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식” 웃게 만드는 그림 속 사랑의 풍경
사랑 주제는 빈번히 아련하고 비감하게 그려지지만,
때로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랑도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같은 측면이 있다.
당사자냐 아니냐에 따라,
혹은 눈앞의 현실이냐 시간이 지난 뒤 회상하는 추억의 소재냐에 따라 사랑에 대한 시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유머러스한 풍경으로 지나가는 사랑의 표정들을 감상해 보자.
사랑은 숨바꼭질
사랑은 때로 숨바꼭질이다.
연인끼리 서로 ‘밀당’을 하느라 숨바꼭질이 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가까운 친지나 지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다 보니 숨바꼭질이 되기도 한다.
연인들 가운데는 이처럼 여러 사정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주변에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그림은 바로 그런 상황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몰래 연인을 찾아온 남자,
고개를 쭉 빼고 담벼락 안쪽을 바라보니 바로 자신의 사랑이 보인다.
신이 난 그는 자신의 여인에게 당장이라도 러브레터를 전하려고 한다.
그런 그의 표정이 참으로 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그의 사랑은 지금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 드리던 중이다.
여자는 갑자기 담 위로 나타난 남자의 모습에 당황한 듯 재빨리 오른손 검지를 입에 갖다 댄다.
제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졸고 있는 ‘호랑이 할머니’가 깨어나 이 사실을 안다면 대로하실 게 뻔하기 때문이다.
행운의 여인을 찾는 사랑의 메신저
이 그림 또한 스피츠베크가 그린 것이다.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인지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비좁고 오래된 골목으로 우편집배원이 들어섰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러브 레터다.
왼손에는 누군가가 그 러브 레터와 함께 전달하라고 부친,
예쁘게 포장한 소포들이 들려 있다.
그가 러브 레터와 소포의 주인을 찾자 주변 건물의 창문들이 다 열리고 곳곳에서 여인들이 얼굴을 내민다.
이 동네의 누군가를 찾아 ‘사랑의 메신저’가 왔다 하니 모두 기대 혹은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 집배원을 바라보는 것이다.
집배원은 일순 당황한 듯하다.
그만큼 부담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이 일은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집배원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그 행운의 수신인을 찾는다.
창밖으로 목을 내민 저 여인들 가운데 누군가의 얼굴에 곧 환한 웃음꽃이 피어날 것이다.
진단도 치료도 어려운 질병 ‘상사병’
유복한 집안의 젊은 안주인이 기력이 없다며 병을 호소하고 있다.
진맥을 하던 의사는 얼굴을 찡그린다.
도통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의사를 바라보던 이 집 하녀의 입가에 미소,
아니 ‘썩소’가 살짝 스친다.
안주인의 병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안주인의 병은 외간 남자에 대한 연정으로 생긴 마음의 병,
바로 상사병이다.
상전을 돌보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던 탓에 하녀는 누구보다 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문 위에 큐피드 조각상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사랑의 화살촉이 젊은 안주인을 향하도록 들고 있다.
여인의 병이 사랑으로 인한 것임을 시사하는 이미지다.
돌팔이 의사들에 대한 조롱을 드러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자 당시 네덜란드 중산층 여성들에게 ‘딴 맘 품지 말고 가정에 충실하라’는 윤리적인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 하겠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
18세기 영국 사회를 비판하는 시사풍자화로 명성을 얻은 호가스는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도 풍자적으로 다루곤 했다.
두 그림 한 세트로 된 이 작품은 ‘전(Before)’과 ‘후(After)’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연애가 지닌 변덕스러운 측면을 조명한 작품이다.
‘전’에서는 욕정에 싸인 남자가 자신의 품으로 여자를 잡아끌며 절절히 사랑을 호소한다.
중심을 잃은 여인이 다급히 테이블을 잡자 테이블도 앞으로 쓰러진다.
놀란 여인의 스패니얼 강아지가 큰 소리로 짖는다.
‘후’에 그려진 두 남녀는 모두 홍조를 띠고 있다.
방금 격정적인 사랑을 나눴음을 알게 해주는 표식이다.
남자는 언제 그렇게 열띤 구애를 했었냐는 듯 천천히 바지를 추슬러 입고 있고,
흐트러진 보닛과 옷을 채 챙기지도 못한 여인은 사전에 남자가 쏟아냈을 ‘사랑의 약속’을 재확인하려는 듯 남자에게 매달려 있다.
과연 그 약속이 무엇이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남자의 표정을 보아하니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호가스가 그린 남자는 당시 영국 민사소송법원의 수석재판관인 존 윌리스라는 설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작품은 지체 높은 이들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호가스 특유의 냉소적인 비판의식이 담긴 그림이라 하겠다.
반가운 눈웃음에 담긴 의미
17세기 네덜란드의 한 부잣집 부엌에서 부엌일을 하는 하녀와 심부름하는 소년이 서로 마주 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다.
단순히 반갑다는 인사로 짓는 눈웃음이 아니다.
눈이 맞아 짓는 눈웃음이다.
하녀는 지금 구이용 꼬챙이에 고기들을 꼽고 있다.
이렇듯 꼬챙이에 고기를 꼽는 것은 진한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주변에 갖가지 식육과 먹거리들이 둘러 있는 것도 육체적인 쾌락을 시사한다.
두 사람은 곧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어 젊음의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이 시기 네덜란드 회화 가운데는 이처럼 풍성한 먹거리를 배경으로 로맨틱하거나 야한,
혹은 외설스러운 유머를 부각시킨 그림들이 많이 있다.
최음제로 그려진 굴
먹거리로 성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17세기 네덜란드의 그림 중에는 이 그림처럼 굴을 등장시킨 그림도 꽤 많이 있다.
당시 굴은 최음제로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그림에 굴을 그려 넣으면 자연스레 그 그림이 에로틱한 의미를 띠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굴이 에로티시즘,
나아가 육체적인 쾌락과 연결된 데는 아프로디테(비너스)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서양화가들은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여신을 조가비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 넣곤 했다.
또 아프로디테를 주인공으로 한 갖가지 신화 주제의 그림에도 굴을 중요한 모티프로 그려 넣곤 했다.
이 풍속화의 소녀는 지금 그 에로티시즘의 표지물을 먹고 있다.
더불어 굴을 손으로 든 채 우리에게 그윽한 눈길을 준다.
사랑과 관능이 넘치는 자신의 공간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시선이 아닐 수 없다.
깨진 계란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얼핏 보아서는 일상의 작은 실수를 그린 그림 같다.
계란 광주리가 바닥에 떨어져 그 안에 들어 있던 계란이 깨지고 이에 낙심한 소녀가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그런데 작은 실수치고는 나무라는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험해 보인다.
계란 깨뜨린 게 이 정도로 크게 혼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기실 이 그림에서 깨진 계란은 숨은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처녀성의 상실이다.
그제야 우리는 소녀의 어머니가 왜 저리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어린 딸이 남자와 관계를 가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어머니의 시선은 딸이 아니라 바로 곁의 젊은 남자에게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그 남자의 손목 또한 단단히 잡고 있다.
우리가 짐작하듯 남자는 이 문제의 또 다른 당사자다.
화가 난 어머니는 남자에게 “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내 딸 어떻게 할 거냐고?” 하고 따져 묻는 듯하다.
남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여인의 안색을 살피기에 바쁘다.
여느 젊은이들처럼 두 처녀 총각은 아무 대책 없이 불장난을 쳤다.
그러니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저렇듯 줄곧 혼만 난다.
재미있는 것은 오른편 하단에 그려진 꼬마의 모습이다.
남루한 옷을 입은 꼬마가 깨진 계란 하나를 나르고 있는데,
그 표정이 무척 침울하다.
꼬마의 표정이 저리 어두운 것은 사실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오른쪽 원탁에 장난감 활과 화살이 놓여 있는 데서 우리는 이 꼬마가 바로 큐피드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는 두 청춘 남녀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혀 서로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꾸중을 들어야 할 진정한 범인은 바로 저 꼬마 큐피드다.
훔쳐서라도 읽어보고 싶은 언니의 러브 레터
집안일에 지친 여인이 잠시 쉬는 김에 등불 곁에서 편지를 읽는다.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온 러브 레터다.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읽을수록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렇게 여인이 러브 레터에 빠져 있는 사이에 동생으로 보이는 다른 여인이 짐짓 딴짓을 하는 척하면서 그 편지를 훔쳐본다.
거울을 통해 반전된 글자를 읽고 있으니 그 내용 파악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질투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편지 삼매경에 빠진 여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여인 곁에는 광주리가 놓여 있는데,
그 안에 빨랫감이 그득하다.
허드렛일로 지친 여인이지만,
그 어떤 피로도 이 사랑의 편지 한 장으로 다 날아가버린다.
러브레터를 읽는 여인에게 삶은 오로지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한 빛의 세계일 뿐이다.
이주헌
이주헌은 미술평론가이자 대중에게 미술을 쉽게 전하는 아트 스토리 텔러다.
최근 저서로는 <혁신의 미술관>(아트북스),
<신화의 미술관>(아트북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