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던 구글 동료들도 "내 삶에 무슨 일을 한 거야" 놀라죠

구글 엔지니어 출신으로 명상을 보급하고 있는 차드 멩 탄이 지난달 30일 오후 대전 보문고등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뇌를 깨우는 15초의 기적, 명상'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BR> 차드 멩 탄은 "학생들이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 열기가 뜨거웠다"고 말헸다.<BR> /신현종 기자

구글 엔지니어 출신으로 명상을 보급하고 있는 차드 멩 탄이 지난달 30일 오후 대전 보문고등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뇌를 깨우는 15초의 기적, 명상'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차드 멩 탄은 "학생들이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 열기가 뜨거웠다"고 말헸다.
/신현종 기자

차드 멩 탄(陳一鳴·53) 전 구글 엔지니어는 서구 사회에 명상을 대중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싱가포르 출신인 그는 2000년 107번째 직원으로 구글에 합류해 구글 검색엔진 개발 과정에 참여했고 2007년엔 사내 명상 프로그램 ‘내면 검색(SIY·Search Inside Yourself)’을 개발해 보급했다.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업무 시간의 20%를 관심 분야에 쓸 수 있도록 한 구글의 정책에 따라 명상을 하다가 7주, 20시간짜리 명상 프로그램을 만든 것. 첨단 테크 기업이 개발한 명상 프로그램은 이제 구글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으로 최신 뇌과학 연구 성과를 반영한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보급되고 있다.
2015년 구글에서 퇴직한 그는 현재 웹사이트(https://buddhism.net) 운영과 최근 저서 ‘불교를 알면 삶이 자유롭다(원제 Buddhism for all)’를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구글 초기 멤버로 참여해 받은 스톡옵션을 행사한 32세 이후 모든 급여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조계종이 주최한 ‘국제선명상대회’ 참석차 방한해 전주 서고사, 대전 보문고 등에서도 강연한 차드 멩 탄씨를 지난 1일 만나 공학도 출신으로 명상을 시작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10대 때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병원 진료도 받으셨나요?

병원에 가지는 않고 그냥 견뎠습니다.
제 어린 시절인 1970년대에는 이런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어요. 자살도 생각했지만 ‘겁쟁이’여서 실행하지는 못했어요. 그러던 21살 때였습니다.
우연히 오순절 교회를 소개받아 갔습니다.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따라 해보고 싶은 생각은 들었어요. 그리고 같은 주에 티베트 비구니 스님을 만났어요. 그 스님께 당돌하게 물었죠. ‘당신의 불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라고요. 그 스님의 답은 ‘모든 불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어요. 그 스님은 ‘마음을 닦는 것(cultivating mind)이 전부’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명상을 시작했다고요?

미얀마 스님이 하는 명상센터에 갔습니다.
미얀마 스님은 영어가 능숙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찾아가서 이야기했더니 ‘오케이, 1시간 동안 좌선하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 설명 없이 앉아 있으려니 힘들었어요. 얼마 후 또 다른 분이 와서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어요. 긴장하니 숨 쉬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미얀마 명상 센터를 다니는 것은 포기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명상엔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이건 계속해야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어요.

-언제쯤 우울증에서 벗어났나요?

1년쯤 걸렸어요.

-효과도 없는데 1년 동안 계속 명상 수련을 했다고요?

저는 결심하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성격입니다.
어느 날 호흡에 집중하고 있는데 문득 어떤 기운이 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순간적으로 내 몸과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됐죠. 우울한 기분이 사라졌어요. 그때 ‘아, 해결됐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얼마 후 기쁨은 사라졌어요. 그래도 명상을 했지요. 그랬더니 다시 기쁨이 찾아왔어요. 이후로도 그런 상태가 반복됐어요. 다만 (기쁨이 찾아오는) 간격이 짧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하루에 짧으면 30분, 길면 2시간씩 명상을 계속하고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기쁨을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쁨을 볼 수 있도록 제 마음을 고요히 한 것뿐이었어요.(그는 ‘명상을 한다고 약물 치료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차드 멩 탄(가운데)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제선명상대회'에서 며 명상 전문가들과 함께 좌선하고 있다.<BR> /조계종

차드 멩 탄(가운데)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제선명상대회'에서 며 명상 전문가들과 함께 좌선하고 있다.
/조계종

-2000년 구글에 ‘107번째 사원’으로 입사하셨지요? 구글에선 어떤 일을 맡기로 하고 합류했나요?

대학(싱가포르 난양대)에선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어요. 제가 입사할 당시 구글은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은 어떤 고정된 자리를 정해놓고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엔지니어를 뽑습니다.
입사한 후에도 매니저가 ‘당장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제시하면 각자 할 일을 선택했어요.

-2007년 ‘내면 검색’ 프로그램을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직원들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글은 원래 세계 평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꿈인 회사였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 명상을 직원들에게 보급하기로 한 것이죠. 그런데 ‘세계 평화를 위해 명상을 하자’고 하면 동기부여가 잘 안 되니 ‘더 성공하고, 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명상을 하자’고 얘기하면 관심을 보이게 되지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평화(peace), 기쁨(joy), 자비(compassion)였죠.

-선생님은 스스로 명상붐에 일조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명상붐에 기여했다면 명상을 쿨(cool)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약점이 강점이 된 경우라고 생각해요. 저는 명상 전문가가 아니라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것이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저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궁금한 점을 묻고 연구해 ‘나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강점이 됐지요. 명상의 주요 개념을 한자(漢字)나 팔리어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강점은 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읽고 싶은 책을 썼어요.(그가 2012년 펴낸 ‘서치 인사이드’는 세계적으로 50만권, 국내에서 5만권 정도 판매됐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IT 업계 사람들이 명상을 많이 하고 있지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IT 업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많아요. 처음에 명상을 접한 사람들은 ‘이상하다(weird)’라고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치열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목적은 아니고요?

그런 점도 있지요. 그렇지만 명상을 해본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감소되는 동시에 창의적인 생각이 샘 솟는 것을 경험합니다.
가령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라고 하던 사람들이 명상 수업을 들은 후에는 해결하는 경우도 있어요. 성취감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명상 수업을 받은 사람들과 가족들로부터 ‘당신은 도대체 내 삶, 내 가족의 삶에 무슨 일을 한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듣지요. 그럴 때 저는 웃으며 ‘미안하다’고 합니다.

-IT 기술은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곤 하지요. 그런데 그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수행을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처음 구글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 중독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두려 했지만 원래 구글은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찾고 빨리 떠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거든요.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해결책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책에서 ‘행복은 마음의 초기 상태’라고 하셨어요. 마음의 초기 상태를 잘 유지하고 계시나요?

항상 노력합니다.
좌선할 때 95% 정도는 기쁨에 접근할 수 있어요. 옛날 어떤 부잣집에 우물이 있어서 언제든 물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요. 저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듯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12년 전 책에선 어린 딸과 2분씩 명상을 한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초보자에게 2분부터 시작하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긴 것 같아요. 이제는 명상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한 호흡(one breath)’을 권합니다.
10초가 될 수도 있지요. 한 호흡을 하고 또 한 호흡. 그렇게 차츰 늘려가라고 권합니다.

-12년 전 저서 ‘서치 인사이드’에서 ‘나는 보물 창고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 가져갈지 말지는 여러분의 몫’이라고 하셨지요?

저는 여전히 사람들이 보물을 더 많이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동전 한 줌만 가져가도 몇 년 동안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만 주머니마다 가득 가져가서 집도 샀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인 마음챙김과 스트레스 감소를 넘어서 내면의 기쁨과 모든 사람을 위한 내면의 평화와 자비를 발전시키면 좋겠습니다.

[차드 멩 탄의 ‘서치 인사이드’ 중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 어린 딸과 나는 함께 자리에 앉아 2분간 마음 챙김 연습을 한다.
하루에 2분씩 우리는 조용하게 ‘살아 있음’과 ‘함께 있음’을 즐긴다.
더 근본적으로 존재 상태를 즐긴다.
그냥 있는 것이다.
그냥 존재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귀중한 경험이다.

―참 허탈하다.
유사 이래 인류는 행복을 움켜쥐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해왔는데 알고 보니 그저 숨쉬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지속 가능한 행복을 낚아챌 수 있었다니 말이다.

―고통에 대처하는 원칙. 괴물(고통)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 먹이만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배가 고파 다른 데로 가버리기 쉽다.

―회의를 대하는 세 가지 가정: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더 큰 선(善)을 위해 모였다고 가정하라. 그 누구도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하라. 의견이 다를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것으로 증명될 때까지는 나름대로 다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라.

―마음 챙김 이메일 작성법:한 차례 의식적 호흡으로 시작하라. 수신자를 시각화하고 몇 분간 나처럼 자애심 연습을 시도하라. 보내기 전에 메시지의 감정적 맥락이 불명확하면 수정하라.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차례 의식적으로 호흡하라. 특히 분노의 이메일을 쓰는 중이라면 보내기 전에 세 차례 천천히 의식적으로 호흡하라.

때로 신문은 당신을 무기력에서 구한다

아파트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게 지겨워졌다.
뭘 해도 쉽게 심드렁해졌다.
일은 해도 성과가 나지 않고 돈은 벌리지 않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미소는 모두 가식 같다.
지겹다.
지겨워. 많은 것들이 지겨워졌을 때 나는 이사를 갔다.

모두가 이사 가려는 나를 말렸다.
손해라고. 멀쩡한 고향을 왜 떠나냐고. 이사를 가면 생활비도 더 들 것이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도 못 받을 거라고.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급하게 구한 집은 전세라 부동산으로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었지만, 이곳을 굳이 택한 이유는 있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스타벅스가,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다.
이사를 했으니 매일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책이나 신문을 읽고 해변으로 가는 일상.

강의가 없는 날 아침이면 커피숍으로 가서 신문을 읽었다.
누가 읽지 않은 빳빳한 신문을 챙겨 들고 커피숍을 가는 일은 어떤 종류의 뿌듯함을 선사한다.
아무도 모르는 기쁨을 혼자 느끼며 신문을 자리에서 펼친다.
한 장 펼치면 글씨체가 눈에 들어온다.
정갈하다.
정성스러운 밥상을 받아서 밥을 먹듯이 기사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는다.
읽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칼럼을 발견했다.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가을에는 무기력을 디톡스하자라는 칼럼 내용에 따르면 무기력을 극복하는 데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메모리 체크’라고 한다.
하루를 마감할 때 어떤 감성으로 마무리를 짓는가가 무기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무기력이었구나!’ 그때 그 칼럼을 읽고 나서야 나는 내 감정이 무기력임을 알아차렸다.
사람도, 감정도 모두 지겨운 게 무기력임을. 기사에서는 이때 크게 도움이 되는 게 미니 브레이크, 즉 작은 쉼이라고 한다.
신문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삶이 잠시 주춤거릴 때 다시 추동하는 힘의 원천을 지면에서 얻었다.

나는 곧장 걸어서 바다로 갔다.
바다에 도착해 신문을 반으로 접고 손에 끼고 계단에 서서 하늘색을 바라보았다.
그다음, 신발과 양말을 벗고 해변을 걸었다.
바닥에서 모래가 부드럽게 발바닥 전체를 감싸는 느낌. 햇빛이 머리카락을 덮고 귓가에 파도 소리까지. 걷다가 해변 중간쯤 자리를 잡고 모래 위에 툭 앉았다.
무기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 나만의 미니브레이크가 필요했는데 여기가 정말 딱이었다.

당신은 무기력해질 때 작은 쉼을 할 수 있는 공간, 혹은 루틴이 있는가? 있었음에도 나처럼 더 이상 그 장소가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하루 끝 엔딩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컴포트존에서 나와서 새로운 곳에서 생활해 보자. 분명히 당신도 나처럼 그것들이 주는 힘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하루가 지겹지 않게 될 것이다.
새롭고 또 새롭다.
사랑하는 신문과 바다가 함께하는 생활 말이다.

나라인가, 아내인가

공민왕은 애민 군주였지만
노국 공주 떠난 뒤 자제력 잃어
태조 이성계의 세자 선택도
신덕왕후 때문에 정당성 잃어
통치자는 개인 초월한 존재
나라 위해서 때론 악인 돼야
태종·세종도 인간적 연민 극복
지금 국민의 인내, 한계 달했다

칸트로비치(E. Kantorowicz)에 따르면, 왕에게는 ‘두 개의 신체’(two bodies)가 있다.
자연인의 신체와 왕의 신체다.
왕은 한 개인인 동시에 왕국의 통치자다.
한 몸에 둘이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왕의 영혼은 공인과 사인이 싸우는 거센 격투장이다.
공이 사를 이기면 나라가 산다.
그 반대면 나라가 망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그런 사례다.
늙은 리어왕은 왕국을 삼분해 세 딸에게 상속하려 했다.
조건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하지만 상속을 노리는 사랑은 불순하다며 막내딸 코델리아가 거부했다.
분노한 리어왕은 두 딸에게만 상속하고, 코델리아는 추방했다.
하지만 딸들에게 버림받은 리어왕은 황야를 떠돌고, 전쟁이 일어나고, 모두가 죽었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은 탐욕이다.
그러나 첫 불씨가 된 건 리어왕과 코델리아의 착각이었다.
왕가의 사랑을 공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로 오인했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일이 많다.

고려말 공민왕은 총명한 애민의 군주였다.
전광석화처럼 친원파를 제거하고, 발본적 개혁도 단행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왕비 노국 공주가 출산 중 세상을 떠났다.
실성한 왕은 공주의 능을 무수히 배회하고, 초상화를 보며 흐느꼈다.
밤이면 만취해 내시들을 매질하다 암살당했다.
그는 고려 왕조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개인적 슬픔에 함몰되어 기울어가는 왕조를 더 깊은 수렁에 빠트렸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왜구의 살육에서 백성을 구한 영웅이다.
그런데 조선 건국 후 개국 1등 공신 이방원을 내치고, 이방석을 세자로 세웠다.
이방원의 생모는 향처 신의왕후 한씨고, 이방석의 생모는 경처 신덕왕후 강씨다.
시골 무사 이성계가 왕이 된 공의 절반은 강씨 몫이었다.
이성계는 강씨를 사랑했다.
그 소생을 세자로 세운 까닭이다.
본래 정당한 왕권 계승법은 본처의 장자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성계의 선택은 공평성, 정당성을 모두 잃었다.
결국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이방석은 죽었고, 이성계는 왕위에서 쫓겨났다.
복수심에 불탄 이성계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켰다.
국가 안위는 안중에 없었다.
만년의 이성계는 깊은 밤 궁궐에서 일어나 슬피 울었다.

태종 이방원의 손은 피로 얼룩졌다.
정몽주를 죽이고, 이복형제를 살해했다.
친형과 칼을 겨누고, 아버지와 싸웠다.
외척의 화를 우려해, 제1차 왕자의 난 때 생사를 같이한 처남 4명도 모두 죽였다.
그 충격으로 왕비 원경왕후 민씨가 쓰러졌다.
태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스스로 칼을 들고 일어선 여장부였다.
양녕대군이 실행을 거듭하자 폐세자하고, 충녕대군을 세웠다.
태종이 죽었을 때, 개국공신 101명 중 20여 명만 생존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일어난 패륜이었다.
하지만 태종 재위기에 건국 30년도 안 된 조선은 확고한 안정을 다졌다.
그 뒤를 이어 위대한 세종의 시대가 꽃피었다.

태종은 세종의 처가도 척결했다.
세종의 장인은 영의정 심온으로, 그 장녀가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다.
태종은 강상인 옥사에 연루시켜 심온을 반역죄로 처형하고, 그의 아내와 자녀는 관노로 만들었다.
세종은 소헌왕후를 사랑했다.
하지만 태종의 잔인한 처사에 대해 내가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하였다고 회고했다.
즉위 후에도 즉시 처가 식구들을 구하지 않았다.
다만 소헌왕후의 외조부 잔치에 참석시켜, 서로 멀리서 보도록 했다.
즉위 8년 뒤 신하들이 요청하자 비로소 노비를 면제시켰다.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는 한말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조선 주차(駐箚) 미 공사관 서기관 샌즈(W. F. Sands)는 시대를 앞섰고, 여성을 초월한 정치가였다고 그녀를 평가했다.
1894년 동학혁명 때, 명성황후는 청나라 군대의 차병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외국군에게 백성이 죽고, 다른 나라도 파병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조정 대신들은 반대했다.
청병이 들어오자, 일본도 파병했다.
결국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조선은 열강의 싸움터로 변했다.
조선 왕조는 그렇게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왕과 대통령은 다르다.
그러나 통치자는 모두 개인을 초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는 때로 악인이 되는 길도 피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의 충고다.
통치자란 이처럼 인간과 야수의 경계에 선 존재다.
인간의 따뜻함과 거리가 먼 붕망(朋亡·사사로운 관계를 끊음)의 길이다.
태종이 그랬다.
성군 세종도 인간적 연민을 누르며 인내했다.
진정한 통치자의 과업은 인간성(humanity)의 가장 가혹한 시련이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헌신은 종교적 순교보다 어렵다.
김건희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국민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라와 아내,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이 대표를 둘러싼 위증의 그림자

포스단말기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NH농협은행

포스단말기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NH농협은행

지난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김씨의 수행비서 배모씨, 현역 민주당 중진 국회의원 아내 A씨의 법정 증언과 배치되는 물증이 나왔다.

검찰은 김씨가 선거 운동 기간 노원구의 한 일식당에서 A씨에게 밥을 사면서 수행원 3명의 식사값을 포함해 총 5인분을 계산했다고 본다.
반면 배씨는 법정에서 3인분은 수행원 밥값, 2인분은 내가 음식을 포장한 것이라며 김씨와 A씨는 현금으로 각자 결제한 걸로 안다고 했다.
A씨도 내 밥값은 내가 현금으로 냈다고 했다.
그런데 해당 일식집의 포스기 내역을 살펴보니 포장 기록도, 현금 결제 기록도 없었다고 한다.
만약 두 사람이 김씨를 위해 법정에서 허위 증언을 한 것이라면 위증 범죄에 해당한다.

앞서 이 대표 측근들의 재판에서도 위증 정황이 수차례 나왔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재판에선 검찰이 ‘돈 받았다’고 지목한 시간에 김씨가 나와 같이 있었다고 가짜 알리바이를 댄 이모씨가 있었다.
검찰은 이 대표 대선 캠프 상황실장 출신 인사 2명이 김씨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고, 이 과정에서 이씨에게 위증을 요구했다고 봤다.
검찰은 상황실장 출신 2명을 위증교사 혐의로, 이씨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 송금 재판에서도 위증 정황이 포착됐다.
신명섭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2019년 1월 중국 심양에서 열린 북한 측 인사와의 협약식에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함께 참석해놓고도 쌍방울 그룹과 함께 참석한 적 없다고 했다.
이화영씨의 사적 수행비서 문모씨는 쌍방울로부터 직접 급여와 법인카드를 받았지만 쌍방울을 위해 한 일은 없다고 했다.
법원은 객관적 증거에 비춰 신 국장과 문씨의 말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두 사람과 운전기사 진모씨는 위증 혐의로 기소돼 있다.

특정 인물 관련 재판에서 위증 정황이 계속 드러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20여 년간 검찰에 몸담은 전현직 고위 검사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 본인도 위증교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2018년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증인에게 직접 위증을 부탁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지난달 이 대표에게 대법원 양형 기준상 최고형인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선고는 내달 25일 나온다.

검찰은 이 대표 재판에서 위증 범죄는 그 자체로 실체적 진실 규명을 방해해 사법 질서를 교란하고 그 과정에서 사법 자원의 심각한 낭비를 초래한다.
국민 불신과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중대 범죄라고 했다.

이 대표 주변 인물의 법정 증언이 줄줄이 객관적 증거와 상충하는 상황을 이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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