아닌지. 다 점수에 들어가. 어떤 와인은 음식을 더 쓰게 느끼게 하기도 하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