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은 과일가게, 대만인은 봉은사 간다…요즘 한국 관광 '원픽'은


 

 
 
 


7.8일 동안 204만원.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103만명의 평균 체류일과 지출 경비입니다(문화체육관광부). 코로나 이전인 2019년(6.7일 동안 168만원)에 비하면 늘어난 숫자죠. 최근엔 정부와 지자체도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입니다. 정부는 지난 2022년, 코로나 이후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2023~2024 한국 방문의 해’를 지정하면서 관광객 3000만명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시도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이번 달 1~8일을 ‘2024 서울환대주간’으로 지정했죠.

더 많은 관광객이 한국을 찾아 지갑을 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이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소비를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비크닉에서는 한국을 사랑하는 5개국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여행 동선을 따라가 보려고 해요. 우리나라를 가장 많이 찾는 일본(232만명)·중국(202만명)·미국(109만명)·대만(96만명)·베트남(42만명) 관광객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외국인 145만명 국내 결제 데이터...국적·나이별로 살펴봐

외국인 관광객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145만명의 올해 상반기(2024년 1월~6월) 소비 데이터를 들여다봤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에 많이 방문하는 5개 국가 관광객 104만명의 결제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자료는 외국인 전용 선불카드 ‘와우패스’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활용했어요. 와우패스는 여행금융 핀테크 기업 ‘오렌지스퀘어’가 운영하는 서비스인데, 카드 한장으로 대중교통부터 환전·송금 까지 가능해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사용량이 늘고 있어요.

서울 강남역과 고속터미널역에 설치된 와우패스 키오스크. 오렌지스퀘어

카드는 지하철역 개찰구 옆이나 호텔?쇼핑몰?공항 등 전국 200곳에 마련된 키오스크에서 쉽게 발급받을 수 있지만, 외국인만 자격이 돼요. 그리고 이때 여권 스캔이 필수입니다. 때문에 외국인 여행객의 국적?나이?성별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세세한 비교가 가능합니다.


탕후루·즉석사진관...아이돌 발자취 따라 순례 여행

일본인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식당 브랜드는 의외로 탕후루 가게였습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명동교자나 맥도날드를 제친 결과입니다. 마시호 오렌지스퀘어 일본 담당 마케터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간식을 따라 먹고 싶다는 심리와 더불어 탕후루를 먹는 한국 아이돌 영상이 유행하면서 일본인 사이에서 탕후루는 한국에서 꼭 맛봐야 할 필수 아이템이 됐다”고 했어요.

대만인의 봉은사 방문 역시 돋보였습니다. 문구·사진·기타 업종 등 ‘일반’으로 분류된 가맹점별 결제 순위 1위가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로 꼽혔습니다. 카카오프렌즈 홍대 플래그십과 엠에이치앤코 버터 명동중앙점이 그 뒤를 이었죠. 대만이 불교 문화권에 속한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만에서 인기 있는 보이그룹 세븐틴 멤버 정한이 봉은사에서 파는 염주를 차고 다니면서 봉은사가 관광 필수 코스가 됐다고 해요. 최서린 중화권 담당 마케터는 “봉은사에서 소원을 빌고 염주를 차면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는 게시글이 대만 SNS상에 많이 공유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포토이즘에서 진행하는 아이돌 콜라보 프레임. 포토이즘 인스타그램

사진관의 소비 성장세도 눈에 띕니다. 중국?대만?미국인들 사이에서 전년 동기 대비 사진관 결제가 각각 363%?109%?606% 증가했습니다. 특히 즉석 사진 인쇄 브랜드 ‘포토이즘박스’가 인기였습니다. 인기 비결은 아이돌 프레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과 마치 같이 사진 찍은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죠. 베트남 관광객 사이에서는 아이돌 포토카드 키오스크(드래곤미디어) 결제 건수도 많았습니다.

이훈 한양대 교수(국제관광대학원장)는 이런 현상을 ‘신(新)순례 여행’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SNS를 통해 한국 유명 스타의 삶이 자세하게 노출되면서 좋아하는 스타들의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하는 순례 여행 테마가 인기다”라고 해석했죠. 마시호 마케터 역시 “한국에 오는 일본인은 단순 관광보다는 아이돌 덕질, 미용?쇼핑이라는 뚜렷한 목적 있는 여행을 한다”고 전했습니다.


메가커피 마시고, 올리브영에서 쇼핑하고...한국인의 일상 체험

한쪽에서 순례 여행을 한다면, 다른 한쪽에선 ‘데일리케이션’이라 불리는 생활관광이 인기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경험하는 행위를 뜻하죠. 편의점?메가커피?교촌치킨 등에서 식문화를 체험하고, 올리브영?다이소?롯데마트 등 한국인이 자주 방문하는 곳을 다녀보는 겁니다.

물론 식당 분류를 보면 햄버거?파스타 등을 주로 먹지만, 한식 소비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미국?중국?일본인들의 한식 결제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45%?166%?95% 증가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과일 사랑입니다. 과일 가게 브랜드 ‘우리 농산물 유통센터’에서 베트남인의 소비가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다나 동남아 담당 마케터는 “베트남인들 중에서도 특히 베트남 여성은 밥은 굶어도 과일을 꼭 먹는다”며 “한국에서 먹어볼 수 있는 과일은 모두 경험해본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포도?사과?배?감?복숭아는 인기 품목이라고 해요.

우리의 일상이 관광 자원화가 된 이유는 영화와 드라마 등을 포함한 K-콘텐트 덕분입니다. 실제로 외국인이 한국 방문에 관심을 둔 계기 1위가 ‘한류 콘텐트를 접하고 나서’였습니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때 개별여행 비중이 77.1%에서 84%로 크게 높아진 점(문화체육관광부)도 여행 동선이 다채로워진 이유입니다.


외국인 사이에서도 떨어진 제주 인기...요즘은 부산이 대세

외국인들은 서울 외에 어떤 지역을 방문할까요? 요즘은 제주보다 부산이 대세입니다. 국적별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지역을 자치구별로 살펴본 결과 서울 외 지역에선 부산이 대체로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여름 휴가지 만족도에서 부산은 제주(4위)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는데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부산이 매력적인 관광지로 부상한 거죠. 이 교수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바다를 접한 대도시인 데다가 감천문화마을처럼 전통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돼지국밥?밀면 등 지역 특산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점이 매력 요소로 꼽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세대별 여행 동선 차이도 봤습니다. 흥미로운 건 일본인과 중국인은 세대 구분 없이 똑같은 여행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 교수는 “일본인은 관광 안내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고, 중국인은 SNS상에 공유된 동선을 따르는 패턴을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베트남 X?M세대 사이에서는 경북 경주시가, M세대 사이에서는 전북 전주시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다나 마케터는 “문화 유적지 탐방에 관심이 많은 베트남인의 성향이 담긴 결과”라고 분석했죠. 미국인 X?M세대 동선에선 경기 파주가 처음 등장했는데, 판문점?임진각과 헤이리 마을 방문이 목적이었습니다.


관광객에게 좋은 여행은 우리에게도 좋은 일상이 된다

외국인 소비 데이터를 통해 관광객들의 공통된 특징도 볼 수 있지만, 국적별?세대별 동선 차이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틀에 박힌 여행지 소개보다 개인 맞춤형 여행 테마 기획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서울?제주?부산에 치우친 여행 동선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죠. 이 교수는 “관광객 2000만명의 평균 지출액을 1.5배 늘리고, 체류 일수를 하루(1.1일) 늘리는 것이 관광객 3000만명을 유치하는 것과 똑같은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분석했습니다. 관광객 수보다 관광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특정 관광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온 만큼 우리도 관광객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고민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에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며 ‘관광 시민’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특정 관광객만이 아닌 외국인 관광객?내국인?지역 주민을 통합해 모두를 배려하는 미래 관광 고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관광객에게 좋은 여행을 제안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더 나은 일상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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