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강가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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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걷는 것보다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걷기 운동이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잠시쉬었다가 수 분간 걷거나 계단을 오르면 연속적으로 걸을 때보다 더 많은 산소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루치아노 이탈리아 밀라노대 연구팀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국립왕립학회보 B'에 16일 게재했다.
연구팀은 "자동차가 주행을 시작하고 처음 몇 km 동안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처럼, 걷기 운동을 시작하고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에는 그 이후 이동할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산소를 소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걷기 운동에 소모되는 에너지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평소의대사 상태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는점에 주목했다.
심박수가 일정하고 신체의 에너지 생산과 소모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서 각 운동이 에너지 소모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다양한 형태의 걷기 운동이 에너지 소모량에서 어떤 차이를 일으키는지 알아보기 위해 1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다.
10초에서 4분까지 진행되는 다양한 걷기 운동에서 에너지 소비 양상을 측정했다.
분석 결과 걷기 운동 시작 단계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데익숙해진 운동 후반 단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운동을 멈췄다가 시작할 때마다 거친 움직임에 적응하기 위해 몸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 것이다.
이번 연구 논문의 1저자인 루치아노 연구원은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시동을 걸거나 차고에서 차를 꺼내기 위해 약간의 연료가 필요하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걷기를 시작하는 데만
상당한 양의 산소가 소모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건강한 사람들의 운동 효과를 개선하는 것 외에도 비만 환자나 뇌졸중 환자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재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참고 자료>- doi/10.1098/rspb.2024.1220
고통은 '주관적'…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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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인생은 고통'이라고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고통(suffering)의 의미에 관해 조사할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신체적, 심리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 의사들이 주로 만성 통증, 말기 암 환자들을 치료하는 입장에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헌들이 다수 있었다.
"고통은 개인의 온전함을 위협하는 사건들에 의해 괴로움을 경험하는 상태로 정의될 수 있다.
고통은 사회적 역할, 집단 정체성, 자기 자신과의 관계, 신체적 측면, 가족과의 관계, 또는 초월적인 존재와의 관계와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Cassell, 1982)."
1982년 에릭 카셀이라는 의사는 고통에 대해 위와 같은 정의를 내렸다.
흥미롭게도 신체적 통증 뿐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괴로움들을 아울러 고통을 정의한 것을 볼 수 있다.
관련 문헌들을 더 조사하던 와중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를 만날 수 있었다.
헨리 비처라는 의사가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군인들과 사고 등으로 인해 비슷하게 큰 부상을 입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었다.
통증과 관련해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사실이라면 의학적, 객관적으로 심각한 부상 정도와 개인이 느끼는 통증의 강도, 통증으로 인해 느끼는 불행 사이에 생각보다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같은 부상을 입어도 어떤 사람은 아직 버틸만 하다고 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삶의 희망을 잃을 정도로 큰 영향을 받는다.
비처는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군인들과 각종 사고로 인해 비슷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민간인들을 비교했다.
그 결과 평균적으로 군인들의 부상이 더 심각했음에도 군인들은 민간인들에 비해 사고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덜 받은 듯 보였다고 한다.
그 이유로 군인들은 통증은 심하지만 전쟁에서살아나왔고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큰 안도감과 행복을 느꼈다는 점을 지목했다.
반면 민간인들은 평온한 일상을 누리다가 갑자기 부상으로 인해 삶이 망가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부상 전후 비교의 기준이 거대한 죽음의 소용돌이였던 사람들은 부상을 입은 고통보다 죽다가 '살아났다'는 기쁨이 더 컸고 반대로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은 부상을갑작스럽게 닥쳐온 거대한 불운으로 바라보고 슬픔에 잠겼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군인들은 약 32%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 달라고 했지만 민간인들은 83%가 강력한 진통제를 원했다고 한다.
이런 관찰을 통해 비처는 "환자들이 종합적으로 경험하는 고통의 정도는 신체적 통증이 그들에게 있어 어떤 주관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결론지었다.
나치 치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토르 프랑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는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아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보았다.
자신은 수용소 안에서도 이따금씩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었고 따라서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무엇보다 마음이 텅 비어 있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죽어 나갔다고 언급했다.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아무 때에나 우리 삶을 덮쳐오지만 마음에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면 적어도 우리의 마음만은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거대한 고통 앞에서도 담담하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깊게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사람은 마음이 죽을 때 진짜로 죽는다는 점이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들을 떠올려 보면 몸이 힘든 것 보다도 마음이 지옥일 때였다.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해서 내밀어진 손을 잡지 못하고 내가 나의 존엄성을 의심하고 내 삶이 가치 없다고 느낄 때면 살아있는 것이 너무 큰 짐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다른 이유보다 스스로가 자신을 하찮고 쓸모 없고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여길 때 그 괴로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살기 위해) 죽음이라는 탈출구를 선택한다는 견해들이 있다.
우리는 다 연약하고 휩쓸리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서 아주 작은 일에도 위태롭게 흔들릴 수 있는 미약한 존재들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고통이라는 표현이 꽤 정확하다고 느껴진다.
언제라도 마음이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가여운 존재들이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그럼에도 내 고통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면 언젠가 뉴스에서 접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학생을 떠올리곤 한다.
그 아이가 겪은 사건 자체는 매우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아이의 작은 마음은 날개 없이 추락했던 것이 아닌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지 생각해본다.
Beecher, H. K. (1956). Relationship of significance of wound to pain experienced.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161(17), 1609-1613.
※필자소개
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셀프 도덕적 판단'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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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리학계에서 뜨거운 이슈라면 어떤 이슈에 '도덕/비도덕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이 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인권, 임신중절 같은사실은 그냥 내가 낯설고 싫기 때문에 반대하는 이슈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을 챙기기 시작하고, 임신중절을 허용하면 아이들이 동성애자가 되고,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마구 하게 되면서 나라와 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한편 이렇게 환경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과하게 인지하면서 동시에 '총기' 같은 무서운 물건이 아무 제약 없이 돌아다니는 데에 찬성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비도덕적인지에 대한 기준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도 변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개인의 취향일 뿐 도덕/비도덕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들(예를 들어 흡연, 채식)이 현재에 와서는 비도덕적이거나 도덕적이라는 도덕 판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도덕화 현상의 핵심은 시대와 지식 수준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덕법칙이 바뀌는 현상과 달리 자신의 주장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이 (또는 내집단이) 반대하는 무언가에 대해 '비도덕적'이라는 프레임을 열심히 씌우는 행위다.
조슈아 리 멜버른대의 심리학자 등에 의하면 어떤 이슈의 도덕화는 크게 두 가지 프로세스를 거쳐 나타난다.
하나는 감정, 특히 역겨움과 같은 강한 부적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해로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육식이나 임신중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한 가지 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다양한 이슈에서 XX를 허용하면 학교와 가정이 무너지고 나아가 나라와 사회가 무너진다며 해로움을 강조하는 것도 흔히 나타난다.
연구 결과 이렇게 역겨움과 해로움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해당 이슈를 더 도덕 판단의 이슈로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이전에 별 생각 없던 이슈가 도덕의 옷을 입으면 '사실'보다 더 강한 설득력을 보이는 현상도 나타났다.
또한 도덕과 전혀 상관 없는 '자주', '시도하다' 같은 단어들에 역겨운 감정을 연결시키고 그 단어를 사용해서 어떤 인물의 행동을 묘사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더 해당 인물을 비도덕적으로 여기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도덕판단의 대상이나 내용은 철저하게 이성의 영역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쟁이나 학살이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상대편을 '바퀴벌레' 라고 칭하는 등 비인간화 뿐 아니라 상대를 더럽고 해로운 존재로 프레이밍 하는 (비)도덕화 현상 또한 흔히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노예제 폐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때도노예제를 폐지하면 미개해서 도덕적 행동을 할 능력이 없는 유색인종들이 득세해서 백인 여성들을 강간할 것이고그래서 가정이 무너지고 나아가 나라와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고
잔뜩 겁을 줬던 역사가 있다.
근래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마스크 쓰기를 권장하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고 마스크가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등의 이유로 마스크 쓰기를 권장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다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병을 전파함으로써 노약자의 사망을 야기하는 것보다도 마스크 쓰기를 권하는 행동이 더 비도덕적이라고 진지하게 믿었다고 한다.
비슷하게 자동차 안전벨트를 법제화 할 때에도 안전벨트를 착용하게 하는 것은 자동차 사고로 다수가 사망하게 두는 것보다 비도덕적이라는 주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은 무엇이든지 도덕판단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자신(우리 편)은 상대방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고 정의롭다고 믿는 편이라는 발견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2021년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람들 또한 자신들이야 말로 정의의 편이라는 강한 신념을 보였다고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우리가 나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내리는 도덕판단은 자주 우리의 '감정'과 '동기'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꽤나 허술한 편이라는 것이겠다.
누군가를 조각조각 비판하기 전에 나의 행동 또한 세세히 따져본다면 조금이나마 오류를 줄일 수 있을까.
큰 무대에 서면 몸이 얼어붙는 이유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최고 스타인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도 실수하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해 2010년 벤쿠버 대회에서는 금메달, 2014년 소치 대회에서는 은메달(사실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치 동계올림픽의 프리스케이팅 장면이다.
연합뉴스 제공
필자가 젊었을 때까지만 해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나오면 '이게 예술이지 스포츠인가'라며 동작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당시만 해도 선수 대다수는 유럽과 북미, 특히 동구권 국적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김연아라는 선수가 혜성처럼 나타나 두각을 나타내더니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 동구권 선수들은 주춤했고 공교롭게도 동갑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와 수년째 라이벌 구도를 이어왔다.
안 그래도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는 건 스트레스였는데(혹시 점프하다 실수할까봐)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숙명의 한일 대결까지 겹치니 도저히 생방송 장면을 볼 수 없어 내 방에서 거실의 TV 중계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나라 선수나 한일전 같은 비본질적인데 몰입돼 스포츠
자체를 즐기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차이
그런데 막상 선수들은 어땠을까. 4년 동안 벼르던 그날 수많은 관중 앞에서 홀로 빙판 위에 선 순간 압박감은 엄청날 것이다.
십중팔구 그 전날 밤에는 잠을 설치지 않았을까. 아무튼 김연아 선수는 실수하지 않고 기량을 100% 발휘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 아사다 마오는 그랑프리 파이널 같은 대회에서는 여러 차례 금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에서는 안타까운 실수를 하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은메달에
그쳤다.
이를 두고 아사다 마오 선수를 '유리 멘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사실 김연아 선수가 '강심장'이라고 봐야 한다.
많은 선수가 큰 경기나 역전을 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2001~2019년 미식축구를 분석한 결과 정규 시즌 필드골을 성공시킨 비율은 75%지만 경기 시간이 2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킥을 성공하면 동점 또는 역전이 되는 상황에서는 66%로 떨어졌다.
오죽하면 '큰 경기에 명승부는 없다'는 말이 있을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처럼 보상이 아주 클 때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choking under pressure)'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일상의 여러 상황에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 다음 달에 있을 수능결과(성적)가 좋으면 엄청난 보상(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이 따른다.
이로 인해 많은 수험생이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을 경험할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심리적 설명은 사회적 압력, 주의 산만, 지나친 각성 등이 있고 이런 현상이일어날 때 뇌 활동을 분석한 결과도 있지만 관련된 신경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위한 마땅한 동물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이 동물에서도 나타날까.
● 보상 아주 크면 성공률 떨어져
얼핏 생각하면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은 사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처럼 느껴진다.
뭔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노력 등은 꽤 인위적인 설정 아래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1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원숭이도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을 보인다는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스티븐 체이스 미국 카네기멜론대 바이오의공학과 교수팀은 '속도+정확도 작업'이라는 행동 실험을 고안했다.
원숭이는 커서에 손을 대고 있다가 표적이 나타나면 재빨리 손을 표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정 시간 일정 범위 내에 손을 대야 성공하고 보상으로 달콤한 주스를 받는다.
이때 보상은 크기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뉜다.
작은 보상은 주스 0.1㎖, 중간 보상은 0.2㎖, 큰 보상은 0.3㎖이고 저자들이 잭팟 보상이라고 부른 아주 큰 보상은 중간 보상의 10배인 2㎖나 된다.
참고로 각 보상은 표적의 색으로 구분할 수 있게 훈련했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보상 크기를 달리해 ‘속도+정확도 작업’ 실험을 하면 큰 보상까지는 보상이 클수록 성공률이 높지만 잭팟 보상에서는 오히려 성공률이 떨어진다.
즉 동물에서도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 현상이 나타난다.
원숭이는 커서(hand cursor)에 손을 대고 있다가 색으로 보상 크기(reward cue)를 알 수 있는 표적(target)이 나타나면 재빨리 손을 표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정 시간 일정 범위 내에 손을 대야 성공하고 보상으로 달콤한
주스를 받는다.
PNAS 제공
실험 결과 원숭이들은 큰 보상까지는 보상이 커질수록 작업 성공률이 높아졌다.
보상이 클수록 동기 부여도 커져 집중력이 높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그런데 표적에서 잭팟 보상 신호를 보면 오히려 성공률이 떨어졌다.
즉 보상 크기에 따른 성공률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뒤집힌 U자(∩)' 패턴을 보였다.
● 압박감으로 운동뉴런 활동 감소
동물도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을 보인다는 논문이 나가고 3년이 흐른 지난 9월 학술지 '뉴런'에는 이런 현상이 생길 때 뉴런 활동의 변화를 분석한 같은 연구팀의 논문이 실렸다.
연구자들은 원숭이 뇌의 운동피질에 전극이 있는 칩을 꽂은 뒤 과제를 수행할 때 뉴런의 활성을 측정했다.
표적은 손이 놓인 커서에서 임의의 거리와 방향에서 나타나므로 그때마다 뉴런 활성 패턴이 달라진다.
이런 경향은 보상이 커질수록 뚜렷했는데 다만 큰 보상까지만 그랬다.
잭팟 보상이 주어졌을 때는 오히려 패턴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즉 잭팍 보상에서는 표적의 위치를 나타내는 신호 정보가 약해졌고 그 결과 행동 속도가 느려지고 정확도도 떨어져 성공률이 낮아진 것이다.
한편 작은 보상과 잭팟 보상에서 실패율이 높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즉 작은 보상에서는 동기 부여가 안 돼 집중력이 떨어진 결과이고 잭팟 보상에서는 압박감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차이는 실패 패턴의 차이로도 드러난다.
즉 작은 보상에서는 이동한 손이 표적의 위치에 못 미쳐 멈추거나 지나쳐 멈춰 실패한 횟수가 비슷했다.
반면 잭팟 보상에서는 표적에 이르기 전에 멈춰 실패하는 횟수가 훨씬 많았다.
압박감으로 행동이 움츠러든 결과로 보인다.
● 경험 잦아지면 극복할 수 있지만...
이번 실험에서 네 가지 보상이 나타나는 빈도는 잭팟 보상이 5%이고 나머지 세 보상이 각각 31.6%로 같다.
즉 잭팟 보상은 20번에 1번꼴로 나오는 드문 기회다.
이렇게 배분한 이유는 2021년 실험 결과 때문이다.
잭팟 보상이 나오는 빈도를 나머지 세 보상과 같게 하면 성공률이 떨어지는 정도가 확 줄어든다.
압박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속도+정확도 작업은 일정 시간 내에 표적의 일정 범위 내에 손을 대야 성공하고(위) 못 미치거나(가운데) 지나치면(아래) 실패한다.
잭팟 보상이 주어지면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으로 못 미쳐 실패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뉴런 제공
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신인 아이돌 그룹이 처음 음악 방송에 출연하면 긴장한 나머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라이브 실력이 별로"라는 식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무대를 반복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제 실력이 나온다.
즉 잭팟 보상 경험이 잦아지며 더 이상 잭팟 보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결과다.
물론 이들도 더 큰 무대에 서면 다시 잭팟 보상의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지난봄 한 걸그룹이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코첼라 무대에 섰다가 큰 비난을 받은 일이 있는데 이들이 실력이 없다기보다는 무대에 압도돼 얼어버린 결과일 수 있다.
2년 전 또 다른 걸그룹도 역시 코첼라 무대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블랙핑크는 데뷔 3년 차인 2019년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코첼라의 서브헤드라이너(두 번째로 큰 무대)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일약 세계적인 걸그룹으로 올라섰다.
엄청난 잭팟 보상을 앞둔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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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경우 모두 비교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블랙핑크다.
이들은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코첼라 무대에 올라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특히 불과 데뷔 3년 차였던 2019년 무대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일약 세계적인 걸그룹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대성공이 운인지 실력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엄청난 잭팟 보상 상황에서 압박감으로 인한 경직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블랙핑크 멤버나 김연아 선수나 다들 강심장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필자소개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