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 특징은 뭐야? 겨울의 언어, 작중 피해자나 주인공과의 지독한 내면 일치, 언어적 치열함.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 것 같아.
️겨울의 언어? 한강이 1995년에 쓴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 담긴 단편들을 보면 대부분 어두워.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도 ‘젊은 작가가 왜 그리 슬픈 이야기만 쓰냐’는 질문에 한강은 “슬픈 게 좋지 않아요?”라고 웃으며 답했거든. 2013년에 쓴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담긴 연작시 ‘거울 저편의 겨울’에도 슬픈 정서가 지배적이고. 이후 여러 작품, 기고 글에도 겨울이란 단어뿐 아니라 겨울 기후가 많아.
️언어적 치열함은? 한강의 이런 말이 기억나. “글을 쓸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한다.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가장 수동적인 자세로, 글쓰기 외의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고 한 단어씩 써간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이렇게 문장이 만들어지는 거지.
️걷지도, 먹지도 않고 글만 쓴다고? 응. ‘작별하지 않는다’ 출고 뒤에도 ‘이제 새벽에 일어나 초 안 켜도, 구덩이 안쪽을 느끼려고 책상 아래 들어가 누워있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된다’고 썼고.
️완전히 몰입하는구나. 인간은 언어로 의식하고 감각해. 언어가 치열하다는 건 곧 치열하게 의식하고 감각하도록 실제로 자신을 벼랑 끝, 칼 끝에 세우는 거겠지.
️한림원이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했잖아. 치열하게 고민한 소설의 언어가 시처럼 아름답단 건가? 개인적으론 이게 한강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 한강의 여러 소설은 사실 시적 언어가 아니라, 시어로 쓰였다고 생각하거든. 시가 있고, 시어로 쓰인 산문이 있는 거지. ‘흰’이 대표적으로 시어로 쓰인 산문(소설)이겠지. 스스로 “시의 상태에 가까워져 소설 전체를 생생한 감각으로 훑고 지나”간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시적 언어가 아니라 시어 그 자체다? 한강은 1993년 시로 먼저 등단했잖아. 소설을 마감할 때도 시를 많이 읽는다고 해. 그러니까 소설에 쓰인 시어를 ‘시적 산문’이라고 한 거지. 불행히도 서구에 한강의 시집은 번역되질 않았으니, (심사위원들이) 진짜 시는 보지 못해 그렇게 표현한 건가 싶기도 해. 그런 점에서 나는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옳지만, 한강의 시를 뺀 노벨문학상은 틀렸다고 생각해.
️외국어로 번역된 한강 시가 하나도 없어? 2021년 일본에 번역된 것 외엔 없어. 서구권에선 한강의 번역된 시가 없는 거지. 다행히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내년 3월에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처음 프랑스어로 번역될 예정이라고 해.
️번역이 언제 결정된 거야? 수상 뒤? 원래는 빨라도 내년 가을이나 나올 것을, 노벨상 받자마자 프랑스 출판사가 당장 편집 들어가겠다고 한 거야. 한강 작품을 서구권에 처음으로 소개한 번역가 최미경씨가 맡았어. 시집에 붙인 제목은 ‘내 서랍에 넣은 저녁’(Soirs rangés dans mon tiroir).
️중국과 일본도 수상자가 나왔잖아. 한국만 안 나왔던 이유는? 우리 근대 최초 장편소설은 1910년대 이광수 무정이라고 다 배웠잖아. 가령 셰익스피어 작품만 해도 다 일본 번역물을 통해 들어왔고, 이후 우리가 직역을 해도 일본식 번역 영향을 1세기 넘게 받았어. 두 나라와 비교해 번역 역사도, 번역 자원도 차원이 달랐지. 긍정적인 건 최근 차이가 좁혀지고 있긴 해.
️어떻게? 1994년 일본에서 두 번째 노벨문학상 받은 오에 겐자부로는 수상 전까지 번역된 단행본이 17개국 79종이었거든. 한강은 28개 언어권 82종이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거지.
️다행이네. 문제는 ‘한강 외 다른 한국 작가들이, 일본의 다른 작가들만큼 다른 나라에 소개되고 있냐’인데. 앞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라고 봐.
️수상 후 한강 작품이 100만부 넘게 팔렸잖아. 출판계엔 좋은 거지? 당장은. 올해 말 한강을 제외한 다른 작가 작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 얼마나 줄었는지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오히려 다른 책은 덜 볼 수도 있단 거구나. 다른 작가들로 관심이 이어지는 게 중요하겠네? 응. ‘한강 효과’가 수상 작가에 대한 관심과 축하의 마음이 담긴, 말하자면 ‘허니문 기간’을 지나 문학·출판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게 중요한데. 과연 그렇게 될까?
️올해 안에 한강의 차기작이 나온다던데, 어떤 책일까? 고통스런 역사적 소설은 그만 쓰고 좀 더 개인적인, 생명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는 했어. 앞으로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의 한강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난 슬픈 게 좋아.
️한강이 기자회견도 안 하고 있잖아. 12월10일 노벨상 시상식 땐 볼 수 있겠지? 한국 기자간담회를 고사하긴 했는데, 그래도 노벨상 시상식엔 참석하지 않을까? 수락연설문도 쓰겠다고 했으니. 2009년에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집, ‘아버지의 여행가방’을 보면 인류의 문학적 성찰이 집대성되어 있는 것 같아 참 근사하거든. 한강의 말도 그 반열에서 기록될 거야.
️가장 좋아하는 한강 작품은? 2013년에 출간된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보통 작가들은 ‘운다’는 표현을 망설여. 운다는 모습을 상상하도록 묘사해야 한다고 말하지. 운다는 직접 표현은 자칫 식상하고 감정을 떨어뜨릴 수 있잖아.
️한강은 달라? 한강의 시집엔 ‘운다’라는 표현이 넘쳐. 그게 가장 자신의 시상이나 내면,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언어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
️소설을 추천한다면? 2011년에 나온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2017년 메디치상 외국문학상 부문 후보에도 오른 책이야. 충격으로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만나는 이야기인데, 언어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잘 드러나 있어. 사랑의 고통도. 고통은 사랑을 증거해. 이건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