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습관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딱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습관이라고 말하겠다.
서른 이후 나는 내 삶을 바꾼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그게 올해의 습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러클 모닝과 간헐적 단식 습관을 가지게 됐고,
올해 스쾃 100개 하기가 추가됐다.
하지만 우리는 ‘해내는 습관’과 ‘포기하는 버릇’ 사이에서 망설인다.

2024년은 고심 끝에 ‘도파민 레벨 낮추기’라는 포괄적 주제를 정했는데 핵심은 ‘스마트폰 사용량 줄이기’다.
스마트폰 사용량을 살핀 후 중독 성향이 있다는 자각이 계기였다.
가령 주말에 드라마 한두 편을 보겠다는 결심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면 침실에 동이 터 있는 악순환이 월요병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최근 주목받는 도파민 중독은 집중력 저하와 수면 박탈 등 폐해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부작용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역치를 낮춰 불안을 증폭시키는 점이다.
작고 소박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강하고 더 자극적인 것으로 만족 레벨이 올라가는 것이다.
쇼츠 영상,
초단타 매매,
알코올,
탕후루 같은 자극적인 것이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뇌에서 쾌락과 고통 중추는 같은 곳에 있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도파민이 폭발하며 행복하지만 곧 소화불량으로 고통스러워지는 것처럼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채식이나 운동처럼 몸에 좋은 것은 피드백이 느리다.
가치 있는 것에 빠르게 도달하는 방법은 없다.

원하는 습관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원래 하던 습관 사이에 만들고 싶은 새 습관을 끼워넣는 건 효과적이다.
야채를 안 먹는 아이를 위해 햄과 치즈 사이에 시금치를 넣는 것처럼 말이다.
이사,
졸업,
이직처럼 삶의 매듭이 생기는 날 역시 습관 만들기의 성공률을 높인다.
마라톤 경주에 처음 출전한 사람 중 나이의 끝자리 숫자가 9인 사람이 유독 많다는 통계는 우연일까. 새해는 삶의 변곡점을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극에 달하는 최적 시간이다.
좋은 습관이 결국 좋은 삶을 만든다.

 

소금꽃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택시에서 가수 진성의 ‘소금꽃’을 들었다.
“눈물도 말라버린/ 가시밭 땀방울/ 서러움에 꽃이 된/ 아버지 등 뒤에 핀 하얀 소금꽃….” 문득 설악산을 오르며 본 한 남자가 떠올랐다.
체력이 약한 나는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 헉헉대며 모퉁이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그때 앞을 가로지르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보였다.
커다란 지게에 짊어진 음료수가 한가득인 그의 어깨에는 소금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윤성학의 ‘소금 시’에는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는 구절이 있다.
로마 시대 군인들은 월급으로 소금을 받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샐러리맨(salaryman)의 어원은 소금을 뜻하는 ‘sal’에서 왔는데 노동의 대가인 급여를 의미하는 라틴어 ‘salarium’에서 유래했다.
흥미로운 건 옛 고려와 조선 병사들이 ‘sal’이 아니라 ‘쌀’을 급료로 받았다는 것이다.
sal’과 ‘쌀’에서는 다른 듯 비슷한 ‘땀’ 냄새가 난다.
어쩌면 삶은 소금을 얻기 위한 투쟁 기록일지 모르겠다.

언어를 살피면 기이할 정도로 닮아 있는 것이 보인다.
길을 뜻하는 ‘road’와 짐을 뜻하는 ‘load’의 발음과 철자가 비슷한 것처럼 말이다.
흔히 인생의 여정을 길로 표현하는데,
짐 없이 갈 수 있는 길은 가벼운 산책길뿐,
어떤 짐도 없이 갈 수 있는 여행길은 없다.
그러므로 길을 떠난다는 건 그 무게를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건 당신들의 야근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낮에도 밤에도 소금땀을 흘리는 직장인과 자영업자를 표현한 말이다.
우리는 오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출근이라는 여정을 떠난다.
거기에는 이고 지어야 할 오늘의 짐이 있다.
오늘도 우리는 나의 소금을 내어주고 타인의 소금을 받는다.

 

행운을 모으는 법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일본의 괴물 투수이며 타자인 ‘오타니 쇼헤이’가 다저스에 입단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나는 9000억이 넘는 그의 10년 연봉보다 “청소는 남이 떨어뜨린 운을 줍는 것!”이라고 정의한 그의 말이 먼저 떠올랐다.
쓰레기 줍기,
청소,
책 읽기,
인사하기는 그가 운을 모으려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운을 오직 좋은 소설 쓰기에 쏟아붓고 싶어 평생 로또를 사지 않는 작가를 알고 있다.
문득 세상이 아닌 자신의 언어로 단어를 새로 정의하고,
꾸준히 실천한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었을 때 한 “실패라니요! 저는 2000번의 단계를 거쳐 전구를 만들었던 것뿐이에요!”라는 말보다 그의 발명왕 타이틀을 명확히 설명하는 말은 없다.
‘나사’를 방문한 케네디에게 “저는 인류를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직업을 설명한 청소부는 어떤가. 스스로를 ‘안전 대사’라고 생각한 통학 버스 운전기사의 소명 의식은 생각만으로도 든든함을 불러온다.

빨간 머리 앤이 한 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하루”라는 말인데,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폐허 위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주먹 쥐던 스칼릿 오하라처럼 오늘의 실패를 이겨낼 힘이 불끈 솟는 기분이다.
작가 김연수는 “형편없는 작품으로 등단해서 어쨌든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게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졸작’을 ‘행운’으로 치환시켰다.

행복을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고 말한 석가모니의 정의가 없었다면 나는 행복을 애써 ‘다행’이라 바꿔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나 보니 행운처럼 보였던 불운도 있고,
불운처럼 보였던 행운도 있다.
자신의 삶에 던져진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도 바뀐다.
주말,
청소부 없는 어느 화장실에서 바닥에 잔뜩 떨어진 휴지를 주웠다.
쓰레기를 남이 버린 행운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행복해지는 마음은 덤이었다.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