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에 한강을 넣어두었다

 


주간뉴스레터 172호 | 2024.10.17
이미행복벗, 잘 지냈어? 일주일 사이 큰 뉴스가 있었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2호😎도 감격했어. 한국도 노벨문학상 작가 보유국이구나, 애국심도 차오르고. 

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10년 만에 다시 읽고 싶어서 집 구석구석 뒤졌는데, 안 보였어. 온라인 서점에서 사려고 해도, 그새 동났더라고. 전자책으로 읽는 중.

다들 같은 마음인가 봐. 노벨상 수상 이후 한강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대. 중고거래 플랫폼에 그의 서명이 들어간 초판본은 수십만원에 올라와 있고. 외국에서도 품절 대란.  

얼마나 글을 잘 쓰면 노벨상을 받는 거야? 한강 작품은 뭐가 특별한 거지? 노벨수상작을 더 깊게 읽는 방법은? 이번 주 휘클리는 ‘한강 특별편’야. 문화기자와 함께 한강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자. 자자, 얼른 책 펴!📚  
📂 오늘의 휘클리
  1. 한 번 알아봤다: 한강 읽기
  2. 한 번 물어봤다: 노벨상 수상의 의미
  3. 휘클리 심화반: 한강을 읽다(with 책기자)
  4. 모르고리즘: 알고리즘 프리! 과학 뉴스픽
  5. 휘클러 say!: 독자피드백 + 이벤트 알림
연합뉴스
📂한강 읽기

국내 첫 노벨문학상
  • 올해 노벨문학상💡 주인공은 한강 작가. 국내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야. 노벨상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두번째.  
  • 지난 10일 저녁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수상자로 선정하며 이렇게 설명했어.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시적 산문이다.” 수상 직후 한강은 한림원과 인터뷰에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 (여러 작가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나에게 영감을 줬다”는 소감을 전했어.
  • 노벨상 수상자에겐 메달과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4억3000만원)가 주어져. 시상식은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데, 한강은 이 자리에서 낭독할 노벨문학상 수락연설문💡을 쓸 예정.  

공식 깨진 파격 수상  
  • 한강은 2016년 부커상💡과 2023년 메디치상💡 같은 굵직한 국제 문학상을 받은 작가지만, 유력한 노벨상 후보는 아니었어. 수상 후 외신들도 “예상을 뒤엎은 파격”이라고 보도했고.
  • 노벨상 후보에 베팅하는 유럽 도박 사이트에서 거론된 사람은 중국 여성 작가 찬쉐, 호주 남성 작가 제럴드 머네인, 캐나다 여성 작가 앤카슨 정도. 국내에선  황석영·고은 작가가 꾸준히 얘기돼왔고. 
  • 왜 예상 못 했냐고? ①한국의 ② 젊은 ③ 여성 작가. 모두 기존 수상자와 거리가 멀거든. 노벨문학상은 작가의 전체 작품을 평가해. 그러니 작품을 많이 쓴 60대 중반 이상의 수상자가 대부분. 만 53살인 한강은 무척 젊은 편이지. 북유럽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상이라 그런지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서구권 남성에 치우쳤어. 역대 121명의 수상자 중 한강을 포함해 아시아인은 5명. 여성은 18명뿐. 
  • 노벨위원회💡 심사 방식도 ‘깜짝 수상’에 한몫했어. 노벨문학상 심사는 1년간 하는데, 그 과정은 철저하게 비밀이야. 후보 없이 1명을 뽑고. 심사 정보는 50년간 볼 수 없대.

증언하고 교감하고 
  • 한강은 1993년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어. 소설가로는 1994년 등단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고. 이번에 한림원이 소개한 작품은 7권이야.
  • 특징을 추려보면 ①역사성.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014)는 5·18민주화운동, ‘작별하지 않는다’(2023)는 제주 4·3을 소재로 해. 역사적 사건이 남긴 폭력과 상처를 담은 거지. 한림원은 두 작품에 대해 “잔혹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낸 ‘증언 문학’💡”이라고 평가했어. 
  • 시적 표현. 소설을 시처럼 표현하는 것도 특징이야. 한림원은 중편소설 ‘흰’을 두고 “시적 스타일이 두드러진다”며 “소설이라기보다 세속적 기도서에 가깝다”고 평했어.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은 “은유💡적 스타일이 짙다”고도 했고. 
  • 고통의 교감. 고통은 한강과 뗄 수 없는 단어야. 한강 작품엔 고통을 마주한 개인이 고통받는 존재와 깊이 교감하는 장면이 많이 담겼거든. 한림원은 “한강 작품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 사이의 이중 노출이 특징”이라고 봤어. 
  💡  하이라이트
노벨문학상: 세계 최고 권위 문학상. 1901년부터 올해까지 수상자 121명 배출
한림원: 스웨덴 왕립 학술원으로 노벨상 중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관 
수락연설문: 문학상 수상자가 본인의 문학 세계, 세계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밝히는 것 
부커상(Booker Prize): 노벨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소설 문학상. 맨(Man)그룹이 후원을 중단하면서, 2019년부터 부커상으로 명칭이 바뀜  
메디치상(Medici Prize):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힘 
노벨위원회: 노벨상 수상자 선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 기관
등단: 문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
은유: A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B라는 대상에 빗대어 말하는 방식
증언 문학(witness literature): 역사적 사건, 사건에 휘말린 인물의 진실에 집중하는 문학
블랙리스트 올랐던 은둔 작가
  •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9살까지 살았어. 지금도 작품 구상이나 휴식을 위해 아버지 고향인 전남 장흥을 찾는다고 해.   
  • 아버지도 작가야. 소설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쓴 한승원 작가는 85살인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 아버지와 딸은 이상문학상💡과 김동리문학상💡을 함께 수상하는 기록도 세웠고.
  • 박근혜 정부 때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어. 그의 책들이 검열대상이 된 거야. 노벨상 수상 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세종도서💡 선정과정에 ‘소년이 온다’를 탈락시킨 과거를 모두 인정하고 사과했어.
  • 그는 은둔💡형 작가이기도 해.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도 조용히 지내고 있어. 유일하게 스웨덴 공영방송과 서울집에서 만났고. 그는 인터뷰에서 “노벨상 의미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어. 서울 종로구에서 ‘책방오늘’이란 독립서점💡을 열었는데, 직접 나가진 않는대. 서점은 지금 휴업 중.  

숨은 조력자들
  • 노벨문학상 수상은 번역의 성과이기도 해.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써도 국외 독자들이 읽지 못하면 국제 문학상을 받을 수가 없잖아. 세계 문학은 영미권 중심이다 보니, 한국어 작품이 세계적 권위의 상을 받으려면 훌륭한 번역은 필수.
  • 한강 작품은 이미 28개 언어권에서 82종의 단행본💡이 번역된 상태였어.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번역원💡의 지원으로 한국 작품 번역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졌거든. 그 덕분에 한강은 국제 문학상을 차근차근 받아오다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된 거지.
  • 아직 한계도 있어. 한국문화번역원의 평균 인건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31곳 중 꼴찌. 그래서인지 퇴사율이 높아. 근데 번역 인력을 키우기 위한 내년도 예산(21억8800만원)은 2022년(41억6600만원)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도서 정책은 거꾸로
  •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왔다는 건?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세계 독자들이 비로소 한국 문학이라는 두꺼운 책의 한 페이지를 열어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해. 세계 변두리였던 한국문학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단 거지. 
  • 한강에 쏠린 독자들의 관심을 출판·문학계가 이어받을 수 있게 하는 건 숙제야. 그러려면 정부 도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하는데, 글쎄. 윤석열 정부 들어 ‘책 읽기’ 관련 예산은 오히려 뭉텅이로 삭감됐어. 책의 도시로 불렸던 경기도 고양시는 공립 작은도서관을 폐관하려고 하고 있고. 아직 갈 길이 멀어.
  💡  하이라이트
이상문학상: 작가 이상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한국 3대 문학상 중 하나
김동리문학상: 소설가 김동리를 기리는 문학상. 최근 박목월 시인을 함께 기리는 동리·목월문학상으로 바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정권에 비우호적인 문화 예술인을 관리하기 위해 비밀리에 작성한 명단 
세종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매년 발표하는 도서 선정사업의 약칭. 세금으로 책을 사 전국 도서관에 보급할 만큼 좋은 책으로 인정받은 책 
은둔: 홀로 숨어 사는 행위. 세상과 단절해 은둔하는 사람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함   
독립서점: 대규모 자본이나 유통망에 의지 않고 서점 주인 취향에 따라 꾸며진 독립된 서점
단행본: 여러 번 써내는 전집과 달리 한 번 출간으로 완결된 책
대산문화재단: 1992년 교보생명그룹이 만든 공익재단. 한국문학 번역·출판을 지원
한국문화번역원: 1995년 문체부 산하에 만들어진 특수법인. 전문 번역가를 양성함 
노벨위원회

🎙️️한강 작가가 받을 거라고 예상했어? 

💬아니. 예상했다면 문학기자가 아니라 베팅했을 거야. 서구 배팅 플랫폼에선 노벨상뿐 아니라 부커상, 퓰리처상 모두 배팅을 하거든. 


🎙️️수상자가 발표되자마자 기사는 써야 하잖아. 시나리오는 만들어뒀지?

💬응. 기자들은 오전에 그날 어떤 기사를 쓸지 기사 계획을 올리거든. 한국 작가가 수상할 경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할 경우, 둘 다 아닐 경우. 이렇게 3가지로 보고하긴 했어. 


🎙️️한국 작가는 누구? 

💬김혜순, 한강, 황석영.


🎙️️스웨덴 한림원이 10일 저녁에 발표했잖아. 기자들에겐 미리 알려줬?

💬아니. 스웨덴 시각으론 10일 낮 1시, 한국은 저녁 8시 노벨위원회 누리집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공개해. 스웨덴 매체, 미국 뉴욕타임스, 북한 노동신문 기자 모두 예외는 없어. 


🎙️️한강의 이름이 불렸을 때 어땠어?

💬10일 저녁 7시 (한겨레) 문화부장, 책지성팀장, 팀원들이 함께 밥을 먹었거든. 나만 7시30분쯤 회사로 먼저 들어와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받을 경우를 대비해 기사를 쓰고 있었어. 그리고 노벨문학상 생중계 영상을 틀었는데 1분 만에 “한~캉” 소리가 들리더라고. 바로 소리를 질렀지. 


🎙️️그리곤? 

💬솔직히 한강 수상 소식이 발표되고 나서부턴 기억이 안 나. 예상 지면, 만든 지면 다 뒤집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아. 비상이랬나, 기적이랬나? 한강 작가의 ‘차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는 인터뷰까지 보도하느라, 정작 난 물 한 잔 못 마시고 다음 날 새벽 2시에 퇴근했어.


🎙️️고생 많았네. 한강이 받았으면 했어?

💬내가 생각한 한국 작가 1순위는 김혜순 시인. 한강은 다음 2순위. 1955년생 김혜순 시인의 나이와 연륜을 고려한 순위지. 솔직히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탈 거라곤 예상 못 했거든. 


🎙️️그래도 2순위면 높은데? 이유는?  

💬한강은 2016년부터 프랑스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았잖아. 그걸 이번에 한림원도 강조했고. 개인적으로 내가 눈여겨봤던 건 2014년이야. 


🎙️️그때도 상을 받았었나?

💬그건 아니고. 노르웨이 ‘미래도서관 프로젝트’가 있었거든. 2014년부터 매년 1명씩 100년간 100명의 작품을, 나무 1000그루를 사용해 한정판으로 출판하는 거야. 2114년까지 해당 작가들의 원고는 노르웨이 오슬로 시립도서관에 봉인하고. 한강은 2019년 다섯 번째 작가로 꼽혔는데, 한국인으론 최초였거든. 스칸디나비아권과 한강의 인연인데, 그때도 놀랐지만 볼수록 상징적이야.


🎙️️근데 왜 다들 노벨상 후보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을 대표해서 스웨덴 소설가 앨렛 맷슨이 한 말에 힌트가 있어. “연령 제한은 없지만,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30~40대 수상자를 찾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기에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평생이 걸리기도 하니까”.


🎙️️역대 수상자 중 한강이 최연소 작가야?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한강 작가보다 젊은 수상자는 6명밖에 없어. 20세기 출생 작가 중엔 만 43살에 수상한 알베르 카뮈 다음 한강이 두 번째니, 예상하기 쉽지 않았겠지. 


🎙️️한강 본인도 깜짝 놀란 거 같던데?

💬그런 것 같아. 최근 스웨덴 공영방송 SVT와 인터뷰를 했는데, 한림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장난전화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한림원이 한강 작품을 자세하게 소개하던데, 원래 그래?  

💬굉장히 자세한 편이야. (원래도) 소설을 중심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당장 지난해 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출신 작가 욘 포세보다 훨씬 (설명이) 풍부해. 개인적 비극과 역사적 비극이 시어로 접목된다고 생각해 봐. 


🎙️️그게 무슨 말이야? 

💬욘 포세는 죽음을 파헤치고 그 심리의 상태를 언어로 적중시키려고 해. 의식에 따라 수많은 문장이 스타카토식으로 읊어져. 문학적이지만, 줄거리란 게 마땅치 않은 거지. 근데 한강은 ‘채식주의자’처럼 육식을 안 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개인적 폭력이 사회적으로 또 탐미적으로 드러나잖아. 


🎙️️몇년 전 읽었는데, 그랬던 거 같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만의 특수한 과거사를 거슬러 삶을 모색해. 불가역적인 걸 가역적으로 만드는 언어가 시적 언어야. (한강은) 이걸 다 아우르고 있으니 제대로 작가를 설명하려면 (분량이) 길지 않겠어?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은 어떤 의미야? 

💬글쎄, 실감이 날까? 한강은 그동안 여러 상을 받을 때마다 대개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거든. 작품을 마감했을 때가 더 충만하다고도 했고. 그래도 노벨상만은 최소한 작품을 마감한 느낌 정도는 들지 않았을까? 

🎙️️그의 작품 특징은 뭐야?

💬겨울의 언어, 작중 피해자나 주인공과의 지독한 내면 일치, 언어적 치열함.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것 같아. 


🎙️️겨울의 언어?

💬한강이 1995년에 쓴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 담긴 단편들을 보면 대부분 어두워.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도 ‘젊은 작가가 왜 그리 슬픈 이야기만 쓰냐’는 질문에 한강은 “슬픈 게 좋지 않아요?”라고 웃으며 답했거든. 2013년에 쓴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담긴 연작시 ‘거울 저편의 겨울’에도 슬픈 정서가 지배적이고. 이후 여러 작품, 기고 글에도 겨울이란 단어뿐 아니라 겨울 기후가 많아.


🎙️️언어적 치열함은?

💬한강의 이런 말이 기억나. “글을 쓸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한다.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가장 수동적인 자세로, 글쓰기 외의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고 한 단어씩 써간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이렇게 문장이 만들어지는 거지.


🎙️️걷지도, 먹지도 않고 글만 쓴다고?

💬응. ‘작별하지 않는다’ 출고 뒤에도 ‘이제 새벽에 일어나 초 안 켜도, 구덩이 안쪽을 느끼려고 책상 아래 들어가 누워있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된다’고 썼고.


🎙️️완전히 몰입하는구나. 

💬인간은 언어로 의식하고 감각해. 언어가 치열하다는 건 곧 치열하게 의식하고 감각하도록 실제로 자신을 벼랑 끝, 칼 끝에 세우는 거겠지.


🎙️️한림원이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했잖아. 치열하게 고민한 소설의 언어가 시처럼 아름답단 건가?

💬개인적으론 이게 한강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 한강의 여러 소설은 사실 시적 언어가 아니라, 시어로 쓰였다고 생각하거든. 시가 있고, 시어로 쓰인 산문이 있는 거지. ‘흰’이 대표적으로 시어로 쓰인 산문(소설)이겠지. 스스로 “시의 상태에 가까워져 소설 전체를 생생한 감각으로 훑고 지나”간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시적 언어가 아니라 시어 그 자체다? 

💬한강은 1993년 시로 먼저 등단했잖아. 소설을 마감할 때도 시를 많이 읽는다고 해. 그러니까 소설에 쓰인 시어를 ‘시적 산문’이라고 한 거지. 불행히도 서구에 한강의 시집은 번역되질 않았으니, (심사위원들이) 진짜 시는 보지 못해 그렇게 표현한 건가 싶기도 해. 그런 점에서 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옳지만, 한강의 시를 뺀 노벨문학상은 틀렸다고 생각해.


🎙️️외국어로 번역된 한강 시가 하나도 없어? 

💬2021년 일본에 번역된 것 외엔 없어. 서구권에선 한강의 번역된 시가 없는 거지. 다행히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내년 3월에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처음 프랑스어로 번역될 예정이라고 해.


🎙️️번역이 언제 결정된 거야? 수상 뒤? 

💬원래는 빨라도 내년 가을이나 나올 것을, 노벨상 받자마자 프랑스 출판사가 당장 편집 들어가겠다고 한 거야. 한강 작품을 서구권에 처음으로 소개한 번역가 최미경씨가 맡았어. 시집에 붙인 제목은 ‘내 서랍에 넣은 저녁’(Soirs rangés dans mon tiroir).


🎙️️중국과 일본도 수상자가 나왔잖아. 한국만 안 나왔던 이유는?

💬우리 근대 최초 장편소설은 1910년대 이광수 무정이라고 다 배웠잖아. 가령 셰익스피어 작품만 해도 다 일본 번역물을 통해 들어왔고, 이후 우리가 직역을 해도 일본식 번역 영향을 1세기 넘게 받았어. 두 나라와 비교해 번역 역사도, 번역 자원도 차원이 달랐지. 긍정적인 건 최근 차이가 좁혀지고 있긴 해.


🎙️️어떻게?

💬1994년 일본에서 두 번째 노벨문학상 받은 오에 겐자부로는 수상 전까지 번역된 단행본이 17개국 79종이었거든. 한강은 28개 언어권 82종이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거지.


🎙️️다행이네.

💬문제는 ‘한강 외 다른 한국 작가들이, 일본의 다른 작가들만큼 다른 나라에 소개되고 있냐’인데. 앞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라고 봐. 


🎙️️수상 후 한강 작품이 100만부 넘게 팔렸잖아. 출판계엔 좋은 거지?

💬당장은. 올해 말 한강을 제외한 다른 작가 작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 얼마나 줄었는지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오히려 다른 책은 덜 볼 수도 있단 거구나. 다른 작가들로 관심이 이어지는 게 중요하겠네?

💬응. ‘한강 효과’가 수상 작가에 대한 관심과 축하의 마음이 담긴, 말하자면 ‘허니문 기간’을 지나 문학·출판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게 중요한데. 과연 그렇게 될까? 


🎙️️올해 안에 한강의 차기작이 나온다던데, 어떤 책일까?

💬고통스런 역사적 소설은 그만 쓰고 좀 더 개인적인, 생명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는 했어. 앞으로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의 한강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난 슬픈 게 좋아.


🎙️️한강이 기자회견도 안 하고 있잖아. 12월10일 노벨상 시상식 땐 볼 수 있겠지?

💬한국 기자간담회를 고사하긴 했는데, 그래도 노벨상 시상식엔 참석하지 않을까? 

수락연설문도 쓰겠다고 했으니. 2009년에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집,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보면 인류의 문학적 성찰이 집대성되어 있는 것 같아 참 근사하거든. 한강의 말도 그 반열에서 기록될 거야.


🎙️️가장 좋아하는 한강 작품은? 

💬2013년에 출간된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보통 작가들은 ‘운다’는 표현을 망설여. 운다는 모습을 상상하도록 묘사해야 한다고 말하지. 운다는 직접 표현은 자칫 식상하고 감정을 떨어뜨릴 수 있잖아. 


🎙️️한강은 달라?

💬한강의 시집엔 ‘운다’라는 표현이 넘쳐. 그게 가장 자신의 시상이나 내면,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언어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 


🎙️️소설을 추천한다면? 

💬2011년에 나온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2017년 메디치상 외국문학상 부문 후보에도 오른 책이야. 충격으로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만나는 이야기인데, 언어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잘 드러나 있어. 사랑의 고통도. 고통은 사랑을 증거해. 이건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  하이파이브
  1.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기존 관행을 깨는 파격적인 결과였어. 
  2. ‘증언 문학’과 은유적 표현은 한강 작품의 주된 특징이야. 
  3. 노벨상 수상은 한국 번역의 큰 성과이기도 해.
  4. 한국 문학의 수준은 높아지는데, 정부의 지원은 못 따라가고 있어. 
  5.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와 소설 ‘희랍어 시간’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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